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가엾다. 베이비부머에게 삶은 전쟁터였다. 그 치열한 경쟁의 무대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기득권층이 된 후에는 부모 봉양과 자식 부양을 이중으로 짊어지고 있다. 노후대책 없이 평균 수명이 확 늘어난 노인 인구는 자식인 베이비붐 세대만 내려다보고 있고, 취업난에 허덕이는 20대 자녀와 결혼을 앞둔 30대 자녀는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만 올려다보고 있다. 위로 아래로 치인 베이비붐 세대는 힘겹다. 이제는 아버지로서, 아들로서의 짐을 훌훌 벗어던지고 ‘나답게’ 살고 싶은데 내려놓을 수가 없다. 이 시대 베이비붐 세대의 슬픈 현주소다. 50대 우울증과 자살이 느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사회에 비친 베이비붐 세대의 일반적 초상이다. 그런데 최근 전혀 다른 각도의 얘기를 연달아 들었다. ‘깔때기형 대한민국 기업 비상’ 기사 취재 중 경제전문가 A씨는 “베이비붐 세대는 문제적 세대”라며 “세대 갈등의 주범이자 축소지향의 경제를 야기한 주범”이라고 말했다. ‘과잉양육의 덫’ 기사 취재 중 한 교육전문가는 “베이비붐 세대는 역사상 가장 흉악한 세대”라고까지 말했다. “가족 이기주의가 극대화된 욕심쟁이 세대로 사교육 열풍을 조장한 주체세력”이라는 게 그 이유다. 경제전문가 A씨는 1963년생, 교육전문가는 1961년생으로, 둘 다 베이비붐 세대다. 두 사람에 따르면 경제적 측면에서도, 교육적 측면에서도 베이비붐 세대는 부동산 버블, 사교육 과열, 세대 갈등 등 사회구조적 문제를 야기한 주범으로서의 혐의가 짙다. 자신의 세대를 향한 통렬한 자기 비판이었다.

최근 노동개혁 관련,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노사갈등도 베이비붐 세대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현안의 중심에는 베이비붐 세대가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정년연장(57세→60세)의 수혜자들은 베이비붐 세대다. 정년연장과 맞물리는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지 않아 여기저기에서 파열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노사갈등 때문에 직장폐쇄에 들어갔고,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9월 9일 파업을 선언했다. 조선(造船) 경기의 세계적 침체로 회사가 적자경영에 허덕이는 와중이라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사회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베이비붐 세대의 가족 이기주의가 임금피크제 시행의 걸림돌 중 하나라고 진단한다.

베이비붐 세대로서는 억울하다.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가족을 위해 일개미처럼 일한 죄밖에 없는데 자신들을 사회갈등의 원흉으로 낙인찍는다. 713만명 베이비붐 세대 개개인은 죄가 없다. 다만 전체를 묶어서 봤을 때 세대적 원죄(原罪)가 있다. 그 죄목은 △무조건 ‘하면 된다’는 낡은 구호로 세대 갈등 조장 △부동산시장 거품 조장 △부를 독점한 세대임에도 소비에 인색해 축소 지향의 경제 야기 △시민의식 부족으로 사회 공공재 마련에 소홀 등이다.

40~50대는 돈만 좇는 먹잇감 앞의 개?

서울대 학생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www.SNULife.com)에는 이런 글이 올라와 있다. “40~50대는 암적인 존재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선배들이 이룬 업적과 성장기를 틈 타 가장 쉽게 부와 권력을 획득했다. 지금은 모든 기득권을 차지한 채 후배세대 앞에 놓인 각종 사다리를 걷어찬다. (중략) 취업뿐 아니라 부동산도 그렇다. 그들은 부동산 불패신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단군 이래 부동산을 통한 최고의 불로소득을 거뒀을 뿐 아니라, 결국 한국 사회의 하우스 체인을 망가뜨려 버렸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어려움 없이 취직한 그들은 무난하게 서울 외곽의 집을 얻은 뒤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들의 끝도 없는 이기심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20대 후반의 동기들은 집은커녕 방이라도 있으면 만족한다. 그들의 이기심은 초·중 교육에 있어서도 극대화되고 있으며 문화·사회·복지 분야까지 외연을 넓히자면 끝도 없다. 한국의 40·50대는 선배세대와 후배세대,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기본틀조차 생각하지 않는 존재로 보인다. 돈만 좇아다니는 단세포 아메바다. 까다로워지는 은행 면접 기사를 보면서, 삼성 면접에서 떨어진 친구들을 보면서, 고시에 합격하고도 불행한 미래에 눈물을 흘리던 친구를 보며, 전무후무하게 노력하는 우리 세대들이 왜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우리 세대의 잘못이 아닌 것 같다. 무엇이 40·50대를 먹잇감 앞의 개로 만들어버렸을까. 왜 그들은 역사상 유일하게 오직 자신과 가족만을 바라보는 이기적인 인간이 돼 버렸을까.”

