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웅동중학교 초입. K2·JSA·하버드·외인촌 등 기상천외한 이름의 모텔들이 보였다. 학교까지 가면서 세어본 모텔만 6곳. 대개 학교 반경 200m까지는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으로 지정돼 러브호텔이 들어설 수 없다. ‘중학생들이 등교하는 학교 입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문은 금세 풀렸다. 웅동중학교 버스정류장에서 ‘학교까지 500m’라는 입간판이 보였기 때문이다. 모텔만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오가는 통학로 초입에는 쓰레기더미가 널브러져 있었고, 녹이 슬어 흉물스러운 철공소도 속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통학로는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500m가량의 산길을 걸어 올라가서야 ‘웅동중학교’ 팻말이 붙은 교문이 나왔다.

웅동중학교는 학교법인 웅동학원 소유의 사립중학교다. 웅동중학교 현 소재지의 행정지명은 창원시 진해구 웅동1동(법정동은 두동). 전교생 수 226명에 불과한 산골 학교지만,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발탁된 조국 서울대 교수 집안의 학교로 전국적 유명세를 탔다. 이 학교는 재산세 2000여만원을 장기간 체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 학교의 각별한 인연도 유명세를 더욱 키웠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3월 대통령 신분으로 산 중턱의 이 학교를 찾았다. 국군통수권자 자격으로 진해 해군사관학교 임관식을 주재한 직후였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은 2001년 이 학교에서 명사초청 특강을 하기도 했다. 학교 본관 앞에는 2003년 방문 때 노 전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아파트로 개발된 옛 웅동중학교 부지와 4·3독립만세운동 발원지 표지석.
아파트로 개발된 옛 웅동중학교 부지와 4·3독립만세운동 발원지 표지석.

1985년 조국 부친이 인수

웅동중학교와 조국 민정수석 집안과의 인연은 1985년부터 시작된다. 조 수석 부친으로 2013년 작고한 조변현씨가 학교를 인수해 이사장에 취임하면서부터다. 이 지역 출신 인사들에 따르면, 조변현씨 역시 웅동 출신으로 진해고등학교와 고려대를 나왔다. 이후 부산에서 고려종합건설이란 지방 건설업체를 운영했다. 조씨의 부인이자 현 이사장인 박정숙씨 집안 역시 6·25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와 웅동에 정착했고, 박씨는 진해여고를 나왔다. 조 수석 부친이 웅동중학교를 인수하게 된 데는 웅동 지역 유지들이 성공한 출향(出鄕) 건설업자인 조씨 부부에게 학생 수가 줄어 재정사정이 좋지 않은 웅동중학교 인수를 권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조 수석 부친 역시 숙부가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터라 지역 유지들의 부탁을 들어 1985년 학교를 인수했다.

하지만 1985년부터 이사장으로 학교를 경영해온 조변현씨는 IMF경제위기 와중인 1998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다. 옛 웅동면 면소재지(법정동은 마천동) 한가운데 있던 알짜배기 학교 부지를 지방 건설업체에 아파트 부지로 내어주고, 도보로 30분 정도 떨어진 산 중턱에 신축 교사를 지어 올라간 것. 현재 러브호텔로 포위된 산 중턱에 있는 웅동중학교는 1997년까지만 해도 웅동1동 사무소, 웅동파출소, 웅동우체국, 웅동초등학교, 웅동농협 등이 모두 모여 있는 곳에 함께 있었다. 반면 지금의 학교 부지는 원래 학교법인 소유 야산이었다고는 하나, 학교 부지로 허가를 내줘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주변 환경이 좋지 않다. 학교 뒤쪽 주차장으로 쓰는 공터에는 지금도 산지를 절개하느라 세운 옹벽과 나무를 베어낸 흔적이 뚜렷했다.

학교가 산 중턱으로 이전하면서 원래 읍내에 있던 학교 부지는 2001년 남명산업개발이란 지방 건설회사가 낙찰받았다. 이 건설사는 학교 부지와 인근 논밭을 한데 묶어서 498가구의 ‘남명플럼빌리지’란 아파트와 상가를 지어올렸고 2004년에 입주를 마쳤다. 현재 웅동중학교와 논밭들이 있던 부지에는 최고 18층 높이의 아파트 5동이 솟아올라 있다. 해당 부지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원래 학교가 있던 이 부지는 지금은 학교 용지에서 해제된 상태다.

지역에서는 “학교가 어려워 아파트 부지로 땅을 팔고 산으로 올라간 것”이란 소문이 팽배했다. 실제 학교가 옮겨간 곳(두동 1166-4)의 개별공시지가는 ㎡당 6만9800원(2000년)에서 31만6800원(2016년)까지 5배 가까이 폭등했다. 학교법인 소유의 버려진 야산에 불과했던 땅이 환골탈태한 셈이다. 또 아파트로 개발된 옛 학교 부지(마천동 99-3)의 개별공시지가는 ㎡당 25만8000원(1997년)에서 71만7300원(2016년)까지 3배 가까이 급등했다. 결과적으로 양측은 학교 부지 이전을 통해 지가상승에 따른 상당한 시세차익을 거둔 셈이다. 웅동 옆 동네에 있는 웅천중학교 관계자는 “학교 뒤로 국도 2호선 새 도로가 뚫리면서 도로 소음이 심해졌고, 인근 마천주물공단의 분진으로 학습 환경이 나빠 옮겨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도 2호선 웅동 통과 구간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직선화 확장개량 공사를 하면서 이미 웅동읍내와 옛 웅동중학교를 비켜가도록 설계됐다. 옛 웅동중학교 부지와 국도 2호선, 마천주물공단은 하천인 대장천을 통해 어느 정도 이격거리가 있다.

