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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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새벽에 전격적으로 실시된 북한의 열병식은 전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 세계 최장 ‘괴물’로 평가받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의 신무기가 특히 관심을 끌었다. 또 해수부 공무원 피격 사건 직후라 김정은이 내놓는 발언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난 10월 12일 주간조선과 만난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1986년 국정원(당시 안기부)에 들어가 노태우에서 노무현 정부까지 남북 간 거의 모든 회담 현장과 대북전략 수립 업무에 관여했다. 북핵 6자회담 대표로 협상에 나선 경험이 있고 이 과정에서 북한을 8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북한 핵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대북 핵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는 국정원 대북심리전단장을 지내다 이른바 ‘국정원 정치공작’ 사건에 휘말려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당시 재판장이 1년6개월형을 확정하며 “안타깝다. 그때 그 자리에 있어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진단과 대안 연구원’을 세워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그에게 최근 북한 김정은 정권의 내부 움직임과 대남 전략 등을 물어봤다. 그는 “민주주의 없이는 안보도 없다는 것이 내 신념”이라며 “미국의 경우 실무자가 트럼프와 생각이 다르면 그 자리에서 반대 의견을 냈다. 소신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있기에 안보도 지켜지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 노동당 창건 열병식을 왜 굳이 새벽에 실시했을까. “새벽에 전격적으로 실시하고 17시간 이후에 공식 보도해 궁금증을 유발하면 전 세계적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북한의 대형 쇼를 우리 언론이 화들짝 놀라 보도하는 모습을 보고 김정은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김정은이 ‘특색 있게 준비하라’고 지시했고, 이를 김여정이 주도해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선전선동에 매우 능하다. 변화무쌍한 지도자상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북한 신무기는 심리전의 일환”

- 공개된 ICBM, SLBM 등 신무기에 대한 평가는. “기존 미사일을 개량한 것은 분명하다. 세계 최강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 서기 위한 ‘비례억지전략’을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선보인 신형 무기는 엄연한 시위용이다. ‘우리가 이만큼 힘이 있으니, 건드리지 말고 내 말을 들으라’는 엄포를 놓기 위한 목적이다. 철저히 대비는 해야 하겠지만 성급하게 판단해 겁을 먹으면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다. 심리전의 일환이다. 심리전에는 허풍, 과장, 기만, 위협이 동원된다.”

- ICBM은 결국 미국을 타격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당연히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이미 1960년대 말부터 김일성이 비밀리에 미국을 겨냥한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북한은 이를 위해 질주해 왔다. 40여년이 지난 손자 김정은 시대에 와서 이를 완성한 것이다. 유사시 미국 증원군 지원을 막자는 것이다. 당 규약에 명시된 ‘전 한반도 공산화 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개발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궁극적으로 미국을 겨냥한 무기가 아니라 한국을 겨냥한 무기다.”

-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우려와 경고를 보내겠지만 시험발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보리 제재를 추진하거나 별도 대응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다탄두 핵미사일을 실효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무기 개발에 속도를 낼 것이다.”

- 미국 대선을 고려해 김정은이 수위를 조절했다고 보나. “전략무기를 시험발사하지 않고, 단지 시위만 했다는 점에서 수위조절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 대선을 고려한 결정이다. 김정은은 자신과 ‘브로맨스’를 과시해온 트럼프의 당선을 바라고 있다.”

- 김정은의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굳건하게 손 맞잡길 기원한다”는 말에 대한 생각은. “의례적으로 한 말이다. 연락사무소 폭파와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악화된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한 의도다. 행동으로 구체적으로 이행되기까지는 진정성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없다. ‘보건위기가 극복되면’이라는 단서에 주목해야 한다.”

“공무원 유가족에게 감청 내용 확인해줘야”

- 해수부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해 정부가 ‘월북’했다고 주장하는데 근거가 충분하다고 보나. “실종된 사실을 알고도 초동대처를 하지 않아 피살되었다는 비난을 피해 나가려 한 것 같다. 만약 특수첩보(감청)에 의해서 그런 판단을 내렸다면, 보안상 출처를 비밀로 하더라도 유가족에게 그 내용을 확인해 줘야 한다. 확인도 되지 않은 사실로 월북을 언급한 것은 사자명예훼손 행위이다. 설령 월북을 시도했다고 하더라도 비무장 민간인을 총살하고 시신까지 소각한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비인도적 행위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정부는 북한에 엄중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과 책임자 처벌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 이와 같은 경우 청와대에 어떻게 보고가 올라가나. “우리 국민이 피살된 엄중한 사태인 경우, 관련 기관인 해경, 합참, 국방부, 국정원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청와대 상황실과 안보실로 긴급하게 보고된다. 물론 청와대는 이를 대통령한테 즉각 보고한다. 이번 사태의 경우 정확한 보고 경로와 대통령 보고 시간, 초동대처 조치 등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 김정은이 사살과 소각을 직접 지시했을까. “북한의 현장 책임자가 이를 상부에 보고하고, 한참을 기다렸다가 상부의 지시를 받아서 피해자에게 총격을 가했고 시신을 소각한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상부의 판단과 지시에 따라 일어난 사건임이 분명하다. 김정은의 직접 지시 여부와 관련해서 논란이 있지만 북한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인 김정은의 지시가 없이는 총 한 발도 마음대로 쏠 수 없는 체제이다. 김정은의 서명에 의한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서’가 발효되고 있는 시점에서 김정은의 직접적인 재가 없이 어느 누구도 임의로 판단하여 명령할 수 없다.”

