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어령 교수가 아프다. 지난해 이맘때쯤, 가을 나무가 잎들을 거의 다 떨군 즈음이었다. “주간조선 연재도 끝났으니 편하게 식사 한번 하자”는 전갈을 비서실에서 받았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날, 그는 이상한 말을 했다. “죽음이 어떤 모양으로 오는지 궁금했는데 그게 황량한 갯벌 구멍에서 기어나온 게처럼 슬금슬금 다가오더군.”

이건 또 무슨 말일까. 그는 메타언어를 즐겨 쓴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 말이 갖는 ‘언어의 언어성’에서 좁혀가는 식이다. ‘죽음’ ‘게’ 두 단어를 수수께끼처럼 품고 갸우뚱하던 차에 그가 말을 이었다. “캔서(cancer·암)가 라틴어로 ‘게’를 의미하잖아.” 벼락 맞은 느낌으로 아득해졌다. 농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실제적인 죽음에 직면했다는 의미였다. “나는 평생 물음표와 느낌표를 안고 살았는데, 이제 죽음이란 마지막 물음표와 만나게 된 것이지.”

2016년 2월부터 약 1년간 주간조선에는 ‘이어령의 창조이력서’가 연재됐다. 그의 마지막 제자인 기자가 묻고 이어령 교수가 답하는 형식의 연재는, 사실상 회고록에 가까웠다. ‘창조의 아이콘’인 그가 평생 해온 역작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짜릿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연재는 끝났지만 끝난 상태가 아니었다. 인천국제공항,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3세대 아파트의 유니버설 디자인 프로젝트, 광주·이천 도자기박람회, 고흥 공룡박람회와 고양 국제꽃박람회 등 그의 머리를 거쳐간 유무형의 창조물들이 아직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지문처럼 찍혀 있는데,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22회 연재를 마치면서 이 교수는 “문화행사 말고, 진짜 문학 학술 분야의 창조이력서를 다시 이어가자”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시작도 못 하고 있다. 투병 이후로 그의 일상은 더 바빠졌기 때문이다. 벌여놓은 프로젝트와 저작을 마무리 지은 다음 시작하자고 했는데, 아직도 길이 멀다.

주간조선 창간 50주년을 맞아 ‘잡지의 미래’를 주제로 인터뷰를 청하자, 이어령 교수는 흔쾌히 응했다. 두 가지 심경이 담겼을 터다. 하나는 국내 시사주간지 최초로 50주년을 맞은 주간조선에 대한 축하와 응원, 또 하나는 선배 ‘잡지쟁이’로서의 일종의 사명감. 그는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20대 후반에 잡지 ‘새벽’ 편집위원을 맡아 ‘사상계’와 자웅을 겨루었고, 1960년대 초반에는 ‘세대’ 창간을 주도했으며, 1970년대에는 ‘문학사상’을 창간했다. 이상(李箱)의 초상화를 발굴해 표지로 꾸민 창간호는 발간 당시 3쇄까지 증쇄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의 ‘이상문학상’은 문학계를 대표하는 문학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경력을 쌓아온 그에게 잡지의 과거, 현재, 미래를 묻고 싶었다.

10월 초, 평창동 자택 서재에서 이어령 교수와 마주 앉았다. 투병 중이었지만 눈빛은 그대로였고 카랑카랑한 음성도 여전했다. 영상 촬영을 겸한 인터뷰에서 그는 시종일관 제작진을 주도하며 서재와 컴퓨터 7대가 놓인 작업실을 오갔다. 이날 인터뷰는 무려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이것 좀 봐요. 젊은 친구들이 만든 유튜브 채널인데 편집이 기막혀. 1시간 동안 인터뷰를 해가더니 5분짜리로 임팩트 있게 편집한 거야. 내가 아무리 TV나 신문, 잡지에 오르내려도 반응이 거의 없던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 인터넷에 나왔어요’라며 링크해줬어요. 나는 늘 시대를 앞서 걸어온 줄 알았는데, 이걸 보고 완전히 뒤집어졌지.”

