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잠재적 핵보유국?...일본이 보여준 '재처리의 벽'

2025-11-22     이정현 기자
지난 10월 22일 경남 거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장영실함 진수식이 열리고 있다. photo 뉴스1

지난 11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합의 내용을 직접 발표하며 “대한민국의 숙원이었던 핵 추진 잠수함 건조 추진과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의 확대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발표 직후 국내 정치권과 일부 안보 전문가는 “한국이 잠재적 핵보유국의 길에 들어섰다” “핵잠수함 자립이 가능해졌다”고 해석했다. 특히 핵연료 재처리 확대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방사성 폐기물 부피 감축, 연료비 절감, 핵추진 잠수함 연료·핵무장 역량 확보까지 한 번에 달성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다.

그러나 원자력을 전공한 전문가들의 해석은 조심스럽다. 원자력정책 전문가 우승민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재처리와 핵잠수함을 반드시 패키지로 묶어 논의할 이유가 없고, 기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평화적 이용’ 틀 안에서 다뤄야 하는 재처리와 군수품 영역에서 관리되는 핵추진잠수함은 같은 테이블에서 다루면 안 된다”며 “두 사안을 섞으면 결이 완전히 달라져 오히려 정책 판단에 혼란을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일본의 재처리 실패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017년 2월 대전 서구 대전시청 앞에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핵재처리 실험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시위. photo 뉴시스

핵기술 있어도 실패한 일본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을 갖추고도 재처리 상용화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 재처리 시설은 1990년대 후반 완공됐으나 장비 트러블, 방사능 누출 논란이 이어지며 상업 가동에 이르지 못했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현재까지도 일본 내 상업 재처리는 사실상 멈춰 선 상태다. 일본이 재처리를 시도한 이유는 이렇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사용후핵연료의 구성부터 짚는다. 그는 “사용후핵연료 안을 들여다보면 대략 5% 정도만 ‘진짜 폐기물’이고, 나머지 95%는 우라늄·플루토늄 등 다시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는 핵물질”이라며 “이 물질을 회수해 정제하면 다시 연료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이 애초에 재처리를 도입한 목적도 자원 이용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은 지연이 반복되면서 해외(프랑스 등)에 위탁해 추출한 플루토늄 등을 현지에 보관만 하는 상황이다. 문 교수는 “원래는 이를 일본으로 가져와 핵연료로 만들어 자국 원전에 써야 하는데, 그 순환 단계가 막혀 있어 ‘핵물질을 재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적 평가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롯카쇼무라 시설의 한계도 지적했다. 그는 “롯카쇼무라 시설은 이른바 ‘습식 재처리’ 방식인데, 이는 순수한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다”며 “문제는 이론상 언제든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사회나 미국 입장에서는 (핵무기) 전용 방지를 위한 철저한 안전조치와 감시체계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전용 방지 설비를 갖춰야 했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강화된 일본 자체 안전요건에 따라 추가 설비도 도입해야 했기에 상업 운전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우승민 교수 역시 “일본은 실험 규모로 재처리 공정을 구현해 본 경험이 있어, 설비가 커진다고 해서 구현을 못 할 정도라고 보지 않는다”라며 “더 큰 원인은 정책적·외교적 제약과 방폐장 부지 선정 실패”라고 짚는다. 즉 “일본은 외교와 내부 정책 제약이 겹쳐 특수한 상황에 묶여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높아진 원전 불신과 탈원전 여론이 겹쳤다. 일반 원전조차 “없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진 사회에서, 방사능 누출 우려가 큰 재처리 시설이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일본은 상용 재처리에 실패한 채 사용후핵연료의 상당 부분을 프랑스로 보내 재처리를 맡기고 있다. “기술만 있으면 된다”는 단순 논리가 일본 사례 앞에서 무력해지는 이유다.

배윤 일본 게이오대 선임연구원 역시 “일본은 재처리 기술 자체는 있다. 기술력이 없어서 못 하는 건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방폐장(방사성 폐기물 처분장)’과 재처리 시설에 대한 불신이다. 일본은 고준위 폐기물의 최종 처분장을 어디에 어떻게 만들지 수십 년째 결정을 못 하고 있다.” 또 “프랑스·러시아 등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서 다시 연료로 쓰고, 폐기물 부피를 줄이는 시스템을 이미 갖추고 있다”며 “일본도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지만, 후쿠시마(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자력 전반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너무 커졌다”고 덧붙였다. 

 

‘재처리=방폐장 해소’는 허상

재처리는 흔히 “사용후핵연료 100을 그냥 묻는 대신, 진짜 폐기물 5만 골라내고 나머지 95는 다시 연료로 쓴다”는 방식으로 설명된다. 부피와 열량 부담을 줄여 처분 부담을 경감한다는 논리다. 이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곧바로 “그래서 방폐장이 필요 없어지거나 부담이 획기적으로 사라진다”는 결론으로 가는 건 왜곡에 가깝다. 우승민 교수는 “재처리의 핵심 가치는 첫째로 처분장 규모 축소, 둘째로 재자원화에 있다”고 말한다.

결국 ‘진짜 쓰레기’는 남는다. 일본처럼 최종 방폐장 부지 선정이 번번이 좌절될 경우, 재처리는 근본 해결이 아니라 ‘지연된 갈등’으로 귀결될 수 있다. 한국 역시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수조에 저장하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으며, 2030년경 포화에 도달할 전망이다. 사회적 합의와 안전성, 특히 원전·방폐장 후보지 주민들의 동의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일본의 장기 표류를 되풀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배 연구원은 “한국도 아직 최종 방폐장을 못 정했고,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부지의 수조나 건식저장시설에 계속 쌓이고 있다”며 “일본처럼 ‘쌓여만 가는 구조’라는 점에서 같고, 방폐장 입지를 두고 주민 반발에 부딪힌다는 점도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재처리 허용 → 핵잠수함 연료 자립 → 잠재적 핵무장’이라는 도식을 앞세운다. 재처리 권한 확대를 군사력·억지력 강화와 연결시키는 그림이다. 하지만 핵추진 잠수함용 핵연료를 한국이 독자 제조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한 번에 20~30년을 사용하는 특성상 몇 척 운영을 위해 전용 재처리 시설을 짓는 건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재처리 능력 확보가 곧 “일본처럼 잠재적 핵무장국이 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지나치게 상황을 단순화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잠재적 핵보유국으로 평가된다. 결국 핵무장 여부를 가르는 것은 기술 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 동맹 체계(NPT, 한·미동맹), 국제 규제와 감시 구조다. 그 점에서 ‘재처리가 허용되면 6개월 내 핵무장 가능’이라는 식의 접근은 국제정치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