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없는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태양광 환상에 가려진 현실

2025-11-26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부산 기장군의 한 마을에서 바라본 고리원전 2호기(오른쪽 두번째)와 영구 정지 8년 만인 지난 6월 해체가 결정된 고리원전 1호기(맨 오른쪽). photo 뉴시스

정부가 브라질 벨렝에서 오는 11월 21일까지 열리고 있는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에 보고할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53~61%로 확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 11월에 자발적으로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 40% 감축’의 목표를 선형(線型)으로 연장한 것이라고 한다. 가장 형편이 좋은 미국조차 포기해버린 ‘2050 탄소중립’을 기어이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지난 3년 동안 감축 실적이 6.8%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시 규모의 도시 4개가 내뿜는 온실가스를 포기해야 한다.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온실가스 배출권의 ‘유상할당’이라는 제도적 감축 수단뿐이다.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은 현재 10%에서 5년 후에는 50%까지 단계적으로 늘린다. 

더욱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2040년까지 석탄발전을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국제탈석탄동맹’의 가입을 선언했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대통령과 기후부 장관의 개인적 소견 때문에 가장 현실적 탄소중립 기술인 ‘원전’을 포기하는 ‘탈원전 시즌 2’도 걱정이다. 전기료 폭탄은 기정사실이다.

 

앞장서서 ‘막춤’을 출 이유가 없다

정부의 강력한 탄소중립 의지에 산업계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데 우리만 유별나게 ‘속도전’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산업계의 인식이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과잉 투자와 미국의 무차별적인 고(高)관세로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는 석유화학·정유·철강의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국가 경제와 민생보다 ‘기후정의’가 더 중요하다고 외치는 기후환경계의 입장은 정반대다.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가 국제사회에서의 국가적 책임을 외면했고, 감축의무를 미래 세대에게 떠넘겼다는 것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의 이익을 챙겨주기 위해 시민들의 권리를 위협했고, 실효적이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가 처음부터 탄소중립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 탄소중립은 2020년 10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듣도 보도 못했던 ‘탄소중립(carbon neutral)’과 ‘넷제로(net zero)’에 대한 기자들의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사실 기후변화를 핑계로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경제적 우위를 지키려는 유럽의 의도가 담긴 ‘탄소중립’은 우리에게 몹시 낯설고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렇게 등장한 탄소중립이 고작 1년 만에 우리 사회의 핵심 목표로 굳어져 버렸다. ‘탈핵’과 ‘탈원전’도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했던 문재인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망국적 ‘탈원전’을 고착시키는 수단으로 탄소중립을 선택했다. 청와대의 요란한 ‘비전 선포식’으로 시작한 탄소중립의 파격적이고 화려한 ‘막춤’이 2021년 글래스고의 제26차 당사국 총회(COP26)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나 감축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포스코 규모의 기업 5개를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사실 우리가 앞장서서 ‘막춤’을 춰야 할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우리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7억4230만t으로 전 세계 배출량 366억t의 1.98%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탄소중립을 달성하더라도 전 지구적 기후위기 해결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역사적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독일의 시장조사기관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1750년부터 2023년까지 화석연료 연소에 의한 국가별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미국(4300억t)·중국(2600억t)·러시아(1180억t)·독일(930억t)·영국(780억t)·일본(650억t)·인도(610억t) 등에 책임을 묻는 것이 마땅하다. 누적 배출량은 170억t으로 세계 17위를 기록한 우리가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다. 실제로 지난 3년 동안 정부가 목청껏 외쳤던 탄소중립의 성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잠정적으로 집계된 2024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6억9158만t이나 된다. 2018년 배출량(7억4230만t)의 93.2%나 되는 엄청난 양이다. 이제는 2035년까지 훨씬 더 강력한 감축 노력이 필요하게 된 셈이다.  

 

태양광·풍력에 대한 환상

산업부가 담당하던 에너지 정책을 떠맡게 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탄소중립에 대한 인식이 묘하다. 특히 에너지 생산 기술에 대한 전문성이 턱없이 부족한 김성환 장관에게 탄소중립은 곧 ‘태양광·풍력’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태양광·풍력 설비를 생산하고 극심한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적지 않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된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한다.

태양광·풍력 설비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일이 쉬운 것도 아니다. 엄청난 규모의 부지를 마련하고, 주민 거부감을 극복하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 설비만 설치하면 깨끗한 전기가 무한정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니다. 태양광·풍력 설비에서 생산한 전기를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송전망이 필요하다. 제주와 전남 지역의 태양광·풍력 설비에 대해 ‘출력제한’이 잦아지고 있는 것도 송전망 설치가 쉽지 않아서 발생하는 ‘계통접속’의 어려움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에너지 고속도로’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태양광·풍력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고속도로’까지 연결하려면 거미줄과 같은 ‘에너지 국도·지방도’를 건설해야만 한다. 태양광에서 생산되는 직류 전기를 먼 거리까지 송전하는 고난도 기술도 필요하다. 저밀도일 수밖에 없는 태양광·풍력 설비에 의한 송전망의 계통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300여 곳의 대형 발전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도 어렵지만, 수만 곳의 영세 태양광·풍력 설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태양광·풍력의 간헐성 극복에 필요한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엄청난 설치 비용도 마련해야 하고,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화재의 위험을 극복하는 기술도 개발해야만 한다. 태양광·풍력의 발전 효율이 2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태양광·풍력에서 생산하는 전력의 단가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기후부의 착각은 확실하게 버려야 한다. 중위도 지역에 위치한 우리에게 태양광·풍력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무탄소 전원인 원자력에 대한 거부감도 탄소중립을 어렵게 만든다.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원자력 잠수함은 되고, 상업용 전력 생산에 사용하는 원전은 안 된다는 억지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47년간 원전을 통해 공급한 전력이 전체 전력의 30%를 넘지만 원전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원전 건설에 15년이나 걸린다는 대통령의 발언도 가짜뉴스다. 에너지 빈국인 우리에게 원전이 없는 탄소중립은 비현실적인 꿈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