이어령 교수를 만나면 꼭 이런 예열시간이 있다. 본격 인터뷰 전, 최근 관심사를 들려주는 시간. 새롭게 알게 된 세계를 펼쳐보이며 말에 말을 걸면서 사고를 확장해나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는 유튜브 영상에 투병 중임을 밝히면서 젊음과 죽음에 대한 핵심메시지를 담았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라는, 누구나 다 알면서도 잊고 사는 말. 언어의 마술사답게 그는 뻔한 말을 뻔하지 않은 표현으로 일깨웠다. 그리고 ‘늙는다는 것. 그리고 죽는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온리 원의 생명을 살아가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진짜 마지막 멘트는 이렇게 끝난다. “말이 그렇지, 내 자신이 그렇게 살아보지 못한 거야.” 그다운 솔직함이다. 가르치려들거나 일깨우려들지 않는 솔직함. 이 영상의 조회 수는 30만뷰를 넘었다.

이 교수는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재밌지? 영상 제목을 뭘로 뽑았는지 알아요? ‘시대의 지성 이어령, 참견하다’ 허허허. ‘메시지’나 ‘충고’가 아니라 ‘참견한다’는 말이 참 재밌잖아.”

이제 본격 인터뷰 시간이다. 첫 질문을 던지자 그는 목 운동을 한 번 크게 하더니 준비된 듯한 답변을 풀어헤쳤다.

- 주간조선 창간 50주년 축사 한마디 해주세요. “50주년에는 ‘축하’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요. 오래된 소나무 앞에 서면 외경, 존경, 장엄함을 느끼니까. 마찬가지예요. 주간조선 50년 역사 앞에 옷깃을 여미게 되지요. 독자로서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 많은 주간지들이 폐간했지만 주간조선은 살아남았습니다. 비결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요. “하루살이처럼 살아온 격동의 역사 속에서 오래된 모든 것들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처음엔 ‘구리’도 번쩍거려서 ‘금’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녹슬면서 금이 아닌 걸 알게 되지. 시간이란 최고의 재판관이에요. 최고의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지혜로운 재판관. 반세기 가까이 한 매체가 살아남았다는 건, 그때그때 시류에 떠밀리지 않는 커다란 닻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야. 앞을 내다보며 꾸준히 창간 당시의 초심을 이어왔다는 증거지요.”

- 선생님도 연재 ‘이어령의 창조이력서’로 주간조선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됐는데요. “맞아요. 나는 아무리 늙어도 회고록 같은 글은 쓰지 않겠다고 했는데 주간조선이 그걸 깼지. 주간조선이라는 매체의 특성과 김민희 기자가 없었더라면 그때 밝힌 여러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는 영원히 침묵 속에 묻혔을지도 몰라요. 한마디로 누울 자리가 있으니 다리를 뻗은 거지. 모난 것도 싸고 둥근 것도 쌀 수 있는 보자기 같은 ‘포용성’을 지닌 주간조선은 여러 계층의 사람과 여러 생각을 어우르는 ‘다양성’을 가졌어요. 그리고 그것을 뚝심 있게 밀고 간 ‘일관성’, 그러면서도 주간지가 범하기 쉬운 선정적이고 표피적인 유행에서 벗어나 모든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심층성’이 있지.”

- 선생님은 잡지 ‘새벽’ ‘세대’ 등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문학의 본령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했습니다. 독자로서 바라본 주간조선은 어떤 언론인가요. “피톤치드(phytoncide)를 발산하는 측백나무 숲과 같다고 봐요. 산림의 수목들은 해로운 세균이나 벌레와 싸우기 위해 휘발성 화학물질을 내뿜는데, 그게 바로 피톤치드예요. 해로운 것을 죽이는 살균력이 동시에 우리의 심신을 맑게 하는 정화력이 되는 이중작용을 하지. ‘피톤’은 식물, ‘치드’는 죽인다는 라틴어에서 따온 말이에요. 나무가 내뱉는 독성은 무시무시한 공격성을 지니지만, 자기 자신과 적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치유의 향기가 돼요. 숲 전체에는 생명을 어루만져주고 지켜주는 맑은 공기를 만들어주는 것이지.”

- 주간조선은 피톤치드다? “그래요. 주간조선이 펜으로 써내는 날카로운 언어는 무시무시한 멸균성을 지녀서 벌레들에겐 죽음과 같은 두려움을 주지만, 사회 전체를 위해서는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향기가 돼요.”

