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꽂힌 나라...젠슨 황이 본 한국의 '피지컬 AI' 잠재력
AI가 내 삶에 들어왔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AI가 인간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더 실감하게 된 배경은, 사이버 공간 속에 머물던 AI가 물리적 공간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즉 로봇청소기가 집안을 돌아다니고, 서빙 로봇이 식당의 점원을 대신하며, 운전자가 꽉 잡고 있던 자동차 운전대 위의 두 손을 서서히 내려놓으면서부터다.
피지컬AI는 현실(물리적) 공간에서 상황을 인식하고 학습하며 상호작용하는 자율 시스템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챗GPT로 대변되는 디지털 AI가 있다면 휴머노이드로봇·자율주행차 등을 피지컬AI로 분류할 수 있겠다. 주거 공간에서도 인간과 함께 어우러지고, 승용차 안에서 동행하며, 제조 현장에서 협업한다는 의미에서 기존 AI와는 구별된다.
피지컬AI는 2025년 CES의 기조연설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강조하면서 대중적 용어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경주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던 주간 젠슨 황 CEO는 한국에 GPU 26만장을 우선 공급해 줄 것을 약속했고, ‘반도체-통신-디바이스-플랫폼’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이미 확보하고 있던 한국으로서는 피지컬AI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AI 동맹, 젠슨 황은 왜 한국을 선택했을까?
젠슨 황 CEO는 GPU를 왜 한국에 우선 공급하기로 한 것일까? 엄밀히 말하면 GPU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하는 것이다. 다만 세계적으로 GPU 공급부족 상황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정부의 정책공약으로 GPU 5만장 확보를 내걸었겠는가? 한국에는 ‘우선’ 공급이라는 의미가 있다. 엔비디아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피지컬AI 시장 진입이라는 의미가 있다. 한국에 우선 공급을 선택한 이유다. 엔비디아는 미래 주력 비즈니스로 ‘피지컬AI 플랫폼’을 선정했다. 공장, 자동차, 가정, 농장 등과 같은 현실 세계의 물리적 대상을 가상의 디지털 플랫폼에 구현하여 제어하는 것이다. 이를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라고 한다.
엔비디아가 구현하고 있는 피지컬AI 플랫폼은 코스모스 WFM(Cosmos World Foundation Model)이다. 코스모스 WFM은 1억개 이상의 2~60초 길이 비디오 클립을 활용해 AI가 사전학습(Pre-training)을 진행하고, 실시간 상황에 맞게 세부 조정(Fine-tuning)하는 방식의 AI 모델이다. 코스모스 WFM을 성공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 현대차, SK, 네이버와 같은 밸류체인이 필요하다.
한국은 피지컬AI 밸류체인을 가진 나라다. 엔비디아가 피지컬AI 플랫폼 비즈니스를 구현하기 위해, AI 동맹을 결성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할 구성요소를 갖춘 나라인 것이다. AI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빠른 연산이 필요하다. 이에 GPU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HBM도 역시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즉 GPU가 빠르게 문제를 푸는 데 특화되어 있다면, HBM이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문제들을 가져오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세계 HBM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AI 서비스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디바이스나 플랫폼이 필요하다. HBM과 GPU는 부품일 뿐이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모바일폰, PC,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현대차는 자율주행차와 로보틱스를 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네이버는 클라우드와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디지털 트윈을 구현해 낼 수 있다. SK 텔레콤은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도록 하는 빠르고 안정적인 통신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함이 있으면 AI 동맹으로서 결격사유가 될 것이다.
피지컬AI, 산업적 기회
한국이 주목해야 할 피지컬AI 3대 부문은 아래와 같다.
첫째, 자율주행차다. 운전자들이 점차 자율주행 기능을 활용하며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자동차 기업들은 완전자율주행(FSD·Full Self-Driving)에 도전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데이터포캐스트에 따르면, 세계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490억달러에서 2033년 3045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테슬라는 완전자율주행을 실현하기 위해 심층 신경망을 활용하고 있고, 구글 웨이모는 고성능 센서와 AI 모델을 활용하여 자율주행 차량의 미래를 구체화하고 있다.
둘째, 휴머노이드 로봇은 피지컬AI의 핵심 영역이다.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취하는 로봇으로 인간의 일을 대신하거나, 인간과 함께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는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가 2023년 약 243억달러에서 2032년 약 66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셋째, 스마트홈 어플라이언스다. 집안에서 만나는 모든 가전에 AI가 도입되고, 서로 연결될 것이다. 로봇청소기는 이미 사람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스마트TV는 사람과 이미 소통하기 시작했다. 냉장고가 스스로 필요한 장보기 리스트를 결정하고, 세탁기가 사람이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기 전에 세탁이 완료된 옷들을 준비해 놓을 것이다. 집안의 모든 가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스마트폰이나 스마트TV 등을 통해 제어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오픈형 사물인터넷 플랫폼 스마트씽이 대표적인 사례다.
나비효과 전략
피지컬AI가 가져올 파급효과는 기대 그 이상이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의 태풍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처럼,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나비효과 전략’이 필요하다. 앞서 거론한 3가지 피지컬AI 산업은 사례에 불과하다. 방위산업, 조선업, 제조업, 유통업, 금융업, 건설업, 농축수산업 등에 이르기까지 AI는 모두 접목될 수 있는 영역이다. 다양한 산업에 걸쳐 피지컬AI를 선점하고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기반 시설이다. 전기 없이는 인터넷이 없고, 인터넷 없이는 인공지능도 없다. 네이버가 2023년 11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데이터센터의 경우 인구 100만명이 거주하는 도시와 비슷한 수준의 전력을 사용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특성상 전력공급에 차질이 있을 경우 천문학적 손실이 발생한다. 또한 대용량의 데이터를 교환하기 위해 6G 통신으로의 도약을 시도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자력발전을 모두 활용한 전력공급 로드맵을 다시 기획해야 할 것이고, 5G에 이어 6G 최초 상용화에 도전하는 과제도 착수해야 한다.
피지컬AI를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첫째,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노동력 감소라는 숙제를 만난 한국은 이를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피지컬AI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피지컬AI는 인간과 협업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릴 기회가 될 것이다. 둘째, 외국 자본을 유치할 기회가 된다. AI 고속도로와 에너지 고속도로를 완비할 경우 해외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에 와서 R&D, 기술 교류, 테스트베드 등의 무대로 삼고 유입될 수 있다. 이러한 여건에 어울릴 만한 규제 환경, 금융 인프라 및 외국인 정주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