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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라틴어·도덕경·질문과 토론… 공부로 한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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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393호] 20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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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라틴어·도덕경·질문과 토론… 공부로 한계를 넘었다

건명원 1년이 바꾼 것… 수료생 8인의 이야기 생존율 30%

김민희  기자 

건명원 1기 최종 수료생은 11명. 자신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빡빡한 공부가 요구되는 서바이벌 과정의 생존율은 30% 정도다. 정원 30명 중 19명이 탈락했다. 최종 수료생들은 1년간 건명원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을까. 분야를 넘나든 스타급 교수들의 수업은 이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수료생 11명에게 여덟 가지 질문을 보냈다. 그중 8명이 기한 내 답변을 보내왔다. 나머지 김정욱·어영진·한마음씨는 최종 수료생에게 부여되는 특전인 해외여행 중이었다.

   공통 질문
   1 건명원 지원 동기
   2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 내용과 이유
   3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나
   4 건명원은 ( )다
   5 건명원 전과 후, 내 자신을 비교한다면
   6 오늘도 당신을 들여다봤나(최진석 원장 질문)
   7 1년 전의 당신의 꿈과 지금의 꿈은 어떻게 달라졌나(배철현 교수 질문)
   8 건명원 1회 졸업생으로서 하고 싶은 말

   미래의 국가 형태를 고민하기 시작하다
   박승헌25세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4년(경제학·외교학 전공)

   
   1 두 가지 점이 나를 사로잡았다. 먼저 교수진이다. 학교에서 주경철·배철현 교수님을 각각 강의와 강연으로 뵌 적이 있다. 두 분은 모두 강렬한 지적 자극을 선사해 주었다. 이런 분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신다니 굉장한 흥미가 생겼다. 스펙 대신 가능성을 보겠다는 선발방식도 신선했다. 또 졸업생에게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경비를 지원해 준다니 정말 매력적이었다.
   
   2 한두 가지로 선정하기 힘들 정도로 모두 훌륭했다. 여러 수업들이 연결·융합되면서 깊은 흔적을 남겼다. 예를 들어 나는 미래 국가 형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는 김대식 교수님의 강의가 출발점이었다. (인공지능으로 수많은 일자리가 없어지고, 기존 사회체제는 변화를 강요받으리라는 내용이었다.) 최진석 교수님은 한국의 선진화를 위해 기존의 규칙을 넘어 도전하라 강조하셨고, 배철현 교수님은 스스로에게 집중하여 고독하지만 유일한 길을 가라고 주문하셨다. 또 세계사, 네트워크, 언어학, 미학, 건축학 강의는 계속해서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서로 다른 지식들이 궁극적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진기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3 학교 공부 및 입시와 병행하느라 힘들었다. 건명원이 무서운 건 개개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절대적 기준에 못 미치면 탈락시킨다는 점이다. 옆자리의 원생들이 몇 명씩 사라지니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게다가 도덕경과 라틴어의 암기 시험도 있었기에, 요령 피우지 않고 우직하게 외우면서 학습의 절대량을 채워야 했다. 극한의 생활도 경험할 수 있었다. 멋모르고 학점을 많이 들었던 1학기에는 33번 집에 못 들어가고 학교에서 밤을 샜다. 선생님들이 강조하시던 자신의 한계 넘어서기를 몸소 체험한 셈이다.
   
   4 건명원은 (거울)이다.
   1) 나와 공동체의 참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나 낯선 이와의 만남처럼, 건명원에서의 새로운 지식은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들의 모습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게 했다.
   2) 강의를 통해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에 눈떴다.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 선함을 추구하는 윤리, 영원을 추구하는 종교에는 관심도 많았고 공부도 많이 해왔다. 반면 아름다움은 하위의,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해 왔다. 그런데 서동욱·김개천 선생님의 강의는 내게 미(美)라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토록 했다.
   
