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도 김정은에 '러브콜'...북일 연락사무소 열리나

2025-11-08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지난 10월 28일 일본 도쿄 아카사카영빈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넷째)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오른쪽 셋째)가 일본인 납치피해자 가족들과 만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25년 가을, 김정은 상종가 시대다. 국제 정치 무대에서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만나고 싶다고 하고, 막 취임한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도 직접 면담을 추진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 이름 석 자가 언급됐다. ‘트럼프·김정은 직접회담=한반도 평화의 출발점’이란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동맹’이 아닌 아닌 ‘공조’라는 표현과 함께,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국정 최우선 리스트에 올렸다. 그 결과지만 ‘김정은 띄우기’는 이후 한국 각 부처의 영순위 과제로 부상한다. 잘되면 대박, 안되면 ‘언젠가’에 매달릴 ‘로또 외교’라고나 할까?

‘외교=이벤트 쇼’는 언제부턴가 한국에 정착한 기묘한 발상이다. 국가 간 ‘공동성명’이나 ‘공식합의’보다, 아이돌과 K-컬처를 앞세운 ‘이벤트 쇼’가 외교의 목적 자체로 느껴진다. 3500억달러(약 500조원)의 대미투자금 행방보다 신라 금관이 신문 헤드라인에 오른다. ‘K-화장품과 김을 좋아한다’는 외국 정상 말 한마디면 회담 결과가 어떻든 대성공이다.

당위로서의 ‘졸렌(Sollen)’과 존재로서의 ‘자인(Sein)’을 혼동한다고 할까? 핵과 남북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거꾸로 ‘김정은 이벤트 쇼’ 만들기에 혈안이다. 

아시아 순방에 나선 트럼프의 동선을 보면 애초부터 김정은과 회동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10월 31일 핼러윈데이다. 이미 한국에 오기 전 트럼프 대통령 부부는 백악관 핼러윈 기념행사 참가가 예정돼 있었다. 미국 상식이지만, 핼러윈을 무시하는 어른은 대통령이든 관계없이 인격파탄자로 낙인찍힌다.

전쟁 중이라도 12월 초 백악관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에 ‘반드시’ 참가한다. 어린이가 “사탕 안 주면 난리 칠 거야(Trick or Treat)”라고 말하면서 어른들을 다그치는 것이 핼러윈의 일상 풍경이다. 핼러윈의 하이라이트는 어른들로부터 얻어내는 어린이들의 사탕 경쟁에 있다. 미국 대통령이 사탕 경쟁에 나선 어린이들을 제쳐놓고 ‘로켓맨(Rocket Man)’을 만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에서는 백악관 핼러윈 행사가 김정은보다 우선이다.

반면 다카이치 일본 총리는 지난 11월 3일, ‘김정은과의 회담 추진’을 전 국민에게 알린다. 허상에 가까운 ‘카더라 립서비스’ 수준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자인(Sein)’으로서의 발언이다. 발표 장소는 납치피해자 가족모임이 주도하는 ‘국민대집회’다. 피해자 가족은 일본 정치의 흐름도 바꿀 파워 단체다.

 

트럼프, 납치피해자 가족모임 참석 

트럼프의 지난 도쿄 방문 당시 일본인 대부분이 감동한 장면이 하나 있다. 미·일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가 직접 나서 10여분간 납북자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이다. 원래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이 나설 예정이었지만, 트럼프가 직접 나섰다. 트럼프가 피해자 가족들과 직접 만나 손을 잡고 위로하는 모습을 보면서 열도 대부분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트럼프는 “미국은 끝까지 가족들과 함께할 것”이라 공언했다. 트럼프 ‘개인(I)’이 아닌 ‘미국(USA) 전체’가 가족들과 함께 한다는 국가적 차원의 약속이다. 이후 일본 내 반(反)트럼프 정서가 한순간 사라진다. 물론 다카이치 총리의 인기도 급상승한다.

