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셰어하우스 ‘하품’. 20~30대 40명이 정원이 있는 대저택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셰어하우스 ‘하품’. 20~30대 40명이 정원이 있는 대저택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은 인파에 치일 각오를 해야 한다. ‘불금’은 특히 그렇다. 지난 9월 15일, 11번 출구를 나오자 퇴근시간 전인데도 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였다. 서울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지만, 불과 1~2분 거리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전혀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 몇 걸음 밖 소음과는 동떨어진 주택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대지 560여㎡(170여평)에 달하는 큰 주택이 있다. 붉은 벽돌의 2층 주택에는 넓은 정원이 있다. 정원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그 사이로 자두나무, 석류나무도 섞여 있다. 강남역 인근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집이다.

강남 한복판 정원 달린 대저택에서 월 임대료 50만~60만원에 살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곳은 지난 6월 문을 연 셰어하우스(공유주택) ‘하품’이다. 셰어하우스는 사전 의미 그대로 여러 사람이 집을 공유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해 유럽, 일본 등에서 공유경제 시대 새로운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유주택 시장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최근 3~4년 새 급성장하고 있다. 대부분 6~7명이 한 집을 공유하는 소규모 공유주택인 반면 ‘하품’은 40명이 함께 살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다.

‘하품’ 하우스 1층에는 카페가 있다. 카페와 연결된 정원은 호젓한 야외라도 나온 듯하다. 입주민도 있고 외부 손님도 있다. 해먹에 누워 있는 사람도,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여유로워 보였다.

왜 임대료 비싼 강남역 인근에 공유주택을 만들었을까. ‘하품’을 만든 사람은 소프트웨어 개발기업인 ‘스파이카’ 김호선(47) 대표이다. 미디어 공유 플랫폼을 삼성, CJ 등에 공급하고, 대용량 파일 공유 서비스로 미국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를 받았던 IT기업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500스타트업’에 한국에서 1호로 선발될 만큼 잘나갔지만, 열악한 IT기업 생태계에서는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했다. 힘들게 버티다 “우리도 돈 버는 일을 해보자”며 나선 것이 새로운 주거 형태를 실험하는 공유주택이었다. 온라인 밖으로 나와 또 다른 공유 시스템에 도전한 것이다. ‘500스타트업’ 프로그램 참가차 샌프란시스코에서 1년 동안 머물며 셰어하우스에서 온갖 고생을 했던 경험이 ‘하품’을 탄생시켰다. ‘하품’은 ‘하우스, 꿈을 품다’의 줄임말이다. ‘청춘들의 꿈을 품어주는 스타트업 셰어하우스’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 스타트업 정신인 꿈과 열정을 공유주택에 담은 것이다.

“월 60만원이면 반지하 겨우 얻습니다. 창문 열면 벽만 보이는 곳 말입니다. 같은 돈으로 강남역이라는 편의성에 정원, 카페가 있는 170평(560여㎡)짜리 집을 누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1인가구 시대 주거, 외로움 등 다양한 문제를 공유주택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공유사무실(sharing office)이 공유경제 시대를 열었다면, 그 다음 주자는 공유주택(shring house)이라고 전망했다. 학원가, 오피스가 몰려 있는 강남역이야말로 다양한 젊음들이 모이는 곳이다. ‘하품’은 그 한복판에서 주거 불평등을 몸으로 느끼는 젊은층에 ‘소유가 아닌 공유’로의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안하고 있다.

정원이 내다보이는 셰어하우스 ‘하품’의 8인실. 공유주택의 필수조건은 커뮤니티 활동이다.
정원이 내다보이는 셰어하우스 ‘하품’의 8인실. 공유주택의 필수조건은 커뮤니티 활동이다.

