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호 조선일보 기자
ⓒphoto 김종호 조선일보 기자

“조선일보 50년, 주간조선 30년, 월간조선 20년, 월간산 10년…, 다 합치면 100년이 넘지요, 허허.”

김종철(65)씨는 ‘자칭 100년 독자’라고 했다. 하지만 자칭일 수 없다. 실제로 누가 봐도 조선일보와 주간조선 등 조선일보의 자매지를 구독한 기간이 모두 합쳐 100년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만난 그의 손에는 2005년 8월 8일 발행된 주간조선 ‘1866호’가 들려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집으로 배달되던 조선일보를 보기 시작해 지금까지 신문을 보고 있고, 주간조선과 나머지 자매지들이 창간될 때를 전후한 시기부터 구입해 읽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대 법대를 나온 김씨는 “정보의 양이 워낙 많아 사회현상을 보고 이해하는 데 평생 동안 도움을 받고 있다”면서 “정보의 양과 재미 등이 다른 언론사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김씨는 “음식이 맛있는 식당에 자꾸 가고 싶은 것과 같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기사 내용을 자꾸 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냐”고 했다. 신문은 집으로 배달되는 대로 읽고, 주간조선 같은 경우에는 발행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 가판대에 직접 가서 구입해 읽었다고 한다. 김씨는 “발행된 날 주간조선을 손에 쥐면 따끈따끈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정말 가슴 뿌듯한 느낌까지 들곤 한다”고도 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금호그룹과 삼성물산 등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동안은 물론 은퇴한 지금도 ‘조선 독자’의 길을 계속해서 걷고 있다. 신문에 난 기사와 관련해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큰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는 같이 아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신문에서 다루지 못하는 깊이 있는 내용을 담은 주간조선의 유익한 기사 내용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주간조선의 내용을 언급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조선’을 구독하는 데는 끊어짐이 없었다. 한번은 손주를 봐주기 위해 1년가량 김씨 부부가 경기도 일산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김씨는 조선일보를 구독 신청해 받아봤다.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서울역에서, 서울로 올라갈 때는 부산역에서 주간조선 등을 구해 볼 정도였다. 김씨는 “내가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조선일보와 주간조선, 월간조선 등을 읽으면서 아는 게 많아져 각종 사회적 현상 등에 대해 깊이 있게 오래 이야기할 수 있는 지식을 쌓게 됐다”고 했다. 월간산을 읽으면 직접 가보지 못했거나 갈 수 없는 산, 각종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소상히 알 수 있어 10년간 지면(紙面) 속에서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직접 가는 것보다 오히려 월간산을 보면서 더 즐거운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악돌리’ 박영래 화백의 만화를 참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다른 언론사의 보도를 전혀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선’과 경쟁하거나 논조가 다른 언론사의 기사도 균형적 시각을 갖기 위해 본다고 했다. 그는 “보도되는 기사의 글과 글 사이에 있는 행간을 읽는 재미, 치열한 취재의 흔적이 느껴지는 기사 내용 등을 통해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든다”면서 “정주영 회장이 ‘신문(기사)이 인생의 교과서’라고 말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자신도 ‘조선의 보도’를 보면서 세상의 많은 면을 익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도가 되는 만큼 우리가 알게 되고, 보도가 약해지는 만큼 우리가 무지해지는 것”이라며 “독자들을 위해 새로운 세상과 현상 등에 대해 보다 선도적이고 신속하게 다뤄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태블릿 PC 구독, 감칠맛 덜해

김씨는 조선일보나 주간조선 등 자매지들에서 연말이나 평소 소개하는 도서 목록이나 서평으로 연간 독서 계획을 미리 짜기도 한다. 심지어는 음식과 관련된 미국 계간지 소개를 읽고 해당 계간지를 구입한 적도 있었다. 김씨는 “좋다는 내용의 보도를 보고 원서로 된 미국 계간지를 사서 봤는데 너무 전문적인 용어들이 많아 읽는 데 정말 힘들었다”며 웃어 보였다. 미래의 새 직업, 새 기술 등을 소개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시각을 넓히기 위해 자료도 많이 모았다고 한다.

한때는 자택 방 하나에 있는 서가 전체가 주간조선, 월간조선, 월간산으로 가득했다. 그는 “내가 글쓰는 직업이나 교사도 아닌데 그렇게 많은 양을 모아두니 집사람이 힘들어하더라. ‘이제 그만 좀 하자’라는 말까지 나왔다”며 웃었다. 창간 49주년을 맞은 주간조선에 대한 변화에 대해서 그는 “퇴보한 것이 전혀 없다. 정말 많이 발전했고, 근간에 활자와 화보도 굉장히 좋아졌다”면서 “급할 때는 본문을 읽지 않고 그래픽만 봐도 내용이 이해될 정도로 잘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뿐 아니라 외부 필진들의 글들도 충실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했다. 그는 좋은 내용의 기사를 보면 반드시 기사를 잘 읽었다는 이메일을 기자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근데 사실 (기자들로부터) 답장은 잘 안 오더라”며 웃었다. 김씨는 조선일보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서적이나 기자들이 쓴 책 등을 사기도 한다. 그는 “30여년 전에 만물상 칼럼집을 1만원을 주고 샀는데 그것을 택시에 두고 내린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요즘은 종이 매체를 읽기에 환경도 많이 변했다. 그는 “지하철에서 종이 매체를 펼쳐 보면 ‘아직도 종이를 보나?’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경우가 있다”면서 “신문이고 잡지고 접고 접어서 보기도 하지만 젊은 사람들 중에도 휴대전화 대신 종이신문이나 잡지, 책 등을 보는 이들이 많아 적잖게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휴대전화나 태블릿PC를 쓰는 젊은이들이 훌륭한 기술과 콘텐츠를 게임 등에 너무 한정된 용도로 많이 쓰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쯤부터는 태블릿PC로 주간조선 등을 보기도 했는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손으로 넘기며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종이와는 확연하게 달라 손으로 ‘착착’ 넘겨가며 보고 싶은 것을 찾아보는 재미와 감칠맛이 덜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살던 그는 3년 전쯤 울산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면서 집에 쌓아두었던 조선일보, 주간조선, 월간조선, 월간산의 양이 너무 많아 모두 가져갈 수 없었다고 한다. 정말 갖고 싶은 내용이 있는 것 외에는 대부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서평이나 여행기 등 꼼꼼하게 스크랩한 내용들 중심으로 골라 챙겼다. 현재는 라면상자 기준으로 10여개가 되는 신문 스크랩 자료를 일일이 스캔해서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김씨는 “꼭 주간조선이나 조선일보가 아니더라도 언론이 제시하는 것을 잘 따르거나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나라나 우리 이웃이 서로 더 잘 살고 잘되는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건전한 방향성을 찾는 데는 아주 깊은 교양이나 심도 있는 지식과 연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신문과 주간지, 월간지 등을 꾸준히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번 ‘조선’ 구독자는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아마 죽을 때까지 볼 것이다. 나는 그중의 한 명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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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훈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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