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7일 찾아간 성주 사드 기지 초입.
지난 5월 7일 찾아간 성주 사드 기지 초입.

북한이 이른바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발사한 지 이틀 후인 지난 5월 6일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를 찾았다. 인구 170명 안팎의 작은 시골마을은 여느 농촌 풍경과는 달랐다. 허리를 굽혀 농사짓고 있는 노인들 위로는 컨테이너를 매단 헬기가 날고 있었다.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 들어서면 줄지어 걸려 있는 현수막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마을회관에서 현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되어 있는 옛 성주골프장 입구까지 약 500m 길이의 도로 양쪽으로 수백 개의 현수막이 빼곡히 달려 있다. ‘박근혜 적폐 완수하는 문재인 정권 규탄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통일 약속, 사드 철회부터 시작하라!’ ‘북핵 위협 사라졌다, 불법 사드 철거하라’ ‘사드 뽑고 평화 심자’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민주노총, 전교조, 민중당, 정의당 등의 단체에서 걸어놓은 현수막들도 보였다.

사드 기지로 들어가는 도로 입구에는 여전히 천막 농성이 진행 중이었다. 농성 현장을 방문한 지난 5월 7일에는 두 개의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중 한 천막에만 50대 남성 한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원불교 교도였다. 원불교는 성주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핵심 세력 중 하나다. 소성리에 원불교 2대 종법사 송규 종사의 생가와 구도지가 있어 교단 내에서 이곳이 ‘성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원불교의 ‘성지’에 전쟁 무기가 들어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곳에서 만난 원불교 교도 A씨는 천막 안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기도를 드리는 중이었다. A씨는 “원불교 교도들끼리 돌아가면서 천막을 지킨다. 나는 집이 대구 쪽이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비교적 자주 오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원불교 안에서도 모두가 사드를 반대하고 있지는 않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반대 여론도 많이 옅어지고 있고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이념의 문제로 보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천막 앞에는 ‘788일째’라고 적힌 팻말이 놓여 있었다.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사드 기지 초입까지 약 500m 길이의 도로에 현수막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사드 기지 초입까지 약 500m 길이의 도로에 현수막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아직도 헬기로 물자 나르는 중

천막에서 반대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는 한 명뿐이었지만 천막 앞과 뒤, 기지 입구 안쪽과 바깥쪽으로는 경찰 경비 인력 10여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경찰들은 옛 성주골프장 캐디 숙소를 사무실 겸 당직실로 활용하며 24시간 근무를 서고 있다. 이곳 경찰 관계자는 “요즘은 비교적 잠잠한 편”이라며 “그러나 언제 무슨 충돌이 일어날지 몰라 항상 예의주시하며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4월 27일에도 성주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 등 400여명이 성주기지 내 부지 공사를 규탄하며 ‘9차 소성리 범국민평화행동’을 열었다. 2017년 4월 26일 사드가 소성리에 배치된 후 2년을 맞아 진행된 ‘평화행동’이었다.

군 관계자들이 탄 것으로 보이는 승용차들은 도로를 통해 기지 내부로 통행을 하고 있었다. 다만 주한미군 측 군수물자 운반 등은 여전히 헬기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주민들과의 괜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주한미군이 성주에 사드를 반입할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군 핵심관계자는 “헬기 운용은 기상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지상 보급 보다 불편한 점이 많았다”며 “제대로 된 먹을 것과 생필품을 제때 보급받지 못해 고충이 많았다. 차량에 비해 헬기는 비용도 많이 들다 보니 군 입장에서 부담스러웠다”고 전했다. 성주에 사드가 배치된 지 2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크게 나아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5월 4일 북한이 러시아제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을 빼닮은 신형 무기를 발사한 후에도 성주는 달라진 것이 없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발사한 물체가 ‘미사일’이라고 입을 모으지만, 정작 군 당국과 한국 정부, 그리고 미국 정부는 ‘발사체’라고 규정짓고 있다. 이 신형 무기는 성주에 배치되어 있는 사드로도 요격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주한미군의 사드에 위협을 가하려는 메시지를 던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14년부터 미국에서 조금씩 말이 나오기 시작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는 모든 과정과 절차마다 이견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2016년 7월 13일 뜨거운 여론 속에서 경북 성주군에 부지를 마련하는 것으로 공식 결정됐다. 성주 부지 확정 이전에는 대구, 평택, 칠곡 등이 예상 부지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 중 칠곡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칠곡군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변경됐다. 성주 주민들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았다. 공식 확정되고 이틀 뒤인 2016년 7월 15일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성주군청을 찾았다가 달걀과 물세례를 맞고 6시간 동안 버스에 갇히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017년 4월 26일 우여곡절 끝에 주한미군은 발사대 2기를 성주골프장 부지에 임시 배치했다. 주민 참관이나 공청회 같은 절차가 생략된 약식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됐지만 논란이 계속되자 2017년 6월 현 정부는 일반환경영향평가로 방침을 바꿨다. 이후 지난 3월에는 주한미군이 국방부에 사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며 본격적인 정식 배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임시 배치와 정식 배치는 행정적 법적 절차를 최종적으로 끝냈느냐의 차이일 뿐 사실상 군에서는 정식배치가 된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드 배치 과정에 대해 ‘절차상 일방적 결정의 문제가 있었다’고 입장을 밝혀왔다.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에는 사드 발사대 4기가 추가 반입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보고받았다’며 ‘충격적’이라고 격노하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2017년 9월 7일 오전 사드 기지에 추가로 배치된 사드 발사대 위를 군 헬기가 지나가고 있다. 지금까지도 사드 기지로 가는 주요 물자들은 헬기로 운송되고 있었다. ⓒphoto 김종호 조선일보 기자
2017년 9월 7일 오전 사드 기지에 추가로 배치된 사드 발사대 위를 군 헬기가 지나가고 있다. 지금까지도 사드 기지로 가는 주요 물자들은 헬기로 운송되고 있었다. ⓒphoto 김종호 조선일보 기자

