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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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가 품질이 우수한 한국 제품을 65개 실크로드 인접 국가에 중개한다면 양국 기업은 ‘윈-윈’할 수 있다. 사드(THAAD) 문제로 소원해진 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 속에서 다시 공동의 이익을 실현할 기회가 될 것이다.”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실행하기 위해 2016년 2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사무실을 낸 ‘실크로드국제문화경제무역합작교류조직’(SICO) 한국대표부가 최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SICO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민간 국제조직으로, 65개 실크로드 인접국가와 교류·협력 공동체 조성을 추구하고 있다.

SICO 한국대표부 이선호 대표는 지난 6월 1일 인터뷰에서 “구(舊) 실크로드 인접 국가들이 참여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新)남방·신(新)북방’ 정책과 상통한다는 점에서 향후 양국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기업, 한국에 진출하길 원하는 중국 기업의 가교 역할을 기대해도 좋다”며 “SICO와 한·중실크로드국제교류협회는 이를 위해 기업 분석을 전담할 법률팀 구성과 자금 지원을 위한 민간펀드 조성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과거 중국과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 주변 국가들을 육상경제벨트(一帶)와 해상경제벨트(一路)로 묶어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이른바 ‘21세기 신(新)실크로드’ 구상을 말한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신북방 정책의 경우 무역 다변화를 위해 남쪽으로는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와의 교류 확대를, 북쪽으로는 북한과 러시아·유럽을 연결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구상이다.

이 대표는 과거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실패 원인으로 ‘준비 부족’과 ‘성급함’을 꼽았다. “미국·일본은 국제 컨설팅업체를 동원해 사업성을 분석한 뒤 투자 여부를 논의하기 시작하는 반면 한국 기업들은 중국 내 지인을 통해 사람을 먼저 소개받고 술자리를 몇 차례 가진 뒤 MOU(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식이다. 일사천리로 사업이 추진되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과 환경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점검을 시작한다. ‘거액을 투자했다가 중국에서 빈털터리로 쫓겨났다’는 얘기를 하는 한국 사업가들 중에는 이런 공통점이 있다.”

그는 SICO 한국대표부가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의 성공을 돕고 있다고 했다. “SICO와 협회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중국 정부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들을 검토해줄 수 있다. 다만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 나름의 법률 검토와 현지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쟁력을 갖춘 양국 기업들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공동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는 게 일대일로의 근본 취지이기도 하다.”

재중 동포 3세인 이 대표는 1970년 헤이룽장성 무단장시에서 태어났다. 1993년 헤이룽장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베이징 소재 중국 건설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홍콩 위택국제그룹 사장 등을 거친 그는 2010년부터 한·중 교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일대일로 구상이 실행에 옮겨지는 것을 계기로 민간 국제조직인 SICO에 합류, 한국 대표가 됐다. 현재 한·중실크로드국제교류협회 회장 등을 겸직하며 한·중 양국 간 경제·문화 교류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중국이 패권(覇權)을 잡기 위해 ‘일대일로’를 시작했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에서 주도한 건 맞지만 궁극적 목표는 참가국 모두가 공동 번영을 꾀하는 데 있다. 이미 참가국 가운데 상당수 국가에서 인프라 구축과 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됐다. 과거 실크로드에 인접한 65개국이 동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에 따라 현재 89개 국가로 확대됐다. 한발 물러서 있던 일본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의사를 전달해온 것으로 안다.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은 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 신흥시장 진출과 경제성장 동력 확보 차원도 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이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확보하게 되면 에너지 생산국도 동시에 이득을 보게 된다.”

- 한국처럼 인프라가 잘 구축된 나라의 경우 일대일로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일대일로의 핵심 이념에는 인프라 연결이나 자금조달과 함께 ‘정책소통’ ‘민심상통’ 등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한·중 수교가 맺어진 지 26년이 흘렀고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거래국이 됐다. 이제는 무역거래를 넘어 양국이 민심상통, 즉 문화·관광·학술 교류 등을 확대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SICO나 협회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과 주로 교류하게 되나.

“그렇다. 해외지사나 법무·전략팀을 잘 갖춘 대기업보다는 판로 개척에 애를 먹거나 해외진출 의지를 가진 중소기업들과 소통이 중요하다. 중국에는 알리바바 이외에도 ‘소본조’ 등 대형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많다. 한국의 화장품을 인터넷 플랫폼에 올려 실크로드 인접 국가에 판매하는 것을 상정해볼 수 있다. 역으로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가 한국에 진출한다면 대형 물류기지가 필요하고 수십 개의 유관 기업이 함께 들어오게 된다. 현재 일부 중국 기업이 경기도 산하 황해경제자유구역청과 물류단지 조성 건을 논의하고 있다.”

- 중국에 진출할 한국 기업에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나.

“중국 진출에 필요한 법률적·행정적 컨설팅이 가능하다. 현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향후 자금지원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에서 개최한 ‘일대일로 한·중 기업인 포럼’ 당시 실크로드협회에 가입하겠다는 업체가 100여곳에 달했다. 한국에 들어와 합작회사를 만들고 싶어하는 중국 기업도 적지 않다.”

- 중국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나.

“15억명의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거대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알리바바나 휴대폰 제조업체 화웨이 등이 출현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가 중국 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1980~1990년에 태어난 젊은 사업가들이 수백억원의 재산가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둔 기업들이 사전에 충분한 사업성 검토와 현지 환경 점검만 거친다면 수익성은 보장된다.”

- SICO는 민간단체인데 역할에 한계는 없나.

“작년 11월에 중국에서 일대일로 관련 국제포럼이 열렸다.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의 축전이 있었는데, 실크로드 인접 국가들을 연결하는 민간단체의 역할을 강조했다. 현재 중국 주변국가에서 조성되고 있는 산업단지의 3분의 1가량은 민간단체의 가교 역할로 성사됐다. 물론 중국 정부 차원에서 장관급이 대표를 맡은 대외 창구 부서 ‘국가국제발전사’가 지난 4월 출범했다. 그럼에도 인접 국가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SICO와 같은 단체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2049년까지 일대일로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민간단체의 활동은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북한도 일대일로에 참여하게 될까.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합작포럼 당시 북한에서 구본태 무역성 부상을 대표로 하는 대표단이 참석했다. 한반도 정세가 좋아지면 향후 일대일로 참여와 AIIB 지원을 통한 인프라 구축 사업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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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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