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불광사 건물의 일부 모습. ⓒphoto 조시온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불광사 건물의 일부 모습. ⓒphoto 조시온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서울의 3대 사찰로 꼽히는 대한불교조계종 불광사에서 2년여 전 창건주직을 맡았던 지홍스님의 공금횡령 사건이 불거진 후 사찰의 재정 운용을 두고 스님과 신도들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지홍스님의 사찰 재정 유용 사태를 겪은 신도들이 회칙·운영규정 개정을 통해 “내부감사, 예산집행 절차를 강화해 재정 투명성을 확보하자”고 주장하자 교역직 스님(주지 등 직책이 있는 스님)들이 “개정 회칙이 불광사의 상급기관인 조계종, 대각회의 규율을 벗어났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 있다. 신도들은 지홍스님의 추천으로 주요 직책에 오른 스님들 또한 재정집행 과정에서 떳떳하지 못해 반대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면서 내홍은 더욱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들 갈등은 종단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업무방해, 모욕죄 혐의 등을 근거로 한 각종 송사로 번지고 있다.

스님 공금횡령 의혹에 신도들 반발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불광사는 광덕스님이 이끄는 불광법회 신도들이 신행 활동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1982년 직접 재원을 모아 건립한 사찰이다. 당시 불광사는 ‘불광법회 잠실 법당’으로 불렸지만 조계종 산하 재단법인 대각회에 등록되면서 지금의 ‘불광사’로 명칭을 바꿨다. 불광법회는 광덕스님을 불광사 초대 창건주 겸 주지로 추대했고,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심 포교 활동을 이어가면서 서울 3대 사찰 중 한 곳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여기서 말하는 창건주는 일반적으로 사찰을 설립해 사원 운영을 담임하는 자리를 의미한다. 기존 창건주가 더 이상 역할을 하지 못할 때는 다른 스님에게로 승계된다. 대외적으로 절을 대표하는 건 주지스님이지만, 창건주가 주지를 추천한다는 점에서 사찰의 가장 윗사람으로 여겨진다.

현재 불광사 신도 수는 약 1만2000명이며 일요 정기법회에 참석하는 신도 수만 600~700명에 이른다. 이에 따른 불광사 재정 규모는 상당하다. 2018년 감사 자료에 따르면 불광사가 소유하고 있는 전국 부동산 자산만 약 584억원이다. 2017년 한 해에만 48억원의 수입을 기록했다. 불광사가 자금을 출연해 설립한 사업체만 해도 반야원, 불광유치원, 불광연구원, 불광교육원, 불광도서관, 불광미디어(월간불광·한강수출판·불광미디어) 등 다양하다. 불교계 안팎에선 이를 두고 불광사가 여느 중소기업 못지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불광사가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자금 문제가 처음 불거진 건 2018년 7월이다. 당시 불광사 창건주 겸 회주를 도맡았던 지홍스님이 불광유치원 상근임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뒤 소속 종무원과 공모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72회에 걸쳐 매달 200여만원씩 총 1억8000만원 상당의 월급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신도들은 2018년 7월 지홍스님을 공금횡령 혐의로 고발했고, 2019년 10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지홍스님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지홍스님은 여종무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혹도 받았다. 결국 지홍스님은 2018년 중순 창건주직과 회주직을 그만두고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장직만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공금횡령 혐의 등에 대해선 지난해 말 법원에 항소를 제기한 상황이다.

불광사 신도들은 이때부터 ‘제2의 지홍스님 사태’를 방지하고자 스님들과 합의해 내부회칙·운영규정을 강화, 사찰 운영 투명성을 높일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들은 우선적으로 불광법회 최고의결기구인 명등회의를 통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내부회칙을 세 차례에 걸쳐 개정했다. 개정안은 불광사 감사의 역할과 감사 대상을 명확히 적시, 재무위원회·사찰운영위원회 신설을 통해 각종 예산 집행 절차를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여기엔 인사위원회와 추천위원회 운영을 통한 종무원 임용 절차, 불광법회 회장단 선임 절차를 강화하는 안도 포함했다.

