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5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뒤로 역대 검찰총장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photo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2017년 7월 25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뒤로 역대 검찰총장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photo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어느 정부나 정권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검찰총장을 새로 앉히는 작업은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과 다름없다. 정권이 중반을 넘어가는 시점에 ‘검찰’이란 ‘칼’이 제멋대로 움직였을 경우 정권이 받게 되는 내상은 야당의 정치공세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칫하면 레임덕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정권은 자신들이 믿을 만한 사람이란 확신을 갖기까지 혈연·학연·지연은 물론이고, 국가정보원이나 경찰이 수집한 과거 인사기록 및 구설까지도 꼼꼼하게 따져 검찰총장을 임명한다. 임기 초반 검찰총장 선임 작업보다 더 많은 공을 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 고차방정식에 마주했다. 오는 7월 임기가 끝나는 문무일 검찰총장의 후임을 고르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사실 2017년 문 총장을 임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중심이 된 적폐수사를 잘 뒷받침할 만한 인물을 고르면 됐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훨씬 복잡해졌다. 지난 4월 29일 국회에서 검경수사권 조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의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차기 검찰총장을 잘못 임명할 경우 정권 3년 차 만에 검찰 조직 전체와 등을 질 수 있다.

이미 검찰 분위기는 격앙되어 있다. 검찰 입장에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는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만큼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조용하던 문무일 총장도 검경수사권 조정안과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지정 이틀 뒤인 5월 1일 반대 입장문을 발표했다. 해외 출장 중임에도 입장문을 냈고, 귀국도 당겼다. 문 총장은 사퇴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총장의 임기가 두 달 남짓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어서 현 총장의 사퇴카드가 큰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검찰 안팎에서는 문 총장의 사퇴 시기보다 차기 총장이 누가 될 것인지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문 총장의 임기는 원래 7월 24일까지다. 하지만 차기 총장 임명을 위해선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논의와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임명을 위한 전초전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사실 국회에서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검찰 안팎에서는 차기 총장 조건을 둘러싸고 여러 말들이 돌았다. ‘A는 정권 실세 누구와 가깝다’ ‘B가 총장이 되면 내년 총선에서 여권에 유리할 것이다’ ‘C는 처남 암호화폐 투자 문제 때문에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 어렵다’ 등등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 국회발 패스트트랙 이슈로 인해 전통적 인선 기준보다는 누가 검경 수사권 조정 입법을 잘 마무리하느냐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바꿔 말하면 정권과 조직의 충돌을 누가 잘 조정할 수 있는 인물인가로 인선 기준이 요약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공수처 도입과 수사권 조정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이 청문위원들의 주요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靑-檢의 정면충돌

정권과 조직(검찰)의 충돌은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은 이번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법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는 분위기고, 청와대는 검찰의 그러한 움직임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검사들 사이에선 이번 개편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표면적으로는 수사의 공정성, 경찰 권력의 비대화를 우려하지만, 따지고 보면 수십 년간 누려왔던 특권을 내려놓는 일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검사들의 불만은 정권도 정권이지만 현 총장에게 쏠려 있다. 결국 사태가 여기까지 오도록 현 검찰 수뇌부가 아무 일도 안 했다는 것이 일선 검사들의 불만이다. 실제로 검찰은 4월 22일 국회에서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 지정 추진에 합의한 뒤 일주일 동안 어떤 식의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지금 주장대로라면 이번 형사사법제도 개혁의 최대 피해자임에도 스스로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문무일 총장은 이 문제를 놓고 진즉부터 사퇴를 거론했으나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모양새가 됐다. 수도권 지청의 한 검사는 “문 총장은 항상 대응이 한발 늦는 것으로 보인다”며 “해외 출장 전부터 이미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몸싸움이 계속됐는데,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게 (퇴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사퇴하는 것 말고는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겉으로는 이런저런 불만을 표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직의 위기의식을 정말 공유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고도 했다.

검찰 내부에서 보기에는 타이밍이 늦은 것으로 보이지만 문 총장은 해외 출장 중 입장표명을 통해 정부 여당 안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모양새다. 당장 문 총장의 항명을 자유한국당에서 기다렸다는 듯 이용하고 있다. 이런 문 총장의 반발에 대한 청와대의 불만도 감지되고 있다. 청와대는 문 총장의 입장 발표에 대한 공개적 대응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 분위기는 다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검찰이 왜 이런 논의가 시작됐는지에 대한 자성은 하지 않고 과거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며 “무책임한 조직이기주의”라고 일갈했다.

