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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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근로계약서를 써야 한다’라는 점에 대해 모르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최근 몇 년간 노동법 준수에 대한 인식이 대폭 변화했고, 많은 사람이 최저임금에서 주휴수당, 통상임금, 연차수당, 근로계약서 작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노동법의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 아마 이는 ‘미생’과 같은 드라마의 영향과 더불어 블로그,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 수없이 유통되고 있는 노동법 관련 글들의 파급력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노동법의 인식과 지평이 넓어진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많은 회사, 근로자, 노동자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근로조건을 논의해야 무지에서 비롯한 노동 분쟁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과 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정보 글들로 인하여 관련 규정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오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근로계약서 작성이다.

돈만 내면 끝?

정규직 근로자는 물론 일용직, 알바, 기간제 근로자도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형사처벌이 될지 아니면 과태료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근로기준법이나 관련 노동법 위반이 될 것이라고 다들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을 때 실제 처벌이나 제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잘못된 정보로 인하여 오해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흔히 정규직에 대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고, 기간제(계약직)에 대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기간제법 위반으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한다. 지금 당장 네이버 등에 ‘근로계약서 미작성’이란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정규직은 벌금, 기간제 비정규직은 과태료라는 설명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위 설명만 보면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근로계약서 미작성은 과태료가 부과될 뿐이므로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오해하기 쉽다. 전과가 남는 것도 아니고 돈만 내면 끝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보면 틀린 이야기다. 이론적으로는 물론 실무적으로도 기간제(계약직)에 대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것은 물론 500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부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간제법에서는 기간제 근로자(계약직) 또는 단시간 근로자(알바)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때에는 근로계약기간, 근로시간, 휴게시간, 임금의 구성항목 등에 대해 서면으로 명시하도록 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도록 규정한다.(기간제법 제24조 제2항 제2호, 제17조)

근로기준법에서는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계약 체결 시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 소정근로시간, 휴일, 연차, 유급휴가 등에 관한 사항을 서면으로 명시하도록 하고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사처벌)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114조 제1호, 제17조)

별 생각 없이 위 규정을 보면 정규직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기간제(계약직) 및 단시간(알바)은 기간제법에 따라 각각 제재를 받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아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들도 위 규정만 보고 정리한 것이라 생각한다.

기간제(계약직) 근로계약서 미작성도 형사처벌 대상

하지만 근로기준법에서는 사용자가 ‘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각종 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하도록 하고 있을 뿐, 그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로 한정된다는 이야기는 하고 있지 않다. 기간제 근로자이든, 단시간 근로자이든 근로자인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기간제·단시간 근로자에 대해서도 해당 근로기준법 규정은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근로기준법과 기간제법이 일반법과 특별법 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기간제법이 기간제 근로자에게 적용된다고 하여 근로기준법 적용이 배제된다고 보기 어렵다.

고용노동부와 법원(하급심)에서도 열악한 처지에 있는 기간제·단시간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기간제·단시간 근로자에 대하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을 경우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5099, 2017. 8. 18.)

물론 이론적으로 정규직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대해서는 벌금만, 기간제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대해서는 벌금뿐만 아니라 과태료까지 부과하는 것이 타당한지 반론이 있을 수는 있다. 정규직으로 채용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이 더 나쁜 행위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간제법과 근로기준법의 해당 내용이 거의 유사해서, 규정은 없지만 해석상 기간제법이 우선하여 적용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논의를 떠나 실무에서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근로계약서 미작성 역시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인정되어 형사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실제 필자가 수행한 사건에서도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근로계약서 미작성으로 형사처벌이 이루어진 사례가 존재한다. 이와 같이 실무에서는 형사처벌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기간제·단시간 근로자를 채용할 때 근로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이러한 피해를 당한 근로자는 진정뿐만 아니라 형사고소 또한 가능하다.

입법적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

법을 만들 때는 기간제 근로계약서 미작성은 과태료, 정규직 근로계약서 미작성은 벌금이라 생각하고 만들었으나, 관련 규정을 제대로 두지 않은 결과 기간제 근로계약서 미작성을 보다 중하게 다루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보다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있고, 근로자에게 실질적으로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보았을 때 과연 현행 법체계를 그대로 두는 것이 타당한지, 입법적으로 개선할 필요는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재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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