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1만여명의 인파가 모인 대구 서문시장에서 유세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photo 연합
지난 4월 26일 1만여명의 인파가 모인 대구 서문시장에서 유세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photo 연합

홍준표 후보는 두 번 울었다. 대선 출마 후 공개된 자리에서 눈물을 보인 게 두 번이라는 얘기다. 경남지사 퇴임식장과 대구 서문시장 유세에서였다. 지난 4월 10일 지사 퇴임 연설을 마치며 “아버지 어머니 산소가 가까이 있어 좋았다”는 말과 함께 울먹였다. 지난 4월 26일 대구에서는 “제 아버지는 천막 하나 없이 밤바닷가에 홀로 앉아 야간 경비일을 하다 돌아가셨다”며 눈가를 훔쳤다.

이날 서문시장에는 1만여명의 인파가 모였다. 자유한국당 대구선대위 측은 “협소한 서문시장이 아닌 동성로라면 5만명 이상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결집 추세는 홍 후보의 4월 22일 서울역 유세장에서부터 목격됐다. 유세장에는 유난히 혼자 온 장년층이 많았다. 서적 판매대도 군데군데 보였다. ‘벼랑 끝에 선 한국 민주주의’ 등의 책이었다. ‘세탁기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드라마 ‘모래시계’ 주제가가 장엄히 흐르고 홍 후보가 세탁기 버튼을 눌렀다. ‘태극기 깃발들 잠시 내려달라’는 아우성이 뒤편에서 들렸다. 탄핵 반대 집회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할 때의 풍경이 떠올랐다. 한 50대 여성은 선거운동원을 붙들고 열심히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다. 들어 보니 “홍 후보가 태극기집회 참석자들을 껴안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번에 잘하면 대통령 될 것 같다”는 얘기가 유세장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체제 전쟁’ 프레임

홍준표 캠프의 막판 승부수는 두 가지다. 보수대결집과 영·청(영남·충청)연합. 보수대결집은 곧 TK(대구경북) 결집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투표한 사람들 중 80%만 나를 찍어도 내가 이긴다”고 한 홍 후보의 발언도 TK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TK에서 여론조사를 오래해온 조재목 정치심리학 박사는 “TK가 회귀하고 있다”고 말했다. “탄핵 사태에 당황해 흩어졌던 보수가 다시 원래의 지지 성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별다른 이변이 없으면 홍 후보가 TK에서 50% 이상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TK의 유권자 수는 약 426만명. 한국 전체 유권자 수 4232만명의 약 10%다.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력은 그 이상이다. 역대 대통령 중 TK와 관련이 없는 사람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TK를 생물학적 고향이나 정치적 고향으로 뒀다. 조 박사는 TK 결집을 얘기하며 ‘연동현상’도 언급했다. “TK에서 홍준표 지지율이 올라가면 수도권에서도 같이 상승한다. 연동현상이다. 고향의 민심 변화에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는 거다. 수도권이 원래 고향인 사람은 수도권 유권자 중 30%도 안 된다. 호남도 마찬가지다. 호남에서 안철수 지지율이 올라가면 수도권에서도 오른다.”

홍 후보의 보수결집 전략은 ‘체제 전쟁’ 선포다. 이번 대선을 대한민국 체제를 선택하는 전쟁으로 선언했다. ‘홍찍자’ 구호도 같은 맥락이다. ‘홍준표를 찍으면 자유대한민국 지킵니다’의 준말이다. 홍준표 후보의 현수막은 4월 22일을 전후해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기업에 자유를, 서민에 기회를’이었다. 시장바닥 큰 길 옆에 걸려 있는 이 현수막에 고개를 갸우뚱한 사람이 많다. 하지만 4월 22일을 전후해 ‘홍준표를 찍으면 자유대한민국 지킵니다’로 바뀌었다. 홍준표 후보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수호자임을 강조한 것이다. 홍 후보는 TV토론에서 “친북좌파 후보를 찍으면 안 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홍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위세에 눌려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홍 후보는 거침없이 민주노총과 전교조와 싸우겠다고 공표해버린 것이다. 여기에 위축되어 있던 보수우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정규재 한국경제 고문은 일찌감치 ‘홍찍자’를 외친 경우다. 4월 3일자 정규재TV 뉴스에서 ‘홍준표의 9가지 덕성’이라는 제목으로 현재 대한민국에 필요한 지도자는 홍준표임을 분명히 했다.

한국에서 보수와 소위 진보를 구분하는 기준은 명확지 않다. 미국에서 보수와 진보가 총기소유 합법, 낙태, 작은 정부 큰 정부 등을 두고 나뉘는 것과 대비된다.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은 결국 ‘북한 문제’다. 홍 후보가 TV토론에서 지속적으로 일심회 사건, 대북 송금, UN 인권결의안 표결 등을 언급한 것도 그 때문이다. 홍 후보는 3차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일심회 사건을 물은 바 있다.

