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의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커넥티드 케어 솔루션’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의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커넥티드 케어 솔루션’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의 IT 기업이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분야마다 ‘꿈의 OO’이라고 불리는 모델이 있다. 의료계에는 어떨까. 환자들에게 ‘꿈의 병원’은 합리적인 비용으로 쾌적한 환경에서 정확하고 효율적인 진료를 받는 곳이다. 의사에게 ‘꿈의 병원’은 의술(醫術)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이다. 의사들은 환자 한 명 한 명을 신경 써서 진료할 수 있고 적절한 치료 방법을 즉각 적용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간호사에게 ‘꿈의 병원’은 쾌적한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곳이다.

직장인이 ‘꿈의 직장’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의사와 환자에게 ‘꿈의 병원’을 찾는 것은 더 어렵다. 중소 병원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대형 병원으로만 환자가 쏠리는 상황에서 환자와 의사, 간호사와 직원들까지 다니고 싶어할 만한 곳을 만들겠다고 나선 병원이 있다. 1982년 경기도 부천에서 심혈관질환 전문병원으로 개원한 ‘세종병원’이다. 심혈관질환에 대한 치료로는 대형병원 못지않은 인지도와 전문성을 자랑하는 세종병원은 지난 3월 인천 계양구에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을 새로 지었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의 건설을 지휘한 박진식 이사장의 말에 따르면 “가장 현대적이고 이상적인 병원”이다. 그 말을 증명하기 위해 박 이사장은 손님이 올 때마다 직접 병원을 안내하고 있다.

박진식 이사장의 뒤를 따라 병원 6층을 먼저 둘러봤다. 중환자실이 있는 6층은 예술작품이 전시된 1층이나 환자들로 북적이는 2층과 달리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중에서도 6층 구석에 있는 모니터링실에는 진지한 표정의 의료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8개의 모니터가 화면을 바꿔가며 보여주는 것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혈압, 맥박, 심전도 같은 생명 징후들이다. 모니터 앞에서 박 이사장은 휴대전화를 들어 앱 하나를 구동시켰다.

“커넥티드 케어 솔루션(Connected Patient Monitoring Solution)이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은 병원에 입원한 모든 환자들의 생명 징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환자 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담당의사의 스마트폰 앱에서도 환자의 혈압, 맥박, 심전도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니터링실에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자의 상태를 체크한다. 아예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팀도 따로 있다. ‘스카우트(SCOUT·Sejong Critical Care Outreach Team)’라고 이름을 붙인 신속대응팀은 환자의 상태를 늘 모니터링하다가 이상징후가 보이면 곧바로 처치에 들어간다. 대개 심혈관질환은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 급속도로 진행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증상 발현 전에 이상징후를 보인다. 만약 미리 환자의 상태를 파악해 처치할 수 있다면 최악의 상황을 막는 것은 물론 훨씬 효율적으로 환자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하루는 병원 직원이 상(喪)을 당해서 의사들 대부분이 장례식장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카우트팀에서 한 환자의 상태가 걱정된다고 연락이 왔더군요. 외과 수술을 받으려고 입원한 환자인데 심전도가 이상하다고요. 환자 등록번호를 받아 그곳에서 곧바로 환자의 상태를 살펴봤습니다. 자세히 보니 부정맥이 생긴 것 같더군요. 스카우트팀이 곧바로 응급처치에 들어갔고 담당의사가 가서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증상이 나타난 뒤에 손을 썼으면 늦었을 텐데 다행이었죠.”

예전에는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려면 전화로 전해 듣거나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확신을 가지고 판단을 내리기에 정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제때 환자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스카우트팀과 ‘커넥티드 케어 솔루션 시스템’은 의사가 실시간으로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시간이 생명인 심혈관질환 치료에는 매우 획기적인 전기(轉機)를 마련한 셈이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의 시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7월 말부터 아예 모든 환자의 징후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스스로 판단하여 담당의사에게 알려주는 인공지능(AI) ‘이지스’를 개발해 도입했다. 박진식 이사장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사람보다 30%나 높은 예측률을 보여준다.