2012년에 올라온 이 글에는 추천 311개, 댓글 66개가 달렸다. 스누라이프 최고 수준이다. 댓글을 보면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내용이 가장 많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는 댓글도 꽤 있다. 사례를 보태는 댓글도 있다. “대표적으로 저희과 80학번은 32명 중 17명이 교수입니다. 학번이 낮아질수록 박사 후 교수 재직 비율이 줄어듭니다” “우리 엄마 아빠를 욕되게 할 생각은 없다. 우리 엄마 아빠가 딱 그 세대인데 아빠는 학점이 엄청 낮은데도 대기업에 바로 취직하고, 엄마는 교사인데 당시 임용고사는 치기만 하면 다 붙었다 한다” 등이다. 베이비붐 세대에게 자신의 세대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댓글도 있다. “시대적 상황상 쉽게 자리 잡은 그들을 욕할 순 없다. 다만 성장이 둔화된 현 상황에서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난 되는데 넌 왜 못하나’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되는데 왜 너네는 못하냐고들 한다. 기형적인 사회구조 때문에 발생한 일을 개인의 노력 차원에서 해결하라고 강요한다”가 그런 글이다.

50대를 향한 20대의 분노이자 아버지 세대를 향한 아들 세대의 분노다. 이 분노는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쟁탈전에서 비롯된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국제학대학원)는 주간조선에 최근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갈등양상에 대해 “갈등의 본질은 노사(勞使) 갈등이 아니라 노소(老小) 갈등”이라고 말했다.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회사가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임금으로 자식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얘기다. 그는 “50대는 건전한 공동체의 경험을 누적하지 못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50대가 우려하는 건 당사자가 아니다. 자식들이다. 자식들을 위해 아등바등 사는 것이다. 본인으로선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는다. 불필요한 세대갈등과 세대전쟁을 초래한다.” 그는 ‘외부불경제’라는 용어를 들어 설명했다. 개인 차원에서 한 합리적이고 유연한 선택이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에는 갈등과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의미로, 제조업체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염물을 몰래 강으로 흘려보내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례를 예로 들었다.

베이비붐 세대는 운 좋은 세대다. 고성장·고금리 시대에 살면서 직장도 쉽게 얻고 돈도 쉽게 벌었다. 기회가 많았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통계로 본 베이비붐 세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자료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일반적인 삶은 이렇다.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미래를 꿈꾸며 학교를 다녔다. 베이비부머라는 별칭처럼 동네엔 친구가 넘쳐났으며, 친구들과는 구슬치기를 하면서 즐거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교실은 한마디로 콩나물 시루. 반 정원은 70명에 육박했다. 소까지 팔아서 등록금을 대주는 특유의 한국적 교육열은 대학입시를 달궜다. 당시 취업은 꽤 무난한 일이었다. 중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널렸고, 대학을 졸업하면 금의환향이 보장됐다. 이들에게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은 덤이었다.

