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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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로 논문이 한 편 날아왔다. 인터뷰 때 좀 더 수월하게 얘기를 나누자며 미리 보내준 참고자료였다. ‘한국의 조세 및 재정지출의 재분배 효과’라는, 제목만 봐도 쉽지 않을 듯한 논문이었다. “우리나라 복지의 수준이나 양상에 관해 종래의 인식과는 다른 새로운 정보들이 구체적 수치로 담겨 있기 때문에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란 말과 함께 첨부됐다.

메일을 두어 번 주고받은 뒤 지난 1월 26일 동국대 연구실에서 김낙년 교수(64·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를 만났다. 정년을 1년 앞둔 김 교수는 그간 소득불평등을 우리 시대 사회과학의 중요한 이슈로 만들어왔다. 그는 토마 피케티 모형을 활용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 실태를 여러 번 입증해냈다. 2012년 소득세 자료를 통해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가져간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2014년에는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소득세 자료)를 활용해 한국의 소득불균형이 기존 가계동향조사를 활용한 통계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걸 보여줬다. 2015년에는 한국인의 자산에서 상속 자산의 비중이 1980년대 평균 27%에서 2000년대에는 42%로 늘었다는 연구 성과를 내놓으며 이른바 ‘수저계급론’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쯤 되면 시급한 문제가 돼버린 팬데믹 시대의 빈부격차를 진단하기에 김 교수만 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지금의 빈부격차가 좀 줄어드느냐고. 돌아오는 대답이 긍정적이진 않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해도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없었던 것처럼 이전으로 되돌아가진 못할 것 같다.”

팬데믹 시대는 격차를 낳았다. 집값 상승 속도가 과도하다며 경고등이 울렸고, 침체된 실물경제와 달리 주식시장은 활황을 달린다.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은 최근 79개국 295명의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격차’에 관해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87%는 이번 코로나19로 자국의 소득불평등이 높아지거나 극도로 심화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또 78%는 부의 불평등 역시 증가 또는 급등할 것이라고 답했다. 여기에 한국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이익공유제? 법률로 성립되지 않아”

김 교수는 과거 논문에서 “근로소득 불평등이 완화되고 있지만 비근로소득에서는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고 증명했다. 비근로소득의 대부분은 자산이다. 자산의 격차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는 얘기다. 그는 “소득불평등보다 자산의 격차는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사람들이 수용을 못 한다”고 말했다. 부모를 잘 만나는 것처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결과가 정해지는 일이 그렇다. 소득격차보다 자산격차가 박탈감이나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생긴 격차는 일시적 부작용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착화한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고 사회 전반에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격차 해결은 정부가 당장 완화해야 할 과제가 됐다. 각론은 다양하게 나오고 있지만 향하는 지점은 뚜렷하다. 확장적 재정을 꾀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김 교수가 보기에도 확장적 재정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경제적 피해를 입은 계층은 수두룩한데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부담을 져야 한다. 문제는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재난을 극복할 포용적 정책 모델로 손실보상제와 이익공유제를 언급했다.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익공유제 같은 경우는 법률이 되려면 코로나19 때문에 누가 이득을 보고 손실을 봤는지 정의를 하고 구체적으로 판단이 돼야 한다. 그게 안 되면 법률의 형태로 성립이 되지 않는다. 결국 세금으로 해야 하는 게 맞는다. 세금으로 집행했는데 재원이 부족하면 증세를 정면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표 떨어지는 얘기가 된다. 실행이 안 되는 얘기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증세가 안 된다면 국채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여당은 이미 손실보상제 등의 재원 마련을 위한 국채 발행 등을 언급했다. 김 교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말한다. 금융시장에 국채를 발행하면 금리가 오를 수 있다.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금리가 올라가면 대출과 주식시장 등 경제 전방위에 영향을 준다. “한국은행에서 돈을 찍어서 국채를 인수한다는 얘기를 한다. 그것도 비용이 든다. 국가 신용이 떨어지고 원화 가치의 신뢰가 떨어진다. 모든 게 다 대가가 있는 거다.”

“경제활력 떨어지는 정책 해결책 못 된다”

또 다른 방안으로 제시되는 게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대상을 선별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지금의 기본소득 논쟁은 김 교수가 보기에 효율적이지 못하다. “막상 지급하면 의외로 쓰지도 않는다. 지금이 소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말 필요한 사람한테 더 많이 가도록 하는 게 효율적인데 이걸 널리 퍼뜨려서는 효과가 떨어진다.”

