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고하지 말라, 언론 플레이 말라"...3번 성범죄 피해 여하사, 군이 막았다
중령·원사·중사에게 3번 피해...조사받은 건 피해자였다
세 명의 남성 상급자로부터 세 차례 성범죄 피해를 당한 여군 하사 A(27)씨는 신고 후 군을 떠날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A씨는 첫 번째 성희롱 사건의 조사 대상이 됐을 때 두 번째 사건으로 인해 휴직 중이었다. 재판 중이던 그는 ‘두 사건의 피해자’라는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끝내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 두 번째 강제추행·폭행 사건의 경우 몇 개월을 견디다가 군내 성고충상담실을 찾았다. 세 번째 성폭행 사건은 앞서의 두 차례 성범죄로 인해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상태에서 벌어진 것으로, 이때 A씨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는 사건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자살 시도를 하고, 현재 정신병원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주간조선은 인터뷰 요청을 어렵사리 승낙한 그와 지난 11월 17일 수도권의 한 정신병원, 19일 서울 모처에서 두 차례에 걸쳐 만났다. 그는 “군 내부에서 문제 제기한 것을 후회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성범죄 피해로 휴직 중 육군수사대로부터 ‘근무기피목적 상해’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다시 만난 A씨는 사건을 떠올릴 때보다 ‘사건 그 이후’를 이야기할 때 더욱 힘들어했다. 사건 그 자체보다도, 이후 군 내부 처리 과정에서 깊은 절망을 느꼈다는 것이다.
육군 17사단 소속 A씨는 2년 남짓한 부사관 생활 동안 같은 부대에서 일하는 중령, 원사, 중사 등 상급자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주간조선 2884호 ‘3명에 성범죄 피해… 자살시도까지 내몰린 여군 하사’ 참조) A씨가 중사 B씨로부터 당한 강제 추행·폭행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자, 군 징계위원회는 중사 B씨에게 경징계에 속하는 ‘3개월 감봉’을 서둘러 내렸다고 한다. 지난 9월 원사 C씨로부터 당한 준강간 사건의 경우 숙소 홈캠 영상 등이 확보돼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A씨가 수차례 피해를 당했는데도 문제 제기를 미룬 것은 “군에 계속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관 1년도 채 되지 않아 장기 복무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안정성을 가진 상황에서 해야 쫓겨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다른 부대로 옮기면 되니까’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래서 공고문을 계속 찾아봤는데 옮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앞서 중령 D씨로부터 자신의 신체부위를 언급하는 성희롱을 듣고, 중사 B씨의 강제 추행·폭행 사건을 겪고도 견뎌내던 A씨가 휴직을 결정한 건, 사건 이후 겪은 차별 때문이었다. 이후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중사 B씨는 오히려 A씨를 대놓고 조직에서 소외시켰다. 안 그래도 이전과 달리 매일같이 가해자 B씨를 마주쳐야 하는 상황에서 A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그제야 군 성고충상담실을 찾았다. 그러나 군 성고충 상담관은 그런 A씨를 즉각 말렸다고 한다. “‘경찰 신고보다는 징계를 받게끔하자. 오래전 일이고, 그 사람이 무죄 나오면 너가 무고죄로 신고당하는 거야’라고 얘기를 들었어요. ‘그럼 그렇게 해달라’라고 했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서 몇 분 뒤에 제가 다시 ‘저 그냥 경찰 신고하고 싶다’ 번복을 했더니 ‘언론 플레이는 하지 말아라’ 그러더라고요.” B씨가 군법상 강제추행과 폭행에 해당하는 정당한 처벌을 받기를 원했을 뿐인 A씨는 지금도 감봉 3개월에 그친 군내 징계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담관 말을 듣고) 군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가해자가) 최대로 받을 수 있는 피해가 군에서 잘리는 것뿐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군 외부기관인) 경찰 신고를 하게 됐어요. 신고 이후 군내 징계 결정 과정에 대해 묻자, ‘어차피 경찰에서 벌금형 얼마 이상 나오면 잘린다’고 퉁명스럽게 답했어요.”
휴직을 하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A씨는 매달 임금의 70%인 90만원을 받았다. 휴직 기간 동안 군인 신분이 유지되기 때문에 겸직도 불가한 A씨는 생계유지를 위한 아르바이트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께는 금전적 도움을 요청하기는커녕 전화를 걸기도 어려웠다. A씨는 이 휴직 기간 동안 자살시도를 세 차례 했다. A씨에게 가장 절망스러웠던 시기도 이때였다.
“솔직히 마지막 (준강간) 사건은 (약에 취한 상태로 벌어진 일이라, 혹은 해리성 기억 장애로) 기억도 잘 안 나요. 집에서 (정신과) 병원만 왔다갔다 하면서 날짜도 제대로 모르고 지냈던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돈이 없어서 라면을 반 개씩 나눠서 끓여 먹고, 긴급 생계지원금을 신청하기도 하고… 이때 ‘돈 없는 내가 잘못이다’는 생각이 들었고, ‘합의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군 복귀 이후 이 휴직 기간은 복무 기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A씨는 진급하기 위해서는 동기들과는 달리 1년을 추가로 근무해야 한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휴직 기간 동안 가해자 측 변호사는 A씨에게 터무니없는 합의금을 제안했다. 군에 남고 싶기도 했고,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그냥 여기서 마무리하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 그는 믿을 만한 군 선배에게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서 재판도 못 하겠다. 그냥 300(만원) 받고 합의하는 게 나을까요?’ 물어봤는데… 한다는 말이 ‘네가 가해자 생각을 해봤니? 가해자를 이해하려고 해봤니?’ 그래서 ‘제가 왜 이해하냐’고 했더니 ‘진짜 이래서 내가 너 같은 애들이랑 얘기를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그 자리에서 나왔어요.”
