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스포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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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향신문에서 전문가들을 상대로 ‘2016 대중문화 기대주’ 설문조사를 벌였다. 음악 부문에선 블락비의 지코가 영예를 차지했다. 10명 중 5명이 지코를 지목했다.

그가 꼽힌 이유는 간단하다. ‘탈아이돌’ 행보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돌 그룹에 속해 있지만 곡을 직접 만든다. 또한 고분고분한 캐릭터가 아니라 반항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캐릭터를 내세운다. ‘아이돌’에 대한 통념과는 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것이다. 요즘은 지코 말고도 이런 아이돌이 많다. 비스트의 용준형도 직접 곡을 쓰고, 아이콘의 바비는 래퍼들의 경연인 ‘쇼미더머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아이돌답지 않은 아이돌’의 원조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이런 ‘아이돌답지 않은 아이돌’의 원조가 누구던가. 바로 지(G)드래곤이다. 빅뱅은 데뷔할 때부터 지드래곤을 필두로 ‘힙합 아이돌’ ‘작곡 가능한 아이돌’ 이미지를 내걸었다. 다른 아이돌 그룹과 차별화된 ‘음악성 있는’ 아이돌로 승부수를 띄웠다. 아이돌의 새로운 세대가 빅뱅과 지드래곤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곡을 직접 쓰고, 곡의 완성도도 좋기 때문에 그에겐 ‘아이돌’ 하면 흔히 가해지는 ‘음악성 없다’는 비판이 통하지 않는다. 천편일률적이고 틀에 박힌 담론으로는 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아이돌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실력 문제를 극복했기 때문에 그는 아이돌이지만 아이돌이란 틀에서 자유롭다. 뮤지션, 프로듀서, 아티스트 같은 칭호를 동시에 얻는다. 그처럼 대중과 평단 양쪽의 사랑을 모두 받는 이를 찾기 힘들다. 그는 다 가졌다.

빅뱅은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다. 음원을 발표했다 하면 차트가 ‘올킬’된다. 이는 다른 말로 빅뱅이 케이팝(K-Pop)시장을 쥐고 흔든다는 이야기다. 빅뱅 음악의 중심엔 지드래곤이 있다. 케이팝을 움직이는 큰손 중의 한 명이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셈이다.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케이팝의 중심 프로듀서가 아이돌 그룹 안에서 나온다.

예전엔 아이돌 그룹과 그들을 프로듀싱하는 인력이 따로 존재했다. 한쪽은 기획하고, 한쪽은 꼭두각시처럼 따라가기만 했다. 그런데 이젠 다르다. 소속사의 기획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가수들이 그저 따라가지만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넣는다. 작곡과 작사를 통해서 말이다. 빅뱅과 지드래곤은 케이팝시장을 변화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지드래곤의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그가 대형 주류 기획사에 속해 있으면서도 때로 지극히 비주류적인 접근을 한다는 데에 있다. 예전엔 주류 스타들이 함부로 19금 이미지를 차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했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드래곤은 ‘그새끼’ 같은 위험한 제목의 노래를 대놓고 발표한다. 빅뱅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거짓말’에도 “엿 같애!”라는 랩이 노골적으로 들어간다.

지디앤탑의 음악은 어떤가.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의 로고를 차용했을 뿐더러 ‘집에 가지 마’에선 너와 아침을 맞고 싶다고 유혹한다. 그는 때로 웬만한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보다도 대담한 가사를 싣는다. 로커나 래퍼들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캐릭터를 내건다.

유행 앞서가는 非주류적 접근

물론 이것은 YG의 계산된 전략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야 차별화되고 그렇게 해야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신선하고 충격적인 것을 좋아한다. 대중들의 성향을 잘 아는 YG는 이런 비주류 전략을 역으로 이용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 아이돌 및 가요의 트렌드가 조금 덜 답답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긍정적 효과가 생겼다. 예전엔 ‘그런 건 위험해’ ‘그런 건 안 팔려’라고 얘기되던 것들이 과감히 시도되고 있다.

물론 이걸 전부 빅뱅 덕분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을 비롯한 YG의 역할이 컸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한 예로 투애니원 덕분에 걸 그룹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지 않았나. 귀여움으로 승부했던 소녀시대도 ‘블랙 소시’라며 ‘Run Devil Run’을 발표했을 정도다. 최근엔 YG보다 훨씬 센 ‘쇼미더머니’ 음악들이 인기를 끌며 과감함의 수준이 한 단계 더 높아졌지만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대형 기획사의 수퍼스타가 ‘그새끼’란 노래를 발표하는 건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빅뱅이 주류 가요의 표현 영역을 좀 더 넓혔다고 생각한다.

너무 긍정적인 평가만 늘어놨는지도 모르겠다. 단점도 분명 있다. 예를 들어, 그는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표절 의혹을 받았다. ‘거짓말’도 그랬고, ‘Heartbreaker’도 그랬다. 작곡 가능한 아이돌이란 게 그의 차별점이었기에 표절 의혹들은 그에게 치명적이었다. 작곡가로 이름을 올리고는 있지만 공동 작곡의 경우 과연 참여 비율이 얼마나 될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여전히 그의 음악성에 물음표를 다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 아이돌의 역사에 아주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 냈다. 주류 기획사 연습생 출신인 그가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해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 못지않은 ‘힙스터’로서의 선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인기만 많은 것이 아니다. 유행을 앞서가고 비주류 문화를 잘 이해한다는 인상을 준다.

패션은 특히 그렇다. 나는 패션을 잘 모르지만 그가 입고 나오는 의상들은 확실히 독특하다. 유명한 패션 피플들도 그의 감각은 인정한다고 한다. 명품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그에게 먼저 협찬을 건넨다고 한다. 신승훈, 김건모, 지오디의 인기와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그는 ‘국민 가수’라는 칭호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오히려 그런 만인의 취향에서 벗어났기에 더 멋있게 보이는 경우다. 어쩌면 그는 ‘국민 남동생’ 이미지를 거부했기에 더 사랑받는지도 모르겠다. ‘친근한’ 이미지의 아이돌은 이제 옛말이다. 제일 쿨하고 제일 섹시해야 한다. 그렇게 기준이 바뀌어 가고 있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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