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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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방한에 맞춰 재한 화교(華僑)들도 들썩이고 있다. 흔히 ‘구(舊)화교’로 불리는 대만 국적의 2만2000여명 화교들은 6월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시위를 계획 중이다. 한성(서울)화교협회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40개 화교지부에서 광화문으로 일제 상경하는데, 공교롭게도 시위 대상은 광화문에 주재하는 주한(駐韓) 타이베이(臺北)대표부다. 타이베이대표부는 사실상 대만대사관에 해당한다.

‘대만 국적 재한 화교의 국외 통행권리를 대만 본토인과 동등 대우해 달라’는 것이 시위에 나선 재한 화교들의 주장이다. 대만 국적 화교들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수립 후 복잡한 호적 문제로 대만 국내 신분증 번호가 없다. 비록 대만 여권은 있지만, 대만과 사증면제(무비자)협정을 체결한 138개국의 무비자 혜택을 받지 못해 국외 출입이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재한 화교들의 대만 여권은 소위 ‘깡통여권’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은 2012년부터 한성화교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충헌(57) 회장. 이충헌 회장은 7월 4일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도 예정돼 있다. 주한 중국대사관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재한 화교 20여명과의 만남을 주선했고, 대만 국적의 이충헌 회장에게도 참석해 줄 것을 통보했다. 시진핑과의 만남에서 대만 국적 화교들의 권리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이다. 한성화교협회는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중국 국적의 ‘신(新)화교’들이 주축이 된 ‘중국재한교민협회’와 다르다. 단순한 교민단체가 아니라, 대만 정부를 대신해 화교들의 출생·사망신고, 각종 서류업무를 위탁처리하는 반관반민(半官半民)적인 사단법인이다. 시진핑 방한에 맞춘 재한 화교들의 탈(脫)대만 움직임에 타이베이대표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6월 26일 서울 명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 한성화교협회에서 만난 이충헌 회장은 “잠시 별거 중인 아빠(중국)를 만나러 간다는데 못 만날 것이 뭐냐”며 “이미 엄마(대만)한테는 아빠 만나러 간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발언에서는 1992년 한·중수교 이후의 극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실제 대만 국적 재한 화교들의 탈(脫)대만, 친(親)중국 움직임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부터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 경제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중국과의 교류가 급증하면서다. 또 재한 화교들의 원적은 중국 본토 산동성(山東省) 출신이 98% 이상이다. 대만(중화민국) 국적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수립 전 한국으로 온 조상들의 국적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시진핑으로서는 대륙과 대만에 관계 없이 동포들을 통 크게 품는 모양새를 연출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실제 재한 화교들은 타이베이대표부와 중정도서관과 청계천 화교사옥 등 화교재산 처리를 두고 알력충돌을 벌였다. 장제스(蔣介石) 전 총통의 본명(장중정)에서 이름을 딴 서울 명동의 중정(中正)도서관은 한성화교협회가 입주해 있는 건물이다. 실소유주가 한성화교협회인데, 대만 정부 명의로 돼 있어 소유권 다툼이 있었다. 한성화교협회에는 과거 걸려 있던 대만 총통 사진은 떼버린 채 국부 쑨원(孫文)의 사진만 걸려 있었다.

이 회장에 따르면, 소위 ‘깡통여권’으로 인해 재한 화교들이 겪고 있는 불편은 상당하다. 또한 한국과 무비자 협정을 체결한 상당수 국가들은 주한 자국공관에서 비자업무 창구 자체를 두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대만 국적 화교들은 캐나다 출장 시 비자창구가 개설돼 있는 필리핀 등 제3국에 가서 캐나다 비자를 받은 뒤 출국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충헌 회장은 지난해부터 대만의 요로를 통해 “대만 본토 여권과 동등 대우를 해달라”며 비자문제 해결을 요청해 왔다. 이를 위해 화교 업무를 전담하는 대만 정부의 교무(僑務·화교업무)위원장은 물론, 대만 외교부장(장관), 집권 국민당 간부와 입법위원(국회의원)들에게 문제해결을 호소했다. 하지만 “부탁한 지 1년이 넘도록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이 이충헌 회장의 주장이다.

이로 인해 엉뚱하게 한국 기업들이 입는 피해도 크다. 국내 기업에서 일하는 화교 3~4세들이 출장명령을 받아도 적시에 처리를 못해서다. 우리 기업들로서는 세계 각지에 거미줄처럼 퍼진 화교 네트워크를 적시적소에 활용할 수 없다. 해외출장이 많은 일부 대기업들은 대만 국적의 재한 화교 자사 직원에게 아예 한국으로 귀화할 것을 종용하는 사례도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이충헌 회장은 “이런 문제는 설영흥 전 현대차 부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겪고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에 따르면, 현대차의 중국 사업을 총괄했던 산동성 원적의 대만 국적 화교 3세 설영흥 전 부회장은 현대차와 외교공관 등의 배려로 무비자로 외국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반면 “일반 화교 자녀들은 이 같은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 기업들은 산동 출신 화교들의 도움 덕에 산동성으로 대거 진출해 제법 성공을 거뒀다. 반면 조선족 동포들의 도움으로 동북3성으로 진출한 기업들은 성과가 미미했다. 이 회장은 “화교들은 조선족 동포들과는 달리 중국의 시장, 부시장 등 고위급들과도 곧장 얘기를 나눌 수 있지 않느냐”며 화교들의 경쟁력을 과시했다. 이 회장도 대우조선해양의 산동성 옌타이(烟台) 블록공장 설립에 깊이 관여했다.

이충헌 회장은 충남 당진 출신의 화교 3세다. 원적은 산동성 옌타이로, 그의 할아버지가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와 정착한 곳이 충남 당진(唐津)이다. ‘당(唐)나라 나루터(津)’라는 지명처럼 당진은 산동반도에서 출항한 배가 주로 도착하는 곳이다. 그에 따르면, 중국에서 출발한 배가 바람이 안불 때는 인천, 겨울철 서북풍이 적당히 불면 충남 당진, 바람이 거세게 불면 전북 군산 등지로 도착한다고 했다.

이후 서울로 상경한 이 회장은 25년 전 서울 명동의 중화요릿집 동보성(東寶城)을 인수했다. 명동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있는 동보성은 한때 ‘하림각’ ‘희래등’과 함께 서울의 3대 중화요릿집으로 꼽힌 곳이다. 이 회장은 현재 명동의 동보성을 비롯해 강남에서도 동보성을 운영 중인데, 거느리고 있는 직원만 100명에 가깝다.

이충헌 회장은 재한 화교들을 ‘부모만 세 명을 둔 버림받은 고아(孤兒)’에 비유했다. 모국인 대만이 엄마, 원적이 있는 중국은 아빠라면, 나고자란 터전인 한국은 양아빠란 것이다. 하지만 재한 화교들은 130년 이주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귀화조차 수월하지 않다고 했다. 다른 나라 국민들과 같이 귀화 신청 후 국적을 획득하기까지 줄잡아 2년이나 소요되기 때문이다. 2만2000여명에 달하는 재한 화교들은 현재 화교 6세까지 나온 상태다. 국적만 대만일 뿐 사실상 한국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충헌 회장은 “130년의 역사를 가지고 월드컵 때도 한국팀을 응원하고, 휴대폰 문자도 한글로 보내고, 김치나 된장찌개 없이는 밥도 못 먹는데 전혀 특수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울고 있는 어린 자녀들을 위해 우리가 시위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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