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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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25일은 아산 정주영 탄생 100년이 되는 날이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는 각계의 관심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현재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정주영 탄생 100주년 시리즈를 내보내고 있다. 지난 8월 26일부터는 ‘아산 정주영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도 발행되고 있다. 이 기념우표는 탄생 105년을 맞은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과 함께 발행되었다.

아산 정주영은 대한상공회의소가 2007년 일반인과 교수 및 현직 최고경영자(CEO)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1위(34.1%)에 뽑힌 바 있다. 특히 현직 CEO(50%)와 교수(27.7%)들의 아산에 대한 지지도(평가도·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아산 정주영은 항목별 여론조사에서 ‘한국 경제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기업인’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산 정주영은 평소 “나는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며, 노동을 해서 재화(財貨)를 생산해 내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주영에 대한 해외의 찬사와 평가, 인물연구는 지면으로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면, 홍콩의 경제전문 주간지인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는 1999년 11월 ‘20세기 아시아 10대 인물’에 정주영 회장을 선정하면서 “정 회장은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한국을 막강한 산업국가로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기업가이자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주도한 기업인이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을까. 놀랍게도 한국사 교과서에는 정주영·이병철 같은 기업가들은 아예 취급조차 되지 않거나 그들의 활동과 역할이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功보다 過만 기록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기업과 기업인에 대해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현재 고등학교에서는 기존 6종의 교과서와 신종(新種) 8종의 교과서를 합쳐 14종의 한국사 교과서가 사용되고 있다. 2011년 8월에 나온 기존 6종 교과서는 현재 고3 학생까지만 사용하고, 고1·2학년부터는 작년에 나온 8종의 신종 교과서로 공부하는 셈이다.

모든 한국사 교과서는 근·현대사 부분에서 우리의 경제성장 과정을 별도의 항목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현재 고3들이 사용하고 있는 6종(삼화출판사·천재교육·미래엔컬처그룹·지학사·비상교육·법문사) 교과서를 살펴보았다. 이들 교과서 중 ‘삼화출판사’ 한 곳을 제외하고는 정주영과 이병철을 언급한 교과서가 하나도 없었다.

‘삼화출판사’ 교과서는 6종 교과서 중 유일하게 이병철·정주영 회장의 사진을 넣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인 이병철은 삼성을, 정주영은 현대를 창업하여 한국 경제를 세계적인 규모로 끌어올렸다”라는 짧은 설명을 달았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한국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상을 소개하면서 그 공을 노동자와 유학생과 공무원으로 소개했을 뿐 기업인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미래엔컬처그룹’ 교과서는 ‘박정희 정부’ 대신 그냥 ‘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기업가의 역할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전경련은 2011년 김종석 홍익대 교수, 박효종 서울대 교수, 전상인 서울대 교수 3인에게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중에 경제발전 과정 서술 부분의 정밀 분석을 의뢰한 바 있다. 김종석 교수(현 여의도연구원장)는 “당시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반(反)시장경제와 반기업 이념을 부추기는 내용이 많았다”며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경제발전의 기적적인 성공 역사와 그 뿌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결국 미래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정주영과 이병철이 빠진 그 공간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가 있을까. 6종의 모든 교과서가 노동운동가 전태일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엔컬처그룹’의 교과서는 전태일의 생애를 한 쪽 전체를 할애해 다루었고, ‘천재교육’은 한 쪽의 3분의 1정도 분량으로 실었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도 한번 살펴보았다. 기자가 살펴본 5종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정주영·이병철 회장이 언급된 곳은 없었지만, 전태일에 관해서는 5종 모두가 그의 사진을 게재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설명하면서 기업과 기업인의 역할을 묵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02년 검정을 통과한 7차 교육과정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부터다.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10년이 넘게 좌편향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현재 사용 중인 고교 한국사 교과서들. ⓒphoto 전기병 조선일보 기자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02년 검정을 통과한 7차 교육과정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부터다.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10년이 넘게 좌편향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현재 사용 중인 고교 한국사 교과서들. ⓒphoto 전기병 조선일보 기자

경제성장도 정치적 해석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교과서에 전태일을 게재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발전에 기여한 주요 기업과 기업인도 공정하게 다루어야 하는데 교과서에서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더 큰 문제는 우리 교과서가 기업이 노동착취를 통해 부를 이루었다는 등의 기업에 적대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전경련 측의 우려처럼 실제 모든 한국사 교과서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역사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기저에 일관된 반(反)기업 정서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기업에 적대적인 기술 방식은 기존의 6종 교과서, 새로 발간된 8종 교과서 중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7종이 사실상 대동소이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두산동아’ 국사 교과서를 예를 들면,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부와 대기업의 유착관계가 심화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대기업을 정경유착, 외환위기를 가져온 장본인으로 지목한 부정적인 서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저리 융자에 의존하여 기업을 확장하는 경영 방식은 한국 경제의 팽창을 촉진하였지만,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305쪽)

“그러나 급격한 자율화와 경제 개방은 무분별한 외화 도입,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등 문제점을 드러내어 1997년 외환위기를 맞기도 하였다.”(306쪽)

‘미래엔’의 현대사 교과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중화학공업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반재벌적 묘사와 함께 경제성장을 정치적인 내용으로 비판하고 있다. 특히 1970년대에 꾸준히 성장이 이루어지고 임금도 상승하여 삶의 질이 향상된 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중화학공업에 대한 과잉투자로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고 기업 부담이 늘어나자 국민생활도 힘들어졌다. 이러한 경제적 고통이 가중되고 유신 체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아지는 가운데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나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다.”(339쪽)

