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27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부근에 마련된 소떼 방북 환송행사장에서 소의 고삐를 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이응종 조선일보 기자
1998년 10월 27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부근에 마련된 소떼 방북 환송행사장에서 소의 고삐를 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이응종 조선일보 기자

2015년은 현대그룹의 창립자로서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끌어낸 아산(峨山) 정주영(鄭周永·1915~2001)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스무 명의 학자들은 아산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이번 연구에서는 ‘아산, 그 새로운 울림: 미래를 위한 성찰’이라는 주제를 ‘얼과 꿈’ ‘살림과 일’ ‘나라와 훗날’ ‘사람과 삶’이라는 네 권의 책으로 묶어서 문학, 철학, 정치학, 경제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아산의 삶과 사상을 새롭게 조망함으로써 거인의 존재에 대한 역사적 의미 분석과 가치 평가를 시도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아산을 소환(召喚)하고자 하는가? 그것은 아산이 우리 사회에 던지고 간 물음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산이 던졌던 물음들과 그에 대한 해법으로부터 우리의 사회문제 해결에 필요한 어떤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아산의 ‘얼’에서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산은 절대 빈곤과 농사일로 매우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조부가 가르치는 서당에서 유학 경전들을 익히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으며, 이때부터 이미 ‘우리의 것’에 대한 가치를 체득하고 있었다. 청년 창업가로서 아산은 유교적 가치와 현대적 자본주의를 결합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경제적 민족주의’의 길을 모색했으며, 소비재 중심의 내수시장만이 대세였던 당시의 상황에서 수출주도형 중화학공업에 승부수를 던지는 과감한 결행을 하였다. 이러한 아산의 시도가 실패했더라면 오늘날 우리 경제의 번영과 성취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산은 경제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교육, 문화, 스포츠, 정치 영역에서도 광범위한 사회활동을 펼쳐나갔다. 우리는 경제대통령으로서의 아산의 모습뿐만 아니라 사회복지가, 문화예술계의 후원자, 체육지도자, 대통령 후보자로서 아산의 면모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977년에 아산은 자신이 소유한 현대건설 주식 절반으로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을 설립하여 가난하고 병든 소외계층에 희망의 빛을 던져 주었다. ‘바덴바덴의 기적’(1981)으로 유치한 서울올림픽 개최(1988) 역시 아산의 희생과 노력이 없었다면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아산의 꿈과 목표는 ‘근로자의 의욕’과 ‘직업인의 열의’ ‘국민의 희망’을 한데 모아서 ‘선진 한국, 통일 한국’을 완성하는 데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1992년의 대선 참여와 1998년의 두 차례 소떼방북 사건에서 아산의 정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다. 아산이 구상한 한국형 경제발전 모델은 유교적 복지국가의 건설과 궤를 같이한다. 그리하여 아산은 사회복지, 교육복지, 의료복지와 같은 미래형 복지국가 건설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또한 우리는 아산의 삶과 사상에서 가난과 궁핍을 이겨낸 희망사상은 물론이고, 시련과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담담지심(淡淡之心)’의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아산은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철학이나 빅토르 프랑클의 로고테라피(의미치료)를 배우거나 공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유사한 철학적 사유세계를 향유하고 있었다. 전자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좌우명에서, 그리고 후자는 “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라는 좌우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아산은 희망철학과 인문치유의 길을 꿰뚫고 이미 도통하고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기적

여기에다 그는 문화발전적 통찰을 바탕으로 인류의 궁극적 목표인 문화복지국가의 건설을 꿈꾸고 있었기에, 칸트의 최고선과 문화철학까지를 내용적으로 아우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산은 “나는 이 나라를 잘살게 할 수 있다”라는 문화발전론적 이념에 근거한 좌우명을 바탕으로 우리 후대가 앞으로 더 나아지고, 또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보았다. 아산은 우리 자신들뿐만 아니라 기업과 사회, 그리고 국가가 ‘잘되도록’ 노력한다면, 전후 독일과 일본이나 현대의 중국처럼 10년 이내에 선진 문화국가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아산의 ‘선진국가 부상론(浮上論)’이다. 아산은 우리가 선진국가로 진입하지 못하는 것은 정치인의 책임이 크지만 국민의 정치적 책임도 그에 못지않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산의 문화사적 관점을 계승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 속에서 문화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역사적 활동에서 최고선(善)은 바로 문화이고, 이는 시간 계열에서의 무한한 전진이나 접근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산에게는 ‘운(運)’이란 그저 시간일 뿐이었고, 따라서 우리는 그 시간과 때를 어떤 태도로 접근하는가에 따라서 그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과 역사 안에서 바르고 정의롭게 행위하려는 노력이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제대로 기술하지 않을 경우에, 우리 후대의 그 누구도 우리 역사에 대해서 자긍심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아무도 우리 역사를 배우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아산을 단순히 재벌 기업가나 경제인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의 문화적 관심과 이해 노력을 문학, 예술, 문화, 스포츠, 사상, 사회복지, 정치, 경제 등 전 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아산의 지혜와 문화복지 자산들을 제3세계 시민들에게도 전파해 인류의 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야말로 아산의 문화사관에서 강조되고 있는 인류문화의 발전이라는 문화·철학적 가치를 세계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아산의 가르침이나 우리 모두는 ‘미성숙성으로부터 계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칸트의 가르침은 큰 틀에서 볼 때 선진국가론이나 문화발전론을 지향하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므로 아산을 배우면서, 아산처럼 되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를 선진국가로 우뚝 서게 하는 지름길이다. 100년 전, 아산의 탄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현대사의 ‘사건’이자 ‘현상’이고 ‘기적’이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아산의 진정한 모습은 ‘부유한 노동자’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통일된 문화복지국가의 건설을 그 자신의 정치적 최고선으로 상정했던 정치인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산을 소환하여 현 시대를 반성할 수 있는 거울로 삼아야 할 이유인 것이다.

김진

울산대 교수·철학

김진 울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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