   5 건명원 이전의 나는 한국의 경쟁적 시스템에 최적화된 삶을 살고 있었다. 공부를 비교적 잘해온 편이었으며, 향후 법조인으로서 살아가려 했다.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겠다는 꿈이 있었지만, 명예와 지위를 내심 원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내 삶은 절제되고 목표 지향적이었으며, 머릿속엔 언제나 승리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건명원 이후의 내가 180도 바뀌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다. 하지만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항상 머릿속을 맴도는 점이 달라졌다. 무엇을 위한 소모적 경쟁인가, 한국은 어떤 길로 가야 하나, 개인-국가-세계를 아우르는 정의(正義)는 존재하나, 평화통일은 어떻게 이룩하나, 동아시아의 미래, 인공지능 이후 인류, 어떻게 올바르게 살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앞으로 나의 삶은 이러한 정답 없는 질문들에 대한 나만의 대답을 찾는 과정이 될 것 같다.
   
   6 할 일을 하면서 자신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요즘 영문 주간지를 읽으면서 내가 글을 얼마나 좋아했고 과학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다시 깨닫고 있다. 자기성찰은 예민함의 문제라는 생각이다.
   
   7 꿈은 변함없지만 도달방법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정의를 위해서는 검찰이나 법원, 통일을 위해서는 통일부나 외교부에서 일할 생각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진정 사랑하며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8 평생 땀 흘려 모은 재산을 내놓으신 오정택 이사장님께 감사드린다. 최진석 원장님을 비롯한 교수님 한 분 한 분께도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앞으로 무엇이든지 더 좋아지면 좋겠다. 전쟁과 테러가 줄고, 분단과 갈등도 해소되고, 빈곤과 불평등, 차별과 환경파괴도 조금씩 사라지면 좋겠다. 내 삶도 좀 더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건명원에서 나는 삶에 대한 기준점이 변했다. 예전에는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삶을 보고 비탄에 빠졌고, 불평이 따랐다. 나는 왜 돈이 없을까,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등. 하지만 지금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삶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아무쪼록 앞으로 모두 함께 더 열심히, 훌륭하게 살아보고 싶다.
   
   
   나는 전형적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졸보였다
   김지수23세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10대를 연구하는 스타트업 ‘너랑’에서 근무. 10대들의 고민을 짧은 글과 그림으로 상담해주는 페이스북 페이지 ‘고쓰리랑’을 익명으로 운영.

   
   1 나는 한국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졸보(拙甫)다. 일탈이나 방황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늘 전형적인 나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은 나를 톱니바퀴 하나로 만드는 환경이다. 2015년을 ‘방황의 해’로 정하고 실컷 방황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건명원 모집공고를 접했다. 이곳이야말로 방황하기에 좋은 곳으로 보였다. 세계여행에 지원되는 500만원도 굉장히 탐났다. 현재 북유럽 오로라 투어를 앞두고 있다. 두근두근~.
   
   2 최진석 원장님 수업이다. 학교 수업에 휩쓸리고 일에 치여 종종 아무 생각 없는 작은 존재가 되곤 했는데, 원장님 수업을 들으면 ‘나’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3 양이 많긴 많다. 여러 번 되풀이해서 보는 것 외에는 딱히 답이 없었다.
   
   4 건명원은 (방황의 무대)다.
   지금까지 거친 모든 교육기관 중 건명원만큼 방황을 장려하는 곳은 단언컨대 없었다. 수업뿐 아니라 다른 원생과의 교류에서도 방황 에너지가 충만해진다. 이렇게 다양한 삶이 가능하다는 삶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자기만의 길을 걷는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아우라를 점점 갖게 되는 원생들을 보면서, 내가 하는 방황에 대한 두려움이 덜해졌다.
   
   5 방황을 결심하면서도 ‘답이 딱히 없으면 다시 세속적으로 좋은 길로 돌아와야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명원에서 모든 선택에 앞서서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6 2015년 하반기부터 ‘나를 생각하며 일기 쓰기’ ‘나를 표현하는 간단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7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은 오래전부터 변함없다. 하지만 ‘꿈을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1년 전에는 꿈처럼 살기 위한 제반조건들을 갖추는 데에 관심을 가졌고, 그 꿈을 추상적인 꿈으로만 여겼다. 지금은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고, 거침없이 그 꿈대로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8 초심이 흔들릴 때도 많았고, 약해진 스스로에 회의감이 들었던 순간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건명원 얘기만 늘어놓는다. 그만큼 건명원은 내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 돼 버렸다. 질문에 적힌 ‘건명원 졸업생’이라는 단어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건명원은 평생 졸업하지 못할 곳이라 생각한다. 건명원생으로서 얻은 깨달음과 배움을 상기하며 살 것이다.
   
