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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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IT호황, 2010년 모바일 혁명의 경험을 토대로 2020년 블록체인 기술을 선도하겠다고 나선 젊은 창업자가 있다. 그는 1998년 고교 재학 시절부터 IT시장에 진출한 창업자들을 돕는 일로 월 200만원 이상을 벌었다. 컴퓨터가 좋아서 취미 삼아 아르바이트를 한 것인데, 이 고등학생의 남다른 재주에 주목하는 이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대학생 때는 여러 차례 창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지만 2011년 모바일앱 개발회사 ‘스쿱미디어’를 만든 후에는 적지 않은 성과를 이어갔다. 네이버웹툰·배달의민족·소카·카닥·미미박스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한 곳이 스쿱미디어다. 그가 상품화한 못난이 캐릭터 ‘주름이’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600만개 이상 팔렸다. 현재 40여명의 개발자를 둔 성공 스타트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동력이다.

스쿱미디어를 이끌고 있는 신진욱(36) 대표는 최근 ‘블록체인’이라는 뉴테크놀러지 시장 개척에도 나섰다. 그가 지난 4월 창업한 ‘비트소닉’은 암호화폐 시장에서 새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비트소닉은 기존 암호화폐 거래소와 차별화된 블록체인 기반의 거래소다. 기존 거래소가 암호화폐 거래수수료 100%를 수익으로 가져가는 구조라면 그가 만든 비트소닉은 거래수수료의 90%를 거래소 이용자에게 되돌려준다. 탈(脫)중앙화라는 블록체인의 핵심에 한발 더 다가간 접근 방식이다.

지난 7월 16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사무실에서 만난 신진욱 대표는 확신에 차 있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컴퓨터 보급·웹서비스 단계를 지나 모바일 혁명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러면서 다음 기술혁명의 중심이 무엇일지를 늘 고민해왔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 바이오 등 새로운 기술을 주목해오다 결국 블록체인을 선택했다. (나는) 확신한다. 향후 10년 이상을 이끌어갈 차세대 기술은 블록체인에 있다고….”

충북 청주가 고향인 신 대표는 고교 재학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을 찾았다. 남들 다 하는 대학입시는 뒤로 미룬 채 컴퓨터에 미쳐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신 대표는 고교 1학년 때 한국정보올림피아드에 출전해 동상을 수상하며 대학 진학이 보장된 상태였다. 2001년 고려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한 뒤에는 컴퓨터 관련 동아리를 주도하며 창업을 시작했다. 초기 창업은 기술력과 별개로 마케팅 부재 등으로 애를 먹었다. 두 차례 창업에서 쓴맛을 본 그는 한때 취업을 준비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입사를 보장받았지만 병역특례로 게임업체 넥슨에 들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직원 100여명 수준의 넥슨은 그가 병역특례를 마칠 때쯤 1000명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 대표는 넥슨에서 게임 보안팀을 이끌었다. 만약 그가 넥슨에 잔류했다면 IT업체 중역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 언제 처음 블록체인 기술을 접하게 됐나. “2010년대 초반이었다. 아이폰(IOS)용 앱과 안드로이드용 앱을 개발하며 시장에서 나름 입지를 구축하고 있을 때 국내에서도 비트코인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싸이월드 도토리와 비트코인은 뭐가 다르냐’는 물음부터 ‘물건을 사지도 못하는데 도대체 실체가 뭐냐’는 의문이 쏟아질 때였다. 하지만 나는 시장에 나온 신기술 브랜드인 비트코인을 샀다. 가격은 1코인당 19만원 정도였다.(7월 26일 오전 현재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은 827만원) 2013년에는 국내 최초로 비트코인 쇼핑몰을 만들어 크리스마스 트리를 팔았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블록체인 기술이 향후 IT기술의 중심으로 부상할 거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신 대표는 자신이 보유한 비트코인 규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자산규모가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한때 그가 직원들에게 비트코인을 급여로 주겠다는 제안을 했을 정도라는 점에서 상당량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음을 짐작할 뿐이다.

