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엑스포 개최를 추진 중인 부산항 북항 매립지 일대(왼쪽)와 마주한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 영도조선소(오른쪽). ⓒphoto 이동훈
2030 엑스포 개최를 추진 중인 부산항 북항 매립지 일대(왼쪽)와 마주한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 영도조선소(오른쪽). ⓒphoto 이동훈

한국 근대 조선공업의 발상지가 동시에 매물로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부산 영도구 청학동과 봉래동에 각각 조선소를 둔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이 매물로 나오면서다. 담벼락을 마주한 이곳은 세계 1위 조선강국인 한국 조선업의 산실(産室)이다. 한진중공업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7년, 일본 미쓰비시(三菱)중공업과 동양척식회사가 세운 조선(朝鮮)중공업이 모태다. 광복 후 대한조선공사란 국영기업으로 바뀌어 극동해운에 불하됐다가 1989년에야 지금의 한진중공업이 됐다. 바로 옆의 대선조선은 1945년 설립된 대선철공소가 모태로, 국내 최초 민간자본 조선소다.

지난 수년간 조선업 불황에 두 조선소는 각각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주도의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국영조선소가 됐다. 하지만 산은과 수은이 각각 올해 안에 조선소를 매각할 방침을 세우면서 손바꿈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게다가 두 조선소는 기업 자체보다는 조선소가 자리한 부지 때문에 더욱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바로 조선소가 부산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다.

한국 조선업 발상지 부산 영도

대도시 한복판에 있는 조선소는 인력수급에는 유리하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초대형 선박 건조에 필요한 부지 확보가 어렵고 소음피해 등 각종 민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부산 북항을 바라보는 두 조선소 모두 지난 2014년 개통된 부산항대교 안쪽에 자리하면서, 선박 통과높이 제한 등에 걸려 초대형 선박 건조는 아예 불가능해졌다.

부산 영도에 자리한 두 향토기업이 어려워진 주된 이유 중 하나도 협소한 조선소 부지 탓이 크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경우 부지면적이 28만㎡에 불과하다. 평수로 환산하면 약 8만여평 정도로 울산에 조선소를 둔 현대중공업이 495만㎡(150만평),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각각 429만㎡(130만평), 330만㎡(100만평) 부지를 갖고 있는 것에 비해 많이 협소하다. 한진중공업은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99만㎡(30만평) 부지를 갖춘 STX조선보다도 부지가 작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협소한 부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06년 필리핀 수빅으로 해외 진출을 단행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부실만 더욱 키우는 꼴이 됐다.

대선조선 영도조선소의 경우 이보다 훨씬 적은 3만㎡ 정도에 그친다. 대선조선은 2007년경 부산 다대포에 별도로 17만㎡ 규모의 조선소(3공장)를 확보했으나 협소한 영도조선소(1공장)는 계속 발목을 잡아왔다. 영도 청학동에 있던 또 다른 공장(2공장)은 2014년 일찌감치 매각했다.

대도시 한복판의 조선소 부지가 매각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조선소가 있는 곳은 영도의 북단으로, 부산항 북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탁월한 위치에 있다. 영도의 동서로 부산항대교와 남항대교가 개통되고, 국립해양대를 비롯해 해양수산기관들이 밀집해 있는 영도 동삼혁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정주 여건도 대폭 개선됐다는 평가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도 봉래산을 등지고, 북항을 바라보는 영도는 향후 재개발될 경우 빅토리아피크(태평산)를 등지고 빅토리아항을 바라보는 홍콩섬 못지않은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부동산 디벨로퍼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탁월한 입지조건을 가진 셈이다.

실제로 조선업과 건설업을 병행했던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산업은행 주도의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기 전에, 자체적으로 영도조선소 부지를 재개발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소 대체부지 마련 등의 문제로 조선소 부지를 매각하지 못하고 회사가 산업은행으로 넘어가버렸다.

일단 부산시는 영도조선소가 매각되면 인근 조선 기자재 업체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단기적 고용충격을 감안해 언급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부산시나 조선업계에서는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 영도조선소 부지 재개발을 사실상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특히 한진중공업 부지 재개발은 2006년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빅에 조선소를 조성할 때부터 거론되온 문제다. 거제도 옥포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도 당초 대한조선공사(한진중의 전신)가 대체 조선소로 낙점했던 곳이었다.

부지 활용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책은행인 산은과 수은 주도로 매각작업이 진행 중인 영도조선소를 부산항 북항 매립지 재개발과 연계해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2030 부산월드엑스포(등록 세계박람회) 부지 확보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부산엑스포 개최 예정부지는 당초 부산 강서구 낙동강 맥도 일원에 지정하려다가 지난 4월 성추행 의혹으로 중도사퇴한 오거돈 전 시장이 부산 북항 매립지 일대에서 개최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당초 엑스포 부지에 포함시키려던 북항 8부두와 55보급창이 국방부와 주한미군 측의 반대로 사실상 불발되면서 부지 자체가 협소해졌다. 당초 부지에 포함시키려 했던 부산 남구의 신감만부두 역시 국무회의 보고 과정에서 제외됐다. 결과적으로 2030년 부산엑스포의 예정부지는 266만㎡(약 80만평·잠정)로, 2010년 상하이엑스포(528만㎡), 2020년 두바이엑스포(438만㎡)의 절반 정도에 그치게 됐다.

만약 내년 4월로 예정된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에도 2030 부산엑스포 북항 개최 방침이 지속될 경우 총 31만㎡(약 9만평)에 달하는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 영도조선소 부지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도조선소는 엑스포 주 개최지가 될 북항 매립지 일대와 다리(영도대교·부산대교)와 선박을 이용한 연결도 편하다. 당초 예정부지에 포함하려 했던 신감만부두보다 훨씬 입지가 좋다는 평가다.

2010년 월드엑스포를 개최한 상하이도 주 개최지와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옛 장난(江南)조선소 부지를 활용해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한 바 있다. 장난조선소 역시 청(淸) 말의 실력자 이홍장(李鴻章)이 양무운동 때 조성한 중국 근대 조선공업의 발상지다.

상하이엑스포 당시에는 중국 최대 국영조선기업인 중국선박공업(CSSC)이 조성한 ‘중국선박관’이 들어섰다. 장난조선소는 CSSC의 자회사로, CSSC는 지난해 중국선박중공(CSIC)과 합병을 단행, 세계 최대 조선기업으로 재출범했다.

영도조선소 부지 역시 2030 부산엑스포에 활용할 경우, 부지 확보에도 도움이 되고 세계 1위 한국 조선업의 발상지라는 역사성을 살릴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역사적 장소가 아파트 등으로 의미 없이 재개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2030 부산엑스포는 지난 6월부터 오는 2021년을 목표로 마스터플랜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기획단의 한 관계자는 “현재 영도조선소는 예정부지에 안 들어간다”며 “향후 별도의 방향이 설정되고 이용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면 그때 가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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