   
▲ 주경철(앞줄 왼쪽서 두 번째)·정하웅(세 번째) 교수의 마지막 수업 날 1기 건명원 원생들과.

   반역은 지금부터!
   강신우29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정치·경제·철학(PPE) 졸업. 아프리카의 도시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공공기획사 창업 준비 중.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한국의 독창적 매력을 살린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 기획 및 생산이 목표.

   
   1 영국에서 10년간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 3년간 통역장교로 복무 후 바로 일을 시작했다. 바쁜 일정에 따라 살다보니 깊이 있는 고민과 공부가 아쉬웠다.
   
   2 교수님은 서로 다른 분야의 내용을 강의하셨지만, 공통의 메시지가 있었다. 우리 사회의 빛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역’이라 할 만큼 근본적이고 과감한 변화가 시급하다는 말씀을 역사와 철학, 과학과 예술의 맥락에서 반복해 들은 것은 큰 도전이 되었다. 수업도 물론 좋았지만, 그 도전의 메시지에 교수님들의 열정과 헌신이 뒷받침된 진정성이 담겨 있어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뒤풀이 자리에 밤늦게까지 함께하며 열띤 토론을 이어가시고, 바쁜 일정 중에도 주말을 쪼개 학생들과 산에 오르시고, 수업을 위해 지방에서 헐레벌떡 달려오시던 교수님들의 모습이 가장 큰 가르침이었다.
   
   3 잦은 해외 출장과 창업 단계의 사업에 공부까지 병행하려니 쉽지 않았다. 아프리카 출장길에 라틴어 단어장을 들고 다니며 외우고,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 시간을 쪼개 도덕경을 공부해야 했다.
   
   4 건명원은 (시대의 소망)이다.
   어딜 봐도 한숨소리만 가득한 우리 사회에서 감히 반역을 꿈꾸는 집단이 있다는 것은 큰 위로와 희망이다. 불만과 포기로 정의되는 우리 세대의 현실에 반역한다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용기와 사명감이 필요하다. 건명원이 그런 꿈을 품은 사람들의 터가 되었으면 한다.
   
   5 꿈과 계획들이 훨씬 더 과감해졌다. 변화를 꿈꾸면서도 ‘지금 현실에서 가능한 것, 할 수 있는 것을 우선 생각하며 스스로를 맞춰간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것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변화들에 대해 더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실행하게 되었다.
   
   6 창업 과정에서 매일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한다. ‘과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정말 잘될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매순간 나의 소명, 삶의 목적을 되새기는 것으로 힘을 얻는다. ‘이 시대의 흐름 가운데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고 있다.
   
   7 다소 막연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변화와 발전을 꿈꾸고 있었던 내게 ‘반역’의 도전은 채찍질과 같았다. 더 근본적이고 더 과감한 꿈을 갖게 되었다.
   
   8 건명원은 꼭 성공해야 하는 모험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현실이 절급하다. 한 단계 높은 사유, 현실을 넘어 더 멀리 보고 고민하는 시각이 그저 지적인 여유나 사치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소망임을 우리는 꼭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졸업생들 모두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졸업했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건명원의 진짜 반역은 지금부터다. 너무나 소중한 가르침을 거저 받은 만큼, 개인의 성숙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를 앞장서서 고민해야 한다는 빚진 마음으로 건명원 문을 나선다.
   
   
   새터민인 나를 나 자신으로 서게 해준 곳
   이영광27세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1 ‘학문은 해볼까 말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맹수 앞에서 가만히 돌을 주먹에 쥐는 동작처럼 필연적인 실천이다’라는 건명원의 문구에 이끌렸다. 또 깨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는 삶은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한다.
   