문제점은 따로 있다. 그는 “재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효율을 높이려면 기본소득을 도입하되, 기존의 기본 복지 시스템 중 기본소득과 상응하는 부분을 수정하는 게 옳다”고 본다. 그런데 시스템을 건드린다는 건 기존 수혜자들의 반발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정치적 손실을 입을지도 모를 일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기존 시스템을 놔둔 채 기본소득을 플러스알파로 추가하는 방법이 정치적 구호로 힘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기본소득이 객관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고 본다.”

피케티팀이 만든 ‘월드 톱 인컴 데이터베이스(World Top Income Database)’에 한국 데이터를 제공하며 함께 협력했던 김 교수지만 피케티가 주장하는 부유세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양극화의 심각성을 느낀 미국과 유럽에서는 부유세가 화두로 떠올랐다. 김 교수는 부유세에 대해 “일반 소득의 경우는 당해에 실현된 것에 과세를 한다. 하지만 자산은 매년 실현되는 게 아니다. 값이 떨어질 수도 있는 거다. 소득과 자산이 같이 있는 사람은 감내가 되지만 자산은 있는데 소득이 없는 사람 같은 경우는 문제가 된다. 실현 안 된 부분에 대한 과세라는 성격이 있어서 실제로 실행하기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물어봤다. ‘그럼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김 교수는 “경제활력을 촉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잘못된 시행착오를 계속 거듭하면서 활력에서 멀어지는 정치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소득주도성장이다. 공공 일자리는 좀 늘어났지만 민간이 활성화돼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회를 넓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자원을 많이 써서 빚도 많이 늘어났지만 성과는 초라하다.”

김 교수의 통계에 따르면 과거 고도성장기 때가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불평등 정도가 낮았다. 일자리가 급속하게 만들어졌기에 농촌까지도 성장의 효과가 빠르게 퍼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장의 가장 큰 동력은 일자리다. 일자리는 불평등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부분이 지금 가장 취약해졌다. 지난해 취업자는 22년 만에 최대폭으로 감소했고 실업자는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격차 문제로 시련에 처한 정치권에서도 그에게 자문을 구할 법했다. 그런데 그런 요청이 들어올 때면 “질문에 답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이 언급한 재분배 문제는 데이터를 정확하게 봐야 그걸 바탕으로 어떻게 할지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런 자료가 부족하단다. 그래서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중이다.

“현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정책 논의 가능”

김 교수는 현재 피케티팀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GDP 같은 국민계정에 가계 조사와 조세 자료를 결합해 데이터를 취합한 뒤 전 세계가 같은 기준으로 소득불평등 정도를 분석하는 프로젝트다. 그는 한국의 데이터를 담당한다. 프로젝트를 활용해 국제적인 비교가 가능해진다는 건 우리 재분배 정책의 현실과 장단점을 알 수 있는 기회다. 한국이 서구 복지국가와 무엇이 다르며, 어떤 지점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야 사회적 논의의 지향점을 바꿀 수 있다.

메일로 받은 논문은 피케티팀 프로젝트 작업의 ‘1할 정도’에 불과한 결과물이었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빈부격차와 계층 간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수치)로 재분배 효과를 봤을 때 한국은 OECD 국가 중 아래에서 4번째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이건 현금 지원으로 한정했을 때 얻은 결과다. 한국은 현물서비스(의료·교육·보육 등)가 많은 편이며 이를 포함하면 OECD 평균 정도의 재분배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걸 실증했다. 그는 영국의 데이터와 비교했는데, 결정적으로 수령 연금의 차이가 지니계수의 차이를 벌렸다. 김 교수는 이런 식의 오독(誤讀)이 잘못된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걸 경계했다. “복지 지출 중에서 현금만 다루는데 우리는 현물이 더 크다. 연금이 문제인데 우리는 이제 막 연금을 타는 세대가 나오기 시작했다. 서구와 연금의 성숙 단계가 다른데 이런 원인을 놓치면 정책을 펼칠 때도 잘못 읽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 부채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지적도 마찬가지. 연금만 해도 지금은 내는 사람이 많고 받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생기는 착시일 뿐,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부채가 쌓이는 속도는 급속하게 간다. 김 교수는 "이렇게 가는 건 후세대에 우리가 부담을 더 주는 것인데, 젊은 세대들이 자기를 변호할 수 있는 목소리가 없다보니 결국은 그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고령화의 진행 속도와 같은 숨어있는 요인을 감안해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강조점이다.

우리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건 미래를 위한 포석이다. 코로나19가 만든 격차는 바이러스가 종식돼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화되고 고착화할 수 있다. 그래서 ‘격차 해소’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어젠다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국가가 어떤 모습인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나는 무엇을 부담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를 모든 국민이 정확히 알아야 생산적 정책 논의가 가능하다.” 정년퇴임을 앞둔 김 교수가 매일 아침 8시30분에 연구실로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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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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