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문화공간 ‘통의동 보안여관’의 구관 전시공간에 토종벼 ‘흑갱’의 표본작품이 걸려 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복합문화공간 ‘통의동 보안여관’의 구관 전시공간에 토종벼 ‘흑갱’의 표본작품이 걸려 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가위찰, 각씨나, 까투리찰, 금나, 나미, 단두나, 녹두고, 다백조, 달골못, 구천조, 다다조, 대궐도, 앉은뱅이, 불도, 북흑조, 흑갱, 자치나, 올못개….

생소한 단어들의 정체는 수천 년 동안 우리 땅이 키운 토종벼 품종의 이름이다. 1914년 조선총독부 식산국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에서 조사된 토종벼 품종은 1451종에 달했다. 그 많던 토종쌀이 현재는 우리 식탁에서 자취를 감췄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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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게 예술이다, 쌀

토종벼는 근현대사에 희생된 비운의 주인공이다. 당시 한반도에서 멸종위기에 있는 토종벼가 갤러리에서 부활했다. 토종벼가 어쩌다 논이 아닌 전시장으로 들어갔을까. 토종벼가 자라고 있는 곳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복합문화공간 ‘통의동 보안여관’이다. 경복궁 영추문 맞은편에서 곧 허물어질 듯 80여년 세월을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보안여관은 2004년 여관의 운명을 다했다. 2010년, 전시업체인 메타로그아트서비스(대표 최성우)가 폐업한 보안여관을 인수해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보안여관 바로 옆에 쌍둥이 모양의 새로운 건물(보안1942)을 세웠다. 2017년판 보안여관이다. 4층 건물인 신관은 3·4층 2개 층을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어 ‘보안여관’이 못다한 여관의 임무를 다시 시작했다. 나머지 공간은 전시장과 책방, 밥집이 있다. ‘통의동 보안여관’의 구관과 신관은 2층에서 다리로 연결돼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

‘통의동 보안여관’이 현대미술과 생활의 경계를 허물자는 생각으로 생활밀착형 예술시리즈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가 ‘먹는 게 예술이다, 쌀’이다. 한반도는 쌀의 기원이다.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충북 청원에서 발견된 ‘소로리 볍씨’이다. 1만500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된 ‘소로리 볍씨’는 중국보다 4000년이 앞선 것이다. 토종쌀이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은 불과 100년 전이다. 스스로 선택한 운명이 아닌 강압에 의한 것이다. 1차로 식량수탈을 노린 일제가 개량종을 대대적으로 보급하면서, 2차는 ‘다수확’을 앞세운 통일벼에 의해 토종벼는 씨가 말랐다. 현재 우리가 먹는 쌀은 진화를 거듭한 개량종들로 농촌진흥청에 등록된 종자는 350여종이다. 토종 볍씨와 토종벼에 대한 자료는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1910~1918년)이 남긴 것이다.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에는 토종 볍씨 450여종이 보관돼 있다. 토종벼는 그동안 고집스럽게 품종을 고집해온 몇몇 소농과 생태환경에 관심이 많은 도시농부들에 의해서 최근 소규모로 재배되고 있다.

토종벼의 특성은 야생성이다. 스스로 자연을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했던 만큼 땅과 기후에 따라 개성이 뚜렷하다. 맛과 모양이 균일화된 개량종과 달리 품종에 따라 맛도 모양도 천차만별이다. 토종벼가 개량종과 가장 다른 것은 큰 키와 까락(벼수염)이다. 토종벼는 잡초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키를 키워야 했다. 생활에 필요한 볏짚을 얻기 위해서도 장신 품종이 필요했을 것이다. 단신인 개량종보다 키가 2배에 가까운 품종도 있다. 까락은 토종벼의 생존을 위한 전략무기였다. 긴 수염이 병해충을 막아주고, 가뭄을 버티고, 동물에 붙거나 바람에 날려 종족을 번식시켰다. 이제는 까락이 하던 역할을 기계와 농약이 대신하고 있다. 개량종은 탈곡과 도정에 방해만 되는 까락을 인위적으로 제거했다. 토종벼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 토종 볏논에 기계가 들어가면 꼬이고 휘말려서 고장이 난다. 비료 투성이 땅에서는 서 있지를 못한다. 현대농법과 맞지 않는 토종벼의 도태는 어쩌면 당연했다.