   2 최진석 원장님이 이런 말씀을 했다. ‘누구나 일시적으로 깨닫는다. 하지만 계속 그것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건명원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누구나 흥분되고 감동하고 열정을 불태울 수 있지만 졸업한 후에도,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 흥분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배철현 교수님이 강의에서 ‘죄인’의 뜻을 새롭게 조명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죄인은 남을 미워하고 악한 생각을 하고 도둑질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한 삶을 추구하는 자라고 하셨다. 나의 사명은 대한민국(인류)을 살려야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내 가족만 돌보는 데 급급했다. 그동안 나는 죄인이었다.
   
   3 정말로 졸업하고 싶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그래서 마지막 학기인 학교 성적은 생각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건명원 시험과 학교 수업이 겹쳤는데 과감하게 건명원에 올인했다. 건명원 시험은 벼락치기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짬짬이 꾸준히 공부했다.
   
   4 건명원은 (나를 나로 만들어준 곳)이다.
   새터민으로서 남한사회에서 살자면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고 남을 흉내 내며 살기에도 바쁜 삶이었다. 하지만 건명원을 만나고 나 자신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얻어 이제 온전히 독립적인 나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됐다.
   
   5 이제 제대로 된 나인 것 같다. ‘고독할 준비’가 되었다. 이 고독은 나를 나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기회다. 이제 고독을 통해 심연 속 나 자신과 대면해 ‘우주의 질서에 맞게 자신의 심장(생각·사명)을 배치하는 일’만 남았다.
   
   6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찾고 완수하기 위해 매일매일 각성하려고 노력 중이다. 예전에는 그냥 ‘계획’이었다면 지금은 ‘사명’으로 다가온다.
   
   7 꿈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꿈을 가진 사람이 달라졌다. 꿈을 이루려는 사람의 태도가 바뀌었고 이 세상과 맞짱 뜨려는 용기와 배짱을 얻었다. 앞으로 그 꿈을 흔들리지 않고 지키는 일만 남았다.
   
   8 건명원에서의 1년 동안 배운 중요한 단어들을 모아보았다. 자신, 독립, 관계, 무위, 고독, 각성, 예술, 심연, 사명이다. 이 중 하나만 선택한다면 바로 ‘자신’이다. 이 모든 단어가 다 ‘자신, 자기’를 위한 것이고 건명원의 모든 내용이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 관악산 산행 워크숍

   오만을 뉘우치고 유연함을 배우다
   송승근29세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2016년 2월 졸업 예정

   
   1 당시 나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프로그래머로 있었고, 사내 업무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자동화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업무가 진행되도록 하지만 동시에 비인간적인 측면도 있다. 자동화를 적극 옹호하면서도 비인간적 측면을 걱정하는 모순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이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2 라틴어 수업이다. 라틴어 공부의 이유를 몰라 여러 번 위기를 맞았다. 교수님과 면담도 하고 숙제를 불성실하게 해가기도 했다. 라틴어 시험을 포기하면서 건명원 과정 자체를 포기하려던 마지막 순간 생각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라틴어 수업 시간에 그리스 고전을 다루면서 배운 오만(Hubris)과 보복(Nemesis)이었다. 나는 나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고, 라틴어는 유익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포기하려 했는데, 이것이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만해지지 않기 위해 다시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결국 라틴어 수업은 스스로를 의심하는 훈련이었다.
   
   3 암기 위주의 시험이 자주 있었고, 수업마다 프로젝트, 에세이 등 각기 다른 과제가 있었다.
   
   4 건명원은 (커피)다.
   첫 잔은 쓴데 맛을 알면 자주 찾게 되고 각성 효과가 있다.
   
   5 건명원에서의 활동은 수업이라기보다 훈련이었다. 1년 과정 내내 여러 과목에 걸쳐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었고 이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이 있었다. 스스로를 의심하게 하면서 이론과 신념의 역동성을 깨닫고 예민하고 주체적인 해석 능력을 키워 나갔다. 이 훈련을 거치면서 연역적·합리적인 사고에 대한 믿음이 약화됐다. 이는 나를 불안하게 했지만 동시에 생각을 유연하게 했다.
   