공간이 아닌 문화를 공유한다

하숙집이나 기숙사와 공유주택이 다른 점은 뭘까. 김 대표의 생각은 주거 해결을 넘어 공유주택의 핵심 키워드는 커뮤니티 활성화라고 말했다. 그를 위해 입주 인터뷰 때 ‘하품’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지를 따져 선별한다. 사람들과 친해질 생각이 없는 사람, 예민해서 동거인의 소음을 못 견디는 사람, 꿈이 없는 사람은 정중히 사절한다. 공간의 공유만큼 꿈을 공유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 삶의 자세가 동거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이 ‘하품’의 생각이다.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김 대표는 아낌없이 지원한다. 신입 가족 환영 등을 빙자한 치맥 모임은 수시로 열린다. 기분이 내킬 때면 바비큐 파티를 연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스타트업 CEO 등 다양한 멘토를 초청해 강의도 듣는다. 입주민 단톡방도 활발하다. 단톡방은 전체 입주민, 여성 전용, 남성 전용으로 다양한 채널이 있다. 공지사항도 전달되지만 취미 공유, 정보 공유도 이뤄진다. 잦은 ‘치맥’으로 다져진 정은 가족처럼 끈끈하다. 알바 자리를 같이 구해주고, 고민 해결에 나서준다. 커뮤니티 활동이 가능한 것은 카페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외부 손님도 받는 카페는 스타트업 기업들의 회의 장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자연스럽게 인맥 쌓을 기회도 많다.

생활공간은 1층은 남성, 2층은 여성으로 분리돼 있다. 방은 총 13개로 1인 ·4인·8인실이 있다. 임대료는 기간·방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는 12개월 기준 월 56만~74만원이다. 1개월 단기부터 1년 이상 장기도 가능하다. 다인실은 일본의 캡슐 호텔을 모델로 만들었다. 침실 이외의 모든 공간은 공유한다. 주방용품이 구비돼 있어 식사도 원하는 사람은 만들어 먹을 수 있다. 40명이 함께 사는 만큼 갈등의 요소는 많다. 김 대표의 설명이다.

“침대는 자는 곳이지 생활하는 곳이 아니다. 내 공간은 작지만 다른 멋진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공유주택의 개념이다. 공유주택에서 입주자끼리 가장 많이 부딪치는 문제는 공과금 분담과 청소 문제이다. 그래서 아예 임대료에 공과금을 포함하고 호텔처럼 청소를 해주고 있다. 갈등을 없앨 방법은 얼마든지 있고 계속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을 하다 새로운 주택 실험을 하고 있는 김흥주 소장, 김호선 대표, 홍승환 팀장(왼쪽부터).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을 하다 새로운 주택 실험을 하고 있는 김흥주 소장, 김호선 대표, 홍승환 팀장(왼쪽부터).