군 수사대, 도리어 A씨 수사
휴직을 하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A씨는 응급실을 수차례 드나들었다. 첫 번째 자살시도를 하고 병원에서 해독제를 맞고 있는 A씨에게 군은 즉각 수사관을 보냈다. “(음독 시도와 해독제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닌 상태였는데 ‘지금 조사해도 괜찮냐’고 물어봤대요. 그래서 ‘아직 안 깼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제가 ‘조사해도 된다’고 답을 했나봐요. 아마 가해자에 대한 조사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약 왜 먹었어?’ ‘너 병역 기피할 목적으로 네 몸에 상해 입힌 거지’ 그런 질문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기억도 없는데, 깨어나보니까 왔다 갔다고 전해들었어요.” 이후 군으로부터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고, A씨는 피해 사건에 대한 조사겠거니 했다. 그러나 A씨가 보여준 육군수사단의 통지서에는 ‘죄명 군형법 제41조 2항 근무기피목적 상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수사관들은 제가 성범죄 피해 사건으로 인해 휴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수사를 받고 있더라고요. 당연히 혐의없음, 불송치 처리 됐어요.”
가해자들은 성범죄를 하는 동안 모두 선임으로서의 명령어를 뱉었다. 명백하게 계급 간 위계 관계로 인한 압박을 느낄 법한 상황이었다. “저는 최대한 상대에 맞춰주려고 하는 편인데 (사건 당시에는) 제가 이제 이런 것까지 맞춰야 하나, 이래서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건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두 차례의 성범죄를 겪는 동안 A씨가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는 군내 여전한 폐쇄적 분위기와 피해자 탓을 하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휴직 기간 동안 A씨가 개명을 한 이유도 군 복귀를 희망해서였다. “복직하면 부대를 옮겨야 하는데 이 이름으로 가기가 싫어서… 같은 이름으로 가면 또 바로 알아요. 군에서는 이름 두 글자를 조회하면 다 뜨거든요. 그래서 개명했어요. 제 친구가 다른 부대에서 성 관련 문제 제기를 해서 저희 부대로 왔었는데, 오기 전부터 소문이 다 나있었거든요. 저한테 ‘걔 어떠냐, 너 동기잖아’ 물어보기도 했어요. 저도 휴직기간 중 군 부대에 들르는 날에는 저를 보고 “쟤 왔다, 쟤 왔다”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어요.”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휴직 기간이 끝났다. A씨는 타 부대로 복귀했다. 심신은 여전히 지쳐 있었다.
“매달 초가 되면 국기 게양식을 해요. 그때마다 부대에서 단체사진을 찍는데, 사진을 못 찍겠는 거예요. 여단장님이 ‘사람들이랑 다 모여봐, 사진 찍게’라고 하는데, 그때부터 (군 생활을 못하겠구나) 느꼈어요. 공황장애처럼 울렁거리고, 여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사람들이랑 가까이 붙기도 싫고,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제가 뒤로 빠지더라고요. 갑자기 이유 없이 눈물이 막 나고….”
그 같은 상황에서 A씨는 의지하던 원사 D씨에게 준강간을 당했다. D씨는 ‘공상처리’에 대해 알려준다며 A씨의 숙소를 찾았고, A씨는 다시 한번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 D씨 사건은 바로 경찰과 해바라기센터에 신고됐고, 당시 숙소 홈캠에 남아 있던 D씨의 알몸 영상 등이 제출된 상태다.
A씨는 현재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정신과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 한쪽 눈이 뿌옇게 안 보일 때가 있다는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한쪽 눈을 자주 감았다 떴다. 전역을 희망하는 A씨에게 절차를 마치고 어떻게 살지 묻자 ‘그냥 잊고 싶다’고 답했다.
“마지막(준강간) 사건이 없었을 때는 두 번째 사건만 끝내면 되니까 ‘이제 잊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사건이 또 생겨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감정이 무뎌지고 있어요. (절차가) 너무 길어요. 15살 때부터 한결같이 군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사람을 마주치는 게 힘드니까 뭘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사람을 대하는 일이 하기 싫어서 집에서 부업을 해야 하나 싶고…. 일단 빨리 (정신과) 전기 치료 받고 싶어요.”
그는 사건 이후 여러 명의 또래 여군 하사들에게 연락을 받고 비슷한 문제를 상담해줬다고 했다. 같은 부대 내 남성 상급자로부터 성적 수치심을 느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사건 이후) 저한테 연락 온 친구들이 많아요. 다 다른 부대였는데, 다 하사였어요. ‘신고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 묻는데 저는 신고하지 말라고 했어요. 신고하면 너만 고립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게 미안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어서 너무 속상했죠. 그런데 군을 나올 게 아니라 계속 있으려면 신고를 절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건 저 스스로도 변함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