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간돼 미 ‘대북 핵무기 80개 사용’ 논란을 일으킨 워싱턴포스트 밥 우드워드 대기자의 책 ‘격노’ 표지. ⓒphoto 조선일보
최근 발간돼 미 ‘대북 핵무기 80개 사용’ 논란을 일으킨 워싱턴포스트 밥 우드워드 대기자의 책 ‘격노’ 표지. ⓒphoto 조선일보

‘북한의 공격이냐, 미국의 대응이냐?’

최근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유명한 미국의 언론인 밥 우드워드가 출간한 저서 ‘격노(Rage)’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갈등이 최고조였던 2017년 검토한 작전계획 5027에 핵무기 80개 사용 가능성이 포함됐다고 쓴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핵무기 80개’가 북한의 공격을 의미하는 것이냐, 아니면 미국의 대응을 의미하는 것이냐에 대한 해석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밥 우드워드는 2017년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 발사에 이어 첫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과 화성-15형을 잇따라 쐈을 때 미군의 대응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있는 전략사령부는 북한의 정권 교체를 위해 작전계획(작계) 5027, 즉 핵무기 80개 사용을 포함할 수 있는 공격에 대한 미국의 대응(the U.S. response to an attack that could include the use of 80 nuclear weapons)을 면밀히 연구하고 검토했다.’

이를 두고 미국이 핵무기 80개로 북한을 타격하는 계획을 검토했다는 해석과,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핵무기 80개를 사용할 경우 미국의 대응을 검토했다는 해석이 엇갈리면서 오역 논란까지 일었다. 논란의 핵심은 ‘핵무기 80개 사용을 포함할 수 있는’이 수식하는 대목이 ‘북한의 공격(an attack)’이냐, 아니면 ‘미국의 대응(U.S. response)’이냐 여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넓지 않은 북한 땅에 80개의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너무 많은 숫자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방사능 낙진이 크게 줄어든 최신형 B61-12 전술핵폭탄 같은 저위력 핵무기라면 우리나라나 일본에 대한 방사능 낙진 피해가 적을 수 있다. 반면 히로시마에 떨어진 것과 비슷한 핵무기(15~20㏏급)가 80발가량 북한 땅에 떨어진다면 남한은 물론 일본까지 방사능 낙진 피해를 입는 등 우방국에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B61-12 신형 전술핵폭탄은 올 들어 F-15 전투기에서의 운용 시험을 마친 상태다. 우드워드가 언급한 2017년은 B61-12의 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때여서 실전투입이 어려운 상태였다. 우드워드 책에 나온 작전계획 5027(OPLAN 5027)에 핵무기 사용 계획이 들어 있다는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는 게 군 소식통 및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작전계획 5027은 1970년대 이후 북한과의 전면전에 대비한 한·미 양국군의 대표적인 연합작전 계획이었다. 하지만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전환에 대비해 새로운 한·미 연합작전 계획이 수립됐는데 이게 작전계획 5015다. 작전계획 5015는 2015년 작전계획 5027을 대체했다. 즉 2017년에 적용됐던 한·미 연합작전 계획은 5027이 아니라 5015다.

한·미 연합작전 계획에 실제 핵타격 계획이 포함돼 있느냐도 중요한 쟁점이다.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1991년 이전 주한미군에 전술핵무기가 배치됐을 때는 작계 5027에 부록으로 전술핵 사용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극비로 분류됐던 작계 5027의 핵부록이다. 하지만 1991년 주한미군 전술핵이 모두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작계 5027에서 핵 사용 계획은 없어졌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전술핵은 핵포탄, 핵지뢰, 핵배낭부터 전투기 투하용 핵폭탄에 이르기까지 최대 950발가량이 배치돼 있었다.

최신형 B61-12 전술핵폭탄 투하시험 중인 미 공군 F-15 전투기. B61-12는 유사시 대북 핵공격에 가장 널리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photo 미 공군 홈페이지
최신형 B61-12 전술핵폭탄 투하시험 중인 미 공군 F-15 전투기. B61-12는 유사시 대북 핵공격에 가장 널리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photo 미 공군 홈페이지

결국 ‘미국의 대응’ 쪽으로 가닥

일부 언론에선 새로운 작계 5015에 핵무기 사용 계획(핵타격 계획)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작계 5015를 잘 아는 한 예비역 고위장성은 “작계 5015에는 핵우산과 비슷한 상징적인 표현만 있을 뿐 구체적인 핵무기 사용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즉 우드워드 책에서 언급된 대북 핵 사용 계획은 기존 한·미 연합작전 계획과는 무관한, 우리는 모르는 미국의 독자적인 작전계획이 팩트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드워드의 ‘핵무기 80개’ 언급은 북한의 핵 사용을 언급한 것일까? 이는 더욱 팩트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현재 북한의 핵무기 숫자는 20~60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도 북한의 비밀 우라늄농축시설 등이 계속 가동되고 있기 때문에 올해 말엔 북한의 핵무기가 최대 100개에 달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3년 전인 2017년엔 북한 핵무기가 20~30개 정도일 것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북한이 미 본토에 대해 핵공격을 하려면 ICBM에 핵탄두를 탑재해 날려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당시 북한의 ICBM 숫자는 20기 미만으로 추정됐다. 우드워드는 저서 ‘격노’ 11장에서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를 이용해 발사할 수 있는 핵무기 숫자를 ‘several dozen nuclear weapons’ 혹은 ‘several dozens’라고 표현하고 있다. 수십 개라는 의미로 24~50개 수준으로 해석된다. 핵탄두가 50개라도 ICBM 숫자가 20기라면 미 본토 타격을 위협할 수 있는 실제 핵무기 숫자는 20개가 된다. 우드워드가 언급한 80개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이번 논란의 팩트는 우드워드가 책에 쓴 내용과 미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는 평가다. 우드워드는 지난 9월 14일 미 공영 라디오 NPR과의 인터뷰에서 저자가 어떤 생각으로 해당 부분을 적었는지 밝혔다.

우드워드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북한을 대상으로 핵공격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었다. ‘격노’의 11장은 매티스 장관이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는 전쟁을 수행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근무 첫날 성당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매티스 장관은 북한이 ICBM 한 발을 미 본토로 날렸을 때 미국이 중간에서 이를 요격하면 북한이 다시 여러 발의 ICBM을 또 쏠 것으로 우려했다고 한다.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미국은 북한의 두 번째 ICBM 공격이 있기 전에 북한을 핵무기로 초토화해서라도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를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 핵무기 80개 사용’ 논란의 팩트는 ‘북한의 공격’이 아니라 ‘미국의 대응’이라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하지만 ‘80개’라는 숫자가 과연 팩트인가에 대해선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드워드가 팩트에 충실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대기자이지만 ‘80개’라는 숫자를 매티스 전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가 아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들었다면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유사시 미국의 대북 핵공격 계획이나 정보 공유를 강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미 양국은 2016년 이후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라는 외교·국방 고위급 협의체를 가동하고 있지만 미국 측이 여전히 대북 핵타격 계획에 대한 정보를 우리 측에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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