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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 다른 인류사]  고구려인은 어떻게 유라시아 대륙의 강을 지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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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09호]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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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고구려인은 어떻게 유라시아 대륙의 강을 지배했을까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발원한 아무르강. photo=이진한 조선일보 DB
▲ 박창범 교수의 ‘삼국사기’ 일식 관측지도 중 고구려 부분 및 현재 지명. 출처=박창범 2002,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며 던져진 화두, 그 핵심은 한민족이 과거에 동아시아 대부분 지역과 중앙아시아의 일부까지를 포함하는 방대한 영토의 주인이었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데이터를 입력해 출력한 우리 앞의 이 지도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고구려에서 출발해 보자. 지도를 보면 일식 현상 관측 중심지, 혹은 정치 중심지라고 추정되는 곳이 두 군데다. 강력한 국가의 중심지가 되기엔 위도가 너무 높은 곳에 치우치지 않았나 생각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위도가 높으면 기온이 낮고 일조량이 적어 농업생산성이 떨어진다. 때문에 많은 인구를 부양하는 도시로 성장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구려 시대에는 이곳도 꽤 살기 좋은 환경이었을 것으로 볼 만한 근거가 있다. 이때는 지구 기후변화 역사에 있어서 온난한 시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기원전 2500년부터 서기 2040년까지의 기후변화 그래프(왼쪽)와 고구려 시대의 기후변화(오른쪽) 그래프 출처: Cliff Harris & Randy Man, ‘Global Temperature’

   지구에서는 46억년 역사를 통해서 기온이 어느 정도 일정한 패턴으로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기후변화가 진행되어 왔다. 그중 지난 4000년 동안의 변화를 표시한 것이 위 왼쪽 그래프다. 오른쪽 그래프는 기원전 37년에서 서기 668년이라는 고구려 존속 기간의 기후변화를 보여준다. 대체로 기온이 높은 편이어서 위도가 좀 높다 하더라도 농사가 잘돼서 인구가 불어날 수 있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기후가 온난한 시대엔 산에 삼림이 무성해지고 강엔 수량이 많아져서 물길로 이동하기 쉬워진다. 이렇게 물길로 이동하기 쉬웠다는 점이 바로 박창범 교수의 지도가 시사하는, 넓은 고구려의 영토가 가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조건이다. 이 지역은 지대가 높은 몽골고원 쪽에서 북쪽으로는 북극해, 동쪽으로는 태평양에 이르는 아주 긴 거리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서서히 낮아지는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긴 강이 모여 있는 곳이며, 이런 곳에서 권력을 장악한 집단은 그만큼 넓은 영역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 아무르강, 레나강, 셀렝가강 수계와 고구려 중심지 출처: 이진아

   이 지도는 박창범 교수의 지도가 보여주는 고구려 일식 관측 중심지와, 그곳이 실제 고구려의 중심지였다면 고구려인들이 이용했을 법한 강의 수계를 표시한 것이다. 아무르강, 레나강, 셀렝가강의 주요 흐름만 알아보기 쉽게 표시했다.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된 곳이 박창범 교수의 천문관측지도가 시사해 주는 고구려 중심지 추정 위치다. 보라색 선이 아무르강을 이루는 수계로, 이 강의 제1지류는 바로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는 쑹화강이다. 진한 청색 선은 레나강인데, 바이칼 호수를 제일 큰 발원지로 해서 지금까지 고구려 영토였다고 알려진 지역의 북쪽, 현재 러시아 영토를 통과해서 북극해로 흘러 들어간다. 밝은 청색 선은 몽골 지역 전체를 흐르는 강들이 바이칼호수로 모여드는 셀렝가강 수계를 표시한다.
   
   기후와 함께 지형을 고려한다면 오른쪽 빨간 원으로 표시된 곳이 고구려의 중심지였을 거라는 추정에 무리가 없다. 세계 9위의 긴 강인 아무르강 상류 수계와 10위인 레나강 상류 수계 사이에 위치하는 곳, 현재는 러시아 영토로 자바이칼 변강주 지역이다. 러시아, 몽골, 중국을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이며, 여러 갈래의 지천들이 만나 큰 강을 형성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비옥한 땅이기도 하다.
   
   고구려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또 하나의 지역, 이 지도에서 왼쪽의 빨간 원을 보자. 몽골고원의 정상이라 할 수 있는 알타이산맥의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현재는 몽골과 카자흐스탄의 접경 지역이다. 서쪽으로 높은 산을 둔 기슭이니까 건조한 바람을 막아주며, 기후가 온난해서 산림이 무성한 시기에는 비옥한 충적토가 조성되는 살기 좋은 땅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얼핏 보아선 고구려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고구려의 주요 수로였을 레나강을 거슬러 올라가 바이칼호수에 도착, 거기서 셀렝가강을 따라 지금의 몽골 전 지역으로 가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르강 최상류 지천에서 셀렝가강 지천 사이가 불과 40~50㎞ 떨어진 곳도 있으니 그곳을 통해 연결됐을 가능성도 있다.
   
   몽골의 지형은 주로 고원인데 바이칼호수 쪽은 꺼져 있어서, 고원 사이를 흐르는 작은 강들이 모두 모여 바이칼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를 하고 있다. 셀렝가강 수계다. 거꾸로 보아 바이칼호수 쪽에서 강을 타고 올라가면 몽골 전역으로 갈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 사람들이 물줄기를 따라 당시 몽골의 주요 지역을 전부 장악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박창범 교수의 천문관측지도에서 고구려 일식 관측지의 중심으로 보여지는 두 곳은 실제로 정치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당시의 기후조건과 그 지역의 지형을 통합해서 인간 거주의 기반이 되는 생태학적 조건을 찬찬히 따져보면, 오히려 고구려 사람들이 그 정도의 활동무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부자연스러울 정도다.
   
   여기서 또 하나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이동할 수 있다고 해서 다 그 지역을 장악하고 자기 나라 영토를 만들 수 있는가? 고구려 사람들이 그렇게 강했을까?
   
   거기 대한 필자의 대답은 단연 “그렇다”이다. 그 이유가 다음의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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