복합문화공간 ‘통의동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
복합문화공간 ‘통의동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

쌀이 주식의 위치에 오른 역사는 길지 않다. 조선 중기 모판에 싹을 틔워 모를 심는 이앙법의 보급으로 쌀 생산량이 늘면서 쌀이 주식이 됐다. 그전에는 귀족 등 특수계층이나 먹는 귀한 작물이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일일이 사람 손이 가야 하고 수확량이 작은 토종벼가 설 자리는 없다. 그러나 식물로서의 토종벼는 다르다. 수천 년 이 땅에서 살아남은 볍씨 한 알에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수많은 역사와 문화가 숨어 있다. ‘통의동 보안여관’이 토종벼를 전시장으로 불러낸 이유이다. 현대미술이 쌀을 주제로 다룬 사연이 궁금했다. 전시 총괄디렉터인 최성우 대표는 지난해만 해도 토종벼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시작은 ‘통의동 보안여관’의 청년작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두럭’ 덕분이었다. 매년 청년작가들을 선정, 주제를 정해 공부하고 작품으로 풀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두럭’은 올해로 4번째 진행됐다.

“작가들과 술자리를 하다 보면 진지한 예술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끝은 항상 먹는 이야기로 끝나요. 채널 돌리는 곳마다 먹방 프로그램을 하고, 매일 밥을 먹으면서도 정작 원재료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해 두럭의 주제를 ‘쌀과 밥’으로 정했죠. 강사를 찾고 자료를 공부하다 토종벼를 처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토종벼를 들여다보니 너무 흥미로운 겁니다. 이번 전시의 계기가 된 거죠.”

최 대표는 땅의 속성을 DNA에 저장한 토종벼의 야생성에 주목한다. 그는 ‘토종’의 정의는 한 지역에만 국한되어 자생한 생물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자라면서 농부에 의해 육종되고 고정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자연과 인간의 교류 속에서 살아남은 만큼 토종 종자는 그 땅의 시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이다. 토종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막걸리이다. 주막마다 지역 토종쌀로 빚은 막걸리가 있었다. 주막은 여관의 역할도 했다. 술과 국밥을 시키면 숙박은 무료였다. 최 대표는 보안여관의 뿌리도 알고 보면 주막이라고 말했다.

토종벼의 이름들은 하나같이 독특하다. 지역, 풍토, 생김새의 특징뿐만 아니라 다양한 함의가 있다. 괴산 불정 삼방리의 중요무형문화재 70호 ‘흙살림 벼놀이굿’ 중에 있는 ‘종자타령’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알록달록 까투리찰 먼저먹는 황토조라, 여주태생 조동지요 김포토종 자광베라, 밭에 심어 보리베요 뻘건수염 돼지찰베, 수염세다 쪽제비찰 보은청산 대추베라 짜리몽당 졸장베요 늘어지니 버들벤가, 임금먹던 대궐찰베 한가위라 가위찰베 가을이삭 북흑조요 하얀수염 노인베라 이베저베 많을씨고’.

토종벼의 중심에는 한 농부가 있다.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 우보농장의 이근이 대표이다. 잠자던 토종벼를 쌀로 되살려낸 농부이자 토종벼 연구가이다. ‘통의동 보안여관’의 이번 프로젝트도 그로부터 비롯됐다.

김지수 작가의 ‘공중정원’. 이끼에서 싹을 틔운 토종벼가 자라고 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김지수 작가의 ‘공중정원’. 이끼에서 싹을 틔운 토종벼가 자라고 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우보농장 이근이 농부가 키운 토종벼를 이소요 작가가 표본으로 만든 작품.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우보농장 이근이 농부가 키운 토종벼를 이소요 작가가 표본으로 만든 작품.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먹는 게 예술이다, 쌀’ 프로젝트는 전시와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토종쌀을 통해 본 종자의 생태학적 관점을 포함해 ‘벼-쌀-밥’으로 바라본 한반도의 문화와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한다. 전시 ‘흔들리며 서서; 교감식물’에 참여한 작가는 5명이다. 김이박·김준·김지수·송호철·이소요 작가이다.

