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민주당 인사들이 지난 10월 24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민주당 인사들이 지난 10월 24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추진에 대한 비판이 거센 데에는 이 법안이 헌법에서 보장한 표현·사상의 자유 등을 해칠 거란 우려 이전에 민주당이 보여온 ‘자가당착(自家撞着)’에 있다. 민주당은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국가의 역사독점’ ‘국가의 역사재단’ 문제를 야당의 입장에서 강하게 지적했었다.

“‘역사는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하며 어떤 경우든 정권이 재단해선 안 된다’는 걸 지키지 않는다.” “이념전쟁은 독재 권력의 전조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적어도 역사 교육에서는 획일적인 교육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역사 교육은 역사적 증거의 탐색, 다양한 관점을 인정해야 한다. 열린 토론을 통해 학생들에게 비판적이고 책임감 있는 지적 분석력과 해석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도종환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정치인의 길을 포기하고 독재자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설훈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한마디로 국가가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것인데,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5·18 특별법에 대한 비판도 이런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 10월 27일 만장일치로 당론으로 채택한 5·18 특별법은 5·18 민주화운동 폄훼 발언자를 처벌하고 5·18 진상규명조사위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5·18 역사왜곡처벌법)을 통해 민주화운동을 악의적으로 부인하거나 비방·왜곡·날조하는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며,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5·18 진상규명특별법)으로 진상규명위에 강제조사권을 부여하겠다는 계획이다.

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추진되던 당시 19대 국회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내에서 국정화를 반대하며 민주당에 동조했던 일부 전직 의원들은 역사를 대하는 민주당의 태도가 뒤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당 입법안은 국정화 작업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 김용태 전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거나 왜곡하는 의견은 분명 지탄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규제 방식은 민주당이 그간 비판해왔던 거다. 국가가 제시하는 기준으로 역사를 바라보라는 건데, 개인의 자유권을 억압하기는 마찬가지다”라며 “19대 국회 때 국정화 작업에 반대했던 건 청와대가 노동개혁 등 총력을 쏟아야 할 현안을 제치고 굳이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는 이 의제를 꺼내서였다. 이 시점에 5·18 특별법에 불 지피는 민주당 속내에도 의구심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김 전 의원과 생각을 같이했던 이재오 전 의원의 의견도 마찬가지다. 그는 “정부가 역사 해석 등에 개입해서 너무 의도적으로 뭘 만들려고 하는 건 좋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청와대의 방침이 그랬다. 당시 민주당은 일리 있는 반대를 했는데, 지금에 와선 과거 정부를 답습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역사가 권력의 입맛에 맞춰 기술되는 것은 어느 시대고 옳지 않다”라고 밝힌 바 있다.

‘강자의 정의’로 인한 부작용

민주당의 5·18 특별법 추진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를 연상시키며 반감을 사는 본질적인 이유는 둘 모두 ‘권력층 혹은 강자가 민주화 이후에도 역사를 정의하려 한다’는 데 있다. 과거 역사만 보더라도 권력층이 특정 사건을 규정할 때 희생이 뒤따르는 등 그 부작용은 적지 않았다. 학계에선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1981년 부림사건, 2013년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드는데, 문제는 민주당이 관심을 기울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진보진영의 한 원로 인사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는 반드시 제재해야 한다. 다만 이를 강제하는 식의 접근, 당론으로까지 채택하는 민주당의 조치는 자칫 ‘강자의 정의’가 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정의와 부정의를 규정하고 부정의를 처벌하는 거다. 이는 권력에 의해 폭동으로 규정되기도 했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 전개를 고려했을 때 결코 유익하지 않다. 또 다른 권력의 규정이다. 어떤 식으로든 부작용은 나오기 마련이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기계적인 법 적용으로 역사에 남은 상처를 치유하는 게 적절한 것일지는 다시 한번 재고해야 한다. 대화와 이해를 통한 희생자 중심의 논의가 5·18 민주화운동을 곡해하는 시선을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최근 국민의힘이 지역주의 극복과 동서화합 등을 위해 5·18 국립묘지 참배에까지 나섰다면, 민주당도 입법보다는 국회 안에서 이를 지혜롭게 해결할 생각을 먼저 했어야 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지난 8월 국민대통합을 목표로 발족한 국민의힘 국민통합특별위원회의 정운천 위원장 말에 따르면, 5·18 단체들도 해당 법이 표현의 자유를 막고 5·18 정신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데에 공감한다고 한다. 5·18 운동은 독재에 대한 항거로 그 정신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데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 위원장은 “다만 이 법 자체가 어느새 진영논리로 희석돼 찬반 논의조차도 어려워졌다. 우리로선 현재 처벌 형량을 국민 수준에 맞게끔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1월 3일 호남을 방문해 “법을 만드는 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내용은 입법 과정에서 상식 선에서 결정되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2015년 11월 3일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의원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위한 규탄대회’를 하는 모습. ⓒphoto 뉴시스
2015년 11월 3일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의원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위한 규탄대회’를 하는 모습. ⓒphoto 뉴시스

