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상하이 극장가를 달군 최고의 영화는 ‘나는 약신(葯神)이 아니다’라는 작품이다.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최근 박스오피스 수입 30억위안(약 4900억원)을 돌파하며 막을 내렸다. 연초 개봉해 상반기 최고 흥행성적을 기록한 블록버스터 애국주의 영화 ‘홍해행동(紅海行動)’의 박스오피스 수입(36억위안)에 못지않은 성과다.

사회적인 반향은 더욱 크다. 7월 초 개봉과 함께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영화를 언급하며 수입 항암제의 약가인하 조치를 끌어냈고, 개봉 후반에는 중국산 가짜 백신 사건까지 터지면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개봉 마지막 날인 8월 첫째 주말 찾아간 영화관은 여전히 관객들로 가득했다. “한 병에 4만위안(약 650만원) 하는 약을 3년간 먹다 보니 집은 없어지고 가족들도 망가져버렸다”는 백혈병 노파의 절규에 영화관은 일순 눈물바다로 변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신의 기름(神油)’으로 불리는 인도산 발기촉진제를 팔며 성인용품점을 운영하는 주인공은 어느날 인도산 항암약을 대신 구해달라는 백혈병 환자를 손님으로 만난다. 결국 가게 월세와 부친의 수술비로 고민하던 주인공은 인도로 건너가고, 우여곡절 끝에 정품약과 동일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는 인도산 복제약(제네릭)의 판권을 확보한다. 그리고 이를 4만위안에 달하는 정품약의 8분의 1 가격인 5000위안에 팔아 떼돈을 번다.

이후 인도산 복제약의 판권을 ‘진짜’ 가짜약을 만드는 사기꾼 약장수에게 넘긴 주인공은 어엿한 의류공장 사장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인도산 복제약을 그에게 처음 소개한 백혈병 환자이자 동료가 다시금 비싸진 약가에 치료비 부담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자 충격을 받는다. 이후 주인공은 다시 인도산 복제약을 중국에 몰래 들여와 원가에 가까운 500위안에 손해를 보면서도 유통시킨다. 결국 주인공은 다국적 제약사와 유착된 경찰에 체포돼 ‘가짜약 유통죄’로 감옥살이를 하지만 백혈병 환자들 사이에서 ‘약신(葯神)’으로 추앙받는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가 큰 반향을 일으킨 까닭은 실제 있었던 사건에 적당히 허구를 가미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은 상하이 인근 장쑤성 우시(無錫)에서 의류공장을 운영하는 루용(陸勇)이란 기업인이다. 영화 속 주인공과 달리 실제 백혈병을 앓고 있는 루용은 2002년 백혈병 진단 후부터 값비싼 정품약을 복용해왔다. 하지만 2004년부터 효능이 동일하지만 월등히 저렴한 인도산 복제약을 접하고 이를 들여와 다른 백혈병 환자들에게까지 유통시켰다.

문제가 된 항암약은 스위스계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의 유명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다. 2004년 당시 한 달분 한 상자에 2만3500위안(약 385만원)에 달하던 글리벡과 동일한 성분과 효능을 가졌다는 복제약은 인도에서 불과 3000위안에 팔리고 있었다. 8분의 1 가격이다. 루용은 이를 대량구매 방식으로 중국에 들여와 가격을 최저 200위안(약 3만원)까지 낮춰 유통시켰다. 그가 백혈병 환자들로부터 ‘약신’으로 추앙받는 까닭이다.

물론 중국에서 당국의 정식 유통허가를 받지 못한 약은, 성분과 효능이 동일한 복제약(제네릭)이라고 해도 모두 ‘가짜약’으로 취급돼 단속 대상이 된다. 결국 루용은 당국으로부터 허가받지 않은 ‘가짜약’을 유통시킨 죄로 2013년 체포돼 재판에 넘겨진다. 하지만 300명이 넘는 백혈병 환자들이 탄원서를 올린 끝에 2015년 최종적으로 불기소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이 사건은 당시에도 중국 사회에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약신이 아니다’의 실제 모델 루용.
‘나는 약신이 아니다’의 실제 모델 루용.

