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로 딸 성은이를 떠나보낸 지 7년째 되던 날 만난 엄마 박연실씨. ⓒ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의료사고로 딸 성은이를 떠나보낸 지 7년째 되던 날 만난 엄마 박연실씨. ⓒ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 재윤이 이야기

지난해 11월 29일 이른 아침 당시 만 5살이던 재윤이가 일어나 엄마 허수연(가명)씨에게 말했다. “엄마, 나 또 열이 나는 것 같아.” 전날 엄마와 함께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놀며 축구를 했던 탓이었을까. 엄마는 “추워져서 감기에 걸렸나 보다, 열 좀 재볼게”라고 답했다. 재윤이가 열이 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꼭 3년 전 재윤이는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진단받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걷지 못하는 재윤이를 데리고 집 근처 대학병원을 찾았다가 들은 얘기였다.

“처음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라 어쩔 줄 몰랐어요. 대구에서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죠. 그런데 불행 중 다행으로 재윤이의 백혈병은 완치율이 90~95%에 달하는 예후가 좋은 병이고 그래서 지방에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고 했어요. 임신 6개월 차의 무거운 몸이었기 때문에 의료진을 믿고 치료하기로 했습니다.”

치료는 힘들었지만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가끔 면역력이 떨어져 열이 나고 항암제 부작용에 힘들어하긴 했지만 재윤이는 씩씩하게 이겨냈다. 3년에 걸친 치료 기간 동안 골수검사를 4~5차례 받았지만 암세포는 발견되지 않았다. 4개월만 더 치료받다가 암세포 없이 깨끗한 상태가 확인되면 완치되는 거였다. 엄마는 치료가 끝날 다음해 봄, 그러니까 2018년 3월만 기다렸다.

“열이 38.4도에 달하기에 병원에 전화를 해봤더니 일단 입원하러 오라고 하더군요. 병원에 갔더니 마침 회진을 돌고 있던 담당 주치의가 재윤이의 입원이 잦다며 재발이 의심되니 골수검사를 시행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정기적으로 하는 골수검사가 한 달 남았는데 꼭 오늘 검사를 해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별반 소용없었어요.”

골수검사에 앞서 1년 차 전공의(레지던트)가 와서 재윤이의 코를 찔러 바이러스 검사를 했다. 추운 날씨에 감기에 걸렸는지 확인해보는 검사였다.

골수검사에 이골이 난 재윤이와 허수연씨에게도 그날은 낯선 일들이 많이 벌어진 날이었다. 고열에 시달리는 재윤이에게 골수검사를 서두른 의료진들이 그랬다. 그날 재윤이말고도 3명이 더 골수검사를 받는다고 해서 응급처치 기계가 준비된 간호사실 말고 침대만 하나 달랑 있는 주사실로 재윤이를 이끈 것도 그랬다.

“평소 하던 간호사실에서 검사하면 안 되겠느냐며 물었지만 다른 아이들이 검사하고 있다고 거절당했어요. 5시에 담당 주치의가 회진 돌 때 검사 결과를 받아보려면 지금 당장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죠. 재윤이 컨디션이 안 좋으니 신경 써달라고만 얘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골수검사를 하던 1년 차 전공의 선생님은 ‘요즘 매일 골수검사를 해서 자신이 있다’고 대답했어요.”

허수연씨는 재윤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재윤아 검사 잘하고 온나. 엄마 밖에서 기다릴게.” 재윤이의 몸에 검사를 위해 수면 진정을 이끄는 약물인 미다컴 2㎎과 케타민 10㎎이 주입됐다. 재윤이 눈이 풀리는 것을 보고 허씨는 재윤이가 입원한 병실에 와 앉아 기다렸다.

20분 정도 지난 오후 12시50분. 간호사가 허씨의 팔을 급하게 잡고 주사실로 뛰어갔다. 재윤이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주사실에는 이미 의료진이 우르르 달려와 있었다. 두 명의 의사가 심장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곧 재윤이의 담당 주치의가 와서 검사를 하던 전공의에게 경위를 물었다.

