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김원웅 광복회장 photo 뉴시스 (우) 김진호 재향군인회장 photo 뉴시스
(좌) 김원웅 광복회장 photo 뉴시스 (우) 김진호 재향군인회장 photo 뉴시스

양대 보훈단체인 광복회와 재향군인회(향군)의 싸움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약산(若山) 김원봉에 대한 서훈 추진 논란, 고(故)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문제를 놓고 한 차례 전초전을 벌였던 양 단체는 지난 8월 15일 김원웅 광복회장의 광복절기념사를 기폭제로 전면전 양상으로 맞붙어왔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이사로 있는 ‘운암 김성숙 선생 기념사업회’가 “향군 해체”를 주장한 것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이에 재향군인회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광복회장(김원웅) 부모 가짜 독립유공자 의혹 진상조사’란 글에 대한 동의를 회원들을 상대로 독려하기에 이르렀다. 향군 홈페이지에는 ‘향군 해체 주장하는 광복회장 김원웅 국민청원 참여하여 우리가 심판하자’는 큼직한 배너가 내걸렸다. 향군과 성우회(星友會) 등이 입주해 있는 서울 서초구 향군 본부를 비롯해 잠실 향군타워, 충북 단양의 충주호관광선 등 향군의 사업장 곳곳에도 광복회장 부모의 가짜 독립유공자 의혹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속속 나붙었다. 그 결과 지난 11월 5일 마감된 ‘김원웅 광복회장 부(김근수), 모(전월선) 가짜독립운동가 의혹 진상조사 청원’에는 모두 1만6363명이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청와대가 답변 기준으로 제시한 20만명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숫자지만, 고령인 향군 회원 특성 등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향군 회원이 동의하고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지난 3월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 이장을 위한 국립묘지법 개정을 촉구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을 때는 약 1만6888명이 동의 의사를 밝혔다. 당시에는 광복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양대 보훈단체가 사이버 공간에서 엇비슷한 세(勢) 과시를 한 셈이다.

하지만 청와대 국민청원 기간이 종료된 지금까지도 양대 보훈단체의 기싸움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광복회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는 향군 회장을 지낸 김홍일 장군이 광복회장을 지낸 적도 있었다”며 “김원웅 회장 취임 후 양 단체 관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제스(蔣介石)의 국민혁명군 출신인 김홍일 전 회장(건국훈장 독립장)은 백범 김구 선생을 도와 이봉창·윤봉길 거사를 직접 지원했고 후일 재향군인회장(9대), 광복회장(6·7대)을 차례로 역임했다.

향군 “광복회 보훈단체로 인정 못 해”

양대 보훈단체의 싸움은 현재로서는 극적인 퇴로를 찾기도 힘들어 보인다. 우선 향군 측은 김원웅 광복회장이 있는 한 광복회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향군은 김원웅 광복회장의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기념사 직후 “향군은 김원웅의 반국가적 행위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며 대국민 사과와 즉각 사퇴를 촉구한다”며 “김원웅이 광복회장으로 있는 한 광복회를 보훈단체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일절 협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천명한 바 있다. 광복회장의 임기는 4년으로, 지난해 당선된 김원웅 광복회장의 임기는 오는 2023년까지다.

향군 측은 김원웅 광복회장의 부모가 실제 독립운동에 참여했었는지 여부 역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사실 김원웅 회장의 부모가 실제 독립운동가였는지 여부는 지난 광복회장 선거과정에서 간간이 나왔던 논란이다. 김원웅 회장이 1990년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 당료로 있을 때 부모가 동시에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김근수), 건국훈장 애족장(전월선)을 받은 사실도 논란이 됐다. ‘광복회 개혁모임’이란 단체에서 올린 ‘광복회장 부모 독립유공자 의혹 진상조사’ 청와대 국민청원에 향군 측에서 회원들 동의를 독려한 까닭 역시 이런 이유에서다.

