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자택 돌하르방에서 반려견 진순이(왼쪽), 모슬이(오른쪽)와 함께한 한철용 장군. 모슬이가 진순이의 어미다. ⓒphoto 오동룡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자택 돌하르방에서 반려견 진순이(왼쪽), 모슬이(오른쪽)와 함께한 한철용 장군. 모슬이가 진순이의 어미다. ⓒphoto 오동룡

김녕해수욕장은 하얀 모래와 에메랄드 바다 색깔로 데이트 커플들을 유혹한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묘산봉 인근에는 이 아름다운 해안가를 조망할 수 있는 2층 양옥집들이 눈에 띈다. 그중 옥상에 ‘해산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이고 있는 집이 있다. 기자가 돌하르방 대문을 들어서자 이 집 진도견 두 마리가 낯선 손님을 보고 컹컹 짖었다. 이 두 마리의 진도견은 모슬이와 진순이. 대북감청부대인 5679부대장(쓰리세븐 부대)을 지낸 한철용 장군(73·예비역 육군 소장)이 최근 펴낸 ‘유기견 진순이와 장군 주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다.

한철용 장군은 2002년 전역 후 고향 김녕에 내려와 집 근처 ‘돌 동산’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동굴 속에서 유기견들을 만났다. 오갈 데 없어 보이는 유기견 어미 한 마리와 새끼 4마리였다. 한 장군은 이 유기견들을 집으로 데려와 정성스럽게 키우기 시작했다. 이번에 펴낸 ‘유기견 진순이와 장군 주인’에는 이 유기견들과의 만남과 동행을 소개하면서 자신이 평생 숙제로 여기는 제2연평해전의 진실까지 담았다. 그는 책에서 유기견을 키우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보신탕도 끊었다고 밝혔다.

그가 이번 책에서도 집요하게 다룬 것은 제2연평해전의 진실이다. 그는 퇴임 이후인 2010년 펴낸 ‘진실은 하나’에서 제2연평해전을 북한 8전대사령부가 지휘한 것으로 판단했었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김정일의 지시로 평양 소재 해군사령부가 직접 해전을 지휘한 것이 확인됐다고 주장한다. 해전 당일 북한군의 교신자료를 보면 이 점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젊은이들 원혼 달래기 위해 진실 밝혀야”

그가 펴낸 ‘진실은 하나’는 2015년 6월 개봉해 관객 600만명을 모은 영화 ‘연평해전’의 토대가 됐다. 영화 ‘연평해전’에서 배우 정동규가 한철용 장군 역할인 통신부대장으로 출연했다.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쯤 서해 연평도 인근의 북방한계선(NLL)을 남하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에 85㎜ 함포 사격을 기습적으로 발사하면서 발발한 해상 전투다. 이 전투에서 집중 포격을 당한 참수리 357호의 승무원 30명 중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다쳤다. 참수리 357호는 침몰했다.

한 장군은 2002년 국방부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장에서 김대중 정부의 군 지휘부가 대북 도발 징후를 묵살했다는 증언을 했다가 강제전역당했다. 제2연평해전이 발생하기 이틀 전인 2002년 6월 27일 그는 대북감청부대장으로 북한 해군이 “발포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음”이라고 교신하는 등 결정적 도발 징후가 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한 장군은 “군 수뇌부가 (이 보고를) 묵살했다”며 “우리가 충분히 제2연평해전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북한의 결정적인 도발정보(SI)를 두 차례나 접하고도 이를 의도적으로 묵살해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멀쩡한 우리 해군 고속정을 북한 함정 200m까지 근접 차단 기동시켜서 우리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한다. 함포 50발로 반쯤 가라앉혔던 적 경비정에 대해 상급부대에서 갑작스러운 사격중지 명령을 하는 바람에 “살아서 돌아가게 놓아주고 말았다”고도 비판한다. 당시 청와대는 해전 발생 이튿날 ‘금강산 관광선이 계획대로 출항한다’고 발표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전사자 조문도 하지 않은 채 한·일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당시 국방부는 해전의 성격을 ‘우발적’ ‘북한 경비정의 단독행위’ 등으로 평가했다. 당시 청와대 임동원 외교안보특보는 “아랫사람끼리 한 일”이라면서 북한을 옹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군 측이 항의하자 마지못해 ‘최소 북한 8전대사령부까지 개입했다’고 평가했다. 한 장군은 “내가 자료를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김정일 지시 아래 평양 소재 해군사령부가 관여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며 “이것 말고도 당시 우리 정부에서 수상한 일이 벌어진 게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진실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제주시을 지역구에 출마해 제2연평해전의 실체적 진실을 국회 차원에서 규명하려고 시도해봤지만 새누리당 경선에서 낙마하며 불발로 끝났다. 한 장군은 “나의 ‘넋두리’는 꽃다운 젊은이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사료로 남겨야만 한다”고 했다.