“재윤이가 미다컴, 케타민을 맞고도 뭔가 중얼거리더래요. 그래서 미다컴 한 대를 더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엎드리게 하고 검사를 끝내고 보니 입술이 파래지는 청색증이 와 있더랍니다. 숨도 안 쉬고 맥박도 안 뛰고.”

허수연씨의 머리에는 그저 ‘왜 저기에 재윤이가 저러고 있지’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재윤이 몸 위에 올라가 심장마사지를 하는 의사들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한 시간 넘게 그렇게 심폐소생술을 받은 결과 재윤이의 호흡은 돌아왔지만 의식은 없었다. 식물인간 상태가 될 거라고 했다. 넋을 놓은 허씨에게 누군가가 “저렇게 의식이 없다가 돌아온 기적 같은 상황도 있었다”며 희망을 불어넣었다.

심폐소생술 도중 호흡기에 손상을 입은 재윤이의 열은 41.5도까지 올랐다. 이미 생체반응이 사라져가고 있는 재윤이를 의료진은 중환자실로 옮겼다. 병원 측은 재윤이에게 매달려 있던 재윤이 부모에게 ‘우선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퇴실을 명령했다. 허씨와 남편은 병실 바깥에서 자정이 가깝도록 울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은 새벽 1시 반,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재윤이에게 심정지가 왔다고 했다.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중환자실에서 재윤이는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들이 온 힘을 다해서 재윤이의 심장을 누를 때마다 코와 입에서 피거품이 나왔어요. 이미 늑골이 부서지고 폐가 찔려서 가슴팍에 시퍼런 멍이 들었던 거예요.”

새벽 4시15분, 재윤이가 숨을 거뒀다. 전날 받은 바이러스 검사에서는 코감기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검사 결과는 재윤이가 골수검사를 받기 전인 12시 반쯤에 나왔었다. 의료진은 그 결과를 확인하지 않았다. 12시50분에 시작했던 골수검사 결과는 ‘혈액학적 완전 관해 상태’, 즉 암세포 없이 깨끗한 상태였다. 허수연씨는 담당 주치의에게 “왜 건강하던 아들이 죽은 거냐”라고 울며 매달렸다. 처음에는 흡인성 폐렴이라고 말하던 주치의는 곧 “억울하면 절차 밟아서 피해를 청구하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 예강이 이야기

초등학교 3학년이던 예강이는 또래 친구들 중에서도 유독 건강하던 아이였다. 초등학생인데도 용돈을 모아 부모님 생신이며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을 챙기는 기특한 아이였다. 밝고 사랑스러워 늘 칭찬을 받는 아이였다. 엄마 최윤주씨는 매일같이 예강이 자랑을 하고 다녔다. 2014년 1월까지만 해도 예강이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1월 20일과 21일에 예강이는 갑작스럽게 코피를 흘렸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회사에 있던 엄마는 이웃에 사는 예강이 이모를 불러 동네 의원 두 곳에서 예강이를 진찰하게 했다. 의원에서는 성장기 어린이들은 종종 코피를 흘리기도 한다고 했다. 엄마 최윤주씨가 22일 밤 직장에서 퇴근했을 때 하루 종일 신나게 놀던 예강이는 피곤하다며 잠을 청하고 있던 참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예강이의 코에서는 다시 코피가 떨어졌다.

“집 근처 병원 문을 열자마자 갔는데 병원에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갈 것을 권유하더군요. 구급차를 타고 오전 9시47분에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처음에는 피 검사를 하자고 하더니 검사 결과 피가 부족한 빈혈 상태라며 2~3일간 입원하면 괜찮을 거라고 했습니다. 아이 아빠가 전화가 와서 ‘내가 가봐야 하느냐’고 물었는데 저는 2~3일 입원하면 괜찮아진다고 했다고, 오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건강한 자녀를 둔 탓에 응급실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엄마 최윤주씨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병원에서 가라면 갔고, 하라면 했다. 예강이가 불편함을 호소했지만 병원에서는 오전 11시24분이 돼서야 산소공급장치를 운반해와 소극적인 산소공급을 했다. 의료진은 최씨에게 “기다리는 사이 수납을 먼저 하고 오라”고 말했다. 동행했던 이모에게 예강이를 맡겨두고 수납하러 간 사이에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의사가 예강이를 살피더니 입술이 파래지는 청색증이 온 것을 보고 왜 수혈을 안 하고 있냐고 했대요. 그때 급하게 수혈이 들어갔어요. 그리고는 예강이의 상태가 뇌수막염이 의심되니 새우등 자세를 취해 허리 아래 뇌척수액을 뽑아 검사하는 요추천자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게 뭔지도 몰랐지만 필요하다고 하니 동의했어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예강이의 손을 붙잡고 있던 최윤주씨는 검사를 위해 자리를 피해달라는 의료진의 말에 옆 병상으로 발길을 옮겼다.