골조만 유지한 채 흙벽을 드러낸 보안여관 구관에는 현대미술이 불러낸 토종벼들이 다양한 형태로 말을 건넨다. 김준 작가는 토종벼 부활 현장인 소농과 도시농부들의 땅을 답사하고, 현장의 소리와 땅의 울림을 채취했다. 채집한 소리가 전시장에 흐르는 가운데 스피커 위에서 볍씨가 싹을 틔우고 있다. 송호철 작가는 자연농법을 따르는 토종벼 농사와 기계농업의 속도를 영상을 통해 대비시킨다. 작품의 제목인 ‘4는 88이 아니다’는 기계농업과 자연농법을 결정적으로 말해준다. 과거의 농사는 88번 손이 가야 하는 반면, 현대는 기계 4번으로 해결된다는 데서 착안했다. 이소요 작가는 이근이 대표와 함께 우보농장에서 재배한 토종벼 표본작업을 했다. 품종별로 키, 색깔 등이 제각각인 토종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10월 21일부터 프로젝트 기간인 11월 4일까지 팝업스토어로 ‘보안 쌀가게’와 ‘세모아 토종마켓’이 운영된다. 토종쌀과 생태농업을 지켜온 농부들의 토종 곡식, 과일, 식재료를 살 수 있다. 10월 28일에는 최성우 대표가 나서 한식 조리장들과 함께 토종쌀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조경만 목포대 교수(생태인류학)가 진행하는 좌담이 열린다. 11월 1일에는 ‘토종쌀 테이스팅 테이블’이 열린다. 서촌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두오모와 디미의 셰프 허인·이희재씨가 토종쌀 요리를 선보인다. 2016년 벼 생산량은 420만t, 그중 토종벼 재배는 5t가량이다. 0.000001%의 미래가 소농과 도시농부, 요리사, 예술가의 손에서 살아나고 있다.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의 토종벼 살리기

100년 전 사라진 토종 볍씨, 한 농부의 손에서 살아나다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가 토종쌀을 추수하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가 토종쌀을 추수하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7년 전 10㎡(3평)의 논에서 시작됐다.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 219-1번지,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의 손에서 100년 전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춘 토종벼가 살아나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서 불과 20㎞, 우보농장은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고 도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바빠서 이야기할 시간이 없는데….” 추수가 한창인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10월 16일 농장을 찾아갔다. 입구 팻말에 ‘행복한 밥상을 꿈꾸는 생태텃밭 학교’라고 쓰여 있었다. 이삭이 고개를 숙인 논은 흔히 말하는 황금들녘이 아니었다. 키도 들쭉날쭉, 벼 색깔도 붉은색, 노란색 제각각인 논에는 토종벼 품종이 적힌 수십 개의 팻말이 줄지어 있었다.

이근이씨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17년 전. 그전에는 리뷰 기자, 잡지 편집장, 문화기획자 등이 이력서를 채웠다. 도시의 속도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농부가 됐다. 밭농사를 짓다 토종벼에 빠진 것은 7년 전이다. 기자 시절 ‘토종을 키우는 농부들’을 취재하면서 토종벼의 존재를 알게 됐다.

토종종자 보전단체 ‘씨드림’, 농업유전자원센터 등에서 어렵게 구한 20여종의 토종 볍씨를 시험 삼아 10㎡ 땅에 심었다. 한 품종당 수십 개에 불과한 볍씨들이었다. 기록된 역사 속에서 나온 볍씨들은 기적적으로 1000배의 열매를 맺었다. 10㎡ 땅에 심은 볍씨로 1만㎡(3000평)에 심을 수 있는 벼를 수확했다. 그것을 밑천으로 씨앗 교환 등을 통해 품종을 계속 늘려갔다. 지난해는 64개 품종에 이어 올해는 8900㎡(2700여평) 규모에 100개 품종을 심어 수확 중이다.

“토종쌀의 경쟁력요? 현대농법으로 진화시킨 개량종과의 경쟁은 말이 안 되죠. 토종쌀은 그런 차원에서 접근하면 안 됩니다. 1910년대 일제에 의해 조사된 것이 1451종입니다. 수천 년 동안 농부들에 의해 육종되고 토착화된 품종입니다. 그 품종들이 오직 ‘다수확’이라는 명분에 희생돼 순식간에 이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얼마 전 농장에 왔던 40년 농부도 토종쌀의 존재를 몰랐다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지방에 살았던 선조들이 어떤 쌀을 먹었는지 궁금하잖아요.”

