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14일 군은 사진 속 감시카메라 안에 부착된 1400만원 상당의 렌즈를 도난당했다. 3.5m 높이 기둥 맨 위에 설치된 장비가 군용 야간 감시카메라 ‘와쳐’이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해 8월 14일 군은 사진 속 감시카메라 안에 부착된 1400만원 상당의 렌즈를 도난당했다. 3.5m 높이 기둥 맨 위에 설치된 장비가 군용 야간 감시카메라 ‘와쳐’이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군(軍)이 해안 감시카메라에 들어가는 고가의 부품을 도난당하고,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엉뚱한 20대 초반 민간인 3명을 용의자로 지목해 체포까지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들은 최근 검찰로부터 무혐의 통보를 받았지만 과잉수사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경찰은 용의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소환통보도 하지 않은 채 가족과 직장동료 앞에서 긴급체포했다. 군은 아직까지 범인을 찾지 못한 것은 물론 감시 장비 도난과 관련한 관련자들의 책임조차 묻지 않고 있다. 사건의 전말을 들은 법조계 인사들은 군 관계자들이 도난 사건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무리하게 민간인을 용의자로 지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사건은 2018년 8월 14일 새벽 4시경 인천 영흥도 십리포해수욕장 인근 육군 부대의 한 해안초소에서 일어났다. 이 부대가 운용하는 열상 감시카메라의 렌즈가 없어지는 일이 발생한 것. ‘와쳐’라고 불리는 이 감시카메라는 적외선 열감지장치 등을 이용해 야간에 넘어오는 적(敵)을 식별하는 데 사용된다. 도난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야간근무를 서고 있던 병사는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자 이를 부대 간부에게 곧장 보고했다. 부대는 최초 보고 시간으로부터 6시간이 지난 오전 10시에야 카메라 속 렌즈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해안 소초 경계 근무용 카메라인 데다 140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였던 만큼 군은 곧바로 헌병대에 수사를 의뢰했다.

헌병대는 범인을 찾기 위해 한 달간 수사를 벌였다. 일차적으로 렌즈가 도난당한 날 영흥도를 출입했던 차량의 차적을 모두 조회했다. 그리고 최초 보고시간이었던 오전 4시를 전후해 소초 주변에 설치된 CCTV 등을 분석, 20대 초반의 남성 3명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 3명은 렌즈가 도난당한 시점에 인근 십리포해수욕장에 있었던 이들이었다. 헌병대는 CCTV 속에 찍힌 영상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휴대폰 플래시를 켜서 머리 위로 흔들었다는 점, 3명 중 한 명이 같은 장비를 운용하고 있는 다른 군부대에서 군복무한 점을 근거로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했다. 휴대폰 플래시를 흔든 것은 이들 사이의 교신호로 봤다.

지난 2월 13일 방문한 인천 영흥도 모습. 육군 병사들이 해수욕장에 모여 있다.
지난 2월 13일 방문한 인천 영흥도 모습. 육군 병사들이 해수욕장에 모여 있다.

헌병대가 경찰에 사건 이첩

헌병대는 민간인 신분의 3명을 용의자로 지목해 사건을 인천중부경찰서로 넘겼다. 헌병대가 넘긴 자료에는 이들의 동선 분석 및 통화 내역, CCTV 분석자료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경찰은 2018년 10월 26일 이들을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긴급체포해서 추가조사를 벌였다. 한 달여간의 추가조사 끝에 경찰은 사건을 ‘혐의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고, 검찰도 최근 이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이들은 검찰 측에 거짓말탐지기 검사까지 자처하는 등 줄곧 수사에 적극적이었다.

검경이 감시카메라 제조업체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한 결과 해당 감시카메라는 일반적인 CCTV카메라와 달리 철제 덮개가 카메라를 감싸고 있다. 렌즈를 빼내기 위해서는 ‘와쳐’를 해체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는 해당 장비를 전문적으로 다룰 줄 알아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헌병대가 파악한 동선분석 내역을 검토한 결과 용의자들이 십리포해수욕장 인근에 머문 시간은 약 40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간 안에 감시카메라를 분해해 렌즈를 빼내고, 다시 조립을 하기까지는 물리적 시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체 측 설명이었다. 헌병대는 용의자 중 한 명이 같은 장비를 운용하는 부대에 근무했다는 점을 범행 근거로 제시했는데, 그는 해당 장비를 본 적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간조선이 사건 현장을 직접 방문해 취재한 결과, 헌병대가 제시한 증거만으로 이들을 용의자로 몰기에는 허술한 점이 많아 보였다. 도난당한 감시카메라는 십리포해수욕장 해안가 산책로에 설치되어 있어 민간인의 접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3.5m 높이의 철기둥 꼭대기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 사다리 같은 장비가 없는 한 손조차 댈 수 없는 구조였다. 군 관계자 역시 이 장비를 해체하기 위해선 육각형 렌치 등 공구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변 지형과 카메라 다루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 계획적인 범행을 벌였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이다. 하지만 당시 경찰이 확보한 용의자 일행의 차량에서는 사다리를 들고 다닌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공구는 십자드라이버 하나뿐이었다.