지난해 말 용역이 불광사 법당 출입을 막고 있다. ⓒphoto 불광사 신도
지난해 말 용역이 불광사 법당 출입을 막고 있다. ⓒphoto 불광사 신도

신도들이 개정한 회칙에 따른 감사 거부

하지만 불광사 운영은 정상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파국으로 치달았다. 2018년 말 지홍스님의 추천으로 차기 창건주 자리에 오른 지정스님이 개정된 회칙에 따른 불광사·불광법회 회계 감사를 거부하고, 올 1월까지 종무원과 회장단을 임의로 선임하려 하자 신도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지정스님은 2018년 12월 감사반 측에 법률상 창건주 명의로 등록된 금융거래내역 확인을 위해 교부했던 인감증명서를 모두 회수하면서 특별회계 감사를 중단했는데, 해당 회계엔 400억원가량을 들여 진행한 본당 건물 재건축 회계 내용이 담겼다. 불광사의 한 신도는 “결국 일반회계 일부만 감사하고 특별회계는 확인도 못 했다. 떳떳하다면 회칙대로 감사에 임하면 되지 않겠나. 신도들은 지정스님이 지홍스님의 과거 재산 운용이나 자신이 남긴 행적을 숨기려 한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감사를 책임졌던 이광우 세무사의 설명과 사실확인서에 따르면, 지홍스님이 창건주·회주를 지냈던 2004년에서 2018년 사이 일반회계에서만 42억원의 공금이 사용출처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신도 52명은 이를 근거로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12억원가량의 자금 사용출처를 두고 지홍스님과 당시 종무원 관계자를 업무상횡령 혐의로 수원고등검찰청에 항고한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다. 당시 이뤄졌던 일반회계 감사에 따르면 불광사 불교용품 판매점 반야원에선 2017년 2월 28일과 6월 8일에 현 창건주인 지정스님 명의의 통장으로 각각 2500만원이 송금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광우 대표는 “해당 금액이 당시 불광사·불광법회 결산회계상 자산으로 계상되어 있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지정스님은 이에 대해 “1996년부터 2004년까지 회주를 도맡은 것에 대한 전별금(작별할 때 떠나는 사람을 위로하는 뜻에서 주는 돈) 성격으로 지급받은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불광사 여타 스님들 말을 종합하면 전별금은 2004년부터 총 5000만원을 주는 형태로 이미 지급됐다고 한다. 불광사 신도들 사이에선 회주를 그만둔 지 16년이 지나 전별금을 지급하는 게 말이 되냐는 원성도 제기되고 있다.

신도들이 지정스님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그가 따로 운영하는 경남 함안의 봉불사를 둘러싼 문제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봉불사는 불광사와 마찬가지로 재단법인 대각회 산하에 등록된 사찰로, 그 주변에 있는 3000㎡ 규모의 종교용지와 임야는 대각회 소유다. 다만 현행법상 재단법인은 이를 소유할 수 없어 명의를 지정스님 앞으로 두고 있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지정스님은 2007년 4월 해당 부지 전체를 자신의 건당상좌(일종의 제자 겸 양자)인 B씨에게 부동산 매매 형태로 소유권을 이전했고, 2018년 3월 B씨는 이를 친동생인 C씨에게 다시 이전했다. C씨는 지정스님을 25년간 보좌했던 공양주이기도 하다. 임병수 불광사 정법수호위원회 홍보협상팀장은 “스님들은 개인 재산을 가질 수 없어 10년 주기로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재산을 종단에 바친다는 의미의 승려분한 신고를 하는데, 결국 지정스님은 이 재산이 종단에 넘어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불광사 운영에 대해서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마산세무서는 이 부동산 매매가 증여세 납부를 회피하기 위한 조치는 아니었는지 들여다보고도 있다.

지난 1월 신도들이 법당 단상에 오른 지정스님과 진효스님을 향해 내려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photo 불교포커스
지난 1월 신도들이 법당 단상에 오른 지정스님과 진효스님을 향해 내려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photo 불교포커스

