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서 1위로...트럼프의 대항마가 된 이 남자

인도계 미국인의 약진,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인

2025-11-16     김경민 객원기자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인 photo 뉴시스·AP

지난 11월 4일(현지시간) 인도계 미국 정치인 조란 맘다니가 뉴욕시장으로 당선됐다. 미국 정치에서 일종의 금기로 꼽혀온 ‘사회주의’와 ‘무슬림’ ‘친팔레스타인’이라는 벽을 모두 깨뜨린 인도계 이민자 출신 시장의 당선이었다. 지구 위 민족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뉴욕 시민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반(反)이민정책으로 기울었던 뉴욕이, 나아가 미국 사회가 다시 다양성의 도시가 될 것이란 희망에 부풀었다. 맘다니의 당선은 단지 새로운 인물 한 명이 뉴욕시장이 됐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최대 도시의 정치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알리는 획기적 사건이다. 맘다니 당선인의 선거 경쟁자는 거물급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전 뉴욕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와 공화당 후보 커티스 슬리와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1% 내외에 불과한 낮은 인지도를 보이던 맘다니가 이들과의 경합에서 최종 승리를 차지하는 대이변을 연출한 셈이다. 인도계 이민자 출신이자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그의 당선을 두고 미국 정치평론가들이 뉴욕 정치의 주류 엘리트와 그들의 낡은 운영 방식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결과로 풀이하는 이유다. 임대료 동결, 무상보육, 최저임금 인상, 버스 무료화, 그리고 시립 식료품점 운영 등 시민들의 과도한 생계유지비 부담을 정면으로 다루는 대담한 정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주효했다. 이 공약들은 뉴욕 시민들의 불안감을 제대로 저격했고, 수십 년간 지속된 정치적 냉소주의를 희망으로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진보 진영의 거물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맘다니의 승리를 두고 “맘다니는 1% 지지율로 시작했지만 현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정치적 이변의 하나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맘다니의 당선은 인도계 미국인 공동체의 약진을 상징한다. 맘다니 당선인도 언급했듯이, 그의 당선 사실은 이전 시대엔 소외됐던 ‘모범적 소수(model minority)’가 단순히 성공적인 이민자로서의 지위를 넘어, 정치권력의 지렛대를 쥐고 미국 정치 지형을 적극적으로 재편하고 있음을 보인 상징적 사건이다. 모범적 소수란 국가 내 소수자 중에서도 높은 수준의 사회적 성공을 달성한 집단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인도계의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미국 전체 인구의 1% 미만을 차지하는 인도계 미국인 그룹은 현재 미국 사회에서 가장 빠른 경제적·정치적 성공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를 가능하게 한 배경엔 인도인들의 ‘경제적 탁월성’과 ‘능력주의’가 있다. 지난해 발표된 퓨리서치센터 보고에 따르면 인도계 미국인 공동체는 통계적으로 미국의 모든 인종과 이민자 그룹을 통틀어 지속적으로 가장 높은 중위가구 소득을 기록해왔다. 인도 매체 비즈니스스탠더드에 따르면 2024년 7월 기준 인도계 미국인은 전체 미국 성인 시민권자 중 0.6%에 불과했다. 반면 미국 정부 기관에서 인도계가 고위직을 차지한 비율은 전체의 4.4%에 달한다.

특히 이들 그룹이 보이는 경제적 탁월함은 IT와 첨단 기술 분야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CEO, 어도비의 샨터누 너라연 CEO, IBM 아르빈드 크리슈나 CEO, 닐 모한 유튜브 CEO 등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다수의 최고경영자들이 인도계 출신이다. 

경제적 사회 기반의 안정에만 머무르며 정치적으로는 침묵했던 인도계 미국인 공동체가 정치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미 역사상 최초의 비(非)백인 후보인 동시에 여성 대선 후보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겨뤘던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이 대표적 인물이다. 트럼프와 집권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맞붙었던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 역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던 비베크 라마스와미 바이오텍기업 로이반트사이언스 창업자, 바비 진덜 전 루이지애나 주지사 등 인도계 미국인들은 이념적 스펙트럼 전반에 걸쳐 정치적 리더십을 확립했다. 이런 가운데 거둔 맘다니 시장의 승리는 정치 집단으로서의 인도계 미국인이 다양화하고 그 기반이 더욱 공고해졌음을 보여줬다. 트럼프에 대해 비판적인 진보적 사회주의 의제를 대표하는 맘다니가 당선됐지만, 한편으론 힌두계 미국인 인구의 상당 부분이 인도 민족주의 정부와의 강한 유대감을 표명한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리스·헤일리도 인도계

인도계 미국인들의 놀라운 경제적·사회적 약진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많은 사회평론가들이 그 배경으로 미국 이민 정책의 특성과 인도계 가족 단위의 문화적 특성을 주목한다. 1965년 미국이 단행했던 이민 및 국적법(INA)은 인도계 인구의 미국 사회 유입의 기틀을 마련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INA는 국적할당제를 폐지하고 고도로 숙련된 이민자를 우선시했다. 방대하고 경쟁력 있는 영어 교육을 받은 전문가 계층, 특히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의 인적 자본을 보유한 인도는 이 정책을 발판 삼아 미국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H-1B와 같은 고용 기반 비자로 입국한 1세대 이민자들은 높은 인적 자본을 바탕으로 미국 입국 즉시 최고 수준의 전문가 급여를 받게 됐고, 이를 통해 높은 성과를 내는 학군에 정착하고 자녀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을 갖추게 됐다.

여기에 인도 사회 특유의 높은 교육열이 더해졌다. 인도 사회는 한국 사회 못지않은 뜨거운 교육열로 유명하다. 미국 사립학교에 가면 성적 상위권은 인도인 아니면 한국인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인도 사회에서 교육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상류층의 의무라는 인식이 강하다. 지난해 발표된 퓨리서치센터 자료에 따르면 25세 이상 인도계 미국인의 77%가 학사 이상 학위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중 학사 학위 소지자는 31%, 석·박사 등 고급 학위 소지자는 45%에 달한다. 이는 아시아계 전체(56%)는 물론이고 미국 태생 미국인(31.6%)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놀라운 점은 이민 1세대와 미국 태생 인도계의 학사 이상 학위 보유 비율이 거의 같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전문직을 추구하는 성향이 더해지며 의학, 공학, 금융과 같은 전문직 점유율이 높아졌다.

맘다니 뉴욕시장은 이처럼 복잡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전면에 내세운다. 미국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의 규칙을 능수능란하게 익힌 이들은 이제 정치권력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 엘리트로서의 입지를 영구적으로 공고히 할 준비에 나섰다. 맘다니의 승리는 뉴욕뿐 아니라 미국 전체에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미국 엘리트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