당시 피의자로 지목됐던 A(22)씨는 주간조선과 만나 자신이 용의자로 지목된 데 대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와쳐’를 운영하는 부대에 근무했던 것으로 헌병대가 지목한 인물이다. 김씨는 “군복무 시절에도 열상카메라 같은 장비는 다뤄본 적이 없다. 소속 부대에 그런 장비가 있었다는 사실도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A씨는 군복무 시절 소총수로 근무했다. 군에 따르면 도난 가능성이 높은 장비 관리는 주로 정비대에서 맡는다고 한다. 일반 병사들은 카메라 장비 해체나 조립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

A씨 일행은 헌병대가 특정한 렌즈 분실 시각 이후에도 인근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먹으며 해수욕장 주변에서 30여분 더 머물렀다. A씨는 해수욕장에서 셀카를 찍기도 했다. A씨는 “어느 절도범이 물건 훔친 곳에서 셀카 찍고 간식을 사먹겠나”라며 “헌병대는 내가 휴대폰 플래시를 머리 위로 흔든 행위가 공범에게 사인을 보낸 거라고 하는데, 그건 단지 주변이 어두워 바다를 잘 보기 위해 켰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헌병대는 이들이 해수욕장에서 두리번거린 모습이 주변 CCTV에 포착된 것을 두고 절도행각을 위해 주변 망을 본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A씨 측은 “발에 모래가 묻어 씻을 만한 화장실을 찾은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부천에 사는 3명의 용의자들은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로, 사건 당일 바람을 쐬기 위해 십리포해수욕장을 찾았다고 한다. 일 년에 몇 번씩 가던 곳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바닷가를 찾았다가 졸지에 ‘절도 용의자’가 되었다. A씨는 “헌병대와 경찰이 우리를 피의자로 지목한 이유를 설명 듣고 황당했다. 우리가 물건을 훔쳤다는 직접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고,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거짓말탐지기 수사까지 자청했다”고 말했다. A씨와 일행이었던 B(22)씨는 “경찰과 검찰을 오가며 수차례 조사를 받아야 했던 까닭에 아르바이트도 관두고 일자리도 구하지 못했다. 1월 25일로 예정되어 있던 군입대도 병무청으로부터 입대불가 통보를 받아야 했다”며 경찰 조사로 인한 피해를 호소했다. B씨는 영문도 모른 채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중 체포되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주간조선 취재 결과 경찰은 이들이 소환에 불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곧바로 체포했다.

헌병대는 수사 초기에 피의자를 다섯 명으로 특정하기도 했다. A씨 일행 3명 외에도 공범 2명이 더 있다고 본 것이다. 헌병대가 5명을 용의자로 특정한 이유는 인근 도로 CCTV 판독 결과 범행 현장(십리포해수욕장)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차에 탄 인원의 옷차림이 달랐기 때문이다. 헌병대는 이를 십리포해수욕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공범 2명을 태운 것이라고 판단했다. A씨 일행은 이것 역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A씨는 “여름이라 자동차 에어컨을 틀었더니 추워서 옷을 걸쳤을 뿐이다. 헌병대는 섬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옷차림이 다르다는 이유로 2명의 공범이 더 있다고 봤다. 당시 일행은 우리 셋뿐이었다”고 말했다.

군이 도난당한 카메라가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군이 도난당한 카메라가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허술한 경계근무

헌병대가 공범이라고 지목한 2명 중 1명은 사건 시각 이들과 통화를 나눈 동네 형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은 A씨였다. CCTV에 찍힌 A씨의 신상을 파악하지 못한 헌병대는 ‘인적불상’으로 용의자 한 명이 더 있다고 봤는데, 그게 입고 있던 외투를 벗은 A씨였던 것. A씨는 “평생 경찰 조사라는 걸 받아본 적 없는데, 갑자기 체포까지 되어 끌려가니 부모님이 많이 놀라셨다”며 “우리처럼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이 또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A씨를 비롯해 함께 경찰 조사를 받았던 3명은 군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주간조선 취재 결과 군이 경계근무를 허술하게 선 정황도 확인됐다. 군이 ‘와쳐’ 장비에 문제가 생긴 것을 최초로 인지한 것은 7월 중순이었다고 한다. 당시 감시병이 ‘와쳐’의 녹화재생 프로그램을 작동시켰는데 정상 작동되지 않자 소초장이었던 소위에게 보고했다. 소위는 녹화재생은 제대로 되지 않지만 감시에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상급자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해당 장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계자는 “녹화재생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작동됐다면 진범을 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를 무시하고 운용해서 벌어진 결과”라며 “해당 카메라가 녹화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던 누군가의 범행이라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사건의 전말을 들은 한 법조계 인사는 “군이 증거로 제시한 것들이 너무 허술하다”며 “검찰이 기소한다 해도 재판에 가면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군이 경계실패 및 군용품 절도사건의 책임을 자체적으로 지지 않기 위해 엉뚱한 민간을 용의자로 지목해 ‘짜맞추기식’ 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군은 사건 이후 도난당한 감시카메라 주변을 찍는 CCTV를 새로 설치했다. ‘접근-접촉 시 SECOM 출동’이라는 경고문도 하나 붙여놓았다. 진범 파악은 아직 진행 중이다. 군 관계자는 “해당 장비를 관리하는 정비대 대원들이나 소속 부대원들도 모두 조사했지만 특별한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건을 장기 수사로 전환하고 진범을 잡기 위해 장물시장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며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군용품 관리 및 보안에 철저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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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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