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숙제를 끝낼 때쯤엔 바트가 한국인이 돼 있으면 좋겠어.”

호머 심슨이 말한다. 그의 앞에는 아들 바트의 숙제 더미가 쌓여 있다. 독후감 쓰기, 수학·국어 공부, 과학실습, 자서전 쓰기, 칠면조 요리 실습.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한 대목이다. 각종 과제에 치여 사는 한국 학생들을 풍자했다.

청소년 소논문 작성(R&E)이나 체험학습이 숙제 더미에 추가되면 더 이상 이 대목은 풍자가 아니다. 다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한국 아이들은 ‘숙제 기계’로 국제적인 유명세를 치를까.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 윤곽이 대략 드러났다. 이 중 입시와 직접 연관된 안은 크게 세 가지다. 1. 수능·내신 절대평가 전환 2. 대입 수시전형 개선 3. 외고·자사고 일반고 전환.

절대평가는 등수가 아니라 성취 수준에 따라 등급을 받는 방식이다. 성취평가제로도 불린다. 예를 들어 한 반 40명 전원이 일정 수준의 성적을 올리면 모두 A점수를 받을 수 있다. 수능 절대평가는 일부 과목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올해 11월 실시하는 수능의 경우 한국사와 영어가 절대평가다. 정해진 점수를 따면 1~9급이 부여된다. 이걸 전 과목으로 늘리겠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수능 절대평가를 당장 2021년부터 실행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중학교 3학년생부터 적용받는다. 내신 절대평가는 전 과목을 A~E 5개 등급으로 매기는 방식이다. 현재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성취수준점수와 상대평가인 석차 9등급제 점수가 함께 표기되고 있다.

교육부는 공식 개정안을 이르면 7월에 발표할 방침이다. 교육계는 절대평가를 이미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근거는 문재인 후보 공약집과 교육부 장관으로 유력시되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의 발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집 최종본에는 모두 13가지의 교육 공약이 쓰여 있다. 이 중 대학 입시와 직접 연관된 공약은 8번이다. ‘대입제도를 단순화하고 공정성을 높이겠습니다’란 제목으로 입시전형 단순화, 수능 절대평가화, 대학 입학전형 수 축소 등을 명시했다.

교육 공약 3번으론 ‘사교육비 경감’을 들었다. 문 대통령은 선거 전 마지막 TV토론에서 사교육비 문제를 따로 언급했다. “대입전형을 단순하게 만들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요지였다. 사교육비 경감은 새 정부의 경제정책인 ‘제이노믹스’의 성공과도 직결돼 있다. 제이노믹스의 핵심인 ‘소득 주도 성장’의 전제조건이 바로 가처분소득 증가다.

교육계에서는 현 정권의 교육 공약을 ‘김상곤표 공약’으로 부른다. 김 전 교육감은 이번 정부 초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로 거론된다. 그는 대선 이후 5월 말까지 각종 토론회와 언론 인터뷰에서 대입과 관련해 몇 가지 발언을 했다. 종합해 보면 이렇다. ‘수능·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꿔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중을 늘리겠다. 거점 국립대와 공영형 사립대를 육성해 대학 서열을 해체하겠다.’

김 전 교육감의 청사진은 왠지 낯설지 않다. 희미한 기억이 떠오른다. 13년 전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 목표와 판박이다. ‘교육의 평등주의 확립’ ‘학생부 비중 강화를 통한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문제 해결’. 노무현 정부는 2004년 10월 ‘2008년 대입개선안’을 발표했다. 수능과 내신을 상대평가 등급제로 바꾸는 게 골자였다. 수능을 등급제로 하면 자연히 대학들이 내신을 중시할 거라는 이유로 수능점수 표기방식을 원점수표기제에서 상대평가 등급제로 바꿨다. 내신을 상대평가 등급제로 바꾼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의 교훈 때문이었다.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꿨더니 각 고등학교는 경쟁적으로 시험문제를 쉽게 냈다. ‘내신 부풀리기’다. 대학들은 내신을 믿지 않게 됐다. 뒤를 이은 노무현 정부가 내신을 상대평가 등급제로 바꾼 이유다.