- 김정은이 사과를 했지만 우리 측이 북측에 사과를 부탁해 급조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도 있다. “9월 25일 북한 통일전선부에서 우리 측에 보낸 사과문에서는 김정은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하시었다’고 되어 있다. 최고 영도자의 뜻이 우리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았고 잘못한 점을 시인하면서 사과를 ‘전하라고’ 표현된 것은 수령 권위의 무오류와 무결점을 규정한 ‘유일사상확립에 관한 10대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종전선언 통해 미국과 관계 정상화 노려”

- 이 사태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킬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나. “김정은이 사과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정부는 북한에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김정은의 유감과 사과를 담은 친서를 보내라고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그것을 공개해야 김정은 사과와 관련한 논란도 없어질 것이다. 그래야 북한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집착하고 있는데 종전선언을 하면 어떤 효과가 있나. “종전선언은 문자 그대로 선언일 뿐이다. 국제법적 구속력도 없다. 오히려 북한이 ‘한반도에 전쟁이 완전 종식되었음을 선언하였는데도 미군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는 종전선언 정신 위반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더욱이 종전선언에 미국이 서명한다면 주한미군이 계속 남아 있어야 할 명분은 사라지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 편을 들 것이다.”

-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미·북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 미·북 관계 정상화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적대관계를 청산함으로써 인도, 파키스탄의 경우처럼 핵무기를 용인받으면서 미국의 느슨한 우방으로 남으려 할 것이다. 북한은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미군 철수를 이끌어낸 후 무력으로 공산화 통일을 이룩한 베트남의 길을 따라가려고 할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과거 월맹과 달리 직접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갖고 있다.”

-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대북정책이 변할까. “북핵 문제가 시급하다고 볼 것이다. 다만 트럼프처럼 미·북 정상 간의 회담과 친서교환 방식은 하지 않을 것이다. 보다 터프한 정책으로 전환되면서 트럼프식 ‘톱다운’이 아닌 ‘바텀업’ 방식이 될 것이다. 다자간 접촉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 트럼프는 정말 북한 비핵화를 하려 한 것일까, 아니면 시간을 끌면서 북한을 묶어 놓은 것일까. “트럼프는 처음에는 정말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대북정책을 펼쳐왔다고 판단된다. 2019년 초 하노이 미·북 회담에서 트럼프가 김정은의 스몰딜 제안을 거부하고 회담장을 걸어나온 것은 눈가림식 시간 끌기식 비핵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물론 그 같은 트럼프의 행동은 볼턴과 같은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던 참모들의 보좌를 받고 있을 때 나왔다. 나중에는 대선을 위한 정치쇼의 성격이 가미되었다.”

“김여정 방미 추진은 트럼프 2기 승부 포석”

- 김여정의 방미 추진이 뉴스가 되었다. 왜 이 시기에 이런 뉴스가 나왔다고 보나. 트럼프 임기 안에 북한이 뭔가 승부를 걸려 했을까. “승부를 걸기 위해서가 아니라 트럼프 재선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이른바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실현될 경우 트럼프의 대북정책 성과를 부각시킬 수 있고,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미국과 더욱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방미를 추진할 때는 11월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트럼프를 자기 편으로 묶어 두고, 트럼프 2기에 승부를 걸겠다는 포석에서 김여정의 방미를 준비했을 것으로 보인다.”

- 문재인 정부가 생각하는 ‘비핵화’의 정의는 무엇일까. “문재인 정부에 물어보면 ‘의심할 수 없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문제는 진정성이라고 본다.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정략적 목적에서 이벤트성으로 비핵화 문제를 다뤄 나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들어서는 북한이 싫어한다고 정부가 비핵화라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비핵화가 북한이 늘 주장하는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 문재인 정부의 가장 시급한 대북 외교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 “북핵 문제의 해결이다. 북핵 문제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해결이 어려운 성격을 갖고 있다. 사실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보는 것이 냉철한 진단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는 너무나 엄중하기 때문에 설령 늦었더라도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과거 남북관계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남북 간에 많은 합의가 있었지만 북핵 문제 하나로 이 모든 것이 휴지조각이 되었다. 문제는 형식과 합의, 외양과 이벤트가 아니라 평화를 이루는 실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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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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