“정부가 우리에게 해준 건 하나도 없다”

사드 정식 배치를 밟아가는 과정에서 성주 주민들의 반발을 어떻게 설득할지는 지금 정부가 풀어내야 할 숙제다. 더욱이 현 정부는 ‘TK 홀대론’에 휩싸여 있다. 지난 1월 정부가 확정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사업에서 부산·울산·경남 등 경남권에는 6조7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한 반면, 대구·경북에는 1조5000억원을 배정하자 ‘홀대’라며 TK 민심이 요동쳤다.

최근 성주군의 최대 염원은 남부내륙고속철도의 성주 역사(驛舍) 유치다. 김천에서 성주를 지나 거제까지 가는 170㎞ 길이의 남부내륙고속철도 건설이 추진 중인데, 현재 성주에는 신호장만 들어설 계획이다. 이를 신호장이 아닌 역사로 지으라는 것이 성주군과 주민들의 주장이다. 소성리 일대에는 사드 배치 반대 현수막이 몰려 있다면 역사 유치를 촉구하는 현수막은 성주군 전역에 곳곳마다 걸려 있다. 성주군은 역사 유치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이익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성주군의 바람대로 남부내륙고속철도의 성주 역사 유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사드 배치 부지로 확정되면서 성주는 보상 차원으로 16개 지원사업을 정부에 건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실상 모든 사업이 ‘검토 단계’에서 답보 중인 상태라고 한다. 성주군 관계자는 “성주군도 국가 안보를 위해 사드 배치에 희생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최소한의 정책적 배려는 해줘야 할 것 아닌가”라면서 “지금 실질적으로 정부가 우리에게 해주는 건 하나도 없다. 성주가 사드 부지로 막 결정됐을 당시에는 뭐든지 다 해줄 것처럼 나섰는데…. 갈라지고 있는 주민들의 민심을 합치기 위해서라도 성주 역사 유치는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성주가 사드 부지로 공식 결정되던 당시 야당이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당시 야당 의원들은 성주의 사드 반대 집회 시위에 동참했다. 집회에서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라며 노래 부르고 춤췄다. 하지만 조사 결과 사드의 전자파 영향은 ‘0’에 가까웠다. 그랬던 야당이 집권한 뒤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하며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잔여 발사대 4기의 배치를 지시했다. 같은해 9월 문 대통령은 “사드는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7년 9월 6일 촬영된 사드 기지 내부 모습. ⓒphoto 김종호 조선일보 기자
2017년 9월 6일 촬영된 사드 기지 내부 모습. ⓒphoto 김종호 조선일보 기자

이후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타며 ‘화해모드’로 들어서자 성주 민심에 대한 현 집권세력의 관심도 사그라든 것 같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시 성주 주민들과 함께 싸우겠다고 나섰던 현 여당 의원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느냐는 불만도 나온다. 2016년 8월 한 유명 연예인은 성주에서 열린 사드 반대 집회에 참여해 ‘사드는 주민등록증이 대한민국으로 되어 있지 않다’며 ‘사드야말로 외부세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연예인은 정권 교체 이후 성주 사드 반대 집회 현장을 딱 한 번 찾았다.

정부가 성주 주민들의 반대 여론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 악영향은 자연히 군에 돌아간다. 2017년 당시 성주 사드 배치 임무를 수행했던 군 관계자는 “정부는 군부대가 임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할 책임이 있는데, 2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게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드는 군이 얼마나 정치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놓여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격무기도 아닌 방어무기를 배치하는데 국가가 앞장서 밀고 나가지는 못할지언정 분명한 의사결정을 못하고 의견이 나뉘어 싸우고 있으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선 병사들에게 돌아간다”면서 “무능한 정치가 적(敵)보다 무섭다는 교훈을 새삼 깨우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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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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