현재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에는 김원웅 회장의 부친 김근수(건국훈장 애국장)에 대해 ‘1941년 3월 광복군에 편입하여 1945년 8월까지 6년 1월간 중경, 하남성 및 만주지방 특파공작원으로서 지하조직망 구축 및 적정 탐지 및 선전 공작 활동한 공적이 있음’으로 밝히고 있다. 김 회장의 모친인 전월선(건국훈장 애족장, 사료관에는 ‘전월순’이라는 이름으로 표기)에 대해서는 ‘1939년 9월 19일 중국 한구(漢口)에서 조선의용대에 입대하여 일군 정보 수집, 사병 초모 등 공작 활동을 하다 1942년 4월 광복군 제1지대원으로 편입된 사실이 확인됨’이라고 적고 있다.

이 같은 사항은 지난 10월 15일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도 지적됐다. 이에 광복회 측은 “독립운동가 김근수, 전월선 지사의 독립운동 자료는 차고 넘친다”며 즉각 반박 자료를 냈다. 중국 정부의 기록문서 보존자료에 김근수 지사의 이명인 김석(金石)의 성별, 나이, 중국 도착 연도, 주소, 직업 등이 자세히 나와 있고, 일본 내무성 경보국 외사과의 ‘재지(在支·중국) 불령선인단체 조직계통표’란 자료에도 조선의용대에서 광복군으로 편입한 김근수, 전월선 지사의 이명인 ‘왕석(王碩)’과 ‘전월순(全月順)’이 나와 있다는 반박이었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 역시 “광복회장의 부모님과 관련한 부분은 절차와 과정을 거쳐서 이미 확증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재향군인회 사업장인 충주호관광선 선착장에 내걸린 현수막. ⓒphoto 이동훈
재향군인회 사업장인 충주호관광선 선착장에 내걸린 현수막. ⓒphoto 이동훈

양 단체, 서로 광복군 법통 주장

재향군인회와 광복회가 올해로 창군 80주년을 맞이한 ‘광복군’의 법통을 서로 계승했다고 다투는 것도 좀처럼 싸움을 끝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광복회는 일제 때 희생된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그 유족들을 주축으로 결성한 단체다. 임시정부 마지막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이 1940년 충칭에서 조직한 ‘광복군’ 출신들과 그 유족들 상당수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원웅 회장 역시 광복군 2세 자격으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을 꺾고 광복회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우당 이회영 선생(건국훈장 독립장)의 손자로, 독립운동가 3세다.

향군 역시 그 뿌리를 미 군정기인 1946년 조직된 ‘국방경비대’가 아닌 ‘광복군’에서 찾고 있다. 재향군인회는 지난 8월 16일 김원웅 광복회장을 규탄하며 낸 성명에서 “최초 국방경비대로 창설된 국군은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본문에 따라 광복군의 법통을 이어받은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마치 경찰이 자신의 뿌리를 미 군정기에 조직된 ‘경무국’이 아닌 백범 김구가 초대 경무국장을 지낸 ‘임정 경무국’에서 찾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양 단체가 서로 광복군의 법통을 이어받았음을 경쟁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한·미동맹’ ‘전작권 전환’ ‘종전선언’ 등의 민감한 이슈를 두고 동맹을 중시하는 재향군인회와 민족을 중시하는 광복회가 충돌하는 부분도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중국의 항일전쟁승리기념일인 지난 9월 3일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 앞으로 “한국과 중국은 항일 반파시즘 전쟁을 함께 치른 동지로서 세계 평화를 위해 연대할 것”이라는 광복회장 명의의 축전을 보냈다. 광복회 측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3일 UN총회 화상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하자 “적대와 불안의 시대를 종식시키자는 겨레의 열망을 담은 연설”이라고 극찬했다. 반면 향군 측은 ‘한·미동맹’ ‘전작권 전환’ ‘종전선언’ 등 안보 관련 이슈에서 수차례 현 정부와 각을 세운 바 있다.