욕망과 환상의 세대

베이비부머 중에는 인간승리의 주역이 많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논 팔고 밭 판 돈으로 어렵사리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 후 월급쟁이로 시작해 특유의 성실함과 근성으로 기관장으로, CEO(최고경영자)로 우뚝 선 성공 스토리가 가장 많은 세대다. 지금 이들이 기득권층이 돼 있다. 회사에서는 팀장과 대표이사가 돼 있고, 정계에서는 장차관 자리를 점유하고 있다. 경제전문가 A씨는 주간조선에 “이들은 1차 베이비부머인데, 정작 불쌍한 세대는 2차 베이비부머(1968~1974년생)”라며 이렇게 말했다. “2차 베이비부머의 핵심은 1971년생이다. 이들은 IMF외환위기와 맞물려 취직도 어렵고 승진도 어렵다. 우리 때에는 승진도 쉽고 임원되기도 쉬웠다. 하지만 2차 베이비부머들은 희망퇴직에 노출돼 있으면서 1차 베이비부머들이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어 조직에서 올라가기도 어렵다. 결국 양보해야 하는 세대는 1차 베이비부머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은 에코부머(Echo Boomer·1979~1992년생)라고 불린다. 메아리, 반향이라는 뜻의 ‘에코’라는 용어처럼 부모 세대가 이뤄놓은 사회적 기반 및 영향력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고 해서 생긴 별칭이다. 이들은 생애주기에 따라 이해찬 세대, 트라우마 세대,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로 불린다. 비좁은 취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스펙 경쟁’이 일상화된 세대다. 이들에게 비친 현실은 ‘해도 안 되는’ 무대다. 베이비붐 세대의 ‘하면 된다’는 맹목적 신념과 배치된다. 여기에서 세대 갈등이 유발된다. 에코 세대가 취업 전선에 나서는 시대는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다. 기회가 적어서 해도 안 되는 현실에도 불구, 베이비붐 부모들은 자신들의 경험치만 내세워 “하면 된다”는 공허한 신념만 강요한다. 부모는 “아무리 어려워도 하면 된다. 우리 시대는 너희보다 더 어려웠다. 노력하면 되는데 왜 그러냐?”며 호통치고 “엄마 아빠는 우리 세대를 잘 몰라요”라며 대드는 풍경이 흔하다.

이나미 서울대 의대 겸임교수(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장)는 베이비붐 세대를 ‘욕망과 환상의 세대’로 규정지었다. “베이비붐 세대는 뭐든 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진 세대다. 실제로도 그렇고. 욕망과 환상의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그 절대긍정으로 산업역군으로든 공무원으로서든 열심히 일해왔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한국 역사상 가장 열심히 일한 세대다. 그전에는 악착 같은 세대가 없었다.” 이 소장은 그 이면의 어두운 측면도 함께 지적했다. ‘서바이벌 스킬(survival skill)이 체화된 세대’이자 ‘전쟁 논리에서 사는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의 또 다른 측면이라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경쟁의 논리에 충실한 세대다. 많은 형제 틈에서 악착같이 이기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오고 간부가 됐다. 베이비붐 세대에게 삶은 늘 전쟁터다. 전쟁은 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상처도 많이 준다. 장애인, 동성애, 이민자 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많은 세대이기도 하다. 전쟁은 끝났으나 늘 전쟁 논리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주간조선 이 글의 앞에 실린 고백록에서 베이비부머는 시민의식이 부족한 세대라고 표현했다. 이나미 교수의 분석도 비슷하다. 그는 “이전 세대의 이데올로기가 없어진 세대이자 부끄러움이 없어진 세대”라며 이렇게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위선을 걷어버린 세대다. 이전 세대만 해도 욕망을 조정하던 도리나 염치, 예(禮)를 강조했다. 선비정신이나 체면 때문에 치부(致富)하고 돈을 밝히면 쌍스럽다고 여겼다. 양반이 장사하면 부끄럽던 세대였다. 하지만 베이비부머는 돈만 벌면 된다는 의식이 강하다.”

베이비붐 세대 중에는 아파트 갑부가 많다. 1970년대 서울 강남, 1980년대 목동·상계·중계·과천, 1990년대 분당과 일산 등 신도시에 대규모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솟아올랐고 대한민국은 부동산 광풍에 휩싸였다. 이때 최대 수혜자가 이 시기에 내 집 마련을 한 베이비부머들이다. ‘전국 아파트 평균 매매가의 연도별 추이’