어찌됐든 학교가 산 중턱으로 옮겨가면서 난감해진 것은 웅동초등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이다. 웅동초등학교의 한 관계자는 “웅동초 학생들은 거의 100% 웅동중학교로 진학한다”고 했다. 산 중턱으로 옮겨간 웅동중학교는 새로 건물을 지어 교사(校舍)는 예전보다 좋아졌다지만, 통학거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 도보로 통학하더라도 모텔 앞을 지나쳐야 한다. 산자락 아래 버스정류장을 통과하는 2개 시내버스가 있다지만, 좌석버스는 승객이 적다는 이유로 중학교 앞에는 아예 정차조차 않는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웅동중학교는 사립학교지만 학교버스는 따로 운영하지 않는다. 이에 궁여지책으로 등하교 시간에만 산 중턱 교문 앞까지 임시로 운행하는 마을버스로 학생들을 통학시키고 있다.

초대 교장은 정의화 전 국회의장 부친

웅동중 본관 앞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식수.
웅동중 본관 앞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식수.

학교를 옛 면소재지에서 산 중턱으로 옮기면서 역사성도 상당 부분 상실했다. 웅동중학교는 원래 지역에서 유서 깊은 명문 사학(私學)이다. 모태는 일제강점기인 1908년 세워진 사립 ‘계광(啓光)학교’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계광학교는 지금의 웅동초등학교 건너편에 있었다고 한다. 계광학교 교사들은 1919년 웅동지역의 4·3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일제는 진해에 해군기지를 만들면서 식수를 공급할 수원지를 웅동에 조성했는데, 토지를 강제수용당한 주민들이 만세운동을 벌인 것이다. 이후 일제의 눈에 찍혀 1933년에 폐교됐던 계광학교는 광복 직후인 1946년에 웅동고등공민학교(중학교 과정에 해당)로 부활했다.

지금의 웅동 소사마을회관 자리에 있던 웅동고등공민학교가 대장천(川)변의 벌판에 천막교사를 짓고 웅동중학교로 다시 태어난 것은 1952년이다. 천막교사가 지어진 부지는 1919년 계광학교 교사들이 4·3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곳으로, 일제가 조성한 웅동수원지에서 흘러나온 소사천과 대장천이 합류하는 지점의 벌판이다. 웅동중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당시 천막학교를 운영했던 사람이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선친으로 웅동 소사리(법정동은 소사동) 출신인 정윤호씨다. 정의화 전 의장 역시 웅동중학교 교장 사택에서 태어났다. 정의화 전 의장은 국회의장 퇴임을 앞둔 2015년 7월 웅동중학교와 고향 마을(소사)을 찾아서 마을주민들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런 연혁 때문에 읍내를 떠난 지금도 웅동중학교는 계광학교를 학교의 뿌리로 삼는다. 학교 운동장 한편의 강당 이름도 ‘계광누리’다. 매년 4월 3일이면 4·3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 수가 계속 줄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희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웅동초등학교와 웅동중학교의 학군인 웅동1동의 주민등록인구가 통합창원시 출범 때인 2010년 8661명에서 7330명(2017년 4월 기준)까지 줄어 대다수 농촌학교와 마찬가지로 명맥만 유지 중이다. 진해 최대 기업인 STX조선이 웅동에 기존 385가구 사원아파트에 더해 추가로 564가구의 사원아파트를 지어 올리면서 지역에 잠시 생기가 돌았지만 STX조선의 워크아웃과 함께 아파트 건설도 중단됐다. 공사를 넘겨받은 경남기업마저 2015년 성완종 회장의 자살로 흔들리면서 지금은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인근 웅동2동(용원동)의 경우 부산신항의 배후단지로 인구가 급증했다지만 웅동중학교와는 학군(學群) 자체가 다르다. 웅동2동 학생들은 인구가 밀집한 주거단지 한가운데 있는 안골포중학교와 용원중학교를 더 선호한다. 이들 학교는 각각 2003년과 2009년 개교해 역사적으로는 웅동중학교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신생 공립학교다. 웅동2동 주민들 중에는 부산 등지에서 온 주민들도 많은데 이들 중에는 위장전입을 통해 부산 강서구에 있는 녹산중학교 등지로 자녀들을 진학시키는 경우도 있다. ‘100년 역사’는 말 그대로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말일 뿐이다. 실제 같은 농촌지역으로 주민등록인구가 4143명에 불과한 바로 옆 웅천동의 웅천중학교(옛 진해동중)는 이미 2002년 폐교 수순을 밟았다. 웅동중학교 역시 지난 2월 배출된 졸업생이 68명에 불과했다.

결국 웅동중학교의 재산세 장기 체납논란은 농촌지역 학교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많다. 대다수 사립학교와 마찬가지로 도교육청 등의 재정결손 보조금을 받아서 연명하는 사실상 무늬만 사립학교인 셈이다. 웅동중학교는 지난 5월 16일 박정숙 이사장 명의로 “지난 3년간 지방세 체납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의 뜻을 표한다”며 “보도 이후 급전을 마련해 2248만원을 납부했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학교의 실질운영에도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학교를 통하여 사익(私益)을 추구한 적이 없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농촌 학교라고 해도 조 수석의 모친 박정숙씨가 학교 이사장으로, 조 수석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학교 이사로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이 학교 경영에 권한과 책임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보기 힘들다. 웅동중학교 행정실장 정모씨 역시 조 수석의 처남으로 알려졌다. 조국 민정수석도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웅동중학교의 이사로 등재돼 있었다. 결국 100년 역사 명문 사학의 존폐 여부가 신임 청와대 민정수석 일가의 학교 경영능력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