영화 효과 시진핑까지 나서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허울뿐인 의료보험과 높은 병원 문턱, 폭리를 취하는 다국적 제약사와 유착된 의사와 의료 당국, 그 사이를 파고들어 짝퉁약을 파는 사기꾼 약장수 등 중국의 의료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하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최근 중국에서 터진 가짜백신 사태에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까지 줄줄이 나설 정도로 확대된 것도 이 영화의 힘이다.

상하이의 한국 교민들이 가장 불편을 느끼는 것도 의료다. 현지 의료보험이 없는 교민들은 외국인을 주로 상대하는 ‘국제병원’을 이용하는데, 숫자도 부족할 뿐더러 시설이나 환경에서 한국의 동네병원만 못하다. 감기 같은 가벼운 질병에 걸려 내원해도 진료비가 500위안(약 8만원) 가까이 나온다. 민간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면 고스란히 본인 부담이다. 의약분업이 안 돼 약을 병원에서 직접 건네주는데, 이로 인한 과잉처방 우려도 늘 상존한다.

이렇게 받은 약조차 최근 발암물질이 함유된 중국산 원료를 쓴 고혈압약 사태에서 보듯 반신반의하며 복용할 때가 많다. 상하이 교민들은 한국에 들어갈 때면 병원 처방을 받아 약을 산더미처럼 구해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감기 등 가벼운 질병은 현지 병원을 찾는 대신 한국에서 구해온 약을 먹으면서 최대한 버틴다. 필자 역시 한국에 나갈 때면 상비약을 최대한 공수해와 현지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려는 만반의 준비를 하는 편이다.

병원을 찾는 대신 약으로 버티는 것은 현지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병원의 시설이나 환경, 서비스도 열악하지만 의료진에 촌지를 건네는 구태도 여전하다. 환자 뱃속에서 수술용 메스나 거즈가 발견되거나, 수술 후 신장이나 자궁이 사라졌다는 흉흉한 뉴스도 잊을 만하면 나온다. 반면 약국은 상하이만 해도 24시간 운영하는 약국이 654곳이나 될 정도다. 약사의 복약지도 없이 배달주문도 가능하다. 이로 인한 약 오남용 문제는 상존하지만 병원에 비해 편리하기 그지없다.

중국의 열악한 의료환경이 만들어낸 의료 소비행태는 한국 의료업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경제성장과 함께 좀 더 위생적인 환경에서 최신 설비로 진료받기를 원하는 의료 수요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 대형병원을 찾아 건강검진을 받는 중국인 의료관광객들이 증명해주듯 한국은 적어도 의료 방면에 있어서는 아직 중국과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치과, 성형외과 등 돈 되는 진료과목 분야에서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의사들도 제법 된다.

영화의 실제 모델인 루용이 인도산 복제약을 처음 알게 된 것도 한국 백혈병 환자들을 통해서였다. 2004년 인터넷을 통해 한국 백혈병 환자들이 인도산 복제약을 구해 복용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한국을 직접 찾기도 했다. 인도산 복제약을 직접 대량구매해 다른 환자들에게 분배하는 방식도 한국에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이 중국 백혈병 환자들의 생명을 연장하고 의료환경을 바꾸는 데 적지않은 기여를 한 셈이다.

“생명이 곧 돈이다”란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처럼 사람 목숨을 다루는 의료는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 중인 중국에서도 가장 유망한 비즈니스다. 지난해 기준, 중국의 암환자들이 약 구입에 쓴 비용만 1300억위안(약 21조원)에 달했다. 최근 항암제를 포함한 일반의약품의 수입관세를 면제하는 등 제약업에도 문호를 대폭 개방해 시장 진출 기회가 늘었다. 사람도 살리고 돈도 벌면 좋은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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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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