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그걸로 먹고사는 사람도 있다
지난 10월 22일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 택배 업계와 노동조합 등이 참여한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0~5시 초심야 배송 제한’을 제안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 해결과 노동자의 수면시간·건강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새벽 시간대 이뤄지는 쿠팡의 ‘로켓배송’이 특히 타깃이다. 이후 새벽배송 금지 논쟁은 뜨거운 화두가 됐다. 특히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공개토론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계가 문제삼는 것의 일단은 ‘심야 노동’ 그 자체다. 새벽배송이 심야에 벌어지는데다 고강도·장시간 노동에 속하므로 노동자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장 전 의원이 한 전 대표와의 토론에서 사례로 든 것도 쿠팡 야간 배송 노동자 정슬기씨의 과로사였다. 정씨는 2023년 3월부터 약 1년2개월간 쿠팡 퀵플렉스 기사로 일하다 심근경색으로 자택에서 쓰러졌다. 오후 8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하루 10시간30분, 주6일 근무하는 것이 정씨의 평상시 업무 스케줄이었다. 장 전 의원은 “쿠팡 야간 배송 기사 77%가 주당 52시간 이상, 3회차 배송과 250개 이상 물량을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민노총 ‘노동자 건강권 위협’
반복되는 심야 노동 자체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근거는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2년 야간 노동을 2A급 발암물질, 인간에게 발암 가능성이 있는 요인으로 분류했다. 10년 이상 고정 야간근무를 지속한 여성 노동자에게 유방암 발생 위험이 40~56% 증가했다는 연구도 있다. ‘공장의사’로 알려진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교수에 따르면 제조업과 운수업 고정 야간근무자의 심혈관질환 사망률이 주간 근무자의 약 2배에 이른다. 김 교수는 “교대근무보다 고정 야간이 낫고 사람은 적응한다는 것이 야간작업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라며 “인간의 뇌와 호르몬, 체온과 혈압 면역 시스템은 낮과 밤을 기준으로 움직이도록 설계돼 있다”고 말했다. 심야 노동이 장기간 이어지면 심장질환, 고혈압, 당뇨, 우울증, 암 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역학조사를 통해 확인됐다는 것이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특히 노동자의 심야근무를 전제로 하는 새벽배송이 다분히 ‘한국적 상황’임을 지적했다. 그는 “물류가 새벽에 움직이기 편하다는 등의 이유는 알겠지만, 새벽배송은 소비문화를 기형적으로 바꾸는 것이 문제”라며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은 물건을 시키면 며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규범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시스템은 한국에만 있는 것으로, 소비주의를 조장할뿐더러 과잉생산을 초래, 생태적으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찬성 측의 논지를 종합해보면, 택배기사의 건강권이 아침에 물건을 빨리 받는다는 소비자의 편익보다 우선하므로 금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또 새벽배송이 병원 응급실이나 경찰, 국방처럼 필수적인 인프라에 속한다고 보기 어려운 ‘과잉 서비스’이므로 제한이 가능하다는 취지다.
당사자들은 반대… “결국 일자리 문제”
문제는 지금 쿠팡에서 새벽배송을 하고 있는 기사 당사자들이 규제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쿠팡 위탁 택배기사 1만여명이 소속된 택배영업점 단체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는 새벽배송 금지 방안에 대해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한다. CPA는 지난 11월 3일 성명을 통해 “노동자의 해고는 ‘살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심야 배송 택배기사들을 사실상 해고하려고 한다”며 “심야 배송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를 폐지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CPA에 따르면 새벽배송 기사 24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3%가 새벽배송 금지에 반대했다고 한다. 응답자의 95%는 심야배송을 지속하겠다고 응답했는데, 이 가운데 70%는 야간 배송을 규제하면 다른 야간 일자리를 찾겠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건강권’에 대한 문제가 명백해 보이면서도 노동자 당사자들이 규제를 반기지 않는 까닭은 새벽배송이 ‘돈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쿠팡이 새벽배송 등으로 온라인 배송 서비스를 강화한 것은 이때 발생한 저숙련·저임금 실업자들에게 금전적으로 좋은 선택지가 됐기 때문이다.
식품 새벽배송을 주력으로 하는 마켓컬리의 새벽배송 기사로 일하는 A씨는 주간조선에 “대략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주 6일, 물류센터에서 근처 가정집에 1t 냉동탑차로 배송한다”며 “기사마다 배송하는 물건과 ‘회전수(물류센터와 배송지를 한 번 오가는 것)’가 다르지만 대략 400만원 이상은 모두 가져간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다만 물론 차량이 없는 기사는 차를 할부로 구입하는 편이라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단기간 일해서는 수익을 낼 수 없다고 한다. A씨는 “보통 월급쟁이보다 많이 버니까, 육체적 피로를 버티면서 한다”며 “부부가 동시에 일하는 경우도 몇몇 센터에서는 봤다”고 했다.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은 “이를테면 주 4.5일제를 당장 시행한다면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임금이 깎인다”며 “지금 밤에 일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한 총장은 “새벽배송이 초래하는 건강·산업재해 문제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결국은 한국 사회가 ‘새벽배송’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용접공 출신 작가 천현우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슬픈 현실이지만, 쿠팡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대한민국 중소기업 평균보다 낫다”며 “어지간한 육체노동보다 덜 위험하고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천 작가는 주간조선에 “새벽배송은 곧 비윤리적이지도 않게 될 것이다, 곧 자동화될 것이니까”라며 “노동자 당사자들의 만족, 건강권은 물론 일자리 문제가 함께 논의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