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기숙사로 용도전환되는 국내 최초 외국인 전용 기숙사 대전 ‘누리관’. ⓒphoto 김원중
청년 기숙사로 용도전환되는 국내 최초 외국인 전용 기숙사 대전 ‘누리관’. ⓒphoto 김원중

국내 최초 외국인 유학생 전용 기숙사 대전 ‘누리관’이 오는 7월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앞두고 있다. ‘누리관’은 대전시가 공격적으로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선언하며 2007년 대전 엑스포공원 내에 건립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충남대를 포함해 대전의 8개 대학이 43억원, 대전시가 43억원을 출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 10층, 지하 1층으로 연면적 7043㎡, 226실 규모다. 지은 지 겨우 10년 지난 멀쩡한 건물을 왜 뜯어고치는 걸까. ‘누리관’은 그동안 이용률이 저조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외국인 입사생 모집을 못 해 내국인 학생으로 채우고도 공실률이 30%에 달했다. 결국 대전시는 ‘누리관’을 완전 매입해 청년 기숙사로 용도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외국인 학생들이 누리관을 외면한 이유는 뭘까. 우선 기숙사 위치가 나쁘다. 누리관은 엑스포공원의 한 귀퉁이에 있다. 인근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주변의 편의시설도 변변치 않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건축 설계가 잘못됐다는 점이다. 객실 226개 전부를 2인1실, 면적 18.41㎡로 단일화했다. 유럽에서는 1인실 생활관에 해당하는 크기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각 방에 취사시설을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층에도 공용 주방시설과 라운지 등의 편의시설이 전혀 없다. 한마디로 말해 기숙사에서는 얌전히 잠만 자라고 압력을 넣은 셈이다.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한 외국인 학생들은 기숙사를 빠져나와 인근 주거시설로 옮겨갔다. 이런 결과가 나온 근본적 원인은 부동산을 개발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수요 분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국인 학생들이 기숙사를 기피하는 이유

필자는 2018년 카이스트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 540명을 대상으로 주거 관련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설문조사에 응한 120명의 외국인 학생들은 ‘학교 기숙사에서 원룸으로 옮긴 이유’를 묻는 질문에 “프라이버시가 없기 때문” “고향 음식을 요리할 수 없어서”를 가장 많이 꼽았다. 결국 외국인들의 주거 기호와 생활 패턴을 고려하지 않은 건축 설계 때문에 혈세로 지은 외국인 유학생 전용 기숙사가 문을 닫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교육부는 최근 들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골몰하고 있다. 저출산으로 발생한 학령인구 부족에 따라 대학 정원 감소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다. 2024년 기준 고교 졸업생은 40만명에 미치지 못할 예정이다. 2016년도의 대학 정원 52만명보다도 10만여명이 적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폐교’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듯이 지방대학의 학령인구 감소는 더욱 심각하다. 대학 줄도산은 물론 교수·직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으며 지역경제마저 휘청거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대학에서는 모집정원의 제한이 없는 외국인 학생 유치에 ‘올인’하고 있다.

외국인 학생 유치는 ‘정원 외 선발’에 해당되어 교육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수입도 짭짤하다. 실제 어학연수생 1명을 유치해서 벌어들이는 등록금은 대학원생 3명에서 얻는 수입과 맞먹을 정도로 수지맞는 비즈니스다. 한국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은 2017년 기준 12만3858명(국내 대학생 대비 2%)으로서 OECD 평균 8%보다 한참 적다. 예컨대 서울대의 외국인 학생 비율은 5%로 싱가포르대 20%, 하버드대 15.7%에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교육부가 2017년 ‘유학생 유치 확대 방안’을 발표한 이유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교육부는 2023년 20만명의 유학생을 유치, 외국인 유학생 비율을 5%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지방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을 위해 제2의 전용 기숙사를 건립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누리관’이 공실률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두 번째 기숙사를 짓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2000년대 초 지역 거점에 외국인 학생 공동 기숙사를 짓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1개씩 총 5개의 기숙사 건립을 지원할 계획이었다. 지자체와 지역 대학이 투자를 하면 교육부가 국비를 지원하는 ‘매칭형 투자’였다. 최초의 외국인 학생 기숙사 누리관은 이렇게 지어졌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일본 도쿄의 외국인 기숙사 ‘프라자 헤이세이’. ⓒphoto 김원중
일본 도쿄의 외국인 기숙사 ‘프라자 헤이세이’. ⓒphoto 김원중

일본 도쿄국제교류관 ‘프라자 헤이세이’

