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TV 화면 속에서 한 여배우가 푸른 산 아래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 그림 같은 집 발코니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비혼(非婚)을 자처하는 여배우가 사는 1200㎡(370평) 전원주택이다. 화면에는 ‘채광 좋고 천장도 높은 시원한 거실’ ‘큰~~ 주방’ 같은 자막이 지나갔다. 또 다른 ‘비혼’ 여배우는 “7가지 넘는 운동을 하고 지낸다”며 내내 체육관을 옮겨 다니며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국보급 몸매 종결자’라는 자막이 지나가며 하나같이 늘씬한 20~30대 여성들이 몸에 들러붙는 운동복을 입고 기념사진 촬영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들이 받고 있는 운동의 수강료는 4주 20만원, 3개월 54만원이다.

38살 서지은씨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한때 유행하던 육아 예능 프로그램 보면서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기사를 많이 읽었는데, 지금 심정이 딱 그렇네요. 똑같이 비혼이라고 하는 저와 그들이 얼마나 다른지 실감하게 되기만 해요.”

요즘은 미혼(未婚)이라는 말 대신 비혼이라는 말을 쓴다. ‘미혼’이 ‘결혼하지 못했다’는 뉘앙스가 강한 단어라면 비혼은 ‘결혼하지 않음’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주체적인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서씨도 외출해서 사람들을 만날 때는 ‘비혼’이라고 말하곤 한다. “아직도 ‘너 언제 결혼하니’라며 묻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러면 당당한 표정으로 ‘나는 비혼주의자야’라고 답하곤 해요.”

그러나 집에 들어오면 답답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서씨는 25살 때 한 중형급 병원에 사무직으로 취업한 이래 병원 두 곳을 옮겨 다니며 사회생활을 계속해왔다. “34살쯤에 자궁에 근종이 발견돼서 수술하는 김에 회사도 그만뒀죠. 그때 연봉을 한 3000만원 정도 받았던 것 같아요. 퇴직금 1500만원 정도 나온 걸로 수술비 내고, 부모님과 유럽 여행 다녀오고, 영어학원도 다니며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했었죠.”

하지만 쉽지 않았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30대 미혼여성이 구할 수 있는 직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서씨는 이전보다 조금 큰 규모의 병원 사무직으로 취직했다. 연봉은 그대로였다. 한때는 자유롭게 살려고 수원에 사는 부모님과 떨어져 직장과 가까운 서울 금천구에 원룸을 구해 살았지만, 결국 다시 수원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원룸 월세 60만원을 아끼고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살피기 위해서다. 대신 매일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전쟁을 치른다.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해져요. 어찌어찌 모은 돈은 1억원 정도 되지만, 부모님 노후와 제 노후를 생각하면 넉넉한 돈은 아니에요. 부모님 노후는 제가 어떻게 챙긴다고 해도 저는 혼자 어떻게 늙어갈지 상상이 안 되네요.”

그렇다고 해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특별히 하지 않는다. “38살까지 인연을 못 만났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나타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아요.” 서씨에게 결혼하지 않아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건 30대 초반까지의 얘기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저더러 ‘즐기면서 사는 네가 부럽다’고 하지만 결혼한 친구들보다 더 즐길 것이 없어요. 동호회 활동은 일시적인 거고, 여행을 가려고 해도 함께 갈 사람을 구하기조차 힘들죠. 주말에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어도 그뿐, 가족들끼리 아웅다웅 복작거리며 사는 것이 더 부러울 때가 있어요.”

우리 주변에서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미혼여성의 얘기다. 미혼여성의 수가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했지만 여전히 미혼여성에 대한 인식은 극과 극, 단순하게 둘로 나뉘기만 한다. 결혼하지 못한 ‘노처녀’ 아니면 좋은 직업에 높은 연봉을 자랑하는 화려한 ‘골드미스’. 실제 평범한 미혼여성들은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30~40대 미혼여성들을 주목해야 한다. 단순하게 보자면 이들의 수가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것보다 관심받지 못한 30~40대 미혼여성의 미래는 결국 우리 사회가 20~30년 후에 맞닥뜨려야 하는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미혼여성군(群)이 급증하는 노인층과 함께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짓누르는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월급 200만원, 월셋집 전전