   6 하루 종일 프로그래밍을 했다. 머릿속에 어렴풋이 있고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프로그래밍 결과물은 내 자신을 반영한다.
   
   7 꿈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명확한 꿈은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꿈을 대하는 자세다. 삶은 불확실성이 크게 개입하기 때문에 내가 뜻하는 바를 기대보다 훨씬 더 크게 이룰 수도, 전혀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1년 전에는 이 불확실성 때문에 슬펐지만 지금은 아니다.
   
   8 오정택 이사장님, 교수님들, 더없이 좋았던 동기들, 성의껏 돌봐주신 재단 직원분들께 감사를 전한다.
   
   
   나를 알았고, 받아들였고, 당당해졌다
   하민정24세
   서강대학교 컴퓨터공학과

   
   1 건명원 홈페이지를 보고나서다. ‘인문, 과학, 예술’을 경계 없이 공부해 보는 커리큘럼이 신선했고, 건명원 교수님들의 모토가 와 닿았다. 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내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도 기회도 없었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자신만의 학문을 쌓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 4시간 동안의 수업이 매번 짧게 느껴질 정도로 모든 수업이 흥미로웠다. 각 수업의 학문적 소재는 달라도 메시지는 하나였다. ‘자신을 먼저 알고, 세상을 알고, 이 세상에 큰 뜻을 품는 영웅이 되세요.’ 최진석 원장님 수업이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첫 시도를 하게 해 주어 인상 깊었고, 김개천 교수님 수업도 좋았다. 고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까지의 인간이 만든 건축물과 그 환경들을 보면서 당시의 미학적 시선이 어떠했는지, 인간이 만든 건축물이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처음 느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 그 배경, 만들기까지의 과정들을 보며 처음으로 신화가 아닌 곳에서 인간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3 건명원에 집중하기 위해 휴학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배우는 도덕경과 라틴어 공부는 빡빡했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지만 도덕경을 배우는 것은 의외로 힘들지 않았다. 내용을 숙지하며 공부했기 때문이다. 라틴어를 배우며 신기했다. 키케로의 원문을 읽고 로마의 연설문들을 외우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4 건명원은 (시작)이다.
   처음엔 마냥 행복했다.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구나, 유명한 교수님들께 직접 수업을 듣고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구나’라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건명원에 다니는 것이 마음의 짐으로 와 닿았다. 이렇게 많은 것을 받았는데 사람들과 어떻게 나누지? 하는. 이제는 ‘시작할 일만 남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5 실천적인 사람이 되었다. 건명원 다니기 전에는 ‘왜 전문가들처럼 한 분야에만 몰입하지 못할까, 왜 여러 분야를 다 해보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많았다. 내 관심 분야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솔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되고 싶은 나와 실제 내가 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나를 가두는 틀이 있었기 때문에 내 자신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이것을 깨닫자 할 게 정말 많아졌다.
   
   6 내 자신을 들여다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겉치레를 하나씩 빼야 하고, 실제의 나와 바라는 나는 달랐기 때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은 내가 이런 생각을 가졌구나, 이런 행동을 했을 때 이런 마음이 들었구나’를 하나씩 알아가다 보니 그것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7 ‘어떤 전공을 공부해서 어떤 직업을 가질까?’ 1년 전에는 이에 대한 답이 내 꿈이었고, 그 답을 알기 위해 혈안이었다. 건명원을 다니면서는 ‘어떻게 한 사람에게라도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꿈이 바뀌었다. 먼 훗날 내가 선택한 일이 한 사람에게라도 귀감이 되는 ‘작은 영웅’이 되는 것이 꿈이다.
   
   8 건명원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다른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하라는 공부만 하면서 별 고민 없이 지냈다. 대학은 또 다른 곳이었다.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히 있어야 했다. 이것을 찾지 못한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많은 것에 당당하지 못했고 예민했다. 건명원에 와서 내 자신을 알아가고 받아들이면서 당당한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다. 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정해져 있다고 여겨 자신을 낮추었다면, 이제는 내 자신을 높이 산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낼 것이라고.
   
