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만 사랑하는 남자가 오래 산다?

2025-11-06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photo 게티이미지

남녀 사이에 4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이 있다. 여성이 일반적으로 더 오래 산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말이다. 실제 통계를 봐도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산다. 2023년 7월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은 86.4세지만 남성은 80.6세로 5.8년 더 짧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나타나는 공통 현상이다. 전 세계의 평균 수명은 여성 73.8세, 남성 68.4세로 여성이 평균 5.4년 더 산다.

여성의 장수 현상은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다. 동물 세계에서도 암컷이 더 오래 사는 경우가 많다. 왜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살까. 유전적인 기질 탓일까, 아니면 식·생활 습관 때문일까? 최근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등 국제 공동연구팀이 풀어낸 연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답은 우리의 염색체에서 시작된다.

생물학적 요인이 수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주요 가설 중 하나가 성염색체의 ‘이형 생식(heterogametic sex)’이다. 성염색체는 쌍으로 존재한다. 여성은 두 개의 동일한 X염색체가 있는 반면, 남성은 X염색체 하나와 Y염색체 하나를 갖고 있다. 이형 생식 가설에서는 같은 성염색체를 가진 여성이 해로운 돌연변이로부터 더 잘 보호돼 성별 간 수명 격차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아직 완전히 증명되지 않았다.

 

끊임없는 짝짓기에 에너지 잃어

그래서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페르난도 콜체로(Fernando Colchero)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 가설을 포유류와 조류에까지 적용해보기로 했다. 연구팀은 먼저 1176종(포유류 528종, 조류 648종)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기대수명 차이를 분석했다. 지금까지 포유류와 조류의 수명 차이를 분석한 연구 중 가장 포괄적인 분석이다.

그 결과 포유류 종의 72%에서 암컷이 수컷보다 평균 12~13%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류는 정반대였다. 조류 종 68%에서 수컷이 암컷보다 약 5% 더 오래 살았다. 조류에서는 수컷이 두 개의 ZZ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반면 암컷은 Z와 W라는 서로 다른 염색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포유류든 조류든 같은 성염색체 패턴이 기대수명을 뒷받침한다는 ‘이형 생식 가설’이 증명된 셈이다.

콜체로 박사는 “이러한 성염색체의 차이로 인해 세포가 노화되는 방식이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X염색체 또는 Z염색체에는 생명체의 생명 유지에 필수인 유전 정보가 포함돼 있다. 결국 동일한 두 개의 염색체를 소유했다는 것은 유전자의 복사본을 하나씩 더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의 염색체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기능을 대신할 예비 부품이 있어 유전적 손상에 대한 방어력이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두 개의 다른 염색체를 가진 경우엔 예비 부품이 없어, 더 많은 세포들이 오작동을 일으켜 질병에 취약해지면서 수명이 짧아질 수 있다는 게 콜체로 박사의 설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연구 결과와 다른 예외 패턴이 일부 종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송골매와 해리스매, 올빼미, 부엉이 등 많은 맹금류의 암컷은 수컷보다 크고 수명이 길었다. 약 57%의 맹금류 암컷이 더 오래 살았다. 이는 성염색체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전부가 아님을 나타낸다.

이에 연구팀은 이 문제를 더욱 깊이 파고들어 동물들의 생식 전략을 살폈다. 수컷이 암컷보다 평균 수명이 짧은 이유를 일부다처제 방식으로 후손을 번식시킨 사실에서 찾았다. 그 결과 특히 짝짓기 경쟁이 수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개코원숭이·고릴라·침팬지·오랑우탄처럼 짝짓기 경쟁이 치열한, 다시 말해 성생활이 문란한 일부다처제 포유류 수컷이 일반적으로 암컷보다 일찍 죽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연구팀의 일원인 미국 버밍엄 앨라배마대의 니콜 리들(Nicole Riddle) 교수는 그 이유를 특히 ‘성 선택(sexual selection)’에 따른 에너지 소모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일부다처제 수컷들이 짝짓기 기회를 잡기 위해 성 선택에 유리한 형질, 이를테면 큰 몸집, 화려한 장식용 깃털, 강한 뿔 등과 같은 무기를 발달시켜 왔는데, 이런 특징을 이용해 다른 수컷과 끊임없이 경쟁할 때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것이다.

에너지 소모가 크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장기적 생존에 쓰일 에너지 자원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수컷이 짝짓기 성공률을 높일지는 몰라도 그 대가로 단명을 자초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반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조류는 짝짓기 경쟁이 적어 암컷과 수컷의 수명 차이가 거의 없거나 오히려 수컷이 더 오래 사는 것으로 관찰됐다.

 

성별 간 수명 차이는 유전적·진화적 특징

연구팀은 또 자손 양육에 더 많이 관여하는 성별이 더 오래 산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인간이나 다른 영장류처럼 암컷이 새끼를 오랫동안 키우는 종은 암컷의 수명이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새끼의 생존이 어미의 오랜 존재에 달려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진화적으로 암컷은 자손이 독립하거나 성적으로 성숙하여 종의 존속을 보장할 때까지 생존하도록 적응했을 가능성이 있다.

연구팀은 호르몬에도 주목했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면역체계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남성은 바이러스와 세균에 더 민감한 반면, 여성 호로몬인 에스트로겐은 테스토스테론보다 우리 몸을 더 잘 보호한다. 에스트로겐은 항염증, 항산화, 면역증진 기능 등 유해한 물질을 차단하는 데 유리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연구팀은 폐경이 시작돼 에스트로겐이 줄면 노화가 일찍 찾아오긴 하지만 기능 점수가 떨어진 상태로 오래 산다고 결론지었다.

한편 이번 연구에서 동물원 개체군은 야생 개체군보다 성별 간 수명 차이가 작게 나타났다. 아마도 사육 환경에서의 삶이 싸움·포식·질병과 같은 환경적 압력을 최소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물원과 같은 보호된 환경에서도 성별 간 수명 차이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유전적 요인이 깊이 뿌리박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남녀 간 기대수명 차이, 특히 여성의 장수 기대수명은 우리 진화 역사에 오랫동안 내재되어온 특징이다. 성별 간 수명 차이는 앞으로의 의학 발전과 생활환경에 따라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뚜렷하게 암호화된 생리적·유전적 차이점이 남녀 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게 생물학자들의 의견이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