존립 기반 흔들리며 선명성 경쟁

광복회와 재향군인회 양 보훈단체의 싸움을 선명성 경쟁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제대 군인을 중심으로 회원들이 유입되는 향군과 달리 광복회는 회원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회원수는 약 8200명이지만 마땅한 수익사업이 없는 것이 고민거리다. 박유철 전 회장 때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을 재건축해 이를 재원으로 삼고 있으나 대기업 못지않은 향군의 사업 규모에 비해서는 새 발의 피다. 이에 김원웅 회장은 지난 2월 장영달 전 의원(4선)을 광복회 복지증진위원장으로 위촉해 수익사업 발굴에 나섰으나 국회에 ‘헤리티지 1919’라는 테이크아웃 커피집을 내는 정도에 그쳤다.

관례적으로 국가최고원로 대접받는 광복회장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 독립운동에 직접 투신했던 선대들이 대부분 작고한 터라, 광복회장 역시 김원웅 회장의 전임자인 박유철 전 회장(19·20대) 때부터 유족 회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독립기념관장과 국가보훈처장을 지낸 박유철 전 광복회장은 5대 광복회장을 지낸 광복군 출신 박시창 장군(건국훈장 독립장)의 장남이자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건국훈장 대통령장)의 손자다.

하지만 독립운동가의 2세, 3세들에까지 국가최고원로로서 예우를 해줘야 하는지는 여전한 논란거리다. 이에 광복회는 김원웅 회장 취임 이후 여권이 주도해온 ‘친일’ ‘토착왜구’ 논쟁 등에 적극 가세하면서 선명성을 부각하고 있다. 김원웅 회장이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을 ‘에키타이 안’이라고 부르면서, 애국가 교체를 주장하는 것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이에 일부 친여(親與) 성향 시민단체들은 김 회장을 ‘친일 청산 전문가’라고 극찬하며 지지성명을 내기도 했다. 공화당 사무처 공채 당료 출신으로 민정당, 민주당, 한나라당, 열린우리당으로 수차례 당적으로 옮겨가며 3선 의원을 지낸 김원웅 회장의 ‘노이즈 마케팅’ 전략이 나름 먹혀들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광복회 선명성 강화의 대표적인 표적이 재향군인회라 볼 수 있다. 재향군인회가 비록 ‘광복군’에서 법통을 찾기는 하지만, 창군 과정에 참여한 군 원로들과 옛 일본군의 연관 관계를 부인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초대 재향군인회장인 백홍석 회장(예비역 소장)도 일본 육사 출신이다. 광복회는 지난 7월에는 “국방부 육군군가집에 ‘독립군가’는 수록돼 있지 않고, ‘육군가’ ‘화랑행진곡’ ‘진짜사나이’ 등 친일 작곡가인 김동진, 이흥렬 등이 쓴 군가(軍歌)만 있다”며 국방부에 교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군 원로들이 주축이 된 향군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지적이다.

재향군인회 역시 과거와 달리 존립기반이 취약해진 것은 마찬가지다. 향군은 대외적으로 회원수만 1300만명에 달하고 부동산(잠실 향군타워), 고속버스(중앙고속), 고속도로휴게소 등 전국 각지에 수익사업장도 대거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라임펀드 사태의 배후 전주(錢主)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과 관련해 ‘재향군인회 상조회’가 거명되면서 김진호 재향군인회장(예비역 대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학군 출신 김진호 향군 회장은 김대중 정부 때 합참의장을 역임했고, 노무현 정부 때 한국토지공사 사장을 지냈다. 지난 10월 27일 열린 ‘향군의 날’ 기념식에는 정부 측 인사로 이남우 국가보훈처 차장이 오는 데 그쳤다.

재향군인회의 한 관계자는 “향군과 광복회의 관계가 이렇게 된 것은 전례가 없다”며 “10월 20일 광복회 사무총장과 총무국장이 재향군인회를 찾아왔을 때 향군의 입장을 전달했다. 사무총장 등이 ‘앞으로 광복회장의 정치 관련 이야기를 자제시키고, 특히 안보 관련 발언은 유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원웅 광복회장은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0월 21일 경북 구미의 왕산 허위 선생(건국훈장 대한민국장) 기념관을 찾아서 “태극기부대로부터 빨갱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다음에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정치적 발언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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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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