<표1 참조>를 보면 1986년 1억2000만원대였던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2015년에는 5억2000만원대로 껑충 뛰었다. 30년 새 5배 가까이 올랐다. 특히 베이비부머가 30대 후반~40대 초반이던 1998~2000년대 초반에 아파트 상승 폭이 가장 크다. 재건축과 맞물린 경우 불과 3~4년 새 2배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거두는 경우가 흔했다. 연봉보다 더 많은 수익으로 부러움을 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권모(60)씨가 그 경우다. 그는 경북 상주 출신으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물려받은 재산 하나 없으나, 서울과 경기도에 아파트 세 채를 갖고 있다. 시가 18억원에 달한다. 서울 잠실의 주공아파트에 살던 권씨는 두 딸이 대학생이 되자 잠실 아파트를 팔아 일산과 분당에 각각 아파트를 매입했다. 평소 부동산에 관심 많은 그는 신도시 개발 소식에 귀를 쫑긋 세웠다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시가의 절반 이상 은행 대출을 받으면서 무리수를 뒀지만, 불과 2년 후 대출을 다 갚았다. 짭짤한 재미를 본 그는 대출을 다시 받아 분당에 아파트를 한 채 더 샀는데, 이 또한 30% 이상 올랐다.

50대의 자산 점유율 32.5%

한국의 총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9.8%. 주도세력이 50대 베이비부머다. 가구주 연령대별 자산보유 비중을 보면<표2 참조> 50대의 부동산 비중(74.1%)은 전체평균(73.2%)을 웃돈다. 반면 30대는 61.0%, 40대는 69.0%로 조사됐다. 60대 이상 연령과 비교해 보면, 구성비 면에서는 60대(82.2%)보다 낮았지만 자산규모는 많았다. 50대의 평균 부동산 보유액은 2억9247만원, 60대 이상의 평균 부동산 보유액은 2억6553만원이었다. 60대는 자신의 전체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가장 많지만, 금액 면에서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통계다.

탄탄한 근로소득과 자산 버블에 올라타 적잖은 시세차익을 거둔 베이비부머는 한국 사회의 부자집단으로 부상했다. ‘자산 유형별 가구당 보유액 및 점유율, 구성비’를 보면<표2 참조> 50대의 평균 자산은 4억3025만원. 전체의 32.5%의 부가 집중돼 있다. 50대 인구는 826여만명으로 60대 인구(950여만명)보다 15%가 적지만, 자산은 60대(평균 자산 3억3360만원)보다 28%가 더 많다.

2015년 현재 서울아파트 가구당 평균 매매가는 5억5485만원. 청년세대에게 아파트는 시쳇말로 ‘넘사벽’이다.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1분위 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145만원대라는 걸 감안하면, 서울의 평균 아파트를 마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1년에 달한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한 엄친아의 경우는 어떨까. 2015년 대기업 평균 초임은 3773만원. 이들의 경우 15년이 걸린다. 물론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할 때 얘기다. 산술적으로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결국은 양보하고 내려놓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해법이다. 전영수 교수는 “공멸을 막으려면 자원을 독점하고 점유한 분들이 내려놓아야 한다”며 “양보의 요체는 임금피크제를 중심으로 한 일자리이고, 내려놓음의 요체는 사교육과 결혼 이벤트”라고 말했다. 베이비부머는 허리가 휘어지게 사교육에 돈을 바쳤지만 그 결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학벌이 성공을 보장해주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전 교수는 “직장이 아닌 직업을 찾고, 스펙이 아닌 자아를 찾도록 안내해주는 게 진정한 부모의 역할과 도리”라며 “이는 부모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라고 충고했다. 사교육비와 결혼 이벤트에 드는 천문학적인 돈을 아껴 본인 노후에 활용하는 것이 자녀의 인생 설계에 더 도움이 되는 현명한 투자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에게 내려놓으라는 건 미안하고 잔인한 충고라는 데에 동감한다. 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양보라는 표현을 썼지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베이비부머는 내려놓기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30년 이상 열심히 살아와서 아파트 하나 겨우 얻었는데, 거기에는 복잡한 함수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등산이다. 올라갔으면 내려오는 게 이치다. 베이비부머가 딱 그 정상 언저리에 있다. 남은 건 하산이다.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니 수많은 청춘인생이 헐떡거리며 다가온다. 그들 중에는 내 자식도 섞여 있다. 더 미뤄선 곤란하다. 그 결단은 올곧이 기득 세력에 달렸다. 50대의 결단을 도와줄 정책과 시스템적인 지원도 구체적으로 뒤따를 필요가 있다. 대책 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 수는 없는 법이다. 배려와 양보, 상생과 협심만이 세대 전쟁을 막을 수 있다.”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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