고검장급 인사 8명이 우선 거론

양측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차기 검찰총장이 정권과 검찰 양측 입장을 중간에서 조율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차기 검찰총장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누가 있을까. 차기 총장 후보군으로는 현직 고검장급 간부 8명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사법연수원 18기인 문 총장 바로 아래 19기 고검장으로는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 조은석 법무연수원장, 황철규 부산고검장(가나다 순) 3명이 있다. 20기 고검장으로는 김오수 법무부 차관, 김호철 대구고검장, 박정식 서울고검장, 이금로 수원고검장(가나다 순) 4명이 있다. 21기에서도 지난해 동기생 중 유일하게 고검장급으로 승진한 박균택 광주고검장이 있다. 여기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잠재적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중 봉욱 차장, 조은석 원장, 김오수 차관, 이금로 고검장 등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서울 출신의 봉 차장은 검찰 내 기획통으로 꼽힌다. 야당이나 검찰 후배들과의 관계가 두루 원만해 조직 안정의 최적임자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봉 차장을 대검 차장에 임명한 것도, 박근혜 정권 시절 임명됐던 김수남 총장의 교체를 대비해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봉 차장은 신현수 국가정보원 전 기획조정실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신 전 실장은 참여정부 사정비서관을 지냈고, 문재인 캠프에도 몸을 담았다. 정권 초기 민정수석실을 꾸릴 당시 가장 많은 변호사들을 추천한 인물로 알려졌다. 다만 보수적 색채가 강하다는 점이 이 정부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전남 장성 출신의 조은석 법무연수원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경찰의 구조 부실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지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대립각을 세워 한직으로 밀려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두 사람은 연수원 동기였다. 그는 법무연수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임은정 부장검사 등을 연수원 강단에 올린 바 있다. 박 장관이나 임 검사 모두 검찰에 쓴소리를 해왔던 인물이란 점에서 검찰 안팎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조 원장이 총장에 임명될 경우 문 총장에 이어 또다시 호남 출신 총장이 임명된다는 점은 내년 총선을 치르는 여권 입장에서는 고민이 될 수 있다.

김오수 차관은 이낙연 국무총리와 동향인 전남 영광 출신이다. 이 정부 주요 요직이 공석이 될 때마다 매번 하마평에 오를 정도로 현 정권의 신뢰를 받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금융감독원장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특히 법무부 차관으로 있으면서 검경수사권 조정 작업에 관여해 높은 업무수행력을 인정받았다는 후문이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한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을 조정하는 측면에선 적임자란 평가가 나온다. 김 차관은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 강점이자 약점이다.

이금로 수원고검장 역시 정치권과의 관계가 원만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는 과거 국회에 파견 검사로 나와 있으면서 의원들과 두루 원만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언급했듯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첫 검찰 인사로 봉욱 차장 임명과 함께 이 고검장을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알려져 있다. 충청(증평) 출신이란 점에서 지역적 이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같은 충북 출신인 노영민 비서실장이 현 정권 숨은 실세라는 점도 그에게 유리한 포인트다. 다만 과거 수사를 받던 기업 관계자와 골프를 치는 사진까지 언론에 보도되는 등 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될 사안도 남아 있다.

공교롭게도 4명의 후보 중 서울대 출신이 2명(봉욱 차장·김오수 차관), 고려대 출신이 2명(조은석 원장·이금로 고검장)의 구도다. 문무일 현 총장도 고려대 출신인데 역대 검찰인사에서 비(非)서울대 출신이 연달아 총장에 오른 전례는 없다.

차기 검찰총장 인사와 관련한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깜짝 발탁 여부다. 윤 지검장의 차기 총장 발탁 여부는 이 정권 초반부터 관심을 모았던 사안이다. 이 때문에 꾸준히 음해에 시달려오기도 했다. 윤 지검장과 관련해서는 중앙지검장 임명 직후부터 ‘문 총장과 사이가 안 좋다’ ‘청와대 눈 밖에 났다’ 등의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와 법무부가 범죄정보인력 운용을 비롯한 각종 사안에 있어서 윤 지검장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윤석열, 실세 차장으로 자리 옮길까

윤 지검장은 연수원 23기이지만 나이는 앞서 언급한 8인의 고검장들보다 많다. 그가 파격적으로 중앙지검장에 임명된 것도 다른 검찰 선배 기수보다 서울대 학번이 워낙 빨랐다는 점도 고려가 됐다. 하지만 기수 문화가 중요한 검찰 입장에서 윤 지검장이 곧바로 총장이 될 경우 반발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연수원 19기부터 22기까지 모조리 조직을 떠나고, 23기부터 25기까지가 고검장으로 올라서는 것은 너무 파격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자리가 많아져서) 젊은 검사들이 좋아할 것”이란 농담이 나올 정도다. 정치권의 반발 역시 거셀 수 있다. 그가 청문회에 나올 경우 검경수사권 조정보다 지난 2년간의 적폐 수사 정당성이 쟁점화되면서 청와대가 정치적 부담에 휘말릴 수 있다.

이번 총장의 임기는 예정대로라면 2021년 7월까지다.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이 1년 가까이 남은 시점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한 차례 더 검찰총장을 임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윤석열 지검장을 바로 총장에 앉히지 않고 차장을 거쳐 차기 검찰총장에 앉히는 방안이 최근 들어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지검장이 검경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정부 입장을 순순히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그는 평소 ‘뼛속까지 검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검찰 조직에 충성해온 사람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윤 지검장이 검찰총장에 앉기 위해서는 올해 생긴 수원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겼어야 했는데, 여기에 가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이번보다는 다음 총장에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경수사권 조정이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윤 지검장이 총장이 되는 것이 현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기 검찰총장 임명은 5월 초 법무부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후보 천거 준비 작업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장관이 추천위원을 임명·위촉하면 추천위는 장관 등이 천거한 심사대상자들을 심사해 3배수 이상의 후보자를 추천하고, 장관은 이 중 1명을 검찰총장 후보로 대통령에게 제청한다. 문 총장 임기가 7월 하순에 끝나기 때문에 국회 청문회 일정을 감안할 때 6월 말쯤에는 후보군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문 총장이 사퇴 카드를 강행할 경우 인선 작업은 더욱 당겨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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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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