“검사를 시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예강이가 비명을 지르면서 악을 쓰더라고요. 놀라고 걱정돼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거리는데 다시 비명을 질렀습니다. 두 번째는 소리가 좀 덜했어요.”

갑자기 예강이의 울음소리가 멈췄다. 한동안 검사하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다 갑자기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왔고 검사가 멈췄다. 의료진이 우르르 달려왔다. 심폐소생술이 시작됐고 누군가가 최씨에게 “예강이가 잘못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예강이를 살리려는 노력은 2시간 넘게 진행됐다. 넋을 잃은 최씨는 그저 예강이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오후 4시54분, 병원에 도착한 지 7시간7분 만에 의사는 예강이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비극에 예강이 부모는 병원에 해명을 요구했다. 무뎌진 감각으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부모에게 병원에서 한 얘기는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억울한 점이 있으면 법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사건이 생겼을 때 그에 대한 입증 책임을 모두 환자가 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인 만큼 일반인이 의료과실 여부를 밝히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의료행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자료를 확보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예강이가 사망한 직후 예강이의 숙부는 최윤주씨 부부에게 병원 의무기록지를 확보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황망한 사고에 넋을 잃어버린 예강이 엄마 최윤주씨를 대신해 예강이 아빠가 병원 원무과에 요청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아직 의무기록지를 작성 중이니 기다려달라는 말은 다음날 오후 4시까지 계속됐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예강이 부모가 의료진을 만나고 싶다고 할 때도 병원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겨우 자리가 마련됐지만 정작 응급실에서 예강이의 심장이 멎을 당시 요추천자 검사를 처방하고 실시한 전공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보여달라고 강하게 요구한 덕에 잠시 예강이 부모가 있는 곳으로 왔지만 “왜 우리 예강이가 죽었나요”라는 부모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은 채 관계자의 손에 이끌려 다시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나서 병원 측에서 “법대로 하라”고 말한 것이다. 예강이 엄마 최윤주씨의 말이다.

“법대로 하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어요. 병원에서 친절하게 어떤 단체가 있고 어떤 절차가 있다고 가르쳐주더군요. 장례를 치르고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정말 미칠 것 같더라고요. 이대로는 죽을 것 같아서 겨우겨우 확보한 기록을 정리해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라는 데 조정신청을 했어요. 뭐라도 답을 달라고, 왜 죽었는지 알려달라고. 그런데 병원에서 답이 없더군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병원과 환자 사이의 다툼을 조정하고 중재하기는 하지만 모든 환자가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법률상 병원에서 조정요청에 한 달 이상 응답이 없으면 저절로 요청이 기각됐기 때문이다. 2014년 당시 조정중재원에 접수된 의료분쟁 조정 신청 건수 중 실제로 조정이 이뤄진 비율은 45.7%에 불과했다. 나머지 절반은 예강이 부모처럼 병원이 차일피일 시간을 보내면 없던 일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강이 부모에게는 사고가 일어나던 당시의 CCTV 화면 기록이 있었다. 예강이 이모가 화가 나 담당 소아과 의사의 방에 쳐들어갔다가 우연히 목격하고 확보한 것이다. 화면 안에서 예강이는 내내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몸부림치는 예강이를 붙들어 두려고 의료진은 사지를 결박했다. 요추천자 검사를 하려면 몸을 웅크리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예강이가 저항하자 의료진들이 무릎으로 예강이의 허리를 누르고 팔뚝으로 목을 눌러 붙잡아가며 다섯 번이나 검사를 시도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예강이의 심장이 멈추고 심폐소생술이 시작됐다.