“진정한 ‘실시간 모니터링’이 되려면 인간보다 정확한 인공지능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좋은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의 전경.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의 전경.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디지털 시대 병원도 변화해야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에 도입된 시스템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신선하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병원의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환자를 건강하게 귀가시키는 일이다. 세종병원은 심혈관질환 전문병원인 만큼 세종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최소한 심혈관질환으로 악화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 예전에는 전문의가 24시간 뛰어다니며 차트를 읽고 환자의 상태를 직접 확인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환자를 돌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아직도 대부분 병원은 예전 관습에 젖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단적인 것이 병원의 수납 시스템이다. 예전에는 수기(手記)로 진단서를 쓰고 진료비를 계산하다 보니 진료접수, 수납, 서류신청을 다 따로 해야 했다. 병원을 찾는 환자와 보호자가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디지털화된 병원에서는 한자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에서는 그렇게 하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병원비 수납 업무도 담당하게 된 것이다.

환자 입장에서 동선을 그려보자.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에 처음 내원하는 환자라면 1층의 작은 접수창구에서 등록을 하게 된다. 두 번째부터는 1층에 들를 필요없이 전문센터에 들어가면 된다. 2층 심장혈관센터에 방문한 환자는 그곳 간호센터에서 접수도 하고 수납도 하고 처방전도 받으면 된다. 만약 검사가 필요하다면 센터 안에서 이어진 검사실에서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도 확인한 후 귀가하면 된다.

이런 시스템을 갖추려면 무엇보다 병원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박진식 이사장은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은 지을 때부터 아예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병원 복도는 말 그대로 이동 공간일 뿐이고 1층 로비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휴식 공간이다. 지역주민과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따로 마련돼 있고 악기 연주도 이뤄진다. 카페가 널찍이 자리 잡아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는 주민 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환자의 동선이 최소화된 공간 설계에서 알 수 있듯이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에는 다양한 실험이 진행 중이다. 메디플렉스(Mediplex)라는 이름은 의료(Medicine)와 복합체(Complex)의 합성어다. 심혈관질환 전문병원인 세종병원뿐 아니라 다른 다양한 전문병원이 함께 한자리에서 환자를 맞이하는 ‘의료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만든 이름이다. 1층에는 안과 전문병원으로 유명한 한길안과병원의 ‘한길안센터’가 있고 3층에는 산부인과 전문병원인 서울여성병원의 ‘서울여성센터’가 있다.

원래 전문병원 인증제도가 도입된 것은 대형 병원에만 환자가 쏠리는 현상을 막고 전문성을 갖춘 중소 병원을 키워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전문병원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보니 여러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일일이 전문병원을 찾아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겪기도 했다.

“심혈관질환은 노인들이 많이 앓는 질환입니다. 만약 노인들이 자주 앓는 질환을 분야별로 한자리에서 치료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렇다고 해서 다른 과목 치료 경험이 부족한 세종병원이 무작정 새로운 과(科)를 신설할 수 없습니다. 전문병원끼리 협력한다면 가능하죠.” 녹내장을 앓는 부정맥 환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환자는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에서 안(眼)질환과 심혈관질환을 모두 치료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병실부터 진료실까지 완전히 바꾼 세종병원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의 여러 실험적 시도를 한데 놓고 보면 뚜렷한 방향성이 보인다. 바로 ‘환자의 건강’이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최소의 비용으로 효율적이지만 신속하게 환자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병원이라면 어디서나 환자의 건강을 목표로 삼기 마련이지만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에서는 눈으로 이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병원의 입원실은 대부분 4인실이다. 6인실은 없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되면서 4인실까지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6인실을 많이 만들어 환자를 더 많이 수용할 수도 있었지만 환자와 보호자의 쾌적함, 효율적인 환자 관리는 물론 감염성 질환을 예방하는 데도 4인실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진식 이사장의 설명이다. 6인실로 하면 450병상은 만들 수 있는데 4인실로 줄여 300병상을 갓 넘기는 규모로 입원실을 완성했다.

4인실 병실 한가운데는 격벽이 세워져 있다. 커튼이 아니다. 옆자리 환자·보호자와 분리되도록 아예 격벽을 세운 데도 이유가 있다. 공기 중으로 감염되는 질환의 경우 환자의 비말(飛沫)이 최대 2~3m 높이까지 튈 수 있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는 커튼은 감염을 제대로 막지 못할 뿐더러 환자와 보호자의 프라이버시도 지켜주지 못한다.

