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북악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가 안개와 미세먼지에 싸여 있다. ⓒphoto 연합
지난 4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북악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가 안개와 미세먼지에 싸여 있다. ⓒphoto 연합

4월 26일 현재 중부지방 미세먼지는 ‘한때 나쁨’이다. ‘미세먼지 농도’ 예보 등급으로 ‘좋음/나쁨’ 표현이 맞을까? ‘미세먼지 좋음’ ‘미세먼지 나쁨’이라는 말은 일상용어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버렸다. 그런데 기자는 이 말을 볼 때마다 이상하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듯 불편하고 거슬린다. 글쟁이들 사이에서는 이 표현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초등생 중에도 “미세먼지가 왜 좋아요? 미세먼지는 다 나쁜 것 아니에요?”라고 묻는 아이들이 꽤 된다.

미세먼지 ‘속성’은 원래 다 나쁜 것이고, 미세먼지 ‘농도’는 ‘높음/낮음’이나 ‘많음/적음’으로 표현해야 옳다. 미세먼지 예보 등급을 ‘좋음/나쁨’으로 표기하는 건 문법적으로 틀리다. 예보 등급을 최초로 정한 정책관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터, 왜 ‘좋음/나쁨’으로 표기하게 됐을까. 사소한 호기심으로 ‘미세먼지’ 예보 등급제의 시발을 조사해 봤다.

우리나라에서 미세먼지등급예보제 실시를 시작하게 된 건 2013년 8월부터다. 환경부 산하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이 예보 주체다. 원래는 좋음(0~30), 보통(31~80), 약간나쁨(81~120), 나쁨(121~200), 매우나쁨(201~)의 다섯 단계였다가 ‘약간나쁨’을 제외한 네 단계, 즉 좋음(0~30), 보통(31~80), 나쁨(81~150), 매우나쁨(150~)으로 자리 잡았다. ‘약간나쁨’ 등급은 야외활동을 해도 된다는 건지, 안 된다는 건지 애매한 표현이어서 혼란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많아 중간에 없앴다고 한다.

‘미세먼지 좋음/나쁨’은 인체의 건강을 고려한 표현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미세먼지 나쁨’이란 표현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야외활동하기에) 나쁨’ 혹은 ‘미세먼지 (농도가 인체의 건강에 해로울 정도로) 나쁨’이라는 뜻이 함유돼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문의하자 담당자인 이모 연구관은 “농도 수준뿐 아니라 보건학적으로 고려한 표현”이라고 답했고, 국립환경과학원 홍모 과장은 “수용체인 사람을 중심으로 한 표현”이라고 했다. 미세먼지의 유해성 측면에서 보면 1㎍도 인체에 유해할 수 있으므로 어느 수준에서 ‘높다/낮다’를 규정하긴 애매하다는 설명이다.

외국의 미세먼지 등급제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미국환경보호청(EPA)은 우리보다 많은 여섯 단계다. △좋음(Good)/미세먼지 농도 0~50 △보통(Moderate)/51~100 △민감집단 건강에 나쁨(Unhealthy for Sensitive Groups)/101~150 △건강에 나쁨(Unhealthy)/151~200 △건강에 매우 나쁨(Very Unhealthy)/201~300 △위험(Hazardous)/301~500. 다만 미국은 예보 등급의 제목이 ‘공기 질 지표(Air Quality Index)-미세먼지’로 돼 있다. 공기 질이 ‘좋다/나쁘다’는 표현이므로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공기 질’은 쏙 빠지고 ‘미세먼지 좋음/나쁨’으로 표기돼 있어 문법적으로 틀린 말이 돼 버렸다.

한때 고속도로의 ‘갓길’은 ‘길어깨’였다. ‘roadshoulder’를 직역하면서 생긴 어색한 표현이다. 1990년대 초, ‘길어깨’를 ‘갓길’로 바로잡은 사람은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이 교수는 ‘길어깨’라는 표현을 볼 때마다 경기(驚氣)를 일으킬 정도로 이상하게 여겨 대대적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미세먼지 좋음/나쁨’은 틀린 표현이다. 이를 ‘미세먼지 많음-공기질 나쁨’으로 바꾸면 어떨까. 아무리 보건학적 차원을 고려해 단순화한 표현이라도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을 꼭 써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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