당시 대입제도를 두고 노무현 정부와 대학은 소리 없는 전쟁을 벌였다. 학생을 볼모로 둔 전쟁에서 누가 이겼을까. 정부가 ‘수능 등급화’와 ‘3불 정책(본고사·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 금지) 고수’로 나오자, 대학은 ‘논술 전형’ 강화로 맞섰다. 결과는 처참했다. 학생들은 수능·내신·논술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했다. 일명 ‘죽음의 트라이앵글’. 결과는 사교육 시장의 급팽창이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개인 입시학원의 숫자는 2만938개였다. 정권 말기인 2007년에는 4만2968개로 늘었다. 이들이 올린 총매출은 2003년 2조2000억원에서 2007년 4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국세청에 정식 신고한 업체만 집계했는데도 이 정도다.

공교육은 정상화됐을까. 지난 2월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연구팀은 한국교육방송(EBS) 강의와 수능을 연계한 정책의 영향을 분석했다. 고3 수업시간은 EBS 교재 암기 교실이 되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EBS 강의-수능 연계는 노무현 정부 시절 시작됐다. 이른바 ‘진보교육’ 정책들은 의도는 아름다웠지만, 하나같이 목표와 정반대의 결말로 이어진 셈이다.

사교육비 문제의 진짜 원인은 무엇이고 얼마나 심각할까. 한국은 전 세계 주요 국가 중 유일하게 사교육비 규모를 정부가 공식 통계로 집계하는 나라다. 지난 3월 발표한 통계를 보면 학생 1인당 사교육비로 월 25만6000원을 쓴다고 발표했다.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7년 이래 사상 최대다. 여기엔 과외비와 학원비, 인터넷 강의 수강료가 들어간다. 많은 학부모와 교육계 종사자들은 정부 통계치를 그다지 의미 있게 여기지 않는다. 현실은 그보다 더하다는 얘기다. 정작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체험활동비, 어학연수비 등은 통계에 넣지 않는 데다 지하 사교육시장의 규모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2일부터 31일까지 EBS는 ‘교육대기획 대학 입시의 진실’ 6부작을 방영했다. 대입을 둘러싼 학교 안팎의 풍경들을 담았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를 위한 약이 유난히 서울 강남 3구에서, 그것도 수능 직전에 가장 많이 처방된다는 사실, 서울대 입학사정관 출신이 입시컨설팅업체의 ‘서울대팀 팀장’으로 일하는 현실 등 ‘불편한 진실’을 폭로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시청 소감이 올라왔다. ‘현실을 그대로 담아줘 시원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 프로그램은 2년간의 취재 끝에 만들어졌다. 지난 5월 31일 서울 도곡동 EBS 사옥에서 만난 김한중 PD는 “사교육 실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고 말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특허’에 관한 컨설팅이다. 한 입시컨설팅 회사는 아이 이름으로 특허를 내주고, 여기에 관해 책을 내주고 언론에 기사화되게 해준다고 했다. 3480만원만 내면 가능하단다.”

입시 업체가 고등학생에게 특허까지 팔려고 하는 이유는 이른바 ‘학종’ 때문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은 내신과 비교과 활동을 함께 고려하는 전형이다. 내신이야 ‘교과서 중심으로’라는 출제범위가 정해져 있지만 창의적 체험활동 등 비교과 활동은 그렇지 않다. 애초부터 경쟁을 붙이면 안 되는 게 경쟁 요소가 되니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이 등장한다. 특허는 약과다. 고등학생이 벤처기업을 차려 대학에 합격한 예도 있다. R&E(청소년 소논문) 활동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고등학생 수준에서 과연 가능할까 싶은 논문들이 필수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게 정말 중요한 요소인지 아닌지 대학은 똑 부러진 정보를 주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입시컨설팅업체로 향한다.

주요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은 언론 노출을 꺼린다. 서울대 입학사정관 중에는 아예 명함을 만들지 않는 이도 있다. 윤리의식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너무 크다. 합격 기준을 발표하는 자리가 모처럼 마련돼도 모호하게 답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1월 부산에서 공교육 대입정보 포럼이 열렸다. 경희대, 고려대, 서울여대, 숙명여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8개 대학 입학사정관과 고등학교 진학교사들이 대화를 나눴다. 여기에서 조희권 경희대 입학사정관은 “톡톡 튀는 지원자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학생부가 ‘톡톡 튀어’ 보이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한국외국어대 이석록 입학사정관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두고 어느 활동이 중요하고 안 중요한지 얘기하긴 어렵다”고 답했다. 원론적인 답변밖에 못하는 건 이해되지만 이런 식이라면 그야말로 ‘깜깜이 입시’다. 당시 포럼에서 박가나 숙명여대 교수전임사정관은 전공 적합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평가 요소의 비중을 정해놓진 않고 학생부를 보며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했다. 박 사정관은 청소년 소논문을 설명하며 한 지원생의 논문을 바람직한 예로 들었다. “행정학과를 지원한 일반계고 학생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노동조합 연구를 해왔더라. 인상적이었다.”

