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사·중령·원사까지 3차례 성범죄... 여군 하사 자살시도
육군 17사단 소속 여군 하사 A(27)씨가 부사관 생활을 시작한 후 2년 동안 세 명의 남성 상급자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해 세 차례에 걸쳐 목숨을 끊으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는 모두 같은 부대에 일하던 상급자들이었다. 세 번째 사건은 여 하사가 앞서의 두 차례 성범죄로 인해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상태에서 벌어진 것으로,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이후 4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군을 향한 군 내 성범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간조선 취재에 따르면 지난 9월 27일 A씨는 같은 부대 원사 B씨로부터 준강간을 당했다. 사건 당일 A씨는 복무 중에 당했던 성범죄로 인한 트라우마로 정신과 약을 복용한 상태여서 심신이 온전치 못한 상황이었다. A씨는 사건 발생 5일 전에도 약을 복용하고 자해해 응급실에 다녀왔을 정도로 심신이 지쳐 있었다. B씨는 과거 군 내 성폭행 사건에 대한 공상 처리 방법을 상담해준다는 이유로 A씨의 숙소를 찾았다. B씨는 A씨가 성범죄 피해를 당한 이후 현 부대로 옮겨왔을 때 그를 돌봐줬던 상급자였다. 믿고 의지했던 상사였기에 숙소 문을 열어뒀다가 다시 성범죄를 당한 것이다. 이날 숙소 홈캠에는 B씨의 알몸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건 직후 A씨는 숙소 내에 있던 동료와 상급자를 사건이 발생한 자신의 방으로 호출했고, 경찰에 신고했다. 해바라기센터에 홈캠, 물티슈 등 관련 증거물을 제출했고, 현재 DNA 및 추적 검사 등을 진행하며 감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하사 A씨는 이전에도 두 차례에 걸쳐 성범죄를 겪었다. 2022년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소속 중사 C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A씨가 부사관 하사 계급으로 임관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술에 취한 중사 C씨는 인사를 하는 A씨를 강제로 끌어안는 등 스킨십을 시도했고, A씨는 저항하는 과정에서 C씨로부터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했다. 다음날 A씨는 중사로부터 “CCTV가 없을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A씨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이후 C씨와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게 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됐다. 군 내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사건이 드러나 자동 신고가 됐고, 뒤늦게 조사가 이뤄졌다. 중사 C씨가 받은 징계는 3개월 감봉에 그쳤다. A씨는 1년간 휴직했다.
A씨가 처음 성범죄에 노출된 건 같은 해 부대 중령 D씨로부터였다. A씨는 지휘통제실에서 D씨로부터 엉덩이 등 자신의 신체부위를 언급하며 희롱하는 말을 들었다. 입대 후 처음 겪었던 일인 데다, 가해자가 간부급 상급자였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어디 얘기하지도 못 했다. 그러나 해당 중령이 부대 내 또 다른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A씨 사건 역시 조사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A씨는 중사 성폭행 사건으로 휴직 중이었던 데다, 두 사건의 피해자라는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끝내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1년간의 휴직 기간 동안 A씨는 자해와 약물 과다복용 등 자살 시도까지 해 응급실과 정신병원을 수차례 드나들었다. 당시의 진료 기록에는 ‘사건이 떠올라 화가 날 때 자살 시도를 홧김에 한다’ ‘약을 40알 먹었다. 팔 상처(자해)는 내가 한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내가 죽으면 사건 진행이 안 된다고 들었다. 그래서 가해자가 이겼다고 치자는 생각으로 약을 먹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숨도 안 쉬어지고, 몸이 경직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A씨는 군 복무를 이어나가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다. ‘군에 더 있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약물이 없으면 아침에 제 시간에 일어날 수가 없다. 다 낫고 다른 부대 가서 복무를 하고 싶다’ 등의 진료 기록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24년 11월 휴직을 끝낸 A씨는 근무지를 옮겼다. 그로부터 다시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인 지난 9월 27일 원사 B씨로부터 준강간 피해를 겪은 것이다.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A씨는 지난 11월 7일 잠시 외출해 주간조선과 만났다. A씨는 “이 모든 일들이 현실인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홈캠을 봤는데도) ‘내가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계속 든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A씨는 중사 C씨 사건 이후 가해자가 다른 구성원들과 야유회를 가는 등 활발한 교류를 하는 모습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확인하기도 했다. 반복되는 자살 기도 등 심신 상실 상태로 정신병동에 강제 입원한 상태인 A씨는 인터뷰 도중 ‘병원에서 당장이라도 퇴원하고 싶다’는 얘기도 자주 꺼냈다. 현재 A씨는 군 전역을 희망하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A씨의 사례는 여전한 군 내 성인지 감수성 문제와 폐쇄적 구조를 방증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 이예람 중사 사망으로 군대 내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졌음에도 계급 간 위력을 이용한 성범죄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한 군 관계자는 “부사관에 임관한 지 1년도 안 된 가장 낮은 계급의 하사가 군 성범죄를 당하는 일이 여전히 비일비재하고, 이를 신고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상급자의 숙소로 부르거나 하급자의 숙소에서 만나자고 지시하면 군 조직 특성상 거부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전했다. A씨가 중사 C씨 가해, 중령 D씨 가해 직후 휴직을 할 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스스로 문제제기를 하거나 신고를 하지 못한 것도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군 사관학교 교수는 “군 내 성폭행 문제는 특히 하사 계급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며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므로 맞춤형 정책을 제안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