필자는 다카이치의 발언이 납치피해자 가족 주도의 ‘국민대집회’에서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피해자 가족에 대한 약속이자, 국민 전체에 대한 보고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공식입장에 따르면 일본인 17명이 북한에 납치됐다고 한다. 납치 문제는 일본 정부가 방관하고 무시한 ‘국가주권’ 차원의 실책으로 통한다.

일본 특유의 정치적 공기지만, 납치와 관련해 책임을 진 정부관계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다카이치는 그 같은 일본적 공기에 맞서, 총리에 오르기 직전까지 납치 문제 규명과 해결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올렸다. 다카이치가 총리에 오른 것은 지난 10월 21일이다. 피해자 가족 면담은 총리 취임 사흘 뒤인 23일 이뤄졌다. 다카이치의 첫 대외 공식활동이다.

다카이치는 국민대집회에서 납치 문제에 관한 ‘파격적’ 입장과 자세도 공표했다. “납치피해자의 생명과 국가의 주권이 걸린 이 문제에 대해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 기존의 법이나 일본의 외교 방침에 반하더라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결의인 셈이다. 김정은과 회동 추진 발표는 그 같은 맥락 속에서 행해지는 다카이치의 제1 약속이다.

일단 칼자루는 핵을 가진 김정은이 쥐고 있다. 다카이치의 발언을 아예 무시하고 핵으로 위협하면서 트럼프와의 결판에 매달리는 정책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김정은이 생각하는 식의 핵타협이 당장 이뤄지기도 어렵다. 설령 북핵을 인정한다 해도 핵만으로 먹고살 수는 없다. 돈이 필요하다.

러시아에서 식량과 에너지 지원이 있다고 하지만, 우크라이나전쟁 종전 이후 대폭 감축될 것이다. 안정적이고도 장기적인 경제보험이 필요하다. 최일선은 유엔 경제제재 해제다. 바로 한국 통일부가 김정은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김정은에게 돈벼락을 안기고 싶어도 유엔 경제제재로 인해 꼼짝을 못한다.

이때 일본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일본은 유엔 이전에, 자체적인 대북 경제제재에 나서왔다. 일본인 납치 문제는 유엔 경제제재 이유 중 하나다. 만약 일본이 납치 문제 해결을 통해 경제제재 해제 방침으로 나아갈 경우, 유엔 경제제재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 적극적으로 해제를 선도할 경우, 중국·러시아도 박수를 치고 미국도 마냥 반대하기 어렵다.

북·일 수교가 이뤄질 경우 막대한 식민지 배상금, 또는 경제기금도 북한에 안겨질 것이다. 한때 100억달러까지 오르내린, 김정은이 일본에 기대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일본은 그 같은 김정은의 관심사를 파고들 것이다. 김정은의 어머니는 1952년생 오사카 출신 재일동포다. 김정은의 일본관이 남다를 것이다. 일상 속 일본인 관용어로 ‘말하면 통한다(話せばできる)’는 표현이 있다. ‘성심성의껏 열심히, 직접 대면해 얘기를 나눌 경우 서로에게 좋다’는 의미다. 

 

미·중 수교보다 빨랐던 일·중 수교 

김정은이 아무리 트럼프를 우선시한다 해도, 일본 특유 ‘밀착 정서’를 통한 문제해결도 가능하다.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이 이뤄졌다. 그 유명한 ‘닉슨 쇼크’다. 한국은 물론 일본에도 비밀로 한 방문이다. 이후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베이징에 간 것은 7개월 뒤인 1972년 9월이다.

놀랍게도 다나카와 마오쩌둥 사이에 일·중 수교가 곧바로 이뤄진다. 미·중 수교 출발점은 1979년 1월 1일이다. 미국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국력을 모아 일·중 수교를 6년4개월 앞당긴 나라가 일본이다. 다카이치의 결의와 일본 내 공기를 보면 북한판 ‘말하면 통한다’가 출현할 것이다.

다카이치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납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가다치(型)’, 즉 기존의 틀과 형식을 우선시하는 곳이 일본이다. 수백 년 역사의 레스토랑이나 가게가 즐비한 이유도 가다치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다카이치의 발언이 파격적인 이유다.