우리보다 앞서 외국인 유학생 전용 기숙사를 지은 일본의 경우를 보자. 일본 정부는 2001년 도쿄만 3만5985㎡의 매립지에 외국인 유학생 기숙사용 ‘도쿄국제교류관(Tokyo International Exchange Center)’을 완공했다. 국제교류관은 건축면적 8만2478㎡의 기숙사 4개 동과 컨벤션 센터를 갖추었다. 2019년 4월 말 퇴임한 일본 천황 아키히토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를 사용해 ‘플라자 헤이세이(Plaza Heisei)’로도 부른다. 필자가 플라자 헤이세이를 방문했을 때는 전철을 이용했는데 도쿄 도심에서 1시간30분이 걸렸다. 플라자 헤이세이는 아오미역(青海駅)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었고 주변에는 호텔, 쇼핑몰, 공원 등의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플라자 헤이세이 기숙사는 18.41㎡ 단일형인 누리관과는 완전히 다르다. 총 792개의 객실은 독신을 위한 전용면적 20㎡, 30㎡의 1인실 2개동(628실), 부부 커플을 위한 80㎡의 2인실 1개동(108실), 100㎡ 규모의 가족실 1개동(56실)으로 구성됐다. 사용자인 외국인 학생과 연구자들의 수요 특성을 고려해 생활관의 크기를 다양하게 한 것이다. 대다수의 생활관은 취사 및 세탁시설을 갖췄다. 개별 주방과 세탁시설을 넣을 수 없는 20㎡ 규모의 1인실 기숙사는 건물 1층에 식당과 세탁시설을 배치했다.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건축 설계에서 ‘디테일에 강한’ 일본이 느껴진다. 대전 ‘누리관’이 설계 단계에서 빠트린 핵심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대전 누리관보다 10배나 큰 규모의 외국인 유학생 종합기숙사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 해답은 프랑스가 20세기 초부터 운영하고 있는 외국인 학생 기숙사에 있다.

프랑스의 ‘파리국제대학도시’. ⓒphoto 위키피디아
프랑스의 ‘파리국제대학도시’. ⓒphoto 위키피디아

파리국제대학도시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려면 각국이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여러 나라의 유학생과 연구자들이 함께 숙식하는 기숙사가 태동하게 된 배경이다. 기숙사는 대학 캠퍼스 안에 두지 않고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대학 바깥에 조성했다. ‘파리국제대학도시(Cité Internatinale Universitaire de Paris)’라는 이름을 가진 이 기숙사는 파리 도심 남쪽 14구역의 주르당가(Jourdan boulevard)에 자리 잡았다. 이 기숙사는 33㏊(33만㎡)의 부지에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확대됐다. 거의 작은 도시 규모 수준이었다.

기숙사 조성이 도시계획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 배경은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 교육부 장관 앙드레 오노라(André Honnorat)는 1925년에 여러 사업가의 후원을 얻어 첫 번째 기숙사를 오픈했다. 그 뒤 외국 후원자, 사업가, 프랑스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2차 세계대전 이전에 21개관을 열었고, 2차 대전 뒤에는 1969년까지 17개의 기숙사를 추가로 지었다. 기숙사는 건축비를 제공한 국가의 학생과 연구자를 우선적으로 입주시키는 것이 원칙이지만, 정원의 30~50%는 다른 나라의 학생 및 연구자를 수용했다. 국제교류관의 이름에 걸맞게 외국인 학생들의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서였다. 생활관 중에는 명품 건축물도 있어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설계한 스위스관과 브라질관, 듀독(Willem Marinus Dudok)이 설계한 네덜란드관은 전 세계의 건축가, 학생 및 관광객이 찾는 관광코스가 됐다. 2018년 오픈한 한국관은 2600㎡의 부지를 프랑스 정부가 무상으로 내놓았고, 한국 정부는 건축비를 제공했다. 현재 25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프랑스 정부는 27개국의 지원을 받은 외국관 27개를 포함하여 총 40개관을 운영 중이다.

파리국제대학도시의 기숙사는 1인실 기준 18㎡이며 여기도 모든 층에 공용 주방과 라운지를 갖췄다. 이 기숙사 도시는 3개의 극장, 개가식 도서관, 전시장과 체육관, 수영장, 야구장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어 일 년 내내 전시, 콘서트, 회의, 영화상영 및 문화행사가 열린다. 40개관이 번갈아가며 개최하는 행사는 파리시 전체가 주목하는 문화 이벤트이기도 하다. 1925년 개관 뒤 2006년까지 132개 국가, 20만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파리국제대학도시를 거쳐간 배경이다. 프랑스 정부는 21세기 초 기숙사 수요가 증가하자 파리 북동부 19구역에 2개의 신관을 건설했다. 추가로 3000명을 수용하기 위한 공간 확장도 계획 중이다. 50년간 ‘수도권 과밀억제’라는 실속 없는 명분에 얽매여 이도저도 못 하는 한국과는 달리 프랑스는 생산인구 부족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외국 학생 유치에 적극적인 것이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 비율은 12%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의 효과

프랑스 사례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기숙사 운용방식이다. 파리국제대학도시는 학생 이외에 연구원, 예술가, 교수 등의 장·단기 거주를 혼용하여 수익 창출을 꾀한다. 기숙사가 텅텅 비는 방학에는 해외에서 대학생, 교수, 학자들의 단기 체류를 유치한다. 돈벌이도 수준급인 셈이다. 우리도 프랑스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80여만명의 해외 관광객들이 방탄소년단이 한국 가수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이다. 한류와 K팝 인기는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 유학을 선택한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한류 붐을 활용해 한국에 유학하는 외국인을 늘리고 졸업 후 정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생산인구 부족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유학생을 유치하려면 그들이 살고 싶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정확한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수요자에 맞는 주거시설을 제공했을 때 우리가 당면한 인구 부족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와 같이 인구 부족에 시달리는 선진국들은 이미 1960년대 말부터 외국인 유학생 유치 확대와 이민정책 완화를 병행하고 있다.

키워드

#기고
김원중 부동산학 박사·건국대 겸임교수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