사건의 중요성보다 ‘현재성’ 고려해야

5·18 특별법은 역사부정처벌법으로도 일컬어진다. 학계에선 과거부터 다수의 유럽 국가가 제정한 대표적인 역사부정처벌법인 홀로코스트법(유대인 대학살 등 독일의 나치 범죄 부인 행위를 처벌하는 법규) 부작용을 거론하며 법 제정은 최선이 아니란 입장을 내세워왔다. 민주당은 현재 5·18 특별법을 ‘한국판 홀로코스트법’으로도 일컫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자는 “악의를 막기 위해 그 악의에 대항하는 무기로 규제를 택하는 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다수 학자들의 의견이다. 5·18 폄훼를 비롯한 각종 혐오표현 금지엔 찬성하면서도 그 방법으로 법 제정을 택하는 건 반대한다는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반대는 법이 역설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의 주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법적 소송은 합법과 불법, 승자와 패자 등을 만들기 마련인데 역사 왜곡자들이 법정에 섰을 땐 ‘이겨도 이기고, 져도 이기는’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이 앞선 학자의 지적이다. 역사부정자가 무죄를 선고받으면 그의 비방과 왜곡이 표현의 자유로 인정되고, 유죄를 받으면 ‘사회적 소수자’로 조명받을 여지가 크다. 실제 1985년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배포하다 홀로코스트법으로 기소된 에른스트 쥰드(Ernst Zündel), 1990년대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던 영국 작가 데이비드 어빙(David Irving)은 실형을 선고받은 후 ‘의사를 억압받은 소수자’로 부상하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이들은 자신의 역사부정 주장을 오히려 더 넓게 펼칠 수 있었다.

학계에선 서구 사회가 이런 부작용에도 홀로코스트법을 제정·유지하는 건 한국에선 나타나지 않는 남다른 배경이 있어서라고 지적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홀로코스트는 서구에서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간주된다. 홀로코스트는 현재에도 다양한 형태의 혐오, 차별,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홀로코스트가 조작됐다는 주장은 허위사실 유포에 그치지 않고 신나치즘과 결합하면서 소수자 집단을 차별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준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중요성이 아닌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역사부정처벌법을 제정·유지했으며, 민주당처럼 “외국에서도 처벌한다” 정도의 논의 수준으로 입법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민주당의 5·18 특별법 추진을 두고 형평성 문제, 즉 특정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만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은 이런 ‘현재성’에 대한 고려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정통 민주세력 과시’ 위한 입법

정치권 안팎에선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 발언 제재에 숙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앞서의 진보 인사는 “민주화운동에 대해 가치절하하는 이들은 여전하지만 관련 주장을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평균 상식은 향상됐다. 무엇이 주지의 사실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말이다. 사회공동체 내에서 자체적으로 거를 수 있는 사회문화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의 조치는 권력을 독점한 집권당이 깊게 고민하지 못하고 그대로 밀어붙이는 ‘강자의 정의’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민주당이 위헌 여지를 감내하면서까지 이 법을 추진하는 데에는 5·18 민주화운동이 갖는 역사적 상징성을 통해 자신들이 정통 민주세력이라는 점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계산도 있다. 실질적으론 이를 통해 호남 지지율까지 끌어올리려는 거다. 역설적으로 이는 ‘민주’가 빠진 여당의 자가당착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민주당은 5·18 특별법을 시작으로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10·19사건 등과 관련한 특별법 제정까지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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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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