의무기록지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예강이가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당시 맥박수는 분당 137회로 응급 조치가 필요한 수준이었지만 인턴이 기록한 응급진료기록부에는 분당 80회, 정상 맥박으로 기록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인턴은 당시 응급실에 있던 환자 18명 중 9명의 기록을 모두 80회로 일괄적으로 작성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적혈구 수혈 시간도 수정됐다. 산소포화도도 기록마다 달랐다.

예강이는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피검사를 받았다. 당일 오전 10시45분에 나온 피 검사 결과는 예강이가 심각한 빈혈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6분이 지난 오전 10시41분 예강이에게 적혈구 수혈 처방이 내려졌다. 그러나 적혈구 수혈이 시작된 것은 3시간이 지난 오후 1시45분이었다. 사후에 확보한 경과기록지에는 ‘지금 당장 아이가 잘못될 수 있을(=사망) 정도로 위중한 상황임을 말씀 드림. 다행히 혈압은 괜찮아서 빨리 수혈을 시행’이라고 적혀 있었다. “2~3일 입원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들은 보호자의 말과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문외한인 저희가 봐도 이해가 안 됐어요. 의료진은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모든 자료가 그렇지 않다는 걸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건강하던 예강이가 순식간에 하늘나라로 갔는지라도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정신청을 했는데 병원이 응답이 없었지요. 주변의 조언대로 소송을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는 게 예강이 엄마 최윤주씨의 말이었다. 병원은 예강이의 죽음이 응급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는 태도만 취할 뿐 어떤 사과의 말도, 납득할 만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예강이법’ 효과

재윤이 엄마도 마찬가지의 상황에 부딪혔다. 골수검사를 받다가 갑자기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고 싶었지만 병원은 묵묵부답이었다. 병원에서 작성한 사망진단서에는 사인이 흡인성 폐렴으로 적혀 있었지만 허씨는 이 폐렴이 첫 번째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생긴 것일 뿐 사인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허씨 가족은 재윤이를 경북 왜관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연구소로 부검하러 보냈다.

국과수에서도 폐렴을 사인으로 보지 않았다. 국과수는 “(폐의 병변을) 사인으로 고려하기는 어려우며 변사자가 사망에 이른 임상경과를 고려할 때,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형성된 병변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대신 “연령에 맞는 성장 상태”라고 하여 재윤이의 건강 상태가 양호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국과수가 판단한 사인은 다른 것이었다.

“변사자(재윤)는 백혈병을 앓고 있던 자로 최근 열이 나고 있었다고 하나 급격히 진행하여 호흡곤란을 발생시켜 사망에 이를 정도라고 보기는 어려운 점 (중략) 등을 종합할 때 사인은 해부학적으로 불명이나 임상경과를 고려할 때 진정제 투여와 관련하여 사망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허수연씨는 재윤이가 심폐소생술을 받던 당시 전공의가 설명했던 바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경위를 묻는 주치의에게 전공의가 설명하길 미다컴 1대를 추가로 맞아 총 3대의 진정제를 놓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처음에 확보한 의무기록지에는 미다컴 2㎎만 놓은 것으로 되어 있더군요. 항의했더니 나중에 수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자연히 진정제 투여와 관련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또 진정제를 놓아 골수검사를 하는데 응급도구 하나 갖춰지지 않은 주사실에서 처치한 것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고 싶었다. “그 힘들다는 항암치료도 다 견뎌낸 아이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든 시간표를 항암치료가 끝나는 2018년 3월로 맞춰뒀어요. 그때가 되면 태권도도 배우고 마음껏 놀러다닐 생각이었어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의료진에 분노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필이면 재윤이가 간 그날이 무척 바쁜 날이었다고 했어요. 의사도 사람인데 실수할 수도 있을 거예요. 처음에 저는 화가 난 것이 아니었어요. 단지 알고 싶을 뿐이었죠.”

