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대한애국당 집회. ⓒphoto 김성훈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대한애국당 집회. ⓒphoto 김성훈

최근 경찰이 태극기집회 후원 시민 2만여명의 계좌를 조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른바 ‘태극기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경찰은 태극기집회 불법모금 혐의를 조사하기 위한 적법한 절차였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태극기집회에 참가했던 시민들은 공권력의 횡포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인 ‘법치와자유민주주의연대’(대표 도태우)는 경찰의 계좌 조사를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기부자 불법사찰’이라 간주하고 태극기집회 후원자들과 함께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경찰의 계좌 조사와 함께 검찰이 촛불집회 불법모금 혐의에 대해서는 고발인 조사도 없이 ‘증거 불충분’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편향 수사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계좌 조사에 분노하는 ‘태극기 시민’들은 지금도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태극기집회는 매주 토요일 서울역광장, 대한문광장, 종로 동화면세점 앞, 보신각광장, 청계광장,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서울 시내 총 6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대통령 탄핵 국면 때와 다름없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인파가 북적인다. 지난 1월 13일 찾아간 서울역광장에선 ‘대통령 탄핵 기각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이하 탄기국)에서 활약했던 대한애국당 소속 조원진 의원과 서석구 변호사 등의 얼굴이 보였다. 이들은 연단에 올라 “문재인 정권은 정치보복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말마다 열리는 도심의 태극기집회 외에도 매주 목요일 상암동 jtbc 사옥 앞에선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등이 “조작방송 손석희 사장을 구속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요즘에도 태극기집회에 나오는 이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이다. 20·30대 청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 초부터 줄곧 태극기집회에 참석했다는 이모(63)씨는 서울역광장 집회에서 기자를 보고 “젊은이가 집회에 참석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씨는 “나라가 계속 잘못돼 가는데 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 집회에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태극기집회는 크게 두 단체에서 주관했었다. 서울 시청앞 대한문광장 집회를 이끈 ‘탄기국’과 청계광장의 집회를 이끈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이하 새한국)이었다. 탄기국은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국민저항본부)로 이름을 바꿔 집회를 이어가다가 ‘새누리당’을 창당하며 정치결사체로 변모했다. 하지만 이후 ‘박사모’의 조직 장악에 대한 의견 대립 등으로 지도부 내 갈등이 생기면서 ‘태극기시민혁명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 ‘태극기 행동본부’, ‘박근혜대통령구명총연합’(이하 구명총) 등으로 쪼개졌다. 조직이 사실상 와해되는 것과 함께 지난해 5월에는 정광용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폭력집회 선동’ 혐의로 구속됐고, 지난해 6월에는 조원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당권 다툼 끝에 제명되는 일도 벌어졌다. 이후 조원진 의원은 정미홍·변희재씨 등과 함께 지난해 8월 말 대한애국당을 창당했다.

청계광장에 모인 새한국 집회. ⓒphoto 김성훈
청계광장에 모인 새한국 집회. ⓒphoto 김성훈

성향·이해관계 따라 6곳으로 분열

청계광장 집회를 이끌어온 새한국은 조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현재 규모가 가장 큰 태극기집회는 대한애국당이 주도하고 있다. 주로 서울역광장에서 집회를 연다. 평균 참가인원은 주최 측 추산 3만명 정도. 인지연 애국당 대변인은 “애국당 집회는 유일한 정당 주최 태극기집회로 합법성과 정통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말했다. 애국당은 자신들이 집회에서 ‘좌파 독재정권의 위협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대한민국을 지켜내겠다’ ‘애국당이 깨끗한 보수우파 정당으로 구심점 역할을 하겠다’ 등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국당은 이와 함께 앞으로 반자유민주주의 개헌을 막기 위해 반개헌투쟁에도 앞장설 예정이라고 한다.

국본(대표 최대집)은 대한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평균 참가인원은 주최 측 추산 1000명 정도. 국본은 지난해 4월 탄기국이 새누리당을 창당할 때 탄기국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탄기국 사무총장이었던 민중홍 국본 사무총장은 “탄기국이 박사모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정당 정치로 태극기 민심을 왜곡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국본 집회는 불법 탄핵 규탄 및 현 정부의 대북정책 비판을 주요 메시지로 삼고 있다.

태극기 행동본부(대표 최병국)는 광화문 인근 동화면세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평균 참가인원은 주최 측 추산 500명이다. 태극기 행동본부는 국본 지도부 내에서 갈등이 발생하면서 국본에서 다시 분리되어 나온 단체다. 최병국 대표는 태극기 단체가 여러 개로 쪼개진 데 대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목적은 같았으나 정당 및 종교의 개입, 사익 추구로 인해 분열됐다”며 “순수한 애국심으로 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극기 행동본부는 현 정권의 좌파 성향을 비판하고 공산화를 저지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구명총(대표 신용표)은 종로 보신각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평균 참가인원은 주최 측 추산 100명 정도다. 구명총은 새누리당에서 내분이 격화됐던 지난해 7월 말에 분리되어 나왔다. 최영우 대외협력통합위원장은 “정치권과 연결된 끈을 끊고 순수한 시민운동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이유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구명총 집회는 불법 탄핵 규탄,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요구 등을 주요 메시지로 삼고 있다.

jtbc 사옥 앞에서 벌어진 미디어워치 집회. ⓒphoto 미디어워치
jtbc 사옥 앞에서 벌어진 미디어워치 집회. ⓒphoto 미디어워치

새한국(대표 서경석)은 동아일보 앞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평균 참가인원은 주최 측 추산 200명 정도다. 서경석 대표는 “일부 태극기집회는 ‘박근혜 맹종주의’를 추구하고 있어 특정 지지세력을 모을 순 있지만 대중화가 어렵다”며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김정은 정권 붕괴’를 슬로건으로 삼아 우파 단체들이 집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정권 붕괴를 위한 투쟁은 이를 반대하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규탄으로 이어진다는 게 서 대표의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30일 미국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 정권의 교체나 붕괴를 원하지도 않는다”고 선언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애국문화협회(대표 전훈)라는 태극기 단체도 있다. 전훈 대표는 “국본 집회에 참여해오다 청년들이 집회를 따로 기획해 행사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기존 집회가 연설 위주로 진행되는 것과 달리 자체 제작한 영상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한다.

태극기 단체들이 사분오열된 이유 중 하나로 집회 후원금을 둘러싼 이권 다툼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이에 대해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불법모금 혐의를 고발한 정영모 정의로운시민행동 대표는 “집회·시위 목적의 모금은 법적으로 허가를 못 받게 되어 있으며 좌우를 막론하고 또 좋은 목적의 집회라 하더라도 불법을 행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요즘 태극기 단체들은 과거와 달리 집회 비용을 회원들의 회비로만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비용은 집회 규모에 따라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이른다는 것이 태극기 단체 관계자들의 말이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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