새로운 주거문화 제안

공동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커뮤니티를 통해 얻는 것은 많다. 재미동포 홍지선(19)씨는 이곳에 입주한 지 3주가 됐다. “사람들도 많고 친구도 사귈 수 있어 좋다”는 홍씨는 멘토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소개로 영어학원에 취업까지 하게 됐다. 다른 공유주택에 살다 두 달 전 이곳에 온 박정대(23)씨는 관심사가 같은 입주민 한 명과 의기 투합, 창업을 도모하고 있다. “자취도 해봤는데 외로웠다. 소규모 공유주택은 뜻이 안 맞는 경우 얼굴 부딪치는 것이 괴롭다. 여긴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마음 맞는 한 사람만 있어도 괜찮다. 무엇보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박씨는 “공유주택은 돈 없는 청년들에게 다양한 시너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스파이카 직원들 중에서 김 대표랑 ‘하품’을 시작한 직원은 김흥주 연구소장과 홍승환 개발팀장. 준비 기간 동안 월급을 줄 형편이 안 돼 스파이카의 나머지 직원들은 떠나보내야 했다. 스타트업 경험과 철학은 곳곳에 녹아들고 있다. 김 대표가 장소를 선정할 때 스타트업 관련자가 많은 곳을 후보지로 물색한 이유도 자신들의 태생인 IT와 공유주택의 연결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커뮤니티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규모가 커야 했다. 김 대표는 정원이 있는 이 집을 보는 순간 ‘여기다’ 싶었다. ‘공유주택’ 구상을 듣고 망설이는 집주인을 1박2일 설득했다. 임대료가 비싸지만 정원을 누리는 대가였다. 덕분에 인테리어 비용까지 애초에 예상했던 예산보다 2배를 초과했다. 실력을 인정받던 IT 두뇌들이 앞치마 두르고 커피바리스타로, 정원관리사로 1인 다역을 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진로 컨설팅이다. 취준생, 학생들이 많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진로를 물어온다. 사업기획서를 들고 와 상담을 요청하는 입주민도 있다. 김 대표는 아예 상담시간을 정해 놓을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입주민 연령대는 20대가 85%, 나머지는 30대다. 학원가가 몰려 있는 만큼 학생이 60%를 차지한다. IT기업에 연수차 온 외국인 숙소로도 활용된다. 이들의 실험은 출발이 좋다. 3개월 만에 만실이다. 인근 주민들에게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관심의 대상이다. 공사할 때부터 기웃거리는 주민들이 많았다. ‘하품’의 공유주택 실험은 2호, 3호점으로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1호점이 정원을 내세웠다면 2호점은 ‘운동시설’이 있는 공유주택으로 만들 생각이다. 각 지점마다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 ‘하품’ 가족이 다른 지점의 인프라를 공유할 수 있도록 걸어서 5~10분 거리에 있는 주변 부동산을 물색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스타트업 붐이 일고 있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진출하는 것도 도전 목록에 들어있다.

공유가 경제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

부동산시장에서 공유주택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공유주택시장은 2013년에 비해 불과 4년 만에 10배 이상 성장했다. 업계는 공유주택 시장 규모가 2015년 5000실에서 2020년은 2배인 1만실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주’ ‘단비’ ‘컴앤스테이’처럼 전문업체도 늘고 있다. 셰어하우스 1세대인 ‘우주’는 현재 서울 곳곳에 60여개를 운영하고 있다. 대기업도 뛰어들었다. 선두주자는 코오롱글로벌의 자회사인 코오롱하우스비전이다. 지난 4월 여성 전용 셰어하우스 ‘커먼타운’을 출시, 한남동·여의도 등에 9곳을 운영 중이다. 1곳당 6~12명 안팎인 커먼타운은 연내 15곳까지 늘리고 내년에는 최대 100곳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시도 청년주거 문제의 해법으로 셰어하우스를 제시하고 있다. 동작구는 지난 8월 30일 LH 소유의 임대주택을 리모델링해 ‘청년 셰어하우스’로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셰어킴’ ‘컴앤스테이’ 등 입주자와 공유주택을 연결해주는 온라인 플랫폼도 시장과 함께 크고 있다. ‘셰어킴’의 경우 지난 4월 론칭 이후 6개월 만인 9월 20일 현재 입점 룸이 1000개를 돌파했다. 다양한 테마, 취미, 관심사로 특화한 공유주택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공유주택 시장은 파생 상품도 만들고 있다. 김 대표는 “청소 전문업체, 용품 공급업체, 관리업체 등 공유주택 관련 비즈니스 모델은 무궁무진하다”고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5년 1인가구는 34.3%에 달한다. 셋 중 하나는 1인가구가 된다. 공유주택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 공유경제에 불을 붙인 공유주택의 실험이 주택시장을 어떻게 바꿔 나가든지, 상상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유경제는 세계 경제를 끌어가는 새로운 동력이다. 중국은 자전거, 차, 숙박 등 각종 공유경제 거래 규모가 2016년 540조원을 기록한 데 이어 매년 40%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25년에는 GDP의 2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자기 소유 호텔 한 곳도 없는 에어비앤비의 시가총액은 35조원에 달하고, 자동차 한 대 없는 공유택시 우버의 시가총액은 80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유경제의 품안에서 기존의 가족 관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공동체 문화와 삶의 방식도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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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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