사실 한국의 의료진이나 병원이 특별히 더 나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다. 의료사고로 인식될 수 있는 문제에서 의료진이 무언가 설명을 하거나 ‘미안하다’고 말하게 되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병원은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이 해결방법은 악순환을 가져온다. 환자 보호자들은 의료사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하지만 병원은 하지 않는다. 지극히 전문적이고 특수한 분야의 문제를 다루는 의료분쟁에서 과실 입증의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다. 자연히 피해자의 억울함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의료 분야에서 환자와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이 ‘사과법(Apology Law)’이라고 부르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사과법이란 환자 안전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공감이나 유감의 뜻을 표하는 것을 책임을 시인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환자에게 ‘미안하다’고 한다고 해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상당수의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의료진에 처음부터 분노의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충분히 사과하고 설명한다면 문제가 커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 미시간대 병원에서 환자와 소통을 늘려봤더니 소송 건수가 월 평균 2.13건에서 0.75건으로 급격히 감소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이나 영국, 뉴질랜드 같은 데서는 아예 법적으로 소통방식이 강제되기도 한다. 이상일 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진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서서히 사과법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다. 지난 3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사과법 내용을 담은 ‘환자안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료분쟁 후진국을 벗어나려는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된 한국 땅에서 엄마는 ‘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예강이 엄마 최윤주씨는 예강이가 숨을 거둔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피켓을 들고 처음 병원 앞에 선 날 병원 직원들이 달려와 시위를 막고 사람들이 지나가며 손가락질했지만 최씨는 오히려 힘이 났다고 한다.

“남편은 저를 걱정했어요. 하지만 저는 싸우면 싸울수록 힘이 났어요. 사람들이 예강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줬어요. 홈페이지도 만들어져 멀리서, 모르는 사람들도 힘을 실어줬어요. 언론에서도 찾아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예강이의 억울함에 대해 보도해줬어요.”

그리고 예강이 가족이 겪은 일을 그대로 반영해 두 가지의 ‘예강이법’이 만들어졌다. 하나는 ‘신해철법’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다. 사망이나 의식불명 등 중대한 장애를 입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의료분쟁조정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을 때 병원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자동적으로 조정절차가 개시되도록 하는 법이다. 2016년 11월 30일 도입된 이 법으로 의료분쟁 조정 절차에 들어간 건수가 예전에 비해 늘어났다.

두 번째 예강이법의 정식 명칭은 ‘진료기록 블랙박스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다.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이 진료기록부를 수정하거나 추가 기재했을 때는 원본과 수정본을 함께 보존하도록 한 법안이다. 열람 기록도 남겨야 한다.

그동안 병원은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관행적으로 의무기록지를 포함한 진료기록부를 수정해 제출해왔다. 원본은 대개 장시간 보관하지 않거나 보관하더라도 수정본만을 제출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의료사고가 소송으로 이어질 때는 늘 기록의 문제로 병원과 환자·보호자 간 다툼이 있어왔다. 당장 예강이만 하더라도 의무기록지를 수정한 채로 받게 됐고, 재윤이 역시 일부 기록이 누락된 의무기록지를 받았다. 이를 용인해왔던 기존 법 개정안이 지난 2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앞으로는 병원이 자신들의 의료 행위를 숨기거나 잘못 기록할 여지가 줄어든 셈이다.

예강이 어머니 최윤주(가운데)씨는 예강이법 통과를 위해 사고가 난 병원 앞에서 시위했다. ⓒphoto 환자단체연합회
예강이 어머니 최윤주(가운데)씨는 예강이법 통과를 위해 사고가 난 병원 앞에서 시위했다. ⓒphoto 환자단체연합회

끊임없는 거절과 좌절

예강이 이름을 딴 법이 통과됐지만 예강이 엄마의 슬픔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더 큰 문제, 왜 예강이가 죽었는지에 대한 답을 아직 못 얻었기 때문이다. 3년 넘게 진행된 법정공방에서 그 진실이 가려질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1심 민사재판을 담당한 서울서부지법은 예강이 유가족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올해 1월 형사재판에서는 허위 기록을 게재한 인턴에게 100만원의 가벼운 벌금형만 내렸다. 수혈 기록을 허위기재한 간호사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의료진의 행위가 고의가 아니라 실수라고 봤다. 예강이 엄마에게는 병원에서 들었던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 겹쳐서 들리는 듯했다.