통계 자료부터 찾아보자. 통계청의 2015년 인구총조사 자료를 보면 30~40대 미혼여성은 138만4047명이다. 10년 전만 해도 미혼여성의 수가 66만3513명에 그쳤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10년 새 2배 넘게 급증한 수다. 1995년과 비교하면 더욱 극적이다. 1995년 당시 30~40대 미혼여성은 24만7363명에 불과했다. 2015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30대 여성 3명 중 1명, 40대 여성 10명 중 1명은 미혼일 정도로 미혼여성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계층이 됐다.

대개 미혼여성이 늘어나는 이유를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져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처음 미혼여성이 늘어났을 무렵만 해도 이 설명은 맞는 얘기였다. 그러나 셋 중 하나가 미혼인 상황에서 ‘미혼여성=고학력·고소득’ 등식이 무조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 중에 현재 일자리에서 미혼여성이 받는 임금이 얼마인지를 조사한 내용이 있다. 이에 따르면 미혼여성 평균 임금은 218.5만원이다.

미혼여성들이 어떤 일자리에 주로 종사하고 있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미혼여성의 19.3%가 도·소매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건이나 사회복지 서비스 일을 하는 미혼여성이 15.2%, 교육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미혼여성이 15.0%로 뒤를 이었다. 전문 자격증을 가지고 기술직에 종사하는 여성은 드문 편이고,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여성도 4.7%로 적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일하고 있는 30~40대 미혼여성의 60%만이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미혼여성의 직업 안정성이 높지 않다는 얘기다.

미혼여성들의 주거안정성도 떨어지는 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복지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부모와 동거 중이라는 30~45세 미혼여성이 65.2%에 달했다.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미혼여성이 어떤 형태의 집에서 살고 있는지는 통계청 인구총조사의 1인가구에 대한 조사 결과를 통해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이에 따르면 30~40대 여성 1인가구의 20.1%만이 자가(自家) 주택에 살고 22.8%는 전세, 50.6%는 월세로 살고 있다. 전국 30~40대 가구주의 47.8%가 자가로 살고 25.1%만이 월세로 사는 것에 비춰 보면 월셋집 거주 비율이 월등히 높은 셈이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노후를 잘 준비하는 미혼여성은 많지 않다. 서울시가 40~50대 여성 1인가구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여성은 36.9%에 그쳤다. 노후 준비를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유가 없어서’(81.2%)였다.

48살 전윤옥씨는 통계적으로 평균에 근접한 미혼여성으로 늙었다. 처음에는 간호사로 일하며 돈도 제법 모으고 “행복한 싱글 라이프”를 즐겼다고 했다. “25~26살에 결혼한 친구들은 다 저를 부러워했어요. 애 낳고 뒷바라지하다 보면 자신은 아줌마가 돼 가는데 저는 남자친구도 만나고 그 시절에 미국 여행도 다녀오고 했으니까요.” 그러나 마흔이 넘자 전씨가 친구들을 부러워할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을 사고 자식들을 대학 보내고 남편과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제가 ‘부럽다’고 말하는 일이 늘어났어요. 저는 그 무렵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남아 같이 살기 시작했거든요. 제 돈으로 산 아파트 하나만 가지고 늙어가는 어머니를 모시며 뒷수발 드는 일이 제 몫이 됐습니다.”

전씨의 여동생은 결혼하고 호주로 떠났다. 전씨의 오빠는 지방에서 명절 때만 상경해 인사드리곤 한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기에는 나이가 들어버린 전씨는 요양병원 두 곳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제 주변은 온통 골골거리는 노인들밖에 없어요. 이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죠.” 앞으로의 미래는 더욱 암담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저는 혼자 남을 텐데 누가 저를 돌봐줄지 걱정이 돼요.”