용역 동원에 소송전 불사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도들은 지난 7월 급기야 지정스님이 있는 봉불사 앞에서 ‘불광사 창건주·회주직 사퇴’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당시 신도들은 “지정스님은 지홍스님으로 유발된 불광사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지홍스님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면서 불광사·불광법회를 폐쇄적, 독단적으로 운영해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불광사 정기법회는 이미 파행을 거듭한 지 오래다. 지난해 말부터 스님과 신도들 간에는 몸싸움과 고성이 오갔고, 심지어는 용역이 사찰에 들어와 법당을 막아서는 일도 적지 않게 벌어졌다. 불광사 관계자는 “이대로 두면 사고가 나겠다 싶어 어쩔 수 없이 20여명의 인력을 동원해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올 1월 법회 현장을 담은 인터넷방송 ‘불교 포커스’ 영상엔 수백여 명의 신도가 단상에 오른 지정스님을 향해 “내려와” “물러가” “진효(현 불광사 주지) 나가” 등을 외치는 장면이 담기기도 했다. 오세룡 원각수석부회장은 “올해 코로나19가 터지기 전부터 법당을 걸어 잠갔다”며 “지난 6~7월 코로나19가 잠잠할 때쯤에도 법당은 열리지 않아 공양간과 현관 입구에서 불광사의 다른 스님을 모셔와 법회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불광사 소속 일부 스님들은 이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지인스님은 지난 4월 29일 다른 스님들에게 “모두 다 내려놓기가 그리 어려운 일인가. 출가자가 재정에서 손을 떼야 청정승가가 구현될 것인데 조계종단이 하는 일들을 보면 모두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자금 확보에만 급급한 것 같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해담스님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불광사·불광법회는 여느 절과 달리 신도들이 힘을 합쳐 창건한 곳이다. 스님들이 총괄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는 거다. 이는 한국 불교가 갖는 고질적인 폐단을 답습하지 말자는 취지에서였다. 근데 지정스님은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보다 못한 신도들은 결국 올 1월 박홍우 불광법회 법회장 등을 비롯한 회장단 7명 임원의 명의로 ‘회장단 임명절차정지 등 가처분신청서’를 서울동부지방법원에 제기, 지정스님과 진효스님 등이 개정 회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법원은 4월 이를 인용해, 이들 스님이 회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정스님 측은 이를 따르지 않았고 지난 7월 내부회칙에 대한 ‘결의효력정지 등 가처분신청서’를 제기하면서 소송전을 불사하고 있다. 이들은 2018년 지홍스님이 물러나고 이뤄진 회칙 개정 과정에 자격이 없는 신도들이 참여한 점, 개정을 위한 회의 소집 통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 개정 회칙이 상급기관인 대각회 정관 및 세칙에 반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지금의 회칙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처분 신청서에 따르면 지정스님 측은 “(법회 회장단이) 창건주 지위에 있는 스님이나 주지스님, 그리고 종무원을 압박해 불광사 및 불광법회를 장악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스님을 자리에 앉힌 다음 불광사와 불광법회를 마음대로 운영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런 회칙 운영규정을 근거로 감사 자료의 제출을 요구하는 등 불광사 운영을 방해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창건주 지정스님의 추천으로 주지 자리에 오른 진효스님은 지난해 말부터 불광법회 회장단을 비롯한 일부 신도들을 업무방해죄, 모욕죄,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벌어진 사태에 대해 지정스님은 전화통화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실무자들과 연락하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진효스님은 수차례 연락에도 응하지 않았다. 지난 8월 24일 불광사를 방문했지만 역시 스님들을 만나긴 어려웠다. 불광사 관계자는 “종교단체 내부 문제이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러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큰 틀에서 보면 불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그리고 대각회를 상급기관으로 두고 있다. 때문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위 기관들의 정관이나 규정을 벗어나면 안 되는 거다. 이들이 단행하고 있는 건 이를 벗어났고 우리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이다. 재정 투명화나 감사 등을 운운하지만 이는 선전, 선동을 위한 구호에 불과하다. 감사는 과거부터 해왔던 것들이고 저번 감사 같은 경우 문도회(광덕스님 제자 모임)의 일부 스님이 거부해 중단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가정집에서 담장을 허물고 마당을 개방했을 때 마당을 넘어오는 건 괜찮지만 거실이나 안방까지 들어오는 건 안 되지 않나. 이번 사태를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역화된 사찰 폐단 드러난 사례”

현재 불광사 사태에 대해 상급기관에선 중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지켜만 보고 있는 형편이다. 조계종 측은 “우리가 개입하거나 중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그런 권한도 없다”고 밝혔다. 대각회 또한 “법적인 문제이다 보니 뭐라 하기 어렵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불교계 안팎에선 이번 불광사 사태가 비단 불광사만의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불교계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찰들 중에 이런 식으로 내부 회칙을 만들어 감사나 재정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곳은 거의 없다. 회칙이라 해도 신도들의 자체 활동에 대한 것만 규정할 뿐 스님들을 그 대상에 포함하진 않는다. 사찰이 스님을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신도들이 조직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식의 자정작업이나 잣대를 여타 사찰에 들이대면 이보다 더 큰 잡음이나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사찰이 성역화하면서 발생한 문제들이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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