“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의료사고로 인한 소송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이런 좌절을 겪은 사람은 예강이 엄마뿐만이 아니다. 2011년 딸 성은이를 갑작스럽게 떠나 보낸 엄마 박연실씨 역시 7년 내내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박씨의 딸 성은이는 8살이던 2007년 희귀난치병인 ‘특발성 폐동맥고혈압’을 진단받았다. 폐에서 산소 공급이 원활하게 혈관으로 전달되지 않아 숨이 차는 질환이다. 예후가 좋은 병은 아니었지만 두어 차례 숨이 차 산소포화도가 매우 낮아졌을 때도 응급실에서 즉시 고농도의 산소를 공급받아 회복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2011년 4월 4일에는 그렇지 못했다.

나들이를 다녀오다가 호흡곤란 증세가 와 구급차를 타고 평소 다니지 않던 병원으로 급하게 이송이 됐다. 한때는 산소포화도가 76%까지 떨어져 급하게 산소 주입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막상 병원에 도착할 무렵에는 산소포화도가 94~96%로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한 오후 8시21분부터 10분여간 응급실 의료진은 성은이에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성은이의 질병이 희귀난치병이기에 의료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구급대원과 성은이 아빠는 구급차로 이동하며 해당 병원에 연락을 취해뒀다. 그럼에도 성은이는 10분간 방치됐다는 게 성은이 엄마 박연실씨의 설명이다.

2016년 5월 19일 신해철법(예강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photo 뉴시스
2016년 5월 19일 신해철법(예강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photo 뉴시스

게다가 의료진은 자발적으로 호흡하고 있던 성은이에게 강제호흡을 시도했다. 진정제를 놓으면서까지 억지로 튜브를 밀어넣는 기관 삽관을 하다가 성은이는 의식을 잃었다. 중환자실에서 성은이는 더욱 큰 위기를 맞았다. 보호자가 퇴실한 상황에서 인공호흡기가 빠져버린 것이다. 의료진은 이 사실을 발생 13분 후에나 발견했다. 진정제를 맞아 자발적으로 호흡할 수 없었던 성은이에게 인공호흡기가 빠져버린 13분은 최악의 상황을 가져왔다. 심정지가 온 성은이의 맥박을 겨우 심폐소생술로 되돌려놨지만 이미 성은이는 뇌사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 달 가까이 하루하루 상태가 나빠지는 성은이를 지켜봤습니다. 처참했습니다. 얼굴이 굳고 생기가 빠져나가는 성은이를 보면서 매분 매초마다 가슴을 쳤습니다. 6월 4일, 인공호흡기 튜브로 피가 역류하는 것을 보며 성은이의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최근 기자가 박연실씨를 만난 날은 마침 성은이가 세상을 떠난 지 꼭 7년째 되던 날이었다. 박씨는 그 전 주말에 바다가 보이는 언덕, 한 그루 나무 아래 묻어둔 성은이에게 다녀왔다고 했다. 성은이를 만나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난 7년간 박씨는 성은이가 왜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설명을 듣고, 병원 측으로부터 사과 한마디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줄곧 실패해왔기 때문이었다.

처음 병원에서는 성은이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다 성은이의 장례가 끝나고 나서는 묵묵부답, 별다른 사과를 하지 않았다. 성은이의 부모가 항의를 하자 그때야 “병원비는 받지 않겠다” “문제가 있다면 법적인 절차를 밟으라”고만 통보했다.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수백 장에 달하는 성은이의 마지막 기록을 읽고 공부하면서 이유를 밝혀내는 일뿐이었어요. 수없이 반복해 읽으면서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객관적으로 물어봤습니다. 내가 과연 감정에 빠져 없는 잘못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봐도 성은이의 사고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연실씨에게 ‘의료사고가 맞다’는 답을 주는 기관은 없었다. 주말마다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지만 병원은 응답하지 않았다. 검찰은 맨 처음 성은이 사건에 대해 의료소비자시민연대에 감정을 의뢰했다가 대한의사협회에서 재감정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기소 의견이 불기소 의견으로 바뀌었다. 민사소송 과정에서 법원은 성은이가 희귀난치병을 앓았던 사실을 지적하며 판결을 내렸다.