그렇다면 어떤 식의 ‘수단을 안 가리는 파격’이 나타날 것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북·일 연락사무소 설치다. 대사관이 아닌, 문자 그대로 서로의 공적인 연락공간으로서의 도쿄와 평양사무소 개설이다. 납치 문제가 아니더라도 핵 문제와 다른 현안을 위한 비상체제 속의 연락사무소다.

사실 연락사무소 문제는 원래 1989년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 때부터 언급돼 왔다. 다카이치의 전임자인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다카이치 내각의 특징 중 하나지만, ‘스피디한 결정과 실천’을 내세우고 있다. 필자 판단이지만, 다카이치는 아주 빠른 시일 내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다. 조건이 안 맞아 개설이 안 된다 해도 국민들에게 보고한 뒤 또 다른 수단으로 넘어갈 것이다. 

지난 10월 28일 도쿄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은 미·일 동맹의 재확인 장소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한·미 관계를 ‘동맹(Alliance)’이 아닌 ‘공동체(Community)’라 표현했다. 차갑고 신의도 없는 발언이라 비난할 듯하지만, 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한·미 동맹’이 아닌 ‘한·미 공조’라 말한 데 대한 정면대응이라 볼 수도 있다. ‘동맹’ ‘공동체’ ‘공조’ 어딘가를 헤매는 곳이 한국이지만, 미·일 두 나라는 동맹을 넘어선 ‘황금동맹’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일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는 열도 모두를 안심시킬 발언 하나를 한다. “질문, 의심, 당신(다카이치)이 원하는 것, 당신이 필요로 하는 도움, 내가(트럼프) 일본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언제라도 나(트럼프)에게 알려달라. 우리는(미국) 항상 거기에 응할 것이다.” 회담 후 23분 뒤에 나온 말로, ‘미·일 동맹=미·일 정상 우정’으로 해석될 엄청난 발언이다.

외교 현장에서 주목할 부분이지만, 말의 주어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주어가 없는 문장, 주어를 1인칭 단수 ‘나’ 또는 복수 ‘우리’로 사용할지, 아니면 3인칭으로 대할지를 세밀히 구별하며 파고들어야 한다. 책임을 진다는 표현이 있더라도, ‘나’ ‘우리’ 중 누가 주어인지 처음부터 확인, 재확인해야만 한다. 전혀 다른 결과로 흘러갈 수 있어서다.  

트럼프의 발언을 보면 다카이치가 필요하다면 곧바로 백악관에 전화를 걸 수 있는 근거라 해석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미국’이나 ‘우리’가 아닌, 백악관의 나(트럼프)에게 직접 연락하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밝혔다. 필자는 트럼프의 말을 듣는 순간, 21세기 초유의 미·일 정상 우호관계가 시작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장 휴전선에서 대규모 총격전이 터졌다고 치자. 이 대통령이 백악관에 전화를 걸 수 있을지, 백악관이 받아줄지 의문이다.

북·일 접촉이 활발해질 경우, 미국이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1972년 9월 일·중 수교 교훈도 있지만, 일본이 미국보다 먼저 북한에 진출한다는 데 대한 경계심이 발동할 것이다. 그 같은 상황하에서 일본은 어떻게 반응할까? 트럼프와 직통 전화가 답이다.

‘말하면 통한다’ 식의 발상이지만, 다카이치가 트럼프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미국에 도움이 될 만한 얘기도 전할 것이다. 다카이치가 김정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의 위상을 지켜주면서 미·일 양국의 이익이 될 만한 수준에서 나아갈 것이란 점이다. 이 같은 과정 속에서 트럼프와 다카이치 사이의 직접 통화도 급증할 것이다. 수단을 가리지 않는 다카이치 스타일의 납치 문제 해결과 일·북 접촉, 립서비스나 양치기 소년의 함성 수준이 아닌,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밀려들 새로운 상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