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오른쪽)을 비롯한 집회 참가자들이 지난 6월 28일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첩약급여화 저지를 위한 대한의사협회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오른쪽)을 비롯한 집회 참가자들이 지난 6월 28일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첩약급여화 저지를 위한 대한의사협회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의과대학 증원’ ‘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가 추진하는 4대 의료 정책을 놓고 의료계에서 집단휴진·면허반납 등 거센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4대 정책 중 하나인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을 두고 의료단체와 한의학단체 간 갈등의 골 또한 깊어지고 있다. 의과대학 증원, 첩약급여화 사업 등은 큰 틀에서 ‘문재인 케어’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정책이다. 의료단체는 정부가 추진 중인 첩약급여화 사업과 관련해 건강보험 재정건전성과 약재의 안전성 등을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반면 대한한의사협회 등 한의계에서는 의료계가 한의학·한약의 효능을 폄훼하고 있으며, 시범사업으로 인해 드는 비용 또한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해칠 가능성은 낮다고 반박한다.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대한약사회 등 대표적 의료단체 5곳은 지난 8월 17일 ‘과학적 검증 없는 첩약급여화 반대 범의약계 비상대책위원회(첩약 범대위)’를 구성했다. 보건복지부가 오는 10월부터 추진키로 한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첩약급여화 사업이란 한의원에서 처방받는 한약을 건강보험을 통해 급여화하는 것이다. 현재 추진 중인 시범사업은 뇌혈관질환 후유증, 안면신경마비, 월경통 등 3개 질환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2019년 정부는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이 시범사업을 포함하면서 2020년 시행 계획을 밝혔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는 이 시범사업 추진을 위해 지난 6월부터 소위원회를 개최했다. 이 소위원회에서 의협과 병협 등의 단체는 건강보험 급여화 원칙과 우선순위의 문제와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검증 미비 등을 지적하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첩약보다 면역항암제가 급하다”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건강보험 급여화 원칙과 우선순위의 문제’란 한마디로 ‘환자 생명에 더 시급한 것에는 급여화를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첩약에 적용돼선 안 된다’로 요약된다. 의료계에서 대표적으로 거론하는 사례가 면역항암제다. 1차 항암제의 경우 환자의 생존율이 상승하고 생존기간이 늘어난다는 결과가 여러 논문으로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급여화가 보장되지 않아 1년에 5000만원 가까이 드는 비용이 그대로 환자 몫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실비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거나 경제적 여유가 없는 환자는 사실상 사용할 수 없거나 ‘메디컬푸어(치료·수술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가난해진 사람)’로 전락해버린다는 주장이다.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은 오는 10월부터 2023년까지 3년간 한 해 예산 500억원을 투입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환자 본인 부담 50%에 건강보험에서 50%를 지원해주는 방안이다. 한의협 등 한의계에서는 이 비용이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해친다는 의협의 주장이 과장됐다고 보고 있다. 2019년 기준 총 요양급여 비용 85조7938억원 중 한의 의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3.5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의협에서는 오히려 시범사업이 기존 2000억원 규모에서 500억원으로 축소됐으며, 수가도 당초 논의되던 20만원에서 14만~16만원으로 떨어졌다며 급여화 추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첩약에 대한 실거래가와 별반 다르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의료단체 등에서는 첩약의 유효성·안전성 등을 문제로 급여화 시범사업이 섣부른 결정이라는 주장도 편다. 첩약이 환자에게 어떤 효능과 부작용이 있는지 과학적으로 엄중한 검증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3상 통과까지 거쳐야 하는 양약 제약 과정에 비해 첩약은 검증 기준이 느슨하다는 주장이다. 조승국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는 “한약이 정말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 내가 먼저 처방하게 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한의협에서는 이번 시범사업에 적용되는 첩약의 경우 다양한 방제기술이 활용되는 한방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규격화·표준화를 위해 질환별 기준 처방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또 사용되는 약재는 식약처의 h-GMP(우수 한약 제조 및 품질 관리기준)를 통과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급여화에 해당하는 첩약은 약재구성(성분)을 표시해 환자에게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며, 약재의 원산지까지 공개하도록 해 투명성도 담보되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의료단체는 식약처 한약재 관리기준은 일반 제약 허가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기준이며,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본다. 의협의 한 관계자는 “의협에서 식약처 관리기준을 통과했으므로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식당 원산지 표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의학계가 말하는 기준이란 ‘임상 기준’을 말하는 것으로, 첩약도 이러한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한의사협회 김경호 부회장은 “첩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의협의 오해”라면서 “건강보험은 의사들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닌데 착각하고 있다. 일본도 건강보험이 첩약까지 보장하고 있다”고 했다. 김 부회장은 첩약의 안전성 기준이 양약에 비해 낮다는 주장에는 “신약은 나오는 순간 세상에 없던 ‘신물질’이기 때문에 당연히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 반면, 한약은 인간이 계속 먹어온 것들로 이뤄진 것”이라며 “그럼 한약의 원재료로 쓰이기도 하는 쌀도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냐”며 반박했다. 김 부회장은 “첩약에 대해 잘 모르는 의사들은 가만히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첩약 제대로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한의계와 의료계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5년에는 ‘명칭’을 두고 양쪽 단체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는 의사·한의사 대신 ‘양의사’ ‘한의사’로 구분하자는 주장이 한의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한의학계 내부에서는 의료행위 전반에 ‘양의학’의 기득권이 지나치게 공고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의학은 과학적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의술인 것처럼 폄훼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쪽 의료계의 대표적 단체인 의협·한의협 회장의 ‘정치적 배경’도 갈등의 골을 깊게 하는 요소다. 최혁용 대한한의사협회장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의 정책특보로 몸담았다. 2018년 1월 그가 한의사협회장에 당선되자 “한의학계가 문재인 케어로 인한 수혜를 입게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반면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협회장 출마 당시부터 ‘문재인 케어 결사 저지’가 최대 공약이었다. 또 협회장 당선 이전 ‘자유통일해방군’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등에서 활동하며 ‘극우 인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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