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로 들어온 2만달러 짜리 로봇

2025-11-12     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 소장
1X테크놀러지스의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 ‘네오’. photo 뉴스1

2025년 10월 1X테크놀러지스가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 네오(NEO)의 사전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1X는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본사를 둔 로봇 스타트업으로, 200달러의 환불 가능한 예약금만 내면 누구나 2만달러짜리 로봇 집사 구매를 예약할 수 있다. 혹은 월 499달러를 내고 구독할 수도 있다. 그렇다, 로봇도 이제 구독 경제다. 베른트 뵈르니크 CEO는 발표문에서 “휴머노이드는 오랫동안 SF의 영역이었고, 그다음엔 연구의 영역이었지만, 오늘 네오 출시와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은 제품이 됐다”고 선언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이런 거창한 수사는 늘 있어왔다. 중요한 건 실체다. 네오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번 발표가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전반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와 회의가 공존한다.

 

네오의 실체, 프로토타입과 제품 사이 어딘가

1X는 노르웨이 로봇 공학자이자 현 CEO 베른트 뵈르니크가 2014년 설립한 회사로, 원래 이름은 할로디 로보틱스였다. 이들이 네오 이전에 선보인 이브(EVE)는 휴머노이드 형태의 바퀴 달린 로봇이었으며 물류 및 보안 용도로 개발됐다. 1X는 2023년 오픈AI가 주도한 펀딩에서 2350만달러를 조달하면서 주목받았다. 당시 오픈AI의 COO 브래드 라이트캡은 “1X는 안전하고 선진적인 로봇 기술을 통해 노동력을 증강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말했다. 

1X는 현재 10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목표로, 10억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출시한 165㎝, 무게 30㎏의 로봇 네오는 부드러운 폴리머 외관을 가졌으며, 와이파이와 5G로 연결되어 스마트폰 앱이나 음성 명령으로 제어된다. 회사는 ‘인간 수준의 손재주’를 갖췄다고 주장한다. 실제 배송은 2026년 미국을 시작으로, 2027년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회사가 공개한 9분짜리 소개 영상은 네오가 세탁, 식물 물주기 등 여러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X는 네오가 “일상적인 집안일을 자동화하고 개인화된 지원을 제공하여 사람들이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쓸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하지만 그 유혹의 이면에는 우리가 기꺼이 감수해야 할, 혹은 아직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대가가 숨어있다. 1X가 내놓은 네오는 완전 자율 로봇이 아니다. 회사는 네오가 ‘즉시 사용 가능한’ 자율 기능을 제공한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초기 사용자들은 로봇 카메라를 통해 인간 조작자가 집 안을 볼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해야 네오를 제대로 쓸 수 있다. 뵈르니크 CEO는 “초기에는 대부분의 작업이 원격 운영자에 의해 수행될 것”이라고 인정했다.

네오의 초기 자율성은 문을 열거나 물건을 가져다주는 등 매우 기본적인 작업에 국한된다. 집 안 청소나 세탁과 같은 복잡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네오는 ‘전문가 모드’로 전환되는데, 이는 1X의 직원이 원격으로 로봇을 제어하여 작업을 완료하고, 그 과정을 데이터로 축적해 AI를 훈련시키는 방식이다.

2만달러를 내고 산 로봇이 빨래를 개는 동안, 실은 어딘가에 있는 인간 조작자가 원격으로 그 로봇을 조종하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1X는 이를 학습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이 데이터가 쌓여야 진짜 자율 로봇이 탄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프로토타입을 2만달러에 사는 얼리어답터가 되는 셈이다.

이는 ‘인간 개입(Human-in-the-loop)’이라는, 오늘날 AI 개발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자율주행차가 수많은 실제 도로 주행 데이터로 학습하듯, 가정용 로봇 역시 실제 가정환경에서의 무수한 상호작용 데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1X는 상업적 출시와 원격 조작을 통한 데이터 수집을 동시에 진행하는 대담한 베팅을 하고 있다. 완전한 자율성은 방대한 실제 데이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물론 1X는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했다고 주장한다. 원격 조작은 소유자의 승인이 있어야만 가능하며, 앱을 통해 특정 시간대를 지정할 수 있다. 또한 원격 조작자의 화면에 사람의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침실이나 욕실처럼 로봇이 들어가면 안 되는 출입 금지 구역을 설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1X의 개인정보 처리 방침은 구체적인 내용 없이 일반적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수집된 데이터가 국경을 넘어 미국이나 다른 국가의 서버로 전송되어 처리된다는 사실과 그 범위를 소비자가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집 안 청소라는 편리함을 위해 가족의 일상, 대화, 생활 습관 등 가장 내밀한 데이터의 소유권을 기업에 넘겨주는 거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기술의 효용성과 개인정보 보호라는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며, 소비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네오의 야심 찬 도전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거실을 향한 거인들의 질주

1X의 도전이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곧 펼쳐질 거대한 경쟁의 신호탄에 불과하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지난 9월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의 정교한 손 개발에 어려운 점이 있지만 생산 확대에 열심히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1X외에도 전 세계 여러 스타트업이 ‘인간형 로봇’ 상용화를 두고 경쟁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피겨AI(Figure AI)는 오픈AI의 투자를 받아 산업 현장과 가정 양쪽을 겨냥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오리건주에 본사가 있는 어질리티로보틱스(Agility Robotics)는 ‘디짓(Digit)’이라는 이족보행 로봇으로 유명하다. 사람과 유사한 키와 보행 능력을 갖춘 디짓은 이미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시범 운용 중이다.

지난 10월 중국의 주목할 만한 로봇 기업 유니트리는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H2를 공개했다. 182㎝ 키에 70㎏ 몸무게로 인간에 더 가까워졌고, 소개 영상에선 옷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해 인간과의 유사성을 강조했다. 이미 우리는 건물 청소 로봇, 식당의 서빙 로봇 등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 로봇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2030년에는 전체 서비스 로봇 시장 규모가 1755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휴머노이드는 AI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파괴적인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네오 선주문은 가정이라는 사적인 공간과 디지털 감시, 인간의 노동과 AI 학습 등 여러 논쟁을 담고 있는 복잡한 사회 기술적 이슈다. 이 로봇 집사를 집 안으로 들일지 말지는 결국 각자의 선택에 달렸지만, 그 선택이 우리 사회의 미래 풍경을 바꿀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실리콘밸리는 늘 미래를 과대포장하지만, 때로는 그 과대포장이 진짜 미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우리는 그 순간을 목격하는 중이다. 준비됐든 안 됐든, 로봇은 오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기대와 회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허풍인지 구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