그리고 모든 병실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으로 운영된다. 간병인이 필요 없이 간호사가 간병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병실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대부분의 병원처럼 병동 한가운데에 간호데스크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일이 있을 때마다 병동 한가운데서 병실로 간호사가 많이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은 아예 병실을 설계할 때부터 병실 앞에 작은 간호데스크를 만들어 한 명의 간호사가 언제나 병실 두 개를 확인하며 환자를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병동 한가운데의 간호데스크는 최소한으로 줄였다. 박진식 이사장은 “환자들이 감시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으면서 간호사들이 사각지대 없이 환자를 관찰하기 위해서 어떤 구조로 설계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며 “의사들은 물론 간호사, 환자의 의견까지 다양하게 청취하면서 병실을 설계했다”고 말했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의 설계를 시작한 것은 2009년, 8년 전의 일이다. 8년 동안 디지털 시대 병원이 갖춰야 하는 새로운 시스템과 구조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고민해가며 만든 것이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이다. 자연히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꿈의 병원’이 됐다. 박진식 이사장은 “국내 최고의 심혈관질환 전문병원의 의료진이 그대로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에 자리 잡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뛰어난 의료진,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의료시스템, 환자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구조, 모든 것을 갖춘 병원이라고 자부합니다. 병원 의료진과 직원들이 모여 만들어낼 미래가 너무 기대가 됩니다.”

인터뷰 | 박진식 혜원의료재단·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이사장

“이윤보다 환자 건강이 먼저… 결국 환자들도 알아줄 것”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심장병 전문의로 한창 유명세를 떨치던 박영관 혜원의료재단 회장이 1982년 ‘전문병원’을 세우겠다고 나서자 주변 모든 사람이 만류하기 시작했다. “심장병 특성상 치료하려면 수술실, 응급실 같은 시설부터 의료기구와 기술까지 필요한 것이 정말 많거든요. 성공은커녕 병원이 유지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데 전문병원을 세우겠다는 아버지 박영관 회장의 고집이 대단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박영관 회장의 아들 박진식 이사장은 아버지의 모험 정신을 꼭 닮았다.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심장병 환자가 많다는 이유로 환자들에게 더 많은 치료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 심장병 전문병원을 덜컥 세운 아버지처럼 박 이사장도 새로운 모험을 하고 있다.

“세종병원은 30년 넘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심혈관질환은 대형병원에서만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세종병원으로 인해 전문병원에서도 그에 못지않게 더 섬세하고 전문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대개 중증질환에 걸린 환자가 주변에서 병원을 추천받으면 으레 대형 병원이 먼저 언급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심혈관질환은 좀 다르다. 세종병원은 주변인이 추천하는 병원으로 늘 빠지지 않는다.

“심혈관질환은 단시간 내에 제때 치료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그러나 대형 병원은 워낙 환자 수도 많아 심혈관질환 치료를 받기에 시간에 쫓길 때가 종종 있어요.”

세종병원은 그렇지 않다. 24시간 전문의가 상주하는 응급치료 시스템은 심혈관질환 환자에게 최적의, 최단 기간의 치료를 제공해준다. 의료 기술은 대형 병원에 못지않다. 국내 최초로 인공심장을 개발해 송아지에 이식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심장이식 수술 기술은 국내에서도 최상위 수준에 속한다. 대학병원 대신 세종병원에서 수련 과정을 밟는 의사도 많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료시스템에 기술까지 합쳐지니 최단 기간에 수술 2만례(例)를 돌파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저는 경영자로서 미래를 봐야 했습니다. 미래의 병원은 지금과 같은 모습일까요. 병원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 저와 병원 의료진, 전 직원의 일치된 의견이었습니다.”

여전히 심장 전문의로 활동 중인 박진식 이사장의 의료 경험은 병원의 미래를 그리는 데 도움이 됐다. 모바일 앱을 도입하고 병원 시스템을 디지털화하는 외적인 변화뿐 아니라 진짜 의사가, 환자가, 간호사가 바라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8년이라는 시간을 들였다.

“아예 새로운 형태의 병원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병원 규모를 키워 확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동선, 새로운 구조,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죠. 그건 병원과 미래 의료기술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은 박진식 이사장과 병원 전 구성원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24시간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스카우트팀과 모니터링 시스템, 환자에게 최적화된 병원 구조를 직접 일일이 설명하는 박진식 이사장에게 물어봤다. “환자들이 이걸 다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나요?” 잠시의 고민도 없이 박 이사장이 대답했다.

“예전부터 지금도 잘나가는 병원이 왜 굳이 모험을 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을 지으면서는 이윤에 대한 고민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그랬듯 환자의 건강만을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는 환자들이 알아줄 것이라는 것, 환자들에 대한 믿음이 과감한 모험을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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