그는 호기심에서 시작해 토종벼 연구가가 됐다. 매년 품종을 늘리며 품종별 특성과 모양, 쌀맛 등을 조사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강의와 교육도 하고 있다. 토종쌀을 키우는 전국 농부 50여명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토종벼 확산에도 나서고 있다. 지역별로 그 지방에서 자랐던 품종을 나눠주고 있다.

토종벼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이다.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그 지역의 자연이 벼에 그대로 기록된다. 맛을 균일화한 개량종과 달리 토종쌀로 지은 밥은 맛의 개성이 뚜렷하고 향이 진하다. 토종벼의 이름도 하나같이 독특하다. 졸장벼, 앉은뱅이, 까투리찰 등 동물 이름을 따거나 모양을 보고 농부들이 직관적으로 지은 이름들이다. “이름 이야기만 해도 하룻밤을 샐 수 있다”고 그가 말했다.

토종쌀을 살 수 있는 곳은 드물다. 토종벼는 현대농업과는 생태적으로 안 맞다. 비료농사를 짓던 논을 빌려 토종벼를 심었더니 벼들이 전부 넘어지는 바람에 먹을 수가 없더란다. 소농, 도시농부들을 중심으로 농사를 짓다 보니 토종쌀을 살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는 농장 직거래와 도시형 농부 시장인 마르쉐에서 판매를 하고 있다. 가격은 보통 쌀보다 훨씬 비싸다.

그는 “현대농업 속에서 토종쌀로 승부를 걸기에는 품질도 생산량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핸드메이드 제품’이 공장도가격을 맞추기는 어렵다. 대신 그는 막걸리에서 활로를 찾으려고 한다.

“우리나라 술 문화는 대단합니다. 1916년 당시만 해도 주막 12만개가 있었습니다. 그 말은 맛이 다른 12만개의 술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막과 비슷한 역할을 한 곳이 일본은 료칸, 중국은 반점입니다. 일본은 숙박을 중심으로, 중국은 밥이 중심이었다면 우리는 술이 중심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빚은 막걸리를 맛보았다. 신맛에서 시작해 끝에 남는 떫은맛까지 오미(五味)가 진한 풍미와 함께 입안에 남았다. 와인의 테루아처럼 다른 자연환경에서 자란 토종쌀은 다른 맛의 막걸리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는 16개 지방 대표쌀로 16명이 막걸리를 빚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과거에서 현재로 불러낸 토종쌀이 우보농장에서 쑥쑥 자라고 있었다.


대표적 토종벼 특성 (자료 : 우보농장)

찰벼

가위찰(可爲糯) 중생종 찰벼 한가위 때 맛볼 수 있는 찰벼라 해서 붙인 이름이다. 키는 작고, 까락이 거의 없으며, 낟알이 큰 것이 특징이다. 이삭당 낟알 수가 50~80여개로 많지 않다.

각씨나(閣氏糯) 조생종 찰벼 낟알 끝이 붉은색 족두리를 쓴 새색시의 모습을 연상케 해서 붙인 이름인 듯싶다. 작은 키에 붉은색의 까락이 짧고, 낟알 끝이 검붉다.

까투리찰(雌稚糯) 만생종 찰벼 까투리(암꿩)의 깃털 색깔과 모양을 닮은 이삭이 특이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름을 많이 주지 않아도 키가 크고 적당히 수량을 내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기 좋다. 은은한 단맛과 씹을수록 기름진 맛이 나며 향이 구수하면서 찰진 정도가 적당하다.

궐나도(闕糯稻) 중만생종 찰벼 궁궐에서 먹었던 찰벼라 해서 이름 붙여진 듯하다. 매우 큰 키(150㎝ 내외)에 짧고 붉은 까락으로 거름 많은 논에서는 잘 쓰러진다. 개량종의 현미찹쌀보다 맛의 무게감이 좀더 있으며, 멥쌀과 찹쌀의 중간 정도의 찰기를 띤다.

금나(金糯) 만생종 찰벼 붉은 까락을 가진 토종벼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짙은 금빛 까락으로 인해 이름 붙여진 듯하다. 키는 적당히 크며, 낟알 색은 붉다. 쌀알이 작고 통통하며 현미 색이 불투명한 백색을 띤다. 현미 찰벼 중 가장 찰진 느낌이다.

