장기판 없애자 노인도 없어졌다...탑골공원에서 '침묵'해야?

2025-11-05     김지나 도시문화연구가
지난 8월 3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공원 질서 계도 강화’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종로구는 독립운동 성지인 탑골공원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 시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바둑, 장기 등 오락행위, 흡연, 음주가무, 상거래 행위 등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photo 뉴스1

지난 7월 말 서울 탑골공원에서 30년 넘게 이어져온 풍경이 사라졌다. 담벼락을 따라 놓여있던 장기판이 모두 철거된 것이다. 종로구청은 ‘3·1운동이 일어난 역사적 장소를 보호하고 시민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란 명분을 내세웠다. 매일 이곳에서 장기를 두던 노인들 대부분은 딱히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해 하릴없이 공원 주변을 배회하기만 했다.

노인들만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마당이나 골목에서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기가 어려워졌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들은 이제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콘텐츠 속 문화 아이콘으로만 남았다. 그와 함께 놀이를 통해 만들어지던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도 함께 잃어버렸다.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주인공 베스 하먼은 소련에서 세계 챔피언전에서 승리한 후, 정치적 잔소리만 늘어놓는 미국 정부 관계자를 뒤로하고 홀로 모스크바 거리를 걷는다. 그리고 공원에서 체스를 두고 있는 노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어 게임 한 판을 시작한다. 그곳에 경쟁이나 승리의 압박, 이념 체제 갈등 따위의 복잡한 문제는 없다. 노인들은 마치 손녀를 마주하듯 베스 하먼을 반기고 체스는 그들을 연결하는 소박하면서도 중요한 도구가 된다.

실제로 소련 시절부터 체스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국가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1920년대 소비에트 정권은 체스를 ‘노동자 계급의 지적 훈련 도구’로 규정하고 전 국민적 보급에 나섰다. 학교에서는 정규 과목으로 체스를 가르치기까지 했고 공장과 집단농장에도 체스 클럽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공원에는 체스 테이블들이 만들어졌다.

현재도 모스크바의 고리키공원, 소콜니키공원 등에서는 체스를 두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소콜니키공원 체스클럽은 과거 그랜드마스터들을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며, 어린이 체스교실도 운영 중이다. 모스크바 에르미타주 정원에서는 매년 ‘체스 & 재즈 페스티벌’이 열려 시민들이 야외에서 세계적인 그랜드마스터들과 체스를 두면서 재즈 공연을 즐기곤 한다. 100년 전 정부가 만든 인프라가 일상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놀이가 사라지면 관계도 잃어버려

지난해 6월 모스크바시는 소련 중앙 체스클럽이 있었던 고골레프스키 대로에 ‘샤흐마트니 불바르’라는 이름의 야외 체스클럽을 개장하기도 했다. 모스크바시 문화부, 러시아 체스연맹 등이 함께 주최한 것으로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체스를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한 행사였다. 대로를 따라 20개의 체스 테이블을 설치하고 러시아 체스연맹이 무료로 기물을 제공해, 시민들은 이를 자유롭게 대여해 이용할 수 있었다. 주말에는 특별 토너먼트와 그랜드마스터들의 대국이 펼쳐져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했다. 우리와는 정반대의 행보다.

튀르키예와 중동 지역의 백개먼(Backgammon) 문화는 더욱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주사위를 굴려 각자의 말을 규칙에 따라 이동시키고 가장 먼저 모든 말을 빼내는 사람이 이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방식의 게임이다. 기원전 3000년경 이란의 샤흐레 수흐테에서 발굴된 백개먼 보드와 주사위는 이 게임의 유구한 전통을 보여준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루두스 두오데킴 스크립토룸’이라는 이름으로 제국 전역에 퍼졌고, 이것이 현재 백개먼의 시작이었다.