- 종이매체의 몰락이 공공연하게 거론됩니다. 주간조선도 예외가 아닌데요, 앞으로 50년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요건은 뭘까요. “그건 항상 나오는 소리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부사장이었던 딕 브래스의 예언대로라면 올해 2018년엔 종이신문이 다 망했어야 해요. 하지만 어때요? 변동은 있었지만 영향력이 여전한 종이신문이 많잖아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디지털 파워도 옛날 같지 않잖아. 활자매체뿐 아니라 TV와 전자매체도 종이매체 이상으로 위협받고 있고, 아예 사라진 곳도 많아요. 페이스북과 구글, 애플까지도 주가가 급락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아마존을 보세요. 전자거래만 하던 디지털 기업이 아날로그의 시장으로 나와 양서류 같은 ‘디지로그(Digilog) 기업’이 되면서 활력을 띠고 있지. 아톰과 비트, 온·오프의 두 공간이 어떻게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연결되는가. 이것이 앞으로 주간조선을 비롯한 종이매체들이 갈 길이라고 생각해요. 쉽게 말해 주간조선을 펼쳐서 기사를 읽다가 스마트폰을 대면 바로 그 기사와 관련된 동영상이나 속보 같은 것이 웹과 실시간으로 뜨게 하는 것이지. 신문이 사이버 공간과 연동되어 모든 뉴스의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디지로그 미디어예요. 알파고의 인공지능과 포켓몬고와 같은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하면 이론상으로는 지금 당장 주간조선 기사를 그 현장과 연결해 체험까지 할 수 있어요. 일간지다, 월간지다, 책이다, 인터넷이다 그런 구별이 무의미해질 날이 멀지 않았어요. 스마트폰이 생긴 지 불과 10년인데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나 생각해봐요.”

-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등 잡지 주기와 무관하게 데일리 뉴스 서비스 플랫폼으로 바뀌는 곳이 많습니다. “온라인, 오프라인 어느 한쪽만 강조해서는 안 돼요. 트랜스미디어(trans media)가 되어야 해. 젊은이들이 활자를 벗어난다고 하지만, 콘텐츠 자체에 대한 수요는 영원하거든. 그때그때 미디어의 부침이 많지만 종이매체만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봐요. 향기 나는 미디어가 되어야 해요. 단순히 메타포로서의 향기가 아니야. 잡지를 넘기는 촉감, 폈을 때 나는 종이 냄새는 그 어떤 미디어보다 소구력이 있어요.”

- 디지로그 개념을 확장하면 매체가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까요. “증강현실이 한층 강화되면 디지털 환경과 아날로그의 ‘아톰 환경’, 다시 말해 ‘사이버’와 ‘피지컬’이 합쳐지는 디지로그 미디어가 더 많이 등장할 거예요. 최근 자주 언급되는 CPS(Cyber Physical System)가 바로 디지로그지. 사이버 공간의 콘텐츠가 종이매체가 되고, 종이매체 콘텐츠가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하는 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거예요. 방탄소년단도 그렇잖아. 인터넷상에서 떴는데, 진짜 인기는 줄을 서서 티켓이 팔리는 실제 공연장에서 입증되는 거예요. 피지컬 스페이스(Physical Space)로 나왔을 때 비로소 진짜가 되는 거지. ‘나는 종이매체다, 너는 전자미디어다’라는 틀을 부숴야 해요. 인터넷은 종이로, 종이는 인터넷으로 자유롭게 왕래하는 쌍방향의 하이브리드 매체가 되어야 해요. 디지로그 시대는 절대 이론이 아니에요. 궁극적 미디어의 독자는 미디어를 가리지 않아요.”

- 하이브리드 시대의 독자가 가지는 특장점이 있다면요. “오늘날 독자들은 초식동물 같아요. 초식동물은 급할 때 실컷 뜯어먹고 나중에 계속 반추하지. 활자 미디어만이 반추 기능을 갖고 있어요. 어제 흡수한 그 많은 정보를 되새김질하는 것이지. 활자 미디어는 ‘낮에 나온 반달’이에요. 전자 미디어가 대낮 미디어라면, 활자 미디어는 밤의 미디어예요. 밤이 되면 대낮에는 보이지 않던 반달, 별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생겨나는 것이지. 24시간 대낮만 있으면 못 살듯, 24시간 인터넷망 속에서는 못 살아요. 태양빛이 아무리 강렬해도 밤의 미디어는 존재해요.”