한 장군의 부인은 재향군인회 제8대 여성회장인 추순삼 예비역 육군대령이다. 1994년 한 준장은 48세의 나이에 추순삼 당시 중령(대대장)과 결혼, 언론에 ‘군 최고계급 부부 탄생’으로 화제를 모았다. 딸 은비양은 지금 대학 4학년생이다. 한 장군은 부인 추 대령에게 “내가 죽으면 내 관 속에 ‘진실은 하나’와 ‘유기견 진순이와 장군 주인’ 두 권의 책을 넣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죽어서도 제2연평해전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를 다지겠다는 것이다.

요즘 그는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한다.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목숨을 걸고 지킨 서해안이 문재인 정부의 9·19 남북군사합의로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장군은 “평화를 위해 9·19 남북 군사합의서에 서명을 했다는데 이는 항복문서나 다름없다”며 “DJ정부는 해군 고속정을 사지로 몰아넣었는데, 문재인 정권은 9·19합의로 대한민국 국군을 사지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고 했다.

‘게릴라 가드닝’으로 강제전역 아픔 달래

그는 고향에서 유기견을 키우면서 ‘게릴라 가드닝(guerilla gardening)’에 푹 빠져 산다. 게릴라 가드닝이란 자기 땅이 아닌 내버려진 땅을 일궈 나무와 꽃을 심어 정원처럼 꾸미는 것을 말한다. 거문오름에서 흘러나온 길이 600m의 돌빌레(땅에 묻힌 넓적한 바위)가 한철용 장군의 집 뒤뜰을 지나 김녕해수욕장으로 향한다. 김녕리의 보물이자 세계적 지질학적 유산을 뒤뜰로 쓰고 있는 셈이다.

한 장군은 전역 후 낙향해 2006년부터 10년간 가시덤불과 칡넝쿨로 뒤덮인 돌빌레를 공원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1653㎡(500평) 국유지인 돌빌레 돌 동산에 등짐으로 흙을 져날라 비자나무를 심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정성스레 가꾼 돌 동산에서 지금 키우는 유기견들을 만났다고 한다.

현재 돌빌레 돌 동산에는 소나무, 비자나무, 우묵사스레피나무, 개복숭아나무, 무궁화 등이 우거져 있다. 한 장군은 돌빌레 돌 동산에 방사탑 7개와 출구계단, 쉼터 등을 만들고 ‘부모슬공원’이라는 표지석도 세웠다. 제주도청도 그가 주민들을 위한 공원을 조성하는 데 동참해 공사비 6000만원을 지원했다. 돌 동산 정상 부근에는 주민들을 위한 정자까지 세웠다. 한 장군은 “퇴임 후 하릴없이 지내는 것보다 보람 있는 일을 찾아 봉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며 “정원을 가꾸는 일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강제전역을 당한 나 자신을 치유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공원에 산새들이 물을 먹을 수 있는 작은 연못을 하나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한 장군은 “내가 관상용으로 심은 하귤(夏橘)은 과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며 “공원에서 약 100m 거리에 올레길이 지나고 있어 앞으로 ‘19번 올레길’이 이 공원을 통과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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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취재기획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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