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자찬 정치'의 역설... 셀프 박수의 끝은 민심 이반
2021년 9월 14일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장동 개발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공익환수사업”이며 “성남시장 시절의 최대 치적”이라고 했다. 이틀 뒤에는 소셜미디어(SNS)에서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하나부터 열까지 샅샅이 수사해달라. 모든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면서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방어를 위해 ‘자기 과시’로 정면 돌파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대장동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 성실히 협조했는지, 책임질 사안에 실제로 책임졌는지를 둘러싼 공방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대장동 민간업자 1심 판결에 대한 항소 포기 압박 논란은 ‘정권의 시한폭탄’으로 떠올랐다. 여론조사에서는 검찰의 항소 포기에 부정적 평가가 높은 가운데, 국민 과반수(51%)가 ‘대통령실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했다. 경주 APEC 정상회의 이후 반등했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도 이 여파가 컸다.
4년 전 대장동 사업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 했던 이 대통령의 과장된 자찬은 정치적 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전문가들은 “정치인이 성과를 부풀릴수록 그 홍보가 ‘선전’으로 비치면서 신뢰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성과를 내세워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다 되레 민심을 잃는, 이른바 ‘자화자찬 정치’의 역설이다.
코스피지수가 지지율 하락 완충 역할
이 대통령의 ‘자화자찬 정치’는 집권 후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코스피 지수 상승에 대한 여권의 집요한 홍보가 대표적이다. 이 대통령은 “비정상이 정상으로 회복되고 있고 그 힘이라 생각한다”며 국정 성과로 연결했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주식시장 상승분의 8할 이상이 정부 정책의 힘”이라고 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정부의 노력을 주식시장이 증명하고 있다”며 ‘셀프 공치사’에 가세했다.
최근 이 대통령 지지율은 대장동 항소 포기와 부동산 대책 후폭풍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50%대를 기록하고 있다. 코스피 상승이 지지율 하락을 막는 완충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증시가 지지율을 끌어올린 견인차였던 것은 아니다. 코스피 지수는 현 정부 출범 때 2770포인트에서 최근 4000포인트 안팎으로 상승률이 45%에 달했다. 반면 이 대통령 지지율은 한국갤럽 조사에서 취임 직후 64%였고 11월 2주차에는 59%로 낮아졌다.
주가가 올라도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은 것의 영향이 컸다. 10월 말 갤럽 조사에서 살림살이가 ‘좋아질 것’이란 응답은 24%에 불과했다. 현 정부 출범 직후인 6월 조사(33%)보다도 낮아진 수치다. 주가지수가 급등하는 동안 국민의 체감경기는 오히려 식어갔다.
증시 호황이 다수의 서민·중산층에게는 ‘남의 잔치’란 점도 크다. 주식에 투자하기 어려운 이들은 “남들은 주식으로 돈 버는데 나만 못 벌었다”는 박탈감이 커졌다. 10월 5주차 갤럽 조사에서 펀드와 ETF 등 간접투자를 포함한 주식 보유자는 전체 성인의 46%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더구나 수익은 코스피 상승을 견인한 특정 대형주 보유자에게 집중됐다. NH투자증권이 240만명의 개인 계좌를 분석한 결과, 손실 계좌가 전체의 55%였고 이들의 평균 손실액은 931만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메시지는 성과 과시에 머물고 국민이 겪는 고단한 현실에 대한 공감은 보이지 않는다. 증시 낙관론을 앞세운 홍보가 반복되면서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긴박한 경제 신호를 제대로 주목하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다. 작년 4월 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은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었을 때 “국가 경제 전반에 위기가 현실화됐다”며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지금, 환율이 1450원대를 넘어 1500원 선까지 치솟을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위기’라는 표현은 자취를 감췄다.
정부가 증시 전망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태도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이 대통령은 코스피 상승과 관련해 “추세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금융위 부위원장은 “빚투(빚내서 투자)는 레버리지 활용의 일종”이라며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주식 격언에는 “주가는 계단을 타고 오르지만 엘리베이터로 내려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 상황이 닥치면 코스피 상승의 공을 강조해온 정부가 지수 급락의 책임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코스피 5000’을 정치적 목표로 삼아 온 여권의 지지율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성과 과시에 치중한 정치는 외교와 민생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최근 열린 한·미, 한·중 정상회담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외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데도 여권은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도 잡았다”고 했다. 민생지원 소비쿠폰 정책도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부양책”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일시적 소비 진작에 그쳤고 세금 낭비 논란과 물가 자극 우려를 키웠다.
‘무엇이 부족한지’ 점검해야
이전 정부의 성과를 ‘자기 공’으로 돌리려는 것에 대한 논란도 있다. 지난 11월 18일 정부가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 신청에서 승소하자, 김민석 국무총리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대외 부문에서 거둔 쾌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론스타 취소 신청을 주도한 것은 지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이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였다. 당시 민주당 측은 “승소 가능성이 낮고 배상 이자만 키운다”며 “한동훈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비판했었다. 한 전 대표는 “민주당 정권은 뒤늦게 숟가락 얹으려 하지 말라”며 “황당한 자화자찬 대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 과시 정치’는 과거 정부에서도 반복돼 온 장면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집권 4년을 맞은 2021년 5월 특별연설에서 경제·인사·코로나 방역 모두 “잘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임기 말인 2022년 신년사에서도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의 위상을 굳건히 했다”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지속적으로 개선했다”며 자신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두 달 뒤 대선에서 ‘심판 바람’이 불며 정권을 내놓아야 했다.
이재명 정부도 같은 궤적을 밟을 수 있다. 홍보에 치우친 정치는 국민의 피로감을 키우고 그 끝에는 불신이 기다린다. 정부는 “잘하고 있다”는 자화자찬보다 “무엇이 부족한가”를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정권이 스스로의 성과에 도취되는 순간, 민심은 등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