- 블록체인을 대표하는 비트코인의 가치가 크게 하락하지 않았나. “비트코인은 블록체인계의 나이키나 코카콜라처럼 브랜드화됐다. 그 가치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암호화폐 트렌드가 일반화될 거라고 보는 이유는 그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블록체인의 가치가 점점 뚜렷하게 다가온다. 버블이 어느 정도 꺼진 상황에서 거래가 확대되는 기술적 동력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 넥슨에서 입지를 다질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 마다한 이유는 뭔가. “처음 넥슨에 가게 됐을 때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에 매료됐다. 마치 대학 동아리 같았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해커 정신을 가진 이들이 소소하게 만든 프로그램이 돈이 됐다. 나는 어릴 때(25세)라서 욕심이 많았다. 더 큰 일을 하고 더 많은 기회를 갖고 싶었다. 함께 일하던 형들이 창업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걸 보고 나도 따라나서게 됐다.”

신 대표는 요즘도 문정동 사무실에서 밤을 새워 일하는 날이 많다. 40여명의 모바일앱 개발자들을 블록체인에 특화된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됐다. 일에 미쳐 살다 보니 결혼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한다. “업계 일부 기업이 적은 돈을 투입해 흉내만 내는 방식으로 거래소를 운영하는데,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40여명의 개발자들과 함께 일을 추진해본 결과 비용과 절대적 시간, 그리고 최적화된 인적자원이 결합되지 않고선 블록체인 기반 기업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 비트소닉만의 장점은 뭔가. “블록체인 기술은 탈중앙화가 핵심이다. 그런데 거기서 파생된 코인을 매매하는 방식은 중앙화돼 있다.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소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0.1%의 수수료를 받는다. 그래서 해외 모 거래소는 지난해 순이익이 1조원을 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비트소닉은 거래소 운영자체를 탈중앙화해 수익의 90%를 다시 사용자에게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자체적으로 코인을 발행하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도 충분히 생존 가능하다. 현재 전 세계 거래소들의 순위가 몇 개월 간격으로 계속 바뀌고 있는 것은 기술적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용자들이 만들어낸 가치는 다시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게 내가 아는 블록체인 기술이다.”

비트소닉이 발행할 자체 코인은 약 10억개가량. 현재 극소수 매매에 의해 형성된 코인 가격(장외가 1개당 100원 안팎)을 고려하면 전체 발행 규모는 약 10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현재 금융당국에서는 암호화폐 투자의 불확실성을 계속 우려하고 있다. 실제 피해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신 대표는 “가상화폐공개(ICO)가 확실한 검증 없이 막대한 돈을 한 번에 끌어모은다는 점은 우려할 만하다”면서도 “비트소닉은 적어도 단계적 접근법을 통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도적 보완을 위해 관련 법률이 잘 구축된 싱가포르에 회사를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했다. 비트소닉은 또 암호화폐의 안정성 담보를 위해 2부 거래소 운영도 추진하고 있다. 2부 거래소에서 거래량과 기술평가 등을 통해 검증된 암호화폐를 비트소닉 본 거래소에 올려 투자 리스크를 줄여나간다는 복안이다. 지난 4월부터 문을 연 비트소닉에서는 국내 최대인 136종의 암호화폐가 거래되고 있다.

- 블록체인 기술도 결국 대기업들이 장악하게 되지 않을까. “블록체인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자리를 잡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몸집이 큰 대기업은 섣불리 뛰어들기 어렵다. 기존 IT 기반으로 설립된 기업들이 블록체인 기반으로 변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탈중앙화라는 핵심 개념은 기존 기업의 존재를 오히려 위협하는 요인이다. 대형 포털사이트들은 앞으로 사용자의 콘텐츠나 정보를 무료로 이용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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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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