“희귀난치병 환자가 죽었다고 해서 그 과정이 모두 질병 때문인 것만은 아닙니다. 의료인의 무지, 실수, 고의 같은 것들이 있었다면 사과하고 명백히 밝혀야 하는 거예요.”

여전히 화가 나고 슬프지만 박연실씨는 이 싸움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 7년 동안 내내 거절의 말만 들어왔던 그였다. “사람들은 이제 그저 잊으라고 해요. 하지만 성은이가 그렇게 갑자기 떠난 이후로 우리 가족은 완전히 무너져버렸습니다. 성은이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왔지만 사실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상고심 재판이 끝나고 나면 저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박씨는 성은이가 떠난 이후 연고지를 한참 떠나 있다가 얼마 전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이사왔다. 평일에는 직장을 다니다가 주말에는 성은이와 마지막까지 함께 보냈던 시골의 한 작은 집에 들러 시간을 보낸다. “요즘은 차라리 슬픔에 젖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괴롭고 외롭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은 저와 같은 일을 겪지 않게 마지막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거죠.”

의료사고로 해결되지 않는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고에 대한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의사단체나 병원이 개입되는 경우가 그중 하나다. 예강이의 경우 1심 재판부에 해당 병원에서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판사가 포함돼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과실을 입증하는 모든 책임이 환자에게 지워진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의료사고를 일으켰을 거라고 의심하는 행위말고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려울 때 의사가 그 행위와 의료사고 간의 관계가 없다고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 환자와 보호자들의 주장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환자의 입증 책임을 줄여주고 환자 권리를 더욱 보장하고 있는 만큼 한국 법원과 병원도 그에 맞춰 변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다른 아픔을 막으려면

투사가 돼 수없이 좌절을 맛본 엄마들은 일종의 책임감을 갖게 된다. 억울함과 분노가 소송을 시작하는 동기가 됐다면 소송을 끌고 가면서 듣고 겪는 수많은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는 책임감을 갖게 만든다. 재윤이가 떠나고 나서 재윤이가 진료받던 병원은 조금 바뀌었다. 응급도구가 하나도 없던 주사실에서 골수검사를 하는 일이 없어졌다.

“병원 친구들이 전해오기를 아이들은 무조건 수술실이나 응급처치가 가능한 처치실에서 골수검사를 받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자주 하는 검사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병원이었다면 언젠가는 재윤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이런 아픔을 겪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더욱 재윤이의 죽음을 밝혀내는 일이 무겁게 느껴지더군요.”

예강이 엄마 최윤주씨도 마찬가지다. 예강이를 잃고 나서 최씨는 모든 일에 무덤덤해졌다고 한다. 슬픈 것을 봐도 슬프지 않고 기쁨도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예강이의 오빠가 자전거 사고로 다쳐 병원에 가야 했을 때, 예강이의 동생이 치과에 가서 마취주사를 맞아야 했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만 느껴질 뿐이었다. 무채색으로 변한 세상에서 최씨가 버텨나가는 힘은 오로지 예강이의 사고에 대한 원인을 밝히는 일이, 다른 많은 의료사고 피해자를 돕는 일이 될 것이라는 믿음뿐이다.

재윤이의 방은 재윤이가 떠나기 전 그대로 남아 있다. 먼지 한 톨 쌓이지 않은 선반 위는 엄마 허수연씨가 얼마나 자주 재윤이를 찾아오는지 짐작하게 할 정도다. 재윤이가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던 날 입었던 옷도 곱게 빨아 옷장 가장 위에 가지런히 개어뒀다. 회색 바탕의 노란색 줄무늬 바지를 쓸어내리며 허수연씨는 매번 다짐한다고 했다. 의료진으로부터 명확한 설명을 들을 때까지 물러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다른 의료사고 피해자들도 의료진에게 충분한 설명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했다.

“요즘도 매일같이 꿈에 재윤이가 나타나요. 재윤이 얼굴을 보고 일어나는 날이면 늘 다짐해요.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겠다고. 모든 사람이 힘들 거라고, 그냥 가슴에 묻으라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는 저희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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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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