과거 오스만제국 시대, 이스탄불에 세계 최초의 카페가 문을 열었을 때 백개먼은 그 중심에 위치했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커피나 차이를 마시며 백개먼을 두었다. 카페는 사람들이 모여 게임을 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공공과 사적 영역의 중간 지대로 자리 잡았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 주변 카페나 갈라타 다리 밑 찻집에서는 하루 종일 백개먼 주사위 굴리는 소리가 들린다.

도미노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특히 인기 있는 놀이 문화다. 도미노라 하면 팻말들을 길게 늘어세우고 쓰러뜨리는 게임을 먼저 떠올릴 수 있겠으나, 전통적인 도미노 게임은 전혀 다른 놀이다. 주사위처럼 눈이 적혀 있는 정사각형 블록 두 개를 이어붙여 만든 작은 패가 바로 도미노다. 카드나 주사위처럼 이 도미노를 이용해 여러 가지 다양한 규칙의 게임을 할 수 있다.

요즘도 이집트, 레바논, 시리아 등 중동지역 사람들은 카페에서, 찻집에서, 광장에서 일상적으로 도미노 게임을 즐긴다. 특히 라마단 기간 중 금식을 깨는 식사인 ‘이프타르’ 후에는 가족과 이웃이 모여 도미노를 두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이집트 카이로의 칸엘칼릴리 시장에는 200년 이상 오래된 카페들이 있는데, 나이를 불문하고 도미노를 두면서 담소를 나누는 전통적 사교 공간이 되고 있다. 도미노라는 게임을 통해 세대가 소통하고 역사와 지혜가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공간이 공공자원 낭비?

우리나라 공원과 광장에는 이상한 침묵이 흐른다. 러시아 공원의 체스판 두드리는 소리, 튀르키예 카페의 주사위 굴러가는 소리, 카이로 시장의 도미노 부딪치는 소리 같은 놀이의 소음이 없다. 대신 ‘조용히 하세요’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가 됩니다’라는 제지의 목소리만 들린다. 우리에게 공공공간은 함께 사용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준 공공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튀르키예나 중동의 카페처럼 상업공간이면서도 공공의 기능을 하는 곳, 오랜 시간 머물며 낯선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곳을 찾기가 어렵다. 카페는 철저히 상업공간이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얻는 것은 임시 자리일 뿐 그곳에서 타인과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고 가는 이는 드물다.

탑골공원 장기판 철거는 이런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역사적 장소 보호’라는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정작 그 역사적 장소에서 30년 넘게 이어져온 문화는 역사로 인정받지 못했다. 노인들이 장기를 두는 행위는 보존해야 할 문화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민원거리였을 뿐이다. 장기판을 빼앗긴 노인들이 느끼는 불안은 단순히 놀이 장소를 잃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 아니다. 이 도시 어디에도 자신들이 머물러도 되는 곳이 없다는 존재론적 불안인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를 거치는 동안 우리에게 공공공간은 늘 감시와 통제의 공간이었다. 광장에 모이면 불온하고 공원에서 떠들면 불량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민주화 이후에도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논리와 결합해 더 교묘해졌다. 이제 공공공간은 효율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자산이고, 그곳에서 비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공공자원의 낭비처럼 여겨졌다. 장기 두는 노인들이 철거 대상이 된 진짜 이유도 이것 아닐까. 관리자들 눈에 그들의 놀이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그저 시간을 소비하는 비효율적 행위였던 것이다.

종로구는 내년 초 실내에서 장기와 바둑을 둘 수 있는 공간을 따로 조성한다고 한다. 노인들은 그나마 갈 곳이 다시 생기겠으나 점점 더 그들만의 고립된 세상으로 들어가는 모양새다. 물론 이전에도 탑골공원에서 ‘퀸스 갬빗’ 마지막 장면과 같은 감동적인 세대 간 만남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러니 더더욱 그런 희박한 가능성 따위 남겨둘 필요가 없다는 발상이 안타깝다. 우리 도시는 이렇게 점점 더 분리되고 구성원들이 서로를 경계하는 삭막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