- 밤의 미디어를 다루는 잡지 기자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요. “뉴스 속보를 다루는 기자는 수렵하는 사람이에요. 확 물어버리는 순발력이 필요하지. 밤의 미디어는 명상과 생각으로 내면화해야 해요. 다시 말해 잡지 기사는 ‘수렵적 동물성’이 아니라 ‘채집적 식물성’이 필요해요. 감성, 직관, 되새김질을 할 수 있는 지성이 필요해요. 식물적 지성.”

- 식물적 지성이라. “본질적으로 뉴스는 페이크 뉴스지요. 그래서 news에서 s 자를 빼라는 거예요. 정말 그 뉴스는 새로운 것인가. 늘 다니는 길에는 새로운 것이 없어요. 길 없는 곳으로 가야 못 보던 것, 못 듣던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새 약초를 발견하려면 약초밭이 아니라 잡초밭에 가야 한다는 얘기지. 미국 시인 에머슨(R.W.Emerson)도 그런 말을 했어요. ‘잡초란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라고 말야. 그래서 유능한 잡지 기자는 ‘잡(雜)’을 잡을 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잡지(雜誌)인 거지.”

- 선생님은 기자가 아닌 논설위원을 했는데요. “허허. 그러니까 말이여. 나는 논설위원은 해도, 기자는 못 해요. 나 같은 사람 취재해봐야 특종은 안 돼. 알려진 약초를 놓고 그 효능을 검증하고 비평할 수는 있어도 개똥쑥처럼 새로운 항암성분을 지닌 잡초를 찾아내진 못해. 유명인은 사실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무명인 속에서 유명인이 나오는 것인데 오늘날 잡지 기자들은 대개 유명인만 찾아다녀요. 유명인을 만들고 발굴하는 것, 그것이 진짜 기자야. 앞으로는 나 같은 사람 인터뷰하지 말고 삿갓 들고 얼굴 가리고 다니는 방랑자들 찾아봐요. 그걸 알아보려면 정신은 높고 생활은 낮게 해야 해요. 그런데 대개 잡스러운 사람은 정신의 높이가 낮고, 정신의 높이가 높은 사람은 그 밭에서만 놀지.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는 기독교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에요. 기자에게도 해당되지. 이 패러독스를 볼 줄 모르면 훌륭한 기자가 못 돼요.”

- 미디어 홍수 시대에도 영향력 있는 잡지의 요건은 뭐라고 보나요. “‘킬러 콘텐츠’가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남아요. 달걀에 노른자위와 흰자위, 야구에 단타와 홈런이 있어야 하듯 잡지도 마찬가지야. 잡지의 모든 내용을 좋은 것으로 채울 수 없지만 ‘코어(core)’ 콘텐츠가 만들어지면 전체가 덩달아 돋보여요. 잡지가, 신문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소수라도 고정독자의 수요를 반영한 미디어들은 살아남아. 이성적, 보편적 콘텐츠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독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잡지를 지향해야 해요.”

- 1960~1980년대 베스트셀러 잡지들을 만들어내셨는데, 이 시대에 잡지를 만드신다면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으세요. “허허. 실은 내가 해보고 싶은 잡지가 있어요. ‘호미’ ‘포대기’ ‘태명’ ‘한글’처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계가 주목하는 한류들을 심층적으로 다뤄보고 싶어요. 블로그 잡글 속에 나오는 소재들인데, 이런 소재들 안에 정치적 이념보다 더 중요한 미래 비전이 담겨 있어요. 가령 ‘호미’를 봐. 한국에만 있는 도구인데, 지금 ‘ho-mi’라는 고유명칭 그대로 아마존닷컴에서 고가에 팔리고 있잖아. 쪼그리고 앉아 나물을 캐고, 좁은 마당을 가꾸는 원예도구로 이만한 게 없어요. 드론이나 트랙터, 삽이나 괭이로는 도저히 못 하지. ‘포대기’는 또 어떻고. 유럽에서 체온을 느끼는 육아법으로 각광받으면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어요. 이런 걸 하나하나 파고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만 해도 신나요. 그런데 나한테 시간이 남아있을까?”

김민희 톱클래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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