‘조갑제닷컴’은 작년에 2014년부터 새로 사용되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8종을 분석한 ‘대한민국 교과서가 아니다’라는 책을 펴냈다. 한국사 8종에 대한 ‘분석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앞선 2011년에는 6종 국사 교과서의 왜곡 사례를 분석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거짓과 왜곡 바로잡기’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는 8종의 신종 국사 교과서 중 ‘천재교육’의 한국사 교과서 분석을 맡았다. 조갑제 대표는 “천재교육 교과서엔 전태일 같은 노동운동가, 이한열·박종철 같은 민주화운동가에 대해선 파격적인 지면과 사진으로 집중적으로 부각시켰지만 백선엽·워커·맥아더 같은 6·25 영웅과 이철승 같은 건국 공로자, 정주영·이병철·이건희 같은 세계적 기업인들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 국사 교과서가 ‘교학사’를 빼고는 민중사관으로 쓰였기 때문”이라며 “민중사관은 곧 계급투쟁사관이며, 이는 노동자·농민을 역사의 주역으로 보는 사관(史觀)이며, 소위 민주화 투쟁의 당사자를 역사의 주역으로 삼다 보니까 자연히 자본가와 기업인은 적으로 분류하거나 무시하는 서술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집필자의 역사관 때문에 이런 교과서가 탄생했다”고 분석했다.

노동운동가 전태일 사진과 전태일의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이 실린 비상교육 한국사 교과서(2013년 8월 교육부 검정판). 대부분의 교과서가 기업과 기업인들의 역할은 다루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가 전태일 사진과 전태일의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이 실린 비상교육 한국사 교과서(2013년 8월 교육부 검정판). 대부분의 교과서가 기업과 기업인들의 역할은 다루지 않고 있다.

반기업 정서 부추기는 교과서

현재 국사 교과서의 국정 전환 문제를 두고 여야의 공방이 격렬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0월 7일 현행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대해 “출판사별로 일관되게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는 반(反)대한민국 사관으로 쓰여 있다”며 “좌파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학생들에게 민중혁명을 가르치는 의도로 보여진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011년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37명 중 28명이 2014년 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했다”고 밝혔다. 원 원내대표는 “한국사 교과서 7종의 근현대사 분야를 22명이 집필했는데 그중 18명이 특정 이념에 경도된 사람들”이라며 “‘전교조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조갑제닷컴’이 2011년 발행된 6종 교과서 필진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좌파 성향 교수와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대거 필진으로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9명의 교수 출신 필진 가운데 8명이 좌파 성향이며, 28명의 교사 출신 필진 가운데 9명이 전교조 출신이었다. 당시 분석에서 ‘조갑제닷컴’은 총 37명의 필진 가운데 적어도 19명(51%)의 필진이 좌파 성향인 것으로 확인했다.

오랫동안 반(反)전교조 활동을 해온 이계성 반국가교육척결연합 대표는 “결국 기업에 대한 적대적 시각도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민중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교과서를 만들었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우리를 배불리 먹고살게 해준 사람들이 정주영·이병철 같은 분들인데 이들을 적대시하는 교육을 펴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교과서의 편향성과 반기업 정서는 사실 한국사 교과서만의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자유경제원 현진권 원장은 “교과서는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학습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문학, 역사 등의 교과서에서 매우 일관된 좌편향 행태가 드러났다”며 “과목은 달라도 서술 태도에 드러나는 문제점은 동일했다”고 말했다. 자유경제원은 교과서의 반기업 정서와 편향성을 바로잡기 위해 여러 차례 연속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현진권 원장은 “자본주의에 살면서 자본주의(기업경제)를 스스로 부정하는 교육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말”이라며 “자라나는 학생들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지 못하면 우리나라가 자유를 바탕으로 한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커버그 같은 기업가를 키우려면

한국사 교과서 분석에 참여했던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문제는 현재 이들 일부 좌파 사상가들에 의해 쓰인 교과서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져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2011년 고등학교 일부 교과서가 반기업·반시장 이념을 부추긴다며 이를 시정해 줄 것을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에 건의한 적이 있다. 전경련은 당시 “세계 역사상 전례 없는 경제발전으로 노동자, 농민을 포함한 대다수 한국민의 전반적인 생활수준과 복지제도, 국가위상이 지난 50여년간 현저하게 상승하였음에도 우리 교과서는 외국자본 의존, 대외의존, 산업불균형, 빈부격차, 근로자와 농민의 희생이라는 부정확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가 확인해 보니 전경련의 건의 이후에도 교과서에서 별로 달라진 내용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모든 교과서가 경제성장 부분을 다루기는 하지만, 곧바로 경제발전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해 이를 상쇄하는 기술 방식을 보이고 있다. 또한 기업과 기업가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역할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이렇게 애당초 누락하고 기술하지 않은 부분은 교육부의 수정권고 사항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은 “우리의 경제발전은 박정희라는 리더십과 그 리더십에 호응한 민간 부문의 두 위대한 기업가(정주영·이병철)가 동시대에 살았던 결과”라며 “이 두 리더십의 보완적 협조가 없었으면 수출국가 건설과 중화학공업의 발전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많은 개발도상국가가 우리 경제발전을 흉내 내려 하지만, 민간 영역에서 정주영·이병철 같은 비전을 가진 기업인이 없기 때문에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과서는 이러한 경제발전 과정의 핵심을 뺀 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미국은 교과서에서 훌륭한 기업인을 다루고 있는데 이런 토양 속에서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같은 위대한 기업가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상흔 조선뉴스프레스 인터넷뉴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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