나이 들수록 고단해지는 삶

통계 자료에서 보듯이 미혼여성의 삶은 나이가 들수록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해진다. 애초에 미혼여성의 수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나이가 들수록 지출은 커진다. 상당수의 미혼여성이 부모와 동거 중이기 때문에 부모의 노후를 감당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독립하더라도 노후 준비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 혼자 벌어서는 집 한 채 사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혼여성의 노화(老化)는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미 일본에서는 중년 미혼여성의 경제적 문제가 사회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지난해 11월 7일자로 보도한 ‘비정규직·싱글 중년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실태’라는 기사에서 여러 중년 미혼여성의 모습을 소개했다. 대부분은 처음부터 비정규직이었거나 정규직이었다가 여러 이유로 경력단절을 겪은 후 예전의 경제적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는 여성들이다. 이전까지 일본 사회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중년 미혼여성을 사회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사히신문은 기사에서 책 ‘르포 빈곤한 여성’을 쓴 이이지마 유코씨의 말을 빌려 이 문제를 사회문제로 부각시켰다.

“젊은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면서 미디어가 이들을 ‘워킹 푸어(일하지만 가난한 사람)’ ‘넷 카페 난민(거주할 곳이 없어 PC방 등에서 머무는 사람)’으로 소개하자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혼 비정규직 여성이 느는 것은 사회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여성이 일하는 방식은 비정규직과 저임금이 기본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미혼여성이 결혼하고 나면 배우자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해 문제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나라 미혼여성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보통 미혼여성을 보는 시각에는 ‘미완성’된 인간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언젠가는 결혼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미혼여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노후를 맞게 될지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미혼여성들이 반드시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30~45세 미혼여성의 46%만이 ‘결혼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나마도 40대로 가면 그 비중이 낮아져 25.4%만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동갑내기 친구인 40살 김근영씨와 조영은(가명)씨는 곧 다른 형태의 삶을 살게 될 예정이다. 조씨가 11월에 결혼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조씨가 “결혼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조씨의 연봉은 7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지금까지 모은 돈에 부모님이 보태준 돈을 합쳐 서울 시내에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해 살고 있었다. 결혼할 조씨의 남자친구도 대기업에 다니며 100여㎡(30평대) 아파트를 마련해둔 상태기 때문에 조씨의 아파트는 월세를 줄 예정이다. 김씨의 상황은 열악하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헤어진 이유 중 하나가 ‘결혼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는 거였어요. 저는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중소기업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고 남자친구는 계약직 기술자였거든요. 많이 노력했지만 결혼하면 더욱 빈곤해질 것 같으니 차라리 결혼하지 않고 혼자 몸이라도 잘 간수하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여러 논문의 연구 결과를 보면 결혼 의향이 있는 여성의 상당수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이다.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미혼여성은 불안정한 노후를 염려하며 나이가 들어갈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미혼여성의 경제적 상황을 관찰하고 이들의 노후를 위해 정책적 배려를 해주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일이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미혼여성들이 받을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은 거의 없다. 미혼여성들을 ‘결혼시키는’ 정책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해마다 늘어나는 미혼여성의 수를 외면하는 정책에 가깝다.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서 미혼여성이 의지할 만한 사회적 지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족에서 개인으로

미혼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적 지원은 어떤 것일까.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해 10월 가진 ‘1인가구 여성, 이기적 선택은 있는가’라는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미혼여성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책 중에는 안정된 집을 갖는 주거 관련 정책과 더불어 공동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공동체 관련 정책이 포함돼 있다. 또 지금껏 가족을 중심으로 제공되고 있던 사회복지 서비스를 사각지대에 있는 개인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됐다.

최근 서울 마포구 성미산 일대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공동주택이나 스타트업이 운영하는 ‘셰어하우스’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들 주택은 개인 공간이 있되 거실이나 마당 같은 공용 공간을 공유하면서 미혼청년들이 ‘따로 또 같이’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만든 곳이다.

이제 미혼여성의 삶은 우리 사회 다양한 삶의 모습 중 하나가 됐다. 성미애 한국방송통신대 가정학과 교수의 말이다.

“현재 미혼여성들은 삶을 즐기고 있지만 노후에 대한 불안이 큽니다. 제가 만나 본 미혼여성 중에는 고독사를 염려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어떤 삶의 모습이든 사회 속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보장을 받는 것, 이게 바로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이잖아요. 미혼여성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이제 미혼여성에게 필요한 정책을 설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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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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