돼지찰(豚糯) 조생종 찰벼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심어졌고, 다양한 품종이 존재한다. 붉은 돼지의 등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맛이 좋으며 찰기가 오래가서 한과 만드는 용도로 최고로 치는 품종이다.

옥천돼지찰 중생종 찰벼 충북 옥천 지역에서 재배되던 찰벼 품종으로 떡을 해도 맛이 좋고 잘 굳지 않는 특성이 있다. 큰 키에 대가 약해 잘 쓰러진다.

흑갱(黑粳) 만생종 찰벼 검고 긴 까락에 흰 낟알색이 인상적이다. 토종 찰벼 가운데 낟알은 둥글고 작지만 찰기와 끈기가 강하며 흑갱 특유의 향이 있다.

메벼

대관도(大關稻) 만생종 메벼 조선시대 양반이나 궁궐에 진상했던 쌀을 의미해서 붙여진 이름인 듯싶다. 키가 다소 크고 흰색의 까락은 중간 정도로 길며 낟알은 희다.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품종 중의 하나다.

대추벼(棗稻) 중만생종 메벼 까락의 색이 붉은 대추 같아서 조도(대추)라고 했다. 대가 굵고 까락이 길며 이삭이 하얗다. 찰벼인 경우 대추찰이라 불렀다. 민요 속에도 등장한다.

버들벼(柳稻) 중생종 메벼 이삭이 능수버들 느낌이 나게 휘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삭이 밝고 연한 노란색을 띠며, 까락이 길고 키(130~150㎝ 내외)도 크다. 낟알은 작고 동글동글하며 토종쌀 특유의 원시적이면서도 단단하고, 거칠지만 씹을수록 쫀득함과 깊은 맛이 난다는 평이다.

앉은뱅이 만생종 메벼 키가 작아 붙여진 이름이지만 요즘 재배되는 벼 크기는 된다. 80㎝ 내외의 키로 잘 쓰러지지 않으며 중간 길이의 붉은색 까락이 인상적으로 달려 있다.

여명(黎明) 극조생종 메벼 토종벼 중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가장 먼저 수확한다 해서 붙은 이름인 듯싶다. 수확량은 적지만 씹을수록 깊고 구수한 밥맛이 난다.

자광도(紫光稻) 중만생종 메벼 조선 인조 때 중국 길림성 남방지방에 사신으로 갔던 이가 가져와 김포 지역에서 대대로 재배되어온 품종이다. 현미 색이 붉고 안토시아닌 함량이 높아 끈기는 없지만 구수한 밥맛으로 이천 지방의 자채미와 함께 궁중에 진상되던 품종이다.

장끼벼(雄雉稻) 만생종 메벼 까투리찰에서 자연변이된 것을 우보농장에서 선발하여 육종한 품종이다. 붉은 낟알에 길고 붉은 까락으로 까투리(암꿩)보다 화려한 색과 모양이 수꿩인 장끼를 연상시켜 붙인 이름이다. 까투리찰보다 키가 작고 출수가 늦다. 낟알은 작지만 뒷맛이 달고 구수하다.

적토미(赤土米) 극만생종 메벼 길고 검붉은 까락과 붉은색 현미가 특징이어서 이름 붙여진 듯하다. 전남 장흥의 한 농부가 개량하여 재배하는 품종이며 짙붉은 색이 논에 너울대면서 풍경이 좋다. 현미 색은 자광도보다는 붉은빛이 약하고 먹음직스러운 색감을 띤다.

졸장벼(拙丈稻) 극만생종 메벼 토종벼 가운데 50㎝ 이하의 가장 작은 키로 짧은 이삭에 낟알이 촘촘하게 붙어 졸장부를 연상시켜 붙인 이름이다. 농부들의 작명 상상력의 해학성이 돋보이는 이름이다. 쌀알이 단단하고 먹을수록 깊은 풍미를 느끼게 한다는 평이다.

흑도(黑稻) 조생종 메벼 짧은 까락에 색깔은 짙은 자색이며, 이삭 전체가 검은 자색으로 논의 풍경이 이채롭다. 잎이 넓고 큰 키가 특징이다.

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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