“절대평가 전환 자체는 옳다”

이런 상황에서 김상곤표 정책이든 문재인표 정책이든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새 정부의 대입 정책이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이란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많은 교육계 종사자들은 “절대평가로 간다는 큰 방향 전환은 바람직하지만 현 상황에서 사교육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답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절대평가 전환 자체는 옳다”고 설명했다. “상대평가는 나라 망치는 평가방식이다. 상대평가 1등급이 그 학생이 충분한 실력을 갖췄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냥 반 애들 중에 제일 낫다는 뜻이다. 내신 상대평가는 특히 심각하다. 바로 옆자리 친구가 경쟁 상대인데 학교 생활이 제대로 되겠나. 그런데 수능과 내신을 둘 다 절대평가로 돌려버리고 논술도 금지하면 대학은 비교과로 변별한다고 나올 거다. 심층면접 같은 변형된 본고사가 나온다는 얘기다. 풍선효과다. 사교육비는 안 줄어든다.”

박대권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정부가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면서 사교육비가 늘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성적뿐 아니라 비교과 활동까지 두루 보면서 학생의 능력을 평가해 선발하는 게 이상적으로는 맞을 수 있다. 그런데 공교육 수준이 아직 그렇게 안 올라왔는데 입시부터 바꿔버리면 결국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다. 교사들이 한 번도 안 해본 방향으로 갑자기 가고 있지 않나. 현실적으로 어떻게 교사들이 모든 학생에게 40쪽짜리 학생부를 충실하게 써줄 수 있겠나.”

학생부종합전형의 설계자로 불리는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신중한 입장이다. “대학입시를 어떻게 바꿔도 사교육비를 지출할 사람은 여전히 지출한다. 절대평가라 해도 석차나 백분율을 함께 표기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든지 하면 수능과 내신의 변별력이 그렇게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사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단언할 순 없다.”

석차를 함께 쓴다고 해도 결국 칼자루는 대학이 쥐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대입제도 개선 당시 수우미양가 같은 등급제 평어와 석차를 함께 쓰게 했지만 대학은 거의 평어만 활용하면서 논술전형 카드를 썼다. 특목고·자사고 출신을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혐의를 받았다.

새 정부의 교육개혁안에 학부모와 고교 교사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그때의 기억 때문이다. 수능과 내신의 변별력이 떨어지면 대학은 변형된 본고사를 개발하거나 학종 비중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학종, 그리고 학종의 기준이 되는 학생부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이 높다는 점이다.

성균관대는 지난 3월 한 학생의 합격을 취소했다. 학종으로 합격한 학생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경기도 분당의 한 고등학교 출신인 이 학생의 학생부를 같은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어머니가 수정한 것이다. 이 교사는 자신의 아이의 학생부를 3년 동안 여러 번 고쳤다. 자칫 묻힐 뻔한 이 사건은 해당 학교의 다른 교사가 정규 채용 문제로 학교와 법정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덤으로’ 드러났다. 김한중 PD는 ‘대학입시의 진실’ 취재를 하며 ‘학교 차원에서 특정 학생들에게 좋은 학생부를 밀어준다’는 제보를 여러 건 받았다고 한다. 교내 대회 수상 등 비교과 활동뿐 아니라 심한 경우엔 교과 성적까지 일부 성적 우수 학생에게 유리하도록 한다는 얘기다. 방송에 소개된 광주의 모 여고 교장은 “이렇게 몰아주지 않으면 지방 일반고에서 어떻게 서울대를 보내나?”라고 오히려 반문했다고 한다. “광주에서는 그 교장을 ‘서울대 여러 명 보내준 유능한 교장’으로 여기더라.”

이렇다 보니 학생부를 작성하는 교사들 자체도 학종에 신뢰를 안 보낸다. EBS가 전국의 교사·학생·학부모 3만8090명에게 물은 결과, 교사들은 가장 공정하지 못한 전형으로 학종을 뽑았다. 심지어 예체능계 학생들을 뽑는 특기자 선발 전형보다도 학종이 불공정하다고 여긴다는 얘기다.

