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후 인터넷 등 매체 늘면서 의료광고 시장 폭발
‘방송광고 허용’ 논란 속 부실한 심의규제 문제 제기도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스크린도어 속 성형외과 광고.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스크린도어 속 성형외과 광고.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올해가 병원 방송 광고의 원년이 될 것이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성형외과 마케팅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다. 지난해 12월 17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2011년 업무계획’ 자리에서 “2010년 말까지 의료법을 개정해 의료분야의 케이블TV 광고를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현재 의료광고가 제한된 매체는 방송뿐인데 방통위가 이에 대한 빗장을 풀려는 것이다.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의 리젠 성형외과 홍보담당자 김진범씨는 “올 중순부터는 광고제작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특히 같은 브랜드를 쓰는 대형 네트워크 병원(여러 병원이 하나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형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방송광고를 준비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의료광고는 잡지인쇄광고와 옥외광고(현수막·전단·벽보)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러다 2007년 의료광고법 개정으로 신문광고(일간지)가 가능해졌다. 이후 인터넷의 발달로 포털사이트 검색광고, 인터넷 언론기사광고, 배너광고가 등장하며 의료 광고시장에 불이 붙었다. 최근 2~3년 사이에는 버스와 지하철 내·외관 광고, 버스의 정류장 하차 전 음성광고, 극장 상영관 영상광고도 등장했고 마지막으로 방송광고 허용까지 앞두고 있다.

3년 새 인터넷 제약·의료 광고 2배 넘어

광고 허용 매체의 확산에 따라 의료광고 시장도 커져왔다. 한국광고단체연합회(KFAA)에 따르면 5년 전인 2006년 의료광고 시장은 잡지광고 116억원이 대부분이었다. 2010년에는 신문·잡지광고 227억원, 인터넷광고 266억원에 이를 만큼 시장이 커졌다. 집계가 쉽지 않은 옥외광고까지 포함하면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진다. 특히 인터넷매체를 이용한 의료광고의 증가 폭이 크다. 지난 3년간 전체 인터넷 의료광고 시장은 1.5배 증가했고 그중에서도 제약·의료 광고는 2배 이상 증가했다.

병원 컨설팅 업체들이 체감하는 의료광고 시장의 성장 규모는 더욱 크다. 네트워크 병원의 경우 연간 광고비가 약 4억~5억원 수준이다. 10년째 병원컨설팅 전문기업 ‘닥터뷰’를 경영하고 있는 김업 대표는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으나 현장에서 느끼기에 병원 광고는 매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최근 병원 광고 규모는 연간 1000억원은 충분히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광고 시장이 커진 주요 요인은 인터넷이다. 입소문에 의존했던 소비자들이 인터넷 검색을 한 후 특정 병원을 골라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많이 노출될수록 손님이 늘어나는 셈이다. 이에 따라 포털사이트 검색 엔진에 등록하고, 홈페이지와 배너광고를 제작하고, 블로그에 정보를 올리는 인터넷 병원 광고대행업체가 5년 전부터 우후죽순 생겼다. 병원들은 인터넷 검색 광고 효과를 높이기 위해 연예인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양악수술(턱뼈나 치아의 불규칙성을 교정하는 수술)의 경우 개그맨 임혁필씨가 직접 수술을 하고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인터넷에 ‘임혁필 양악’이라고 검색하면 수술을 집도했던 병원이 제일 상단에 검색된다. 이 모든 것이 기획된 광고다.

현재 병원광고 주체는 대부분 치과, 성형외과, 피부과와 같은 ‘비보험 미용진료 기관’이다. 외모를 경쟁력으로 여기는 시대 분위기에 따라 미용진료를 하는 병원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병원도 광고를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10년 전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손님이 제 발로 찾아왔지만 이제는 병원도 기업처럼 대중들에게 쉽게 각인될 ‘브랜드’를 만들어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같은 브랜드를 여러 의원이 함께 사용해 개인 의원의 영세함을 돌파하는 ‘네트워크 병원’들이 주요 광고주다. 이들 대형 네트워크 병원은 경영·마케팅을 전문 컨설팅 업체에 맡기거나 내부에 별도 전담 인력을 두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성형외과는 20여명의 마케팅 직원이 4개 팀으로 나눠져 키워드 광고, 블로그, 커뮤니티, 소셜네트워크(SNS) 홍보 업무를 한다. 중국·일본인 대상 성형관광이나 영리법인화 추진 등과 맞물려 병원마케팅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인터넷 광고는 아예 심의도 안해

하지만 의료광고시장의 성장에 비해 심의규제는 미약하다. 현재 의료광고심의위원회는 한의학·치의학·양의학 세 분야로 나뉘어 의료광고물에 대한 사전심의를 한다. 의료광고법에 의거해 심의대상은 신문·잡지·옥외광고물(현수막·벽보·전단)이 전부다. 하지만 다섯 명의 직원이 매주 80~100여건의 심의를 하다 보니 업무가 벅차다고 한다. 일반심사에서 판단이 어려운 광고들은 의료인, 법조인, 시민단체 전문가 등 10~20명으로 구성된 심층심의회에서 1주일에 한 번씩 별도심사가 이뤄진다. 인터넷언론이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광고들은 사후규제를 하려고 애쓰지만 인력부족으로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부실한 의료광고 심의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이 받는다. 소비자시민모임(회장 김재옥)은 2009년 10월 의료광고 심의대상 제외 매체(버스·지하철 이동수단, 인터넷)를 모니터링한 결과 18.6%가 의학계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전문병원’을 광고하며 소비자를 오인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기나 수술의 효능을 과장 광고한 경우도 17%나 됐다. 일부 병원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이나 ‘네이버’에 미용·성형 커뮤니티를 이용해 의학적 검증은 받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은밀히 시술하는 고가의 수술을 추천하기도 한다. 수술 전후 사진이 첨부된 ‘성공후기’를 올리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왜곡하기 쉽다.

절름발이 부작용을 낳은 종아리 퇴축술이나 피부에 붉은 점박이 부작용을 일으킨 심부박피재생술 등이 잘못된 인터넷 정보로 인기를 끌다가 후유증만 남긴 대표적 사례다. 의료광고심의위원회 정진택 국장은 “의료광고법을 개정해 심의대상을 인터넷 광고로까지 넓힐 계획이며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큰 규모의 심의기구를 구성하는 방향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급증하는 의료광고 시장과 부실한 심의 규제가 엇갈려 돌아가는 와중에 ‘방송광고 허용’은 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네트워크 병원업계는 전달력과 신뢰도가 높은 방송 광고를 환영하는 눈치다. 반면 보건복지부와 시민단체에서는 방송광고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의료자원과 이창준 과장은 “방송 의료광고 심의규제도 논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광고 시장을 더욱 완화할 경우 무분별한 의료시술 남용위험과 의료비 상승 등의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소비자시민모임 유명 조사부장은 “소비자의 선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광고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면서도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광고를 통해 유행처럼 퍼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키워드

#광고
이은규 인턴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