   
▲ (좌) 건명원 수업 중인 배철현 교수. (우) 김대식(왼쪽)·최진석 교수.

   근시안적 시각에서 벗어나게 해준 곳
   최지범26세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석박사통합과정, 이론생물학 연구

   
   1 지금이 아니면 인문학을 배울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과학·예술의 융합이라는 목표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2 정하웅 교수님의 수업이다. 물리학적 지식이 인간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3 시간 날 때마다 독서실에 가서 도덕경과 라틴어를 공부했다. 붓펜을 가지고 천천히 한자를 써보는 것이 한자와 도덕경 학습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4 건명원은 (앞이자 뒤)다.
   근시안적 시각에서 벗어나 좀 더 멀리 앞을 내다볼 수 있게 해주었고, 라틴어와 도덕경을 통해 고대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했는지 알 수 있었다.
   
   5 나 자신만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행동하도록 바뀐 것 같다.
   
   6 무답
   
   7 꿈만 놓고 본다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 꿈의 성격이 다소 변화한 것 같다.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은 변화하지 않았지만 다만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8 교수님들과 이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 연구활동을 하면서 건명원에서의 정신을 늘 간직하겠다.
   
   
   세상에 대해, 나에 대해 질문이 생기다
   정현택21세
   연세대학교 의예과

   
   1 부모님이 조선일보를 보고 건명원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건명원 공부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대학 입시를 막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이 시점에 인문·과학·예술 분야의 다양한 학문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2 최진석 원장님 수업이다. 원장님은 삶의 문제를 다루었다. 대학교 입학 전 내 삶을 지배했던 것은 맹목적인 성실성이었기 때문에 대학생이 되어 목표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수많은 선택과 가능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런데 원장님 수업을 듣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실질적인 목표보다 그것을 지배하는 철학임을 깨달았다.
   
   3 졸업 시험 직전에 했던 공부는 정말 잊지 못한다. 공부량이 너무 많아 시험 3일 전부터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다. 스스로 정해 놓은 한계치를 넘어서 공부했다.
   
   4 건명원은 (씨앗)이다.
   건명원은 내게 ‘주체성의 씨앗’을 심어 스무 살의 수동적인 방황을 능동적인 방황으로 바꾸어주었고, ‘교양의 씨앗’을 심어 견문을 넓히는 토대가 됐다.
   
   5 건명원 수업을 듣기 전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대학 입시가 전부인 세계에서는 성실성이 최고의 미덕이었고, 그 기준 아래 나는 우수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건명원을 통해 경험한 세상은 굉장히 넓었고, 방대한 학문의 세계에서 나는 너무나 무지했다. 배경지식이 부족해 교수님들의 수업을 온전히 흡수할 수 없었다. 얕은 이해만으로도 큰 감명을 받았는데, 제대로 다 이해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교수님께 질문을 하는 학우들을 보면서 아무것도 몰라 질문조차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런데 하다 보니 됐다. 무지를 인정하자 더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점점 질문이 생겼다. 건명원 후 나는 배우려고 덤비는 무식한 사람이 되었다.
   
   6 민망할 정도로 유치한 말이지만, 내 자신과 조금씩 친해지고 있다. 자신과의 약속을 정할 때 먼저 글로써 내 자신과 소통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와는 다르게, 글로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내 자신이 내게 말하기 시작한다.
   
   7 대학 입시가 끝나자 목표가 없었다. 커서 어떤 일을 할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앞으로의 세상은 점점 더 빨리 변할 텐데, 의사라는 직업이 남아있긴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꿈이 있다. ‘사회에 자본을 투자하는 자본가’가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8 건명원에서 심어준 씨앗들이 더욱 깊게 뿌리내리게 하고, 스스로 새로운 씨앗을 심고자 한다. 도와주신 교수님들과 늘 훌륭한 본보기가 되는 학우분들께 감사드린다. 나도 5년, 10년 뒤에는 학우들처럼, 20~30년 뒤에는 교수님들처럼 세련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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