교육학 전문가들은 교육을 보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중·고등학교가 대학입시를 위한 학원이 아니라 아이들이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진정한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얼핏 뜬구름 잡는 얘기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외국과 비교하면 차이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당장 학생부의 기록 양식부터 다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한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호주의 학생부를 비교한 연구를 보면 극명히 드러난다.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는 학생부를 학교와 학부모가 학생의 현재 상황과 재능, 진로를 논의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한다. 주로 진로 결정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학생부에 수상 경력, 자격증, 창의적 체험활동, 독서활동 문항 자체가 없다. 미국 일부 주에서 필독서를 읽었는지 묻는 경우는 있다. 학생의 태도에 대한 교사의 의견 진술은 거의 배제하고, 사실 위주로 작성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학생부를 바탕으로 아이가 대학 진학에 적합한지 여부를 대학교가 판단해준다. 독일은 대입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인 김나지움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대학이냐 취업이냐가 결정되는 경우다. 반면 한국의 학생부는 철저히 입시를 위한 자료다. 학생의 성격과 재능에 대한 교사의 의견이 많이 들어간다는 특징도 있다.

박부권 동국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이제는 교육을 기회 평등의 장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태 정부는 사교육, 사교육 하면서 없애겠다고 온갖 수단을 썼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단 한 번도 사교육비가 줄어든 적이 없다. 부모들이 교육을 신분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걸 나무랄 순 없다. 그런데 국가 차원에선 다른 얘기다. 아이들을 각자 능력에 맞게 제대로 교육을 못 시켜, 그 아이들이 사회에서 자리를 늦게 잡거나 못 잡으면 나라가 복지 예산으로 먹여살려야 한다. 독일은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아이를 관찰한다. 공부 습관이 어떤가 관찰한다. 손으로 먹고살 아이, 머리로 먹고살 아이를 구분한다. 한국의 학생 수는 1980년대에 비해 반으로 줄었다. 이제는 개인별 접근이 가능하단 얘기다. 나중에 들어갈 복지 예산을 미리 교육에 투자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대학 선발을 두고 학종의 공정성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두고 박 교수는 “교육 문제는 바다와 같은데 파도를 문제 삼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단기적인 공정성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으로 아이들의 재능을 섬세하게 평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배상훈 교수는 “사교육 정책과 교육정책을 분리하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뿐 아니라 교육 정책 하는 사람들이 사교육 정책을 교육 정책이라고 여긴다. 사교육 문제는 노동, 문화, 보건 등등 여러 분야와 얽혀 있는 문제다. 지금은 일류대학 진학이 인생의 성공과 동일시된다. 사교육은 학부모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돈을 투자해서 우리 아이가 평생 잘 산다면 당연히 하지 않겠나.”

교육 종사자들은 정부의 교육정책 결정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마치 정례 행사처럼 전 정권의 교육정책을 뜯어고치는 방식이 교육을 망친다는 얘기다. 1983년 미국의 교육 시스템 개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은 기업 도산, 치솟는 실업률 등을 겪으며 불황으로 빠져들었다.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일본이 미국의 마천루들을 사들인 것도 이때다. 미국 사회는 위기의 탈출구로 교육을 택했다. 이념에 관계없이 교육전문가들이 모여 ‘교육 수월성을 위한 국가위원회’를 만들었다. 교육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필요하면 청문회도 열었다. 18개월 후 보고서가 나왔다. 제목은 ‘위기의 국가(A nation at Risk)’. 미국 공교육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역사적인 보고서다. 보고서의 수신인은 대통령과 미국 국민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 결정 방식은 어떨까. 아직 임명되지도 않은 유력한 장관 후보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 토론회에서 언급한 단어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양새다. ‘자사고 폐지할 것’이라고 던져놓으니 입시 컨설팅업체들만 신났다. 저마다 백 가지 해설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사교육비와 끝이 안 날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아이들은 각자도생하며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올해 처음으로 대학진학률이 70% 아래로 떨어져 69.8%다. 2000년(68%) 이후 16년 만이다. 대학 졸업장이 좋은 일자리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이들의 고민에 어떻게 화답할지 다시 공은 새 정부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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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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