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 산동면의 이앤컴퍼니 산업폐기물처리장 전경.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경북 구미시 산동면의 이앤컴퍼니 산업폐기물처리장 전경.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진 산업폐기물처리장 인수를 두고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자금중개를 맡은 대만계 유안타증권(옛 동양종합금융증권)이 사실상 동업관계에 있는 국내 유명 시행사 ‘엔앤피아이(옛 공간토건)’ 측에 줄잡아 수천억원대 가치로 평가받는 폐기물처리장을 불과 160억원에 넘겨 금융감독원 금융투자검사국에도 ‘강탈당했다’는 취지의 민원이 접수됐다. 조만간 해당 증권사와 시행사를 상대로 주식반환소송을 비롯해 민형사 소송전도 벌어질 양상이다. 국내에 상장된 유안타증권은 모기업 본사가 대만이고 대표(궈밍쩡)도 대만인이라서 자칫 한국과 대만 간 국제 소송전으로도 비화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해당 산업폐기물처리장은 경북 구미에 있는 ‘이앤컴퍼니’란 산업폐기물처리업체가 운영하는 곳이다. 구미시 산동면 일대에 서울 여의도 면적(약 300만㎡·89만평)의 3분의 2에 달하는 약 200만㎡(60만평) 규모의 부지를 확보한 처리장으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와 시설을 갖춘 곳으로 평가받는다. 구미국가산업단지(옛 구미공단)를 비롯해 전국의 산업장에서 발생하는 석면과 하수슬러지 등 각종 산업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냄새 나는 폐기물처리장과 달리 돔 형태의 하얀 지붕이 처리장을 덮고 있어 위성사진으로만 보면 쓰레기장인지 돔구장인지 구별조차 쉽지가 않다.

구미에서 ‘KM그린’이란 옛 사명으로 잘 알려진 이 산업폐기물처리업체는 지난 수년간 사모펀드에 의해 대주주가 바뀌었는데, 지난해 10월 ‘엔앤피아이’란 업체에 최종 인수됐다. 엔앤피아이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옛 단국대 부지를 ‘한남더힐’이란 최고급 아파트로 개발해 1조원 넘는 대박을 터뜨린 시행사 ‘한스자람’의 모회사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비롯 정·관·재계 인사 및 연예인이 다수 거주하는 한남더힐은 최근 옵티머스펀드 사기사건에 연루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옵티머스 고문)를 비롯해 경남 밀양 조폭 신동방파 출신 옵티머스 2대 주주 이동열씨가 사는 곳으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유명 시행사인 엔앤피아이가 수천억원대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이 폐기물처리장을 불과 160억원에 인수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유안타증권은 분쟁 당사자인 ‘스프링힐그린’이 과거 약 320억원에 이 폐기물처리장을 인수할 때 250억원 규모의 자금을 중개해 줬다.

하지만 자금 만기일(2020년 10월 18일)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대출 잔금 160억원을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담보로 잡고 있던 폐기물처리장을 제3자인 엔앤피아이 측에 매각해 버린 것. 유안타증권 측은 “만기연장을 몇 차례 해줬고, 계약서상의 기한이익상실 시점이 끝난 뒤 매각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

몇몇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해당 폐기물처리장을 지난해 10월 별도 매각공고 없이 수의계약을 통해 한스자람의 모회사인 엔앤피아이에 매각한 것이 우선 문제로 지적된다. 담보로 잡은 물건의 대출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매각공고를 내고 경쟁입찰을 붙여 가장 높은 값에 매각해 채권을 회수하는 것이 금융권의 일반적 관행이다. 해당 폐기물처리장은 앞서 두 번의 계약 때만 해도 모두 300억원 넘는 금액에 거래가 체결된 바 있다.

하지만 유안타증권은 해당 폐기물처리장을 대출잔금인 160억원에 딱 맞춰 채권회수 통보 당일 엔앤피아이 측에 넘겨 버렸다. 보증금을 먼저 받고 금융기관이 휴무하는 추석 연휴 기간 중 매매계약이 체결된 점도 석연치 않다.

별도의 매각공고 없이 폐기물처리장을 수의계약으로 매각한 점은 유안타증권 측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유안타증권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300억원 이상을 받고 싶었지만 우발채무도 있고, 전 경영진 측이 서울 본사와 구미 현장을 모두 장악하고 있어서 현장 실사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며 “엔앤피아이 측이 조건 없이 인수하겠다고 해서 매각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부르는 게 값이 된 ‘쓰레기장’

산업폐기물처리장은 철저한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매각 시 부르는 게 값이다. 일단 모두가 손사레 치는 산업쓰레기를 버릴 부지 자체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환경부는 물론 해당 지자체로부터 인허가를 따내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신규 산업폐기물처리장 개설 때는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해 인허가절차를 거치는 데만 줄잡아 5~10년가량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번에 분쟁이 벌어진 폐기물처리장의 경우도 창업주 강모 전 회장이 환경부 고위관료 출신이다. 인허가권 자체가 알짜 자산인 셈이다. 이에 산업폐기물처리장은 대기업이나 사모펀드가 아니면 신규 진출을 꿈도 못 꾸는 업종으로 바뀐 지 오래다.

약 5조30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산업폐기물처리 시장 규모도 매년 커지고 있다. 연간 폐기물 발생량 및 단위무게도 매년 상승하는 추세로, 연평균 성장률은 10%에 달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대기업과 사모펀드의 산업폐기물처리장 인수 소식도 나왔다. 지난해 9월에는 SK건설이 국내 최대 산업폐기물처리장으로 불리는 EMC홀딩스의 지분 100%를 한 사모펀드로부터 약 1조원에 인수했고, 호주의 사모펀드 맥쿼리가 보유하던 울산의 산업폐기물처리업체 코엔텍도 지난해 6월 약 5000억원에 부산의 향토 건설사인 아이에스동서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유안타증권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스프링힐그린 역시 해당 폐기물처리장을 인수할 때만 해도 유안타증권 측과 돈독한 관계였다. 2019년 11월 해당 폐기물처리장을 최초 인수한 뒤 국내 한 코스닥 상장사에 재매각하는 과정에서 각종 송사가 벌어졌을 때만 해도 양자는 한편이 돼서 싸웠다.

하지만 1차 분쟁을 거의 마무리 짓고, 2차 재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안타증권 측이 돌연 파트너를 국내 유명 시행사인 엔앤피아이로 바꿔 타면서 관계가 꼬여 버린 셈이다. 이에 “유안타증권이 경제적 이해를 같이하는 엔앤피아이 측에 사실상 헐값에 넘긴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유안타증권은 과거 엔앤피아이가 서울 한남동 옛 단국대 부지를 최고급 아파트인 한남더힐로 개발할 때 공동투자자로 참여했다. 지금도 한남더힐 시행사인 한스자람의 지분 일부를 갖고 있다. 한스자람의 김모 대표는 유안타증권의 전신인 동양종합금융증권 출신으로 알려졌다.

유안타증권의 한 관계자는 “한스자람 김모 대표가 과거 동양증권에서 근무한 것은 맞지만 다른 증권사를 거쳤다가 이미 퇴직한 지 오래된 분”이라며 “한남더힐을 개발할 때도 다른 금융사들과 함께 정상적인 대출 형태로 돈을 빌려준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금융투자검사국의 한 관계자는 “관련 민원은 검사 업무에 참고할 뿐이지 확인해 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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