일심회 사건은 2006년 10월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이 적발한 간첩 사건이다. 재미동포 사업가 장민호와 386운동권 출신인 최기영 민주노동당 전 사무부총장 등 5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확정돼 3~7년형을 받았다. 이들은 조선노동당에 입당해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 충성 서약을 했다. 주한미군 재배치 현황 등 기밀이 포함되어 있는 비밀문건을 북한에 보냈다. 당시 김승규 국정원장은 국정원에서 사건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3일 후 사의를 표명했다.

홍 후보가 근거로 언급한 문제의 위키리크스 문건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2006년 11월 9일 미 국무부에 타전한 대외비 외교전문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전문에 등장한다. 그는 2006년 당시 한나라당 내의 유력 ‘잠룡’의 한 사람이었다. 손학규 전 지사는 그해 6월 경기도지사 자리를 박차고 나와 ‘100일간의 민심 대장정’에 나섰다. 버시바우 대사는 그해 11월 3일 손 전 지사와 점심을 먹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오간 대화가 전문에 담겨 있다. 버시바우 대사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학생운동가 5명 등이 재미동포와 연관돼 스파이 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된 것은 중요한 이슈라고 말했다”고 썼다. “손 전 지사는 체포 수감된 이들이 북한을 위한 간첩 활동을 했다는 일부 주장과 달리 좌파 쪽 일부 인사는 단순히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건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고도 기술했다. 전문에 따르면 손 전 지사는 “김승규 전 국정원장이 이 간첩사건을 독자적으로 수사했고, 이 때문에 국정원장 자리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한다”고 버시바우 대사에게 말했다.

2007년 UN 인권결의안 표결과 관련한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0월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낸 자서전에서 이 문제가 언급되며 논란이 시작됐다. 송민순 전 장관은 “(작년 10월) 책이 나오자마자 문 후보 캠프에서 전화가 왔다”며 “(문 후보 캠프 측에서 어떻게 대응했으면 좋겠냐고 묻기에) ‘10년 전 그때는 다들 충정으로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표결 전 북한의 반응을) 알아보고 그럴 일은 아니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했다. 송 전 장관에게 대응 방안을 상의하던 문재인 캠프의 태도는 막상 대선 국면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자 완전히 바뀌었다. 현재는 송민순 전 장관에게 책임을 묻는 협박성 문자까지 보내고 있다. 송민순 전 장관은 지난 4월 25일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캠프에서 ‘용서하지 않겠다’ ‘몇 배로 갚아주겠다’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내오더라”고 말했다. 이 문제가 불거진 후 송민순 전 장관은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직에서도 물러났다. 문재인 후보는 송 전 장관을 선거법 위반,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이외에도 홍 후보는 연일 “내가 대통령이 되면 김정은의 무릎을 꿇리겠다” “연평도 사태 같은 북의 도발이 재발하면 바로 응징하겠다”며 대북 강경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남풍이 태풍되는 중”

TK 지지율을 주춧돌로 한 보수결집이 첫 번째 승부수라면 두 번째 승부수는 충청이다. 영남과 충청의 연대, 이른바 영·청연합이다. 선거의 뒷심은 결국 조직에서 갈린다. 자유한국당의 강점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의 연원은 위로는 올라간다. 이 과정에서 명부에 누적된 명부상 당원이 약 200만명이라고 한다. 실제 당원 숫자라고 보긴 힘들지만 당 조직의 ‘잠재력’이 높다는 증거는 될 수 있다.

국민의당의 경우 충청권에서는 조직이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단적인 예로, 등록 당원 1000명을 채우지 못해 세종시당의 등록이 취소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영남권의 바람을 충청권으로 연결해 그걸 타고 강원권까지 바람을 일으킨다는 게 홍 캠프의 전략이다. ‘동남풍을 태풍으로 만든다’는 얘기다. 이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홍 캠프의 주장이다. 여기에는 3~4차 TV토론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많다. 홍 후보가 속 시원하게 보수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여의도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로도 나타난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주요 언론에 보도되는 수치와는 차이가 있다. 선거법 때문에 수치를 직접 인용할 수는 없지만 4월 27일 조사결과부터 이전 일주일치를 비교하면 지지율의 상승 국면이 뚜렷하다. 자유한국당 캠프가 전국의 당사를 담보로 잡혀 선거자금을 확보하며 총력전에 나선 자신감도 그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측은 선거자금으로 500여억원을 확보했다. 선거보조금 120억원에, 시·도 당사를 담보로 250억원을 대출받았다. 여기에 당의 재원 130여억원까지 더한 금액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건 셈이다. 선거보전금을 100% 받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15%를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을 수 있다. 선대위에서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염동열 의원은 “남은 기간 전국에서 보수대행진을 한다”고 말했다. 전국의 조직을 총 가동해 보수층을 일으